Jun 15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막2:13-17)

Posted by on Jun 15 2011 at 05:48 pm

                                                                                   마가복음2:13-17절
                                                                   (나를 부르시는 주님 Jesus calls me)
                                                                                                                                                          May 03/2011
예수님께서는 여기 저기 바쁜 일정을 소화하시면서 틈만 나면 말씀을 가르치셨고 선포하셨습니다. 산이나 바다나 혹은 음식 잡수실 때에도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말씀을 선포하시거나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많은 무리들이 모였기 때문에 장소 선택에 신중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 크고 좋은 건물들과 공간들이 얼마든지 많으니까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지만 예수님 당시에는 추운 겨울철이나 그리고 비가 오거나 밤이 되면 집회를 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지금은 성능 좋은 마이크가 있으니까 목소리의 크고 작음에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육성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천명만 넘어도 뒤 구석 쪽의 사람들은 잘 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많은 무리들이 모였을 때에는 무리를 산이나 호수로 인도하여 그 곳에서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산에서는 언덕 위에 서서 사람들을 내려다 보면서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장의 산상 수은을 선포하신 장소는 천연적으로 좋은 장소입니다. 그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설교를 하면 저 아래에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수천 명도 잘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아주 좋은 장소입니다.

그리고 호수에서는 배를 육지에서 10여 미터 떨어지게 하신 다음 그 배위에 서서 호숫가에 모인 사람들을 향하여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해변에서 설교를 하시려면 빈 배가 필요하였고, 그래서 베드로를 처음 만났을 때 베드로의 빈 배를 빌려 타신 것입니다.

이 날도 주님께서는 군중들을 갈릴리 호수가로 인도하셔서, 당신께서는 배를 빌려 배 위에서 설교를 하셨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큰 은혜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렇게 많은 군중 보다도 비록 그 집회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세관에서 심한 갈등을 하고 있는 한 사람에게 마음이 쏠리셨습니다. 아마도 그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떼를 지어 가는 사람들을 지켜 보면서 자기도 따라가고 싶지만 차마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깊은 한숨만 내 쉬었는지도 모릅니다. 만일 자리에서 일어나 예수님의 설교를 들으러 갔다가는 “민족의 피를 빨아먹는 세리 놈”이라고 사람들로부터 야유를 당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한 세리 직을 그만 두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두려워 그렇게 갈등하며 사는 것도 이제는 지쳤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사람의 이러한 갈등을 다 아시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집회를 마치시고 오시는 길에 일부러 세관 앞을 지나셨습니다. 그리고 세관에서 사무를 보고있는 그를 향하여“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주님을 따릅니다.

그간 심히도 갈등하고 고민하였던 레위는 주님께서 자기를 보시면서 “나를 따르라” 불러 주시니 너무 감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곧바로 세리 직을 그만두고 주님을 따르기 시작하였으며, 잔치를 배설하고 그 잔치에 주님을 초대합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거룩하다 하시는 분이 어찌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십니까?” 라며 예수님을 비난합니다.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내가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고 하십니다. 세리 레위가 마침내는 예수님의 귀한 제자가 되는 이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고자 하십니까? 어쩌면 이 사건을 통하여 주님은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제자가 되는가, 혹은 어떻게 전도하여 주님의 제자로 양육하는가에 대한 단계를 보여 주고자 하심 일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배경을 생각하며 오늘 본문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첫째, 주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아마도 세관원 레위는 여리고 세리 장 삭게오처럼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며 사는 것이 참으로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는 삭게오를 잘 아는, 아니 지금 자기가 모시고 있는 자기 보스가 삭게오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도 남의 사생활까지도 다 들춰내는 신문기자와 무자비하게 세금 뜯어가는 세무서 직원은 별로 가까이 하고싶지 않지 않습니까? 예수님 당시 세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로마 정부는 식민지하에 있던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걷을 때 마찰이나 반감이 적도록 로마 관리들이 직접 나서지 않고 식민지국 사람들을 세리로 채용하여 거둬들였습니다. 또한 세금을 빨리 거둬드리기 위하여 각 도시나 성읍마다 일정량의 징수액을 정해놓고, 그 일정량만 채우고 나면 나머지는 세리들이 갖도록 하였습니다.

