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16

대 장정길 1

Posted by on Nov 16 2015

 주님안에서 동역자된 여러분들께.

저는 지난달 19일에 산호세로 갔다가 제 처와 함께 23일부터 26일까지 인디애나에서 부흥성회를 하였습니다. 작년보다는 덜 했지만 금년에도 많은 역사가 일어 났습니다. 내가 지시한 대로 하여 교회는 양적인 성장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매우 안정을 찾았고 목사님도 훨씬 자신있게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작년 성회때 크게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교회에 주축이 되어 열심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첫사랑을 잃은 에베소 교회처럼 교회 전체 분위기는 열정들이 많이 식었습니다.

낮에는 세미나를 하면서 3일동안의 부흥성회를 통하여 여러사람들이 병도 고치고  은혜도 체험하였습니다. 수십년동안 체증으로 배가 늘 그득하여 고생하던 사람이 그 자리에서 쓰러지더니 일어서면서 완전히 낫았다고 울먹이며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이제 마음놓고 마음껏 먹어보겠다고 접시에 음식을 가득 담는 것을 보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아무도 못말리는 알콜 중독자에게 “당신은 우울증이 있습니다. 젊어서 무슨 큰 꿈이 있었던 것 같은데 좌절되면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하였더니 그렇다고 합니다. 이탈리아에서 이민 온 이민자의 명문 가정에 태어난 그는 어려서 부터 큰 꿈이 있었는데, 그 꿈을 포기할수 밖에 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고,  AAA 모임에도 그리고 알콜 중독 Rehab 에 수용되기도 하였지만 그 때뿐 금새 술을 찾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기도를 해보니 마음이 완전히 닫쳐서 돌덩이 같았습니다. 마음을 열고 잠시 있으라고 한뒤, 잠시후 기도하였더니 그 무표정하고 강직했던 얼굴에 화색이 돋고 눈이 빨개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의 목소리가 울음섞인 목소리로 떨리기 시작하자, 그 뒤에서 그 광경을 보고있던 그 분의 아내의 얼굴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쁘면서도 금방이라도 폭발할것 같은 표정에 내가 울뻔 하였습니다.

작년에 기도받고 은혜를 체험한 찰스라는 연세든 분은 병세가 위증하여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오전 세미나 시간에 “그 분을 위하여 기도하자” 고 하였더니 오후 세미나에 산소호흡기를 꽂고 왔습니다. 자칫 생명을 잃을수도 있는 위독한 상태에서도 세미나에 온 이분을 보고 너무도 놀라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외에도 다 열거하려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여하튼 이제 이 교회에도 내 할일은 끝났다, 나의 도움이 없이도 잘 해나갈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11년 만에 데이튼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교회가 참힘든 상태였습니다. 에베소에서 열심히 사역하시던 사도 바울께서 고린도 교회에 대한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라고 마음이 아팠을 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1995년에 교단에 5개년 계획을 제출하여, 교단으로부터 약간의 지원을 받으면서 정말 먹을것 제대로 먹지도 못하며 고난가운데 세워진 교회인데,  교회를 제대로 안다니던 교회생활에 전혀 익숙하지 못하였던 창립멤버들, 그 분들의 헌신과 눈물의 기도로 이루어진 교회인데,
아직 박사학위 학생이었던지라 주말에 와서 머물면서 주일 오후에는 떠나야 하는 우리를 믿어주고 아껴주시던 그 분들의 사랑과 헌신으로 이루어진 교회인데, 7시 반에 모여야 할 금요예배에 길이 막혀서 10시에 도착하였어도 한분도 흩어지지 않고 모두 모여서 열심히 기도하시던 그분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된 교회였는데……  개척 5년만에 건물을 구입하였을 때에는 땀을 흘려가면서 쓸고 닦고 베쿰하면서도 지치는줄 모르고 헌신하는 모습을 보며 남몰래 눈물을 훔쳤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러한 아가페 교회가 첫사랑을 잃은 에베소 교회처럼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참 안타까웠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자기들을 버리고 떠났기 때문이라는 핀잔과 푸념을 하면서 허그하는 그 분들의 눈에는 두 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물론 현실성이 없는 말인줄 본인들이 더 잘 알면서도 가지 말라고 붙잡는 그 분들, 지금 멀리 아프리카 르원다의 키갈리 한 골방에서 이 글을 쓰노라니 낙락공주의 섬섬옥수를 뿌리치고 금강산에 들어갔다던 태자가 생각납니다.

 

물론 날이 새면 난 또 이곳 사역에 집중하여야 합니다. 이제 새벽 5시, 날이 새려는데 여명을 깨고 멀리 모슬렘사원에서 울리는 그들 기도소리가 스피커를 통하여 굉장한 소음을 내고 있네요. 오 주님 오늘도 이 종을 통하여 주님의 냄새가 나게 하여 주소서.

 

Oct 16

기도 부탁 드립니다(Please Pray for Us!)

Posted by on Oct 16 2015

기도 부탁 드립니다.

10월 23일부터 25일까지 인디애나주 엘카하트에 있는 Christian Church(미국교회) 에 부흥성회를 하러 갑니다. 이번에는 저희 부부가 같이 갑니다. 작년에는 성령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셔서 온 성도들이 가슴을 치고 통곡하며 회개하였고, 상처 치유는 물론 병고침을 받은 자들도 부지기수였으며, 마지막 날 예배에는 앉을 자리가 없어 가운데 통로에 앉아서 그리고 뒤에 서서 예배드리는 사람도 부지기수였습니다. 금년에도 성령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시기를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데이튼 오하이오에 26일부터 이틀간 머물 예정입니다. 1995년 8월 3일 아가페 침례교회를 개척하여 10년간 같이 고난을 나누었던 옛 성도님들, 아끼고 절약해서가 아니라 부족한 가운데에서도 주님을 위하여 희생의 제물을 드려 아름다운 건물도 마련하였던 믿음의 용사님들, 저희에게는 친 형제요 누나요 동생이며 한 식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도전을 위하여 산호세 한인침례교회로 청빙받아 가면서 성도님들의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해드린 것 같아 사죄하러 데이튼을 방문합니다.

 

그리고 아프리카 우간다, 르완다, 남수단 3개국 신학교에서 한주씩 3주간 머물면서 낮에는 강의하고 저녁에는 집회를 합니다. 이사역을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다녀와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추신

 

 

인디애나 주 Elkhart 에서 금요일부터 부흥성회를 하는데, 질문이 와서 답변 겸 말씀을 드립니다.
이 성회는 내적 치유를 통한 회개와 용서의 성회입니다. 그리고 회개와 용서를 통하여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심을 체험하실 것입니다.
지난해에는 근처 흑인 & Ethnic(No Korean)목사님들도 몇 분 오셔서 도움을 받고 가셨습니다. 근처에 계시는 분들도 연락하여 참여하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단 한국말 통역은 없이 영어로만 합니다.

 

일정: 10월 23일(금요일): 저녁 성회 저녁 7:30분

24일(토요일): 오전 “Reconcile with Your Paste” 오전 10:00 – 12:00 시

오후 “Forgiveness” 오후 1:00 – 3:00 시
저녁성회 저녁 7:30 – 설교후 치유를 위한 안수기도

25일(주일) 오전 11:00 주일예배

 

장소: 422 W High Street Elkhart, IN

 

감사합니다.

김 진환 올림

Mar 17

위기를 성공의 기회로 바꾸는 비결(이사야 37:1-7절)

Posted by on Mar 17 2015

                                                                                                          March 8, 2015

여러분들 중에 지금 위기를 겪고 있는 분 계십니까? 사람은 살다보면 누구나 위기를 겪게 됩니다. 저도 지금 위기속에 살고있는데, 인생에 위기가 없다면 그것처럼 삭막하고 무미건조한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가끔씩 위기도 닥쳐야 그것 때문에 머리도 극적거리며 이리뛰고 저리뛰면서 살맛도 나는 것이지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위기는 아주 고통스럽고 매우 불안한 과정입니다. 아무리 힘들지라도 잠시동안은 쉽게 견딜수 있지만 장기간 지속되면 아주 지치고 고통스럽고 무척 힘듭니다. 하지만 위기는 종착점이 아니라 더 높은 고지를 점령하기 위하여 지나가는 하나의 과정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위대한 발명품들은 절대절명의 위기때 만들어 졌습니다. 2차대전 때 일본이 북쪽으로는 한국을 거쳐 중국을 쳐들어가고 있었고, 동쪽으로는 필리핀 인도네시아등 동남아시아를 점령해 갔습니다. 그때 미국에서는, 비행기는 물론 장갑차 트럭등 일본의 모든 중화력 무기에는 바퀴가 달린 것을 착안합니다. 바퀴만 못만들게 하면 조만간에 일본의 모든 무기는 이동을 할수 없기 때문에 손을 들수 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일본에서 고무를 제일 많이 채출해가는 필리핀을 먼저 빼앗습니다. 그리고 일본이 항복하기를 기다렸는데, 얼마후 일본은 인조 타이어를 만들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Good Year라는 사람은 자동차 타이어 공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에 출근해보니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생고무가 쇠보다 단단하게 굳어져 버렸습니다. 엄청난 손실을 당한 그는 망연자실, 그 굳어진 고무덩이를 바라보고 있다가 우연히 그 옆에 넘어진 병을 하나 발견합니다. 황산이 담겨진 병이었습니다.

 

이것하고 고무하고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고 보았더니, 자연산 고무에 황산이 닿으면 고무가 아주 쇠처럼 단단해진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그리하여 그는 곧 이것을 특허를 내서, 자기 이름을 딴 GoodYear Tire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위기가 닥치면 대부분의 경우 침몰해 버립니다만, 위의 예들처럼 때로는 위기가 성공의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위기가 저절로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 Pay the Price, 엄청난 고통과 불안과 위험이 따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몇번 시도를 하다가 포기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히스기야 왕의 삶을 통하여 위기를 성공의 기회로 바꾸는 비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열왕기 상하 그리고 역대상하에 유다의 여러 왕들이 나오는데, 그 여러 왕들중에 히스기야 왕은 믿음이 매우 좋은 왕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는 아주 성공적인 삶을 산 왕으로 추대되고 있는데, 그는 애초부터 그렇게 믿음이 좋은 왕도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을 정복한 앗수르 왕은 팔레스타인 지역은 물론 아프리카의 이집트까지 정벌하여 속국으로 만듭니다. 그후 이집트가 반란을 일으키자 앗수르의 사르곤 왕은 내려와서 반란군을 진압하고 돌아가던 중, 아마도 전염병으로 죽었을 것이라 하는데, 갑자기 죽고 그의 아들 산헤립이 앗수르의 왕이 됩니다.

 

그런데 왕이 갑자기 죽으면서 차기 왕으로 교체되는 기간동안 공백기가 생기자 이 때를 이용하여 이집트는 독립을 선언하고, 히스기야 왕에게 와서 앗수르와 동맹을 끊고 자기와 동맹을 맺으라고 종용합니다. 그리하여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와 동맹을 끊고, 이집트와 동맹을 맺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30:1-2절에 “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패역한 자식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죄에 죄를 더하도다 2.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도다” 하면서 히스기야 왕과 그 추종자들을 강력하게 책망하였습니다.

 

한편 사르곤을 이어 앗수르의 왕위에 오른 산헤립은, 왕권을 확립한 후 반발하는 이집트를 정벌하고자 기원전 701년에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넘어와 유다 땅 아스돗을 점령하게 됩니다. 놀라 자빠진 히스기야 왕은 이집트의 구원군이 오기를 눈이 빠지라 기다렸지만 이집트 병사들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남의 힘을 의존하면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댓가는 너무도 뼈아프고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 따릅니다. 히스기야는 이집트를 하나님보다 더 의존하였던 자신이 하나님께 너무 죄송하고 후회스러웠을 것입니다.

 

다급해진 히스기야는 우선 앗수르에게 벌금을 얼마든지 낼태니 제발 용서해 달라며, 성안에 있던 은금 패물을 모으고, 방백들에게 돈을 거두고, 심지어는 성전기둥에 입혔던 금까지 벗겨서 앗수르 왕에게 보냅니다. 하지만 앗수르 왕은 뇌물은 뇌물대로 받고, 유다 땅에서 물러서지도 않고 거기서 머물면서, 애굽을 칠 준비를 합니다.

 

더욱 다급해진 히스기야 왕은 성안에서 오래 견딜려면 식수가 가장 중요한지라, 성 안에 있던 실로암 연못, 그러니까 저수지를 깊게 다시파서 정비하였습니다. 그리고, 암벽을 뚫어 예루살렘 성위 바위 틈을 흐르던 기혼시냇물을 성 안으로 끌어드려 실로암 연못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때 실로암 연못을 얼마나 깊게 팠는지, 그로부터 700여년이 지난 예수님 당대에도 이 실로암 연못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한편 강물이 암벽을 뚫어 바위속을 지나 성 안으로 흘러들어 왔기 때문에, 앗수르 병사들은 그 사실을 전혀 눈치는 커녕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앗수르왕 산헤립은 병사들을 둘로 나누어, 한편은 자기 군대장관 랍사게를 시켜 예루살렘을 치도록 하였고, 자신은 이집트를 치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병사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온 랍사게는, 예루살렘 성을 에워싸고서, 히스기야 왕과 사신들과 백성들이 모두 듣는데서 유창한 히브리말로 그들을 모욕했습니다.

 

그 때에도 외국어를 잘하면 출세를 하는 모양입니다. 그는 성안에 있는 모든 백성들이 들으라고 히브리 말로 아주 크게, “유다 백성들아 너희들은 독 안에 든 쥐다. 히스기야에게 속지말라. 그의 말을 듣지말고 항복하고 나와라. 그러면 우리 대왕께서 너희들에게 먹을것과 좋은 포도농장도 주겠다” 며 협박과 회유를 합니다.

 

 

히스기에야 왕은 이 말을 들으면서 참 기가막혔습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자기도 불안한데 백성들은 오죽 더 그러겠습니까? 그래서 본분 1절에 “히스기야가 그 소리를 듣고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었다”, 왕복을 찢고 베옷으로 갈아입었다는 것입니다. 베옷은 사람이 죽었을 때 입는 상복입니다.

 

그는 이판사판, 항복해도 죽고, 잡혀도 죽게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베옷을 입었다는 것은, “나는 이미 죽은 몸입니다. 하나님이 살려 주시면 살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난 죽은 몸입니다” 라는 의미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이처럼 죽을 준비를 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했습니다. 왕이 그렇게 기도하니까 궁내대신, 서기관, 제사장들과 같은 유다의 어른들도 굵은 베옷으로 즉 상복을 입고 기도에 동참했습니다. 비참한 모습이지만, 이 얼마나 아름답고 은혜스러운 모습입니까?