한편 세리들은 로마 정부로부터 월급을 받는 대신 백성들을 착취하여 많은 세금을 거둬들인 다음, 책정된 액수를 로마정부에 바치고 나머지로 부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에 세리들은 자기 민족을 착취하는 악독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힌 사람들 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세리와 창기는 공인된 죄인으로 취급하였습니다.

하지만, 설교자이자 신학자인 바클레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세관에 앉아있는 레위를 보시면서 그 안에 위대한 전도자 마태를 보셨다” 주님께서 세리 레위 안에 감추인 놀라운 가능성을 보셨다는 것입니다.

마태는 “하나님의 선물” 이라는 뜻인데 아마도 주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 아닌가 믿어집니다. 너무 비약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마태 안에 있는 전도자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할 자로서의 그를 보신 것입니다. 사실 이 레위는 신약성경의 첫 번째 책인 “마태복음”을 기록하고, 주님의 12제자가 되어복음을 증거하다가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의 현재의 능력이나 가진 것을 보시고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 미래의 일꾼으로서의 모습을 보시면서 부르십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에도 부르시지만 학교에서 공부하는 중에도 부르시고, 직장에서 일하는 데에도 부르십니다. 에 배중에도 부르시지만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중에도 부르시고 잠을 자다가 꿈에 현몽하여 부르시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을 애타게 찾고 찾는 자들도 부르시지만 레위처럼 세리 직을 그만두고 예수님을 따를 것이냐 말 것이냐 갈등하고 고민하는 자들도 부르십니다. 기쁨에 넘친 자도 부르시지만 향방을 모르고 방황하는 자도 부르십니다. 고통 중에 있는 자들도 부르십니다. 슬픔을 당한 자도 부르십니다. 환난을 당한 자도 부르십니다.

또한 부르실때 모두 담임목사로 부르시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분은 부 목사로, 어떤 분은 음악 목사로, 어떤 분은 주일학교 담당 목사로 부름을 받습니다. 어떤 분은 교사로, 어떤 분은 장로로, 어떤 분은 집사로 등등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이처럼 주님은 찾아오시는 주님이시요,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Visitation 을 기대하며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찾아오시기를 기대하며 찾아오시도록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레위를 찾아오셔서 “나를 따르라” 부르신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찾아 오셔서 당신의 사역을 위하여 부르실 것입니다.

둘째, 주님의 부르심에 곧바로 응답해야 합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지금도 당신의 사역을 위하여 일꾼들을 부르십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레위는 곧바로 자리를 일어서서 주님을 따랐습니다. 자기 아버지와 그물을 깁던 세베데의 아들들도 주님께서 “나를 따라라” 하시니까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 놈들아, 그물 안 깁고 어디가?” 라는 아버지의 고함소리를 뒤로하고 곧바로 주님을 따랐습니다. 주님의 부르심, 나의 잠재력을 나의 미래를 이미 쥐고 계시는 그 분께서 당신의 일꾼으로 부르시는데 세상에 이보다 더 축복된 길이 어디 있습니까?