 

교회에 문제가 생겼을때, 목사가 먼저 식음을 전폐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더니, 그 교회 장로, 권사, 집사들도 따라 금식기도하게 되었고, 그렇게 하자 온 성도들도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이 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이 어디 있겠습니까?   히스기야 왕은 죽을 준비를 하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사야 선지자에게 기도를 부탁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옆에 제사장들도 있고 백성의 장로들도 있었지만, 누군가 영적으로 더 센사람의 가도가 필요함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저도 웬만하면 영성집회를 안가려고 했었는데, 많이 고민하다가, 저보다 영성이 깊은 분들로부터 기도고 받고 또한 같이 기도하면서 다 깊은 기도를 할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Randy Clark, Bill Johnson, Blaine Cook등 신학적으로도 바르고 영성도 깊은 분들이 합하여서 하기 때문에 기대가 큽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이 이사야에게 기도를 부탁한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대 제사장, 온 백성들이 존경하고 영성이 깊다고 믿고있는 대 제사장이 옆에서 같이 기도하고있고, 어디 그 뿐입니까? 지금 유다에 영적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다 모여서 히스기야와 같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사람에게 기도를 부탁하다니, 그것도 이사야에게. 이거 정말 말로 안되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당시 이사야는 유다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인정되고 있습니까? 이사야 20:1-3절에, “1. 앗수르 왕 사르곤이 군대장관을 아스돗으로 보내매 그가 와서 아스돗을 쳐서 취하던 해  2. 곧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일러 가라사대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니라  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종 이사야가 삼년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여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예표와 기적이 되게 되었느니라” 하였듯이,

이사야는 아마도 빤스만 입고 예루살렘 거리를 다니면서 “유다가 이렇게 홀랑 벗겨질 것이다. 너희들은 치부를 다 드러내는 수치를 당하고 헐벗고 굶주릴 것이다” 라며 외치고 다녔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선지자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정신병자 마귀에 사로잡힌자 이단 3단 취급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왕이 다른 대형교회 유명한 목사들 다 버리고, 이 거리의 왕자에게, 그것도 사신을 시켜서 기도해 달라고 정식 공문을 보낸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자기와 함께기도하는 대 제사장을 비롯한 제사장들이 아니라, 이사야에게 있음을 안 것입니다. 그는 누가 진실된 하나님의 사람인지 영을 분별할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편지내용은 3-4절에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 그가 그 주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사시는 하나님을 훼방하였은즉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 말에 견책하실까 하노라 그런즉 바라건대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유다의 왕께서 자기를 보필하고 있는 대 제사장들은 모두 버려두고, 이 거지같은 미치광이에게, 그것도 자기를 비판하고 다니는 이 사람에게 국가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기도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한 것입니다. 같이 기도하는 대 제사장, 서기관등 종교 지도자들의 체면이 뭣이 됐습니까? 자기들의 영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아주 공개적으로 수모를 당하게 하였으니, 이보다 더 수치스럽고 창피한 일이 어디있습니까? 이들이 나중에 정치적으로 보복을 해 올 것이라는 두려움은 없었을 까요? 혹은 왕이 미쳤다, 귀신이 들렸다, 영적으로 무지하다 라는 비판을 받을 염려는 없었을 까요? 이미 왕은 체면이고 뭐고 모두 내려놓은 상태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참 딱한 처지입니다. 생각 같아서는 “나를 개취급 할때는 언제고, 내 말 안듣다가 잘됐소. 꼴 좋소이다” 라고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왕이 자기 만을 위한 것이 아리나 이렇게 민족과 나라를 위하여 몸을 낮추고 간절히 요청을 하니 안들어 줄수도 없는 상태입니다.

 

우리도 히스기야 왕처럼 어려운 문제로 다른 이들에게 기도를 부탁할 때는 체면을 무릎쓰고 기도를 부탁하시기 바랍니다. 나와 관계가 불편하다고, 그에게 부탁하면 다른 사람들이 실망하고 배신감 느낄것 같아서, 그 사람은 평판이 안좋아서, 그 사람은 여자라서 등등 꺼리는 것들이 있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무릎한번 끓어서 우리 민족이 살게되고, 우리 교회가 살아나고, 우리 가족이 잘 된다면, 그까짓 체면이 무슨 문제가 될수 있습니까? 대통령이 목사님이 집도하는 예배에 참석하여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였다고 난리 법석을 떠는 상황에, 목사가 자신보다 영성이 더한 평신도 앞에 기도 부착하기가 어디 쉬운 일입니까? 그저 자기 밥그릇 안뺏길려고 안간힘을 쓰며, 교인들 중에 자기보다 영성이 깊은 사람이 있으면 좌불안석 그사람이 나갔으면 하고 바라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히스기야는 했습니다. 여기에 히스기야의 위대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 딱한 사정을 들은 이사야는 6-7절에,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고하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들은바 앗수르 왕의 종들이 나를 능욕한 말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보라 내가 신을 그의 속에 두리니 그가 풍성을 듣고 그 고토로 돌아갈 것이며 또 내가 그를 그 고토에서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영(a spirit)을 보내셔서 앗수르 왕 산헤립이 소문을 듣고 자기 고향에 돌아가 칼에 죽게 할 것이라는 응답입니다.

 

그런데 이 응답이 있은 후에 앗수르 왕에게는 복잡한 일이 계속 일어납니다. 8-9절에, “랍사게가 앗수르 왕이 라기스를 떠났다 함을 듣고 돌아가다가 그 왕이 립나 치는 것을 만나니라 그 때에 앗수르 왕이 구스 왕 디르하가의 일에 대하여 들은즉 이르기를 그가 나와서 왕과 싸우려 한다 하는지라.” 하였습니다. 본래 산헤립은 예루살렘을 지나 저 남쪽으로 라기스라는 도시에서 애굽을 치려고, 군사를 정비하고 있으면서 윗쪽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랍사게를 보내서 예루살렘을 정복하라고 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서쪽, 그러니까 자기로서는 북서쪽의 도시 립나에서 반란이 일어납니다. 애굽을 치러 가려는데 뒤에서 치고일어나는, 정말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엎친데 겹친다고 앞에서는 구스 왕 디르하가가 10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온다는 소식도 듣게 됩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의 계획이 자꾸만 꼬입니다. 사람의 인생이 자꾸 꼬이고 복잡해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그사람이 하는 일이 못마땅하시니까 간섭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복잡하지 않고 스므스하게 잘 나갑니다. 그런데 복잡한 얘기, 복잡한 이론은 하나님의 뜻이 아닐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일이 계획대로 진행이 되지않고 꼬이고 복잡해지면 하나님의 건섭함이 있는지, 자기성찰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하튼 이렇게 복잡한 가운데서도 앗수르 왕은 예루살렘을 포기하지 않고 히스기야 왕을 계속 협박합니다. “내가 구스 왕과 전쟁한다고 해서 너희를 포기할 줄 아느냐? 여호와가 너희를 구원하리라는 히스기야의 말을 믿지 마라! 내 손에서 자신들의 백성을 건진 신이 아직까지 없느니라!”

 

산헤립의 2차 협박을 받은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전에 산헤립의 편지를 펴놓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요, 유일하신 하나님이요, 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사시는 하나님을 훼방하는 말을 다 들으셨다면 하나님 스스로 명예를 지키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의 명예를 지키실 때에 우리도 함께 구원하여 주옵소서!”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히스기야 왕에게 “산헤립이 감히 나를 훼방하고 능욕하였으니 내가 그의 코에 갈고리를 꿰고 입에 자갈을 매어서 오던 길로 돌아가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사건을 볼때, 우리에게 닥치는 환난은 오히려 유익이 될수도 있습니다. 환난이 닥치면 믿음이 없던 사람들도 하나님께 매달리게 됩니다. 남편이 아프니까 믿음도 없는 분이 새벽예배에 참석하여 1년 작정기도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나서는 주일예배도 잘 빠지더라고요. 여하튼 환난을 당하면 기도하게 되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믿음으로 그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도 놀라운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다음 날, 185,000명이나 되는 앗수르 군사들이 가의 전멸을 해버립니다. 당시 역사가들은 아마도 그들이 전염병으로 죽었을 것이다, 구스 병사들에게 겁을 먹고 급히 도망치다가 깔려 죽었을 것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천사가 밤에 그들을 모두 쳤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이것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그리고 산헤립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니느웨로 돌아가서 자기 신의 묘에 경배하던 중에 자신의 두 아들에게 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가 나이가 들자 자기 3째 아들 에살핫돈을 후계자로 삼았더니 맏아들과 둘째아들이 자기 아버지 산헤립을 칼로 찔러 죽입니다.

 

말씀을 정리해 봅니다. 당시 예루살렘에 있던 유다 백성들은 국가적인 위기를 맞아 모두 패망을 맞이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마도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탄식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왕이 하나님께 매달리자 위기는 성공으로 변하였습니다. 지도자의 믿음이 이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히스기야 왕은 자신도 기도하면서 이사야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지금 자기와 함께 자기와 국가를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고 있는 대 제사장의 체면이 말이나 됩니까? 왜 하필 이런 미치광이에게 기도를 부탁합니까? 이것은 국가적인 망신입니다. 하지만 히스기야는 대 제사장의 반격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장로들의 반발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도하던 중 하나님의 말씀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깨닫게 되었을 것이고, 즉각적으로 실행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말한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습니다. 당시에 히스기야 왕과 함께 기도하던 무리들 중에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고 하면서 “앗수르에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앗수르를 정벌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라는등 여러가지 제안을 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히스기야는 영 분별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식적인 사역을 하시기 전에 유대인들은 너무도 영적으로 갈급하였습니다.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에 매일 깨끗하고 흠없는 짐승을 잡고, 더운 떡을 올려놓고, 금촛대에 불은 아름답게 타고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적으로 갈급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단 북쪽 광야에 침례요한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은 괴나리 봇짐을 싸가지고 거기까지 갑니다.

 

가는 길도 험하고, 열심히 일하여도 먹을 양식도 귀한데 모든 것을 접어두고 그 험한 곳까지 갔습니다. 그들이 아름다운 말을 들으러 갔습니까? 너는 참 복받을 것이다, 하나님이 네 직장을 견고하게 해 주실 것이다 라는 말을 들으러 간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돌려주고, 폭리를 취하려 하지말고 회개하여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 는 아주 간단한 멧세지를 들으려 거기까지 간 것입니다. 물론 그런 말은 아무라고 할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제사장들이 그런 말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침례요한의 입술에는 하나님의 말씀,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

 

 

제가 돈도없는데 먼데까지 영성집회에 가는 것,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 분들의 입술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Randy 아들이 쓴 글을 보니까, 아빠 엄마가 일하면서 목회하느라 너무 바쁘고 힘들었기 때문에, 9살 먹었을 때부터 자기가 동생들을 돌보면서 자랐다고 합니다. 엄마가 그로서리 명단과 돈을 주면 그것으로 시장도 보아오고, 월요일은 아예 학교를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Randy 역시도 도넛 가게에서 일하면서 교회를 개척하였느넫, 교인들이 모이지 않자 목회를 그만 두나 마나 날마다 고민하면서 7년여를 눈물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한 고난을 통하여 Brokenness를 가지게 되고, 바닥에 까지 낮아진 상태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고, 그 주님을 통하여 다시 일으켜 세움을 받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를 하시되 히스기야처럼 기도하십시다. 목숨을 내놓고 기도하십시다. 그러면 히스기야를 구원하신 하나님, 바닥을 기며 기로에 샀던Randy 를 다시 일으키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도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 그럼 지금 마음에 상복을 입히시고 겸손히 낮아진 미음으로 “주님, 나를 구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죽은 몸입니다. 그러니 나를 만나 주시옵소서” 기도하십시다.

 

Mar 02

무너진 네 인생을 일으켜 세워주마(요엘3:1-8절)

Posted by on Mar 02 2015

March 1/2015

요엘 2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진정으로 가슴을 찢고 회개하라, 이제 갓 결혼한 신랑 신부뿐만이 아니라, 어린아이 젖먹이들 까지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나아와서 회개하라. 그러면 지은 죄로 말미암아 그간 잃었고 빼앗긴 것들을 모두 찾아 주시고 또한 회복시켜 주실 것이며, 환난 속에서도 기쁨을 주실 것이며, 그간 잃었던 것 빼앗겼던 것 까지도 날짜대로 다 계수하여 갚아 줄 것이며,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 주셔서, 늙은 자나 젊은 자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갖고 소망 가운데 기쁨으로 살게 될 것이라” 라는 약속이 담긴 즉 조건적인 명령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다 백성들은 그렇게 회개하지 않을 것을 요엘 선지자는 환상을 통하여 미리 보았습니다. 오히려 불순종의 댓가로 맨 처음 경고하였던 메뚜기, 팥종이, 늣, 황충이 다 먹어 치우듯 예루살렘을 짓밟는 모습을 이미 다 보게 됩니다.

요엘 선지자가 이 말씀을 선포할 때에 유다는 아직 평온하였습니다. 하지만 기원전 8세기에 이르러 앗수르가 아람과 사마리아를 치는 것을 본 유다왕 아하스는 자진하여 앗수르왕 앞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고 조공를 바칩니다. 그때부터 자기 아들 히스기야 왕 때까지 40년 이상을 허리가 휘도록 조공을 바쳤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국고가 바닥나자 백성들을 착취하고 그것도 부족하여 성전기둥에 입혀져있던 금박까지 다 벗겨서 앗수르 왕에게 바쳤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앗수르는 유다를 침략하여 오직 예루살렘 성만 아직도 함락되지 않았을 뿐 전국이 앗수르에 의하여 유린되고 있었습니다. 비록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지는 않았지만, 예루살렘 성 역시도 3년 동안이나 포위되어 있으면서 완전히 초토화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앗수르가 물러간 후에도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의 재침이 두려워 계속해서 조공을 바칩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므낫세, 그 아들 요담, 그의 아들 요시야 왕때까지 앗수르에게 100여년 동안 허리가 휘어 쓰러질 정도로 열심히 조공을 바쳤습니다.

 

한편 그때까지 앗수르의 지배를 받으면서 명맥만 이어가던 바벨론이 기원전 6세기에 메데와 바사와 연합하여 앗수르를 치자 앗수르는 더이상 팔레스타인 지역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됩니다. 이 틈을 타서 유다는 애굽과 동맹을 맺게 됩니다. 그런데 바벨론은 앗수르를 정복한후 여세를 몰아 애굽을 겨냥하고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들어오면서 유다를 치게 됩니다. 거의 저항없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바벨론은 곧바로 애굽 정벌에 나서게 됩니다. 하지만 원래는 누비아라라는 나라로서 당시에는 쿠스라 불리었던 에디오피아와 연합한 애굽 연합군의 완강한 저항에 많은 병사를 잃고 퇴각합니다. 애굽 연합군에 바벨론이 패하는 모습을 본 유다는 곧바로 바벨론과 주종관계를 끊고 다시 애굽과 동맹을 맺게 됩니다.

 

퇴각한 바벨론은 의외로 빨리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다시 넘어와 유다를 재 침공합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애굽의 지원군은 끝까지 오지 않았고, 별 저항없이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온 바벨론은 성전에 있던 값비싼 물건들을 모두 노략질하고,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1만여명을 포로로 잡아 갑니다. 그리고 왕이 될 자격이 없었던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워 충성맹세를 시켰습니다.

 

시드기야는 바벨론을 잘 섬기다가 9년째 되던해 바벨론을 또 배반하고 애굽에 동조하게 됩니다. 그러자 분노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은 병사들을 몰고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와 닥치는대로 죽이고 부수고 불로 태워버렸습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을 바벨론으로 끌어다가 노예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화려했던 예루살렘 거리는 시체들이 썪어 해골들이 굴러 다니고, 들짐승들이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루살렘이 완전히 초토화되어 사람이 살수없는 황무지로 변하여버리는 것을 환상을 통하여 보면서 요엘 선지자는 3:1절에 “보라 그 날 곧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가운데에서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그 때에” 라면서 하나님께서는 바베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다사람들이 돌아와 무너진 성을 다시 쌓으리라고 선포합니다.