남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세리, 세상에서 지탄거리가 된 쓸모 없는 존재, 건축자의 버린 이 돌들을 주님께서는 불러 모으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버렸습니다. 율법도 그를 버렸고, 관습과 전통도 그를 버렸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버린 그 돌을 불러서 모퉁이 돌이 되게 하셨습니다. 가장 아름답게, 가장 중요하게, 가장 소중하게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언제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언제 응답하느냐가, 즉 언제 행동으로 옮기느냐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용단과 희생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세리였을 지라도 레위는 곧바로 예수님을 따랐는데 삭게오는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그 역시도 레위처럼 세리 직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악독하기로 소문난 세리의 아내이기 때문에, 아마도 자기 부인도 친한 친구가 없었을 것이며, 애들도 그 집 아이들과는 사귀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구나 그는 세리 장이었으니까 레위보다는 훨씬 더 오랫동안 그 일을 해 왔을 것이었으며 레위보다 훨씬 더 많은 비리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여리고 성 자기 사무실 앞을 지나실 때 마음에 심한 갈등을 느꼈지만,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하였지만, 망설이고 또 망설였습니다. 이 번이 마지막 기회인줄 알면서도 그는 망설였습니다. 사회적인 체면도 있었을 것이고, 많은 재물을 포기해야 했을 것이며 여기에 따른 결과에 대하여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죄악된 삶, 주변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는 그러한 삶이 너무도 싫었습니다. 그러다가 더이상 미룰 수 없어 밖으로 뒤쳐 나갔습니다. 세리 장이었던 그는 나이도 꽤 들었을 것이고 더구나 키가 작아 빨리 달음질 하기 힘들었을 텐데, 그가 숨을 헐떡거리며 열심히 뛰어 주님의 행렬에 다다랐을 때는 주님은 이미 여리고 성을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가 주님을 만났고 레위처럼 주님을 자기 집에 초대하였지만, 레위처럼 크게 쓰임을 받지 못했습니다. 자기 집에 초청하여 예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었지만 더이상 그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아마도 그는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청하였지만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주님의 행렬에 따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면, 그 부르심이 확실하다면 속히 용단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삭게오처럼 망설이고 주저주저 하지 마시고 레위처럼 즉시 따르시기 바랍니다. 기왕에 주님으로부터 쓰임을 받고 싶으면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마시고 속히 용단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셋째, 레위는 공개적으로 주님의 제자 됨을 선포합니다.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주님의 제자 되기를 결심하였으면 주님을 초대하여야 합니다. 레위는 자기 집에 잔치를 배설하고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노라고 공개적으로 선포합니다. 아마도 그 자리에는 자기 식구와 예수님 그리고 예수님 제자들뿐만이 아니라 그의 직장동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니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도 “무슨 일인가?” 하고 와서 구경하였습니다.

이처럼 누구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였으면 침례를 받고 성찬식에 참여하여 공개적으로 예수 믿음을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부로 평생 같이 살기로 작정하였으면 결혼식을 올려야 합니다. 화려하고 거창하게 올리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우리는 이제 부부지간입니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남자나 여자가 필요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에게 결혼할 마음을 가지신 분들이 계셨다면 이제는 완전히 단념해 주십시오. 그리고 저희들이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십시오” 라고 선포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 선포함으로써 더 이상 인간의 힘으로 풀지 못하는 “Wed-Lock” 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였으면 이제부터는 예수님이 내 신랑입니다. 이제 저와 예수님은 Jesus-Lock 을 하였습니다 라고 하나님 앞과 사람들에 선포하는 것이며, 사단 마귀도 이 말을 듣고 더 이상 유혹하지 못하도록 하는 경고입니다.

마가복음 8:38절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고 하심으로써 우리도 공개적으로 예수님이 나의 구세주요, 예수님이 나의 신랑입니다 라고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선포한 그대로 예수님의 순결한 신부답게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넷째,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반듯이 핍박이 따릅니다. 서기관들이 어찌 죄인들과 세리와 함께 식물을 먹느냐고 예수님에게 시비를 겁니다. 이미 “악한 자” 라 정죄된 이 세리와 식물을 같이 합니까? 그렇다면 당신도 그런 죄인들 중의 한 사람 아닙니까? 라고 예수님을 공격합니다. 율법주의자들에게는 용서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죄인들의 죄 몫을 밝히고 처벌합니다. 죄인들의 죄를 샅샅이 밝히고, 밝혀진 몫대로 판결을 내리는 것이 그들의 임무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그 은혜의 말씀을 은혜로 받아드리지 못하고 어떻게 하면 이 말씀을 가지고 정죄할까를 연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된 말씀을 그들은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심판하는 기준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역과 부딫힐 수 밖에는 없습니다.

모세는 율법을 받아서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을 실행하고 살게 하였습니다. 그 율법을 가지고 그는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였지만 자신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율법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없기 때문에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보내셔서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구원자” 라는 의미의 여호수아는 호세아나 예수아와 다 같은 뜻으로 오실 예수님의 표상이었습니다. 율법에 능한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가르치고 실천하시는 예수님과 부딫히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훼방하고 레위를 비롯한 그 사역에 동참하는 자들을 유혹하고 선동하려하였습니다.

바울사도께서도 디모데 후서 3: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라고 경고하셨듯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새로운 각오로 변화된 삶을 살고자 하면 반듯이 유혹과 핍박이 따릅니다. 그래서 저는 신앙생활하기 힘들면 그것이 올은 길이라 믿습니다.

내 길이 잘못되어가고 다른 사람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으면 핍박도 없습니다. 얼마 전에는 우리 교회 간판을 잃었습니다. 간판을 너무 잘 만들어서 그런가 라고 푸념을 했는데 “이것 또한 박해가 아니냐, 앞으로 우리 교회에 좋은 일이 있으려나 보다 라는 생각이 들자 기분 나뿐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분이 좋았습니다. 우리 교회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는 증거요 우리 교회에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마음을 주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릇 예수를 신실하게 나의 삶을 주관하시며 나의 주인 되신 예수님으로 모시고 살면 반듯이 핍박이 따르게 됩니다. 하지만 이 핍박이, 이 유혹이 두려워 미리부터 겁을 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왕에 옛 믿고 사는 것, 외양간에서 억지로 끌려 나온 소처럼 하시지 마시고 화끈하게 신앙 생활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섯째, 주님께서 보호해 주시며 승리하게 하십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2:17) 하였습니다. “그래, 너희들이 죄인이라 하는 그 사람들 때문에 내가 여기에 온 거야. 너희들처럼 자신을 의롭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나는 죄인이라고 고백하고 깨달은 사람들을 위해서 왔다” 고 하신 것입니다. 나의 사역의 대상은 자신을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가슴을 치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는 죄인임을 깨달은 그들이다 는 것입니다.

제사 사역하던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 근교에서 사역을 하시면서 GM 사장의 멘토였던 노만 빈센트 필이라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저도 그분의 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 참으로 힘이 되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 분의 긍정적인 사고와 행동은 수정교회 로버트 술러 목사님에게도 대단한 영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Lake wood Church 의 조앨 오스틴 목사님도 이 분의 영향을 입은 분입니다.

조엘 오스틴 목사님의 “긍정의 힘”이라는 책이 엄청나게 팔렸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긍정적인 결과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 나도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겠구나, 얼마나 힘이 되는 말입니까?

하지만, 그것은 신앙서적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의지를 중요시 여긴 것이며, 근본적으로는 “New Age Movement” 사상입니다.

여하튼 이 분들의 공통적인 점은 진정한 회개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다는 접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 가 아니라 “ Our god is good god, so think positive in him, and you will get positive result” 이 얼마나 듣기 좋은 말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죄인이라고 느낀 사람 만이 자신을 개혁하려고 노력합니다. 진정으로 회개한 자만 개혁이 일어납니다. 개혁이 일어난 자만이 주님의 유용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내가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신 이 말씀, Self-righteous 한 사람들, 교만한 자들을 쫓으신 거이 아니라 너희들도 회개하고 오라는 초청이십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언제나 죄인 취급을 받던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들과 그들을 정좌하던 이 두 그룹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계시는 교회에는 항상 이러한 두 부류의 사람들이 공존합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이 두 부류의 사람들 중 어디에 속하시냐고 묻는다면 너무 잔인한 질문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 건강한 사람이 아니신 병든 사람을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인이 아닌 죄인을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바로 치료받아야 할 환자들인 줄 믿습니다. 주님은 상한 심령을 가진 자들에게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결단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부족하기 때문에 레위처럼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 앞에 왔습니다. 과거의 실패가 우리의 발목을 잡으며 핍박의 올 무를 놓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건축자의 버린 돌들”을 당신 성전의 “모퉁이 돌”이 되게 하셨습니다. 레위를 부르신 주님께서는 지금도 여러분들을 부르십니다. 하지만 오직 “나는 건축자의 버린 돌 입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자들만이 주님의 모퉁이 돌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건축자로부터 버려진 돌입니다. 진정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옵니다, 나를 불러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라는 고백과 함께 이 시간 주님 앞에 다시 한번 헌신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One Response to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막2:13-17)”

  1. Kamal says:

    Thanks for shngrai. What a pleasure to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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