 

이것 정말 말이나 되는 이야기 입니까? 당시 바벨론은 오늘날 미국보다도 훨씬 강력한 세계 최 강국입니다. 이 나라가 멸망을 당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수 없는 일입니다. 설령 바벨론이 멸망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이스라엘이 독립할수 있습니까? 그리고 설령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독립의 기회가 주어진다 할지라도, 왕도 백성의 유지들도 모두 처형을 당하거나 옥살이하다가 죽었기 때문에 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도 없습니다.

 

그러한,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에서 요엘은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여 무너진 성을 일으켜 세우실 것이다” 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산다는 것은 현실을 보면서 논리적으로 판단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의 미래를 바라보며 사는 삶입니다. 내가 논리적으로 계산한 미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미래, 그것을 우리는 비전이라고 하는데, 이 비전이 이루어질 것을 미리바라보며, 오늘의 현실을 이겨내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오늘 요엘 선지자를 보십시오. 유다가 아직 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앗수르가 아직 쳐들어 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벌써 앗수르와 바벨론이 쳐들어 오는 것을 이미 환상중에 본 것입니다.

 

앗수르가 쳐들어 오기도 전에 미리 겁에질려 아하스가 엄청난 금은 보화를 가지고 앗수르 왕에게 나아가 “난 당신의 종입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하고 엎드려 큰 절을 할 것을 미리 본 것입니다. 그러면서, “너는 왜 나를 버리고 앗수르 왕에게 나아가 그렇게 비굴한 짓을 하느냐. 너희들이 하도 말을 안들어서 내가 앗수르 왕의 마음을 움직여서 너희를 징계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이 진정으로 가슴을 찢는 회개를 하고 나에게로 돌아오면 내가 너희들을 보호해 주마, 내가 그 악한 자들의 침공을 막아주마. 나만 믿어라” 라고 설득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을 듣지 않고, 결국은 앗수르와 바벌론에 의하여 멸망을 당할 것임을 요앨 선지자는 미리 보신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전쟁 포로로 잡혀서 바벨론으로 끌려가 죽을 고생을 하면서 굴욕적인 삶을 살게 될 것임을 보십니다. 그리고 매일같이 짐승취급과 오락거리 취급을 당하며, 힘이 부치도록 막노동에 시달리는 그 수치스럽고 굴욕적인 삶에 밤잠을 못이루고 흐느끼는 유다 백성들, 너무도 괴롭고 힘들어서 세상은 다 잠들어 고요한 한밤중에 가슴을 치며 눈물로 회개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요엘선지자는 환상으로 미리 보신 것입니다.

“내가 왜 그랬던가? 내가 왜 하나님을 떠났던가?” 하며 가슴을 찢고 총곡하는 자기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그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신 다는 것도 요엘 선지자는 환상을 통하여 미리본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외칩니다:

 

너희들이 하나님을 떠나 죄악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가슴을 찢고 회개하면 하나님깨서 너희들을 구원해 주시겠지만, 너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치실 것이다. 너희들 중 대부분은 죽임을 당할 것이나, 그중의 얼마는 포로로 잡혀갈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이 지금은 회개하지 않았지만, 잡혀간 그곳, 그 포로수용소 구석에서 너희들은 가슴을 찢고 통곡하며 회개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신명기 30:3-4절에 ‘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네 쫓겨간 자들이 하늘 가에 있을지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이라’ 하신 약속대로 너희들을 이 땅으로 다시 돌려 보내리라.”

 

이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이 얼마나 눈물겨운 위로의 말씀입니까?

 

제가 처음 군에 입대하였다니, 이제 1개월 후면 제대한다는 말년 병장 하나가, “어이, 이등병 아저씨!  제대할려면 얼나마 남았지요?”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계산해 보지 않았습니다. “하하, 난 3개월 남았어도 이렇게 죽겠는데, 내가 너 같으면 자살하겠다.” 라며 희롱하더라고요. 차리리 얻어맞는 것이 낫지, 참으로 기가 막히더라고요.

 

아무리 고생스럽다 할지라도 풀려날 기한이 있으면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20년 징역형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후에는 풀려날 소망이 있기 때문에 풀려나서 무엇을 할까 하는 계획을 세울수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끝이없는 기다림, 소망이 없는 삶은 죽음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로는 현실이 우리를 참 슬프게 합니다. 고통으로 밀어 넣기도 합니다. 물론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저지른 잘못의 댓가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낙망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우리의 허물을 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을 보십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허물을 보고 비판하고 책망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그 하물로 인하여 겪는 아픔을 보시고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그 환난에서 구원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절에,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에서 그들을 심문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나라들 가운데에 흩어 버리고 나의 땅을 나누었음이며 “ 하십니다.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징계하는데 사용되었던 나라들에 대한 심판을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치는 회초리로 사용하셨던 나라들을 이제는 몽둥이로 다스리시겠다고 경고하십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중요한 가르침은 다른 사람을 심판하거나 징계하는데 쓰임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치는데 사용되었던 그 잣대로 우리도 심판을 받게되고 그 댓가를 치르게 되기 떄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지 않을수 없습니다. 전도하는데 쓰임을 받고, 봉사하는데 쓰임을 받습니다. 넘어진 자들을 일으켜 세우는데 쓰임을 받게 됩니다. 궁핍자들을 구제하는데 쓰임을 받기도 합니다. 가르치는데 쓰임을 받기도 합니다. 기도하여 병을 고치는데, 아픈 상처를 치유해 주는데도 쓰임을 받게 됩니다. 고통받는 자들을 위로하고 힘을 내게 하는데 쓰임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잘못한 자를 책망하고 징계하는데에도 쓰임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양심있는 분들은 남을 정죄하고 징계하는데 쓰임을 받을 때마다 참 괴로워 합니다.

 

시청에 다니시던 제 친척 한분은 어느날 무허가 건물을 강제로 거하라는 시의 결정을 집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미리 경고를 여러번 내렸지만 오갈데가 없었던 이 가정들, 도대체 어디로 가라는 말입니까? 하지만 무허가 건물인만큼 철거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철거반원들을 인솔하여 현장에 갔는데, 그 주민들의 원망서린 그 눈빛, 정말 너무도 괴로워 밤새 술을 먹고 울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말로 위로하고 혀를 끌끌차며 눈물을 흘려주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능력의 하나님, 이 우주만물을 소유하시는 하나님은, 노예 상태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을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그들이 빼앗겼던 모든 것을 다시 찾게 해 주시고, 명예도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는데 사용되었던 나라들을 여호사밧 골짜기로 데려다가 심판하시겠다 하십니다. 원수를 갚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왜 실컷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는 막데기로 사용하시고서, 이제는 그들을 심판하여 치시겠다고 하십니까?

 

그들은 이스라엘을 칠때 교만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스라엘을 치는 도구로 사용되는 줄도 모르고, 그저 자신들이 힘이 있고 능력이 있어서 이스라엘을 짓밟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면서 2-3절에 “이스라엘을 나라들 가운데에 흩어 버리고 나의 땅을 나누었음이며 3. 또 제비 뽑아 내 백성을 끌어 가서 소년을 기생과 바꾸며 소녀를 술과 바꾸어 마셨음이니라 “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땅은 하나님 땅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가 쳐들어와서 빼앗았으니 내 땅이다 하며, 그 땅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고 나머지는 다른 곳에 다 강제이주 시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어린 소년 소녀들을 잡아다가 인신매매를 하였습니다. 남자애들은 종으로 팔아먹고 여자애들은 기생으로 팔아 자기들의 술값으로 사용했습니다. 참으로 매정하고 백정보다도 더 못한 짓을 저지른 것입니다.

 

얼마 전에 신문을 보니까 뉴저지에 사는 무기 소개사 재미교포 한분이, 30년된 고물장치를 우리나라 통영호 군함에 들어가야 할 최신 장비라고 속여 큰 돈을 챙겼더라고요. 우리 정부는 그것도 모르고 최신식 통영호, 북한의 함정들이 오면 초전박살을 낸다고 선전하였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세상이 이럴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이 무기 소개상은 나라를 속여서 받은 그 돈으로 뉴저지에 호화 저택을 사는등 화려한 삶을 살았더라고요.  부당하게 모은 돈을 선하게 사용하는 사람들 거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을 쳐서 백성들을 흩어버리고, 인신매매를 한 돈으로 술과 기생을 샀던 앗수르와 바벨론을 여호사밧 골짜기로 대려다가 심판을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사람을 잡아 노예로 판 돈으로 기생과 놀아난 이 앗수르 사람들을 철저하게 벌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 여호사밧 골짜기는 없습니다. 여호사밧이란 어떤 특정한 지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사밧 골짜기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철저하게 심판하시는 바로 그 곳을 의미합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나 바벨론 사람들보다 착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먼저 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체면이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님을 믿지않는 사람들의 도덕적 윤리적  차원은 아주 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한 죄악들은 주로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숭배를 하고 음란한 짓을 하는등의 죄입니다. 그런데 앗수르나 바벨론이 지은 죄는, 왕의 눈알을 빼고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며 하나님을 자기 신의 이름으로 저주하는 죄입니다.  죄악의 차원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럼데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스라엘 백성들 보다 더욱 악한 민족을 들어 징계하시는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도 수준이 있으신데, 자기 백성이 맨날 끔찍한 죄나 짓고, 수치스러운 일만 저지르면 하나님을 믿지않는 이방 민족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믿는자들에게 더욱 엄격한 잣대를 대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징계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나라들은,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와 바벨론은 자기들이 더욱 착한 줄 알고 이스라엘을 정말 열정적으로 쳐부수었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교만함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끔찍하게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대로 앗수르나 바벨론은 정말 비참하게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평탄한 삶을 살고싶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살려면 다른 사람을 치는 도구로 사용되지 마십시오. 그리고 하는수 없이 그런 위치에 서게 되면, 정말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기 책임도 통감하면서 행하십시오. 자칫 앗수르나 바벨론처럼 하나님께서 “너도 여호사밧 골짜리로 와라” 라는 끔찍한 호출을 당할까 염려하며 자신을 살피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직접 친 앗수르와 바벨론은 그렇다 할지라도 4-5절에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 사방들아 너희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가 내게 보복하겠느냐 만일 내게 보복하면 너희가 보복하는 것을 내가 신속히 너희 머리에 돌리리니 5. 곧 너희가 내 은과 금을 빼앗고 나의 진기한 보물을 너희 신전으로 가져갔으며 ” 하였습니다.

 

앗수르와 바베론의 침공으로 유다는 쑥밭이 됩니다. 성전은 약탈되고 기물이 다 훼손되며 급기야는 불에 타 버립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아주 끔찍하게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때 두로와 시돈및 불레셋지방의 사람들은 바벨론의 편에 서서 같이 약탈을 합니다. 그리고 바벨론의 칼날을 피하여 도망치는 유대인들의 숨은 곳을 알려주어 죽임을 당하게 하였고, 바벨론 사람들이 성전의 기물들을 약탈해 갈때, 자기들도 슬쩍 슬쩍 훔쳐갔습니다.

그렇기 떄문에 오늘 본문은, “내가 내 백성 유다를 치는데 너는 뭣하는데 와서 이런 짓을 하느냐” 면서 너도 여호사밧 골짜기로 데려다가 심판하시겠다 하십니다. 그렇지 않아도 내 백성들이 고통중에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데, 너는 얼마나 착해서 그들을 괴롭히느냐

 

여러분들도 아이들을 키워보셨으니까 잘 아실텐데, 애가 잘못하면 “왜 이런 짓을 했어? 잘못했지?” 하면서 회초리로 한대 때리지 않습니까? 종아리가 벌겋게되고 애는 아파서 눈물을 질질 흘리는데, 옆집 아주머니가 와서, “아이고, 그걸로 되겠어요? 애하고 아주 장난을 치는고만. 그렇게 하면 애 성질만 더 나빠져요. 자, 여기 쇠몽둥이 있어요, 이 것으로 한번 내려쳐야지 애가 무서워서라도 말을 듣지” 라고 하는격 아닙니까?

 

아니, 지금 나는 눈에 넣어도 않아플 아이, 지금 회초리로 한대 때리면서도 가슴이 얼마나 아픈지,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데, 옆집 아줌마는 이 애를 쇠몽둥이로 잡으라니……  그것이 아이를 사랑하는 것입니까?

 

두로와 시돈과 불레셋, 하나님께서는 요놈들, 반듯이 치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자기 백성을 친 앗수르나 바벨론도 나쁜 놈들이지만, 옆에서 부추기는 놈들, 아니면 좋다고 구경하는 놈들, 고소하게 생각하는 놈들, 다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환난 당한 이웃을 보면서, 그놈 교만하게 행하더니 꼴 좋다 라고 하기 쉽습니다. 사업이 망하여 집이 은행에 넘어간 친구집에 짜장면 한그릇 사가지고 가서, “이거라도 먹고 힘네. 그나저나 아파트로 가면 저 냉장고 필요없지? 그리고 이 소파도 아파트에 놓을 데도 없잖아 내가 가져갈께.” 이렇게 하기가 쉽습니다. 나의 무심코 하는말, 나의 이기적인 말, 듣는 사람에게는 가슴에 대못이 박히는 아픔이 될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환난당하는 이웃을 업신여겨서는 아니됩니다.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도와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내가 살 길이요,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람들은 나의 허물을 보고 책망하지만 하나님은 나의 허물로 인한 고통과 아픔을 보시며 같이 아파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슴을 찢고 진정으로 회개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우리의 잘못 때문에 잃고, 빼앗기고, 망가졌던 모든 것까지도 환난 당한 날수까지 계산하여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아프게 하였던 자들을 하나님의 방법대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변에 지치고 힘들어 쓰러진 이웃을 능력없는자라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환난에 처한자를 훈계하려거나 책망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당신의 책망을 듣기위하여 그렇게 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힘이없어 넘어지고 못 일어나는 이웃을 비판하거나 외면하지 마십시오.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임을 잊지마십시오. 그들의 아픔에 하나님도 아파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나도 저렇게 될수가 있다는 마음으로 당신의 손을 내밀어 주십시오. 나도 여호사밧 골짜기의 심판대에 오를수 있음을 늘 생각하며, 주님 앞에 겸손하게 행하십시오. 그 길이 내가 사는 길이요 그 길이 주님으로부터 축복받는 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은 죄가 생각나면 주님께 즉시로 회개하십시오. 너무도 잘못과 실수로 인하여 도저히 헤어날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할지라도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불타없어지고, 거기에 비참하고 굴욕적인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십시오. 소망을 가지고 일어서십시오. 그리고 무너진 나의 인생을 예수님과 함께 다시 수축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Mar 02

진정한 회개로 성령을 받아라 (요엘 2:15-32절)

Posted by on Mar 02 2015

                                                                                                            Feb 22/2015

역술인들이 지난달 1일 ‘TV 조선’의 한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귀인 관계’”라며 “100쌍 중에 하나 정도 나올 정도로 김정은하고 박 대통령의 궁합이 잘 맞는다는 거죠”라는 발언을 했고, 또 지난해 12월28일 한 무속인은 ‘채널 A’에 출연해 “다음 대선은 여당이 이깁니다”라며 대선 주자로 거론돼 온 한 정치인의 운세가 내리막이라는 주장을 했다고 한국일보와 경향신문이 어제 신문에 보도하였습니다.

신문에 의하면, 김정은과 박근혜 대통령이 사주팔자에 관한 발언 내용 때문에 이 역술인들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정말 중요한 이슈는 그사람들의 발언 내용이 아닙니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경제적인 어려움과 전 정부의 비리사건및 북한의 남칠설등 가뜩이나 국민들의 마음이 혼란스러울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언론사에서 역술인들을 데려다가 국가의 장래를 논의하여 온 국민들에게 보도 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상한 것은 자신이 믿고있는 것과 조금만 다르거나 자신이 생각해오지 못한 것을 보면 이단이다 신사도다 신비주의다 하면서 정죄를 하던 분들이 우리나라 대표적인 언론사가 이런 끔찍한 일을 행하여도 잠잠하다는 사실입니다.

아직도 세계에서 제일 큰 장로교회, 감리교회, 하나님의 성회 교회등이 우리나라에 있습니다. 그리고 2011년 문화공보부의 통계에 의하면, 개신교 교회수 8만여곳, 목사는 14만 483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국회의원들 중 절반 가량이 기독교인들이며, 전체 인구의 20%가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기독교 국가라고 칭하여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목회자의 숫자가 이렇게 많고,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많은데, 그렇다면 이들중 TV조선의 시청자들도 꽤 많을텐데, TV조선에서 목회자들을 초청하여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하여 예언하게 한 적이 있습니까? 정치하겠다고 아니 정치하고있는 목회자들이 상당수가 있어도, 정말 우리나라의 장래를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선포할수 있는 목회자가 있습니까? 그리고 설령 그런 목사님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예언이 얼마나 성경적이며 신빙성이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기도하면서 환상을 본다 Word of Knowledge의 은사를 받았다” 고 하면 영 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목회자들이 당황하게 됩니다.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 영적 무지로 인하여 오히려 혼란을 자초하기도 하합니다. 그리하여 그러한 영적 선물을 신사도나 신비주의자로 몰아서 입을 열지 못하게 하는 목회자와 교회들도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자기 교인들을 상대로 알아 보았는데, 사람들이 결혼이나 이혼등 중요한 문제나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이 닥치면 우선 믿을수 있는 친구에게 간다고 하더랍니다. 그 다음으로는 점쟁이한테 찾아 간답니다. 그리고 나서도 해결이 안되면 담임목사님께 찾아오더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조차도 하나님 보다는 친구, 목사보다는 점쟁이를 더욱 의존하더라는 것입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정치가들이 선거때가 되면 출마를 결정하기 위하여 역술인을 찾아가기도 하고, 유명 제품이 출시되기 전에 역술인에게 찾아가 출시 날짜를 정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참 기가막힐 노릇이지만,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들이 있고, 기도원들이 그렇게 많고, 목회자들이 그렇게 많아도, 정적 위급한 일이 생기면 점쟁이들을 찾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통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어려움에 빠지자 조선일보에서는 역술인들을 초청하여 나라 운세를 묻고, 그 결과를 온 국민에게 보도해 준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러한 현상을 누구 탓 하겠습니까? 누워서 침뱉는 격인데, 결국 저를 포함한 우리 목사들 탓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저를 포함한 우리 목회자들의 영성이 점쟁이들 보다 못하다는 것 아닙니까? 다시 말한다면, 우리거 하나님을 찾는 열정보다 점쟁이들이 귀신을 찾는 열정이 더 강하다는 것입니다.

무술인들은 의복부터 일반인들과 다르게 입고, 늘 주문을 외우는 모습이라도 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눈에 영적인 사람들이고 목회자들은 종교인 행세를 하는 직업인이다 라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요엘 당시 유다도 그랬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한 성전이 있었고, 예루살렘에는 수많은 제사장들이 있었지만 백성들은 우상을 좇았습니다. 성전에 와서 제물을 드리기도 하지만, 다급하면 산당에 가서 우상에게 빌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아주 강력한 외적을 보내어 그 땅을 초토화시켜 버리시겠다 경고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엘1장 13-14절에 “제사장들아 슬피 울어라.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포하라”고 당대의 영적 지도자들이었던 제사장들의 회개를 먼저 촉구하였습니다.

당시 제사장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정확한 시간에 순서에 따라 엄숙하게 지냈습니다. 제단에는 피흘리고 죽은 양이 있고, 성소에는 여전히 시간맞추어 드린 더운 떡이 있었으며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상징하는 금촛대에는 타는 불이 있었지만, 영적인 능력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영적인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이 헛된 제사를 드리는 너희는 통곡하며 회개하라, 너희의 죄악을 슬피울며 회개하라 고 심한 책망을 하십니다.

제사장들이 강도짓을 하였거나 부녀들을 겁탈하거나 음란에 빠져서 회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제대로 하지 않아 영성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껴야 하는데, 전혀 느낌이 없는 형식적인 행사를 수행하는 죄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성전에 나와서 제사를 열심히 드리면서도 영적으로는 계속해서 갈급하여 마침내는 우상승배에 빠지게 한 너희의 죄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예배 때에 주님의 임재하심을 느끼십니까? 주님께서 나를 바라보시고 계신다는, 주님께서 내 사정을 다 아시고 계신다는 느낌이 듭니까? 당장 병이 낫고, 고민하는 문제가 그 자리에서 해결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기도 하실때 주님께서 다 듣고 계신다는 확신이 오십니까?

아무리 좋은 시설에서 아무리 아름다운 찬양을 부르며 아무리 휼륭한 설교를 듣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죽은 예배입니다. 예배는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교제, 피조물이 자기를 창조해주신 창조주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그 교제는 기도를 통하여 잔송을 통하여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이루어 져야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우선 예배를 인도하는 목회자에게 있습니다. 목회자가 예배중에 먼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모습을 보여야 하며, 그를 통하여 예배자들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낄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살아있는 예배를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는 우리의 죄 입니다.

그래서 본문 16-17절에, “백성을 모아 그 모임을 거룩하게 하고 장로들을 모으며 어린이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신방에서 나오게 하고” 하였습니다. 제사장 너희들이 먼저 가슴을 찢고 너희의 기도하지 않아 영성이 떨어진 것을 회개한 다음, 백성의 지도자들인 장로들을 소집하고, 어린이와 젖먹이 그리고 신랑신부도 모이게 하라는 것입니다.

모여서 가슴을 찢고 회개를 하는 장소에, 왜 무엇하러 어린이와 젖먹이를 데려와야 합니까? 와서 빽빽 울기나 하고 애들은 중구난방으로 뛰어다녀 기도를 방해할텐데 이놈들을 왜 데리고 와야 합니까?

그리고, 이제 막 결혼하여 신방을 꾸민 신랑 신부가 어떻게 집중하여 가슴을 찢고 울며 불며 나라를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회개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죽고 죽어가는 전쟁터에서도 아내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른거려 집중하여 싸우기 힘들줄 알기 때문에, 오죽했으면 아내를 기쁘게 해 주고, 열심히 애도 낳게하여 전장에서 사람이 죽어도 인구가 줄어들지 않게 하라고 1년간은 병역도 면제해 주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로들이나 일반 백성들은 물론 이 젖먹이도 애들도 그리고 갓 결혼한 신랑 신부들도, 정말 기도모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도 모두 참여시키라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이 거족적으로 회개기도하는 일에 가장 우선순위를 두라는 것입니다. 지금 그 상황에서는, 자기 민족과 나라의 미래를 위하여, 닥쳐올 환난을 막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와서 가슴을 찢고 회개하는 것이, 애를 잘 키우는 일보다 부부생활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애를 아무리 잘 키워도 그리고 부부간의 금실이 아무리 좋아도 나라가 망하여 외적의 칼날에 다 죽게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나라가 안정되었을 때 가정도 그리고 애들도 미래가 있는 것입니다.

17절에,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라며 구체적으로 어디서 어떻게 기도하라는 것 까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백성들을 성전에 모이게 하고 제사장들은 성전 현관에서부터 제단사이에 서서 울며 기도하라고 하였는데, 당시 레위인들은 전국에 4만명 이상이었고, 이 레위인들중 아론의 후손들이 제사장이 되는데, 예루살렘에는 약 2500여명의 제사장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는 제단에서부터 시작하여 모이게 되면 성전 현관까지 꽉 차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2000여명의 제사장들이 성전 앞에 모여서 “하나님, 이놈이 잘못했습니다. 이 놈이 죽일놈입니다, 이놈이 기도하지 않아 영성이 없는 탓입니다, 이놈을 죽여 주십시오” 라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며 회개하면, 거기에 모인 모든 백성들도 따라서 울며 기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거족적인 그리고 진정한 회개가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단계별로 축복해 주십니다:

첫째, 우리가 거족적으로 모여 진정으로 가슴을 찢고 회개개도하면 하나님은 너무 좋으셔서 흥분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18절에,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 하셨습니다. 만일 온 백성들이 그렇게  가슴을 찢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너무 기뻐서 중심이 뜨거우시다, 흥분하여 어절 줄을 모르실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19절에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인하여 흡족하리라 내가 다시는 너희로 열국 중에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며” 했는데, 하나님은 너무 기쁘셔서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흡족하게 채워 주실 것이며 열국에게 욕을 당하지 않게 하십니다.

집나간 아들이 한밤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잠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우리 아들, 어서와. 배 고프지? 무엇 먹고 싶어? 우리 아들 이것 좋아하지!” 하면서 너무 좋아서 허둥지둥 어쩔줄을 모르면서 아들 먹을 것을 만드는 모습과 같습니다.

그리고 20절에는 “내가 북편 군대를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리니 그 전군은 동해로, 그 후군은 서해로 들어갈 것이라 상한 냄새가 일어나고 악취가 오르리니 이는 큰일을 행하였음이니라 하시리라” 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그를 쳐들어오는 외적을 다 막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유다는 힘이 약하여 차들어오는 외적들을 대항할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물리쳐 주시고, 멸망하여 도망치다가 엎드러진 사체가 악취를 풍길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히스기야 왕때 앗수르의 병사들이 겪은 사건을 미리 보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거족적으로 모여 회개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너무도 기쁘셔서 어쩔줄을 모르시면서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 주시고 우리의 적들을 적들을 막아주시고 우리의 우환도 모두 없애 주십니다. 그러므로 작게는 가족들이 모여서 회개기도 하십시오. 그리고 교회적으로 그리고 나아가 민족적으로 모여 회개기도 할수 있기를 기도하십시다.

둘째, 우리가 거족적으로 모여 진정으로 가슴을 찢고 회개개도하면죄로 말미암아 그간 잃었고 빼앗긴 것들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21절에, “땅이여 두려워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다” 하심으로써 우선 맨 먼저 땅의 회복을 말씀하십니다.

왜 땅을 제일먼저 회복시켜 주십니까? 사람이 죄를 지으면 땅이 저주를 받게 됩니다. 농사가 안되고, 가뭄이 들고, 풀이 말라죽어가게 되면 사람들도 먹을 양식이 떨어지고 마실 물조차 없어서 서서히 죽게되는 아주 끔찍한 형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죄를 지으면 땅이 먼저 저주를 받고,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땅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땅이 저주를 받으면 사람 뿐만이 아니라 들짐승들도 고생하고 굶어 죽게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이 진정으로 가슴을 찢고 회개하면, 내가 너희 필요를 채워주실 것이요, 22절에는 “들짐승들아 두려워 말찌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하십니다. 이제 들짐승들도 풍성한 풀을 먹게 될 것이라 하십니다.

또한 23절에는,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하십니다. 지금도 한해만 농사에 실패하면 큰 낭패입니다. 하지만 당대에는 농사가 실패하면 당장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굶어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농사는 곧 생명이요, 농사가 안되면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 이지만, 팔레스타인 지역은 모래땅이 많아서 비가 와도 고이지 않고 다 빠져나가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농사는 완전히 하나님께서 비를 잘 내려주시느냐 않주시는냐 에 달려 있었습니다. 추수때에는 비가 오지 말아야하고, 씨뿌릴 때에는 비가 외 주어야 합니다. 비가 한번에 너무 많이 오면 떠내려 가니까 적당히 여러번 와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너희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비도 아주 적당하게 때를 맞추어 내려 주신다 약속하십니다. 그리하여 농사가 잘 되면 긂어 죽을 염려없이 전쟁이 일어날 염려없이 마음 든든하게 겨울을 지낼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가 거족적으로 모여 진정으로 가슴을 찢고 회개개도하면 하나님은 환난 속에서도 기쁨을 주십니다. 이제 모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회복될 것이니, 그 은혜와 복을 회복시키신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25절에,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늣과 황충과 팟종이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주리니” 하였듯이,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면서 수고한 것들, 손해 본 것들, 모든 부분들을 채우시며 보상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 때문에, 나의 신앙양심을 지키려고 더 고생하고 손해본 것 있습니까? 내 신앙 양심 때문에 방황하고 시간 낭비하신 것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그 모든 것 갚아 주실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26절에,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약속하십니다.

지금 하나님의 이 약속이 다 이루어 졌기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십니까? 아닙니다, 아직 이루어 진 것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뻐하라고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이 약속을 믿고 그 믿음으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아직 일어나지 않는 것을 미리 볼수있는 능력입니다. 24절에,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라고 하셨는데, 지금은 땅이 황폐해서 씨를 뿌릴 상황도 못되지만, 하나님께서 비를 주시고 이 땅을 비옥하게 하여 주셔서 농사를 잘 지어 마당에 곡식이 가득한 것을 미리 볼수있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여러분들의 사업이 별볼일 없는 것 같지만, 앞으로 크게 번창하여 많은 사람들읠 먹여 살릴수 있는 큰 기업이 된 모습을 미리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 예수소망 교회가 별볼일 없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장차 우리교회에서 선교사들도 많이 나오고 목사들도 배출되고 전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인물들도 배출될 것을 미리 바라보며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딀수 있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넷째, 우리가 거족적으로 모여 진정으로 가슴을 찢고 회개개도하면 성령을 부어 주십니다 28-29절에,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하였는데, 이렇게 가슴을 찢고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부어 주신다 약속하십니다. 어떤 특정한 자가 아니라, 심지어는 남종이나 당시 영혼이 없다고 믿었던 여종들에게까지도,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은자들, 진정으로 가슴을 찢고 회개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신, 즉 성령을 부어주신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게되면,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라고 선포하십니다. 장래일을 말할 것이요,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할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늙은이는 꿈을 꾸게 될 것이라, 나이먹어 소망이 끊긴 자들이 비전을 갖게 된 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저 천국을 미리 바라보면, 마음은 이미 그 천국에 가 있습니다. 이제 얼마후 이 세상을 떠나 저 천국에 갔을떄 어떻게 살 것인가 준비를 하느라 바쁩니다. 은퇴하고서 McDonald에 가서 죽칠 필요없습니다. 천국에 가면 하나님을 뵈올텐데, 그러면 그 나라 말도 풍습도 지리도 좀 배워야 겠네 하면서 성경을 펴고 씨름하기 때문에 바쁩니다. 그리고 죽고나면 갈곳을 이미 알기 때문에 죽음이 두렵지도 않습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앞에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이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 축복은 아무나 거저 가져갈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진정으로 가슴을 찢고 회개하는 자들만이 누릴수 있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회개하십시다.

어려움 닥치면 점쟁이나 운세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생각나는 죄들을 진정으로 회개하십시오. 그러면 현재의 문제 뿐만이 아니라 이미 빼앗긴 명예, 권세, 물질까지도 모두 회복시켜 주시고 채워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주님 앞에 진정으로 회개하십시다.

이시간 특히 우리 민족,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을 위하여 가슴을 찢고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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