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 30

이 또한 지나가리라. 연말에 임현수 목사님을 생각하며……

Posted by on Dec 30 2015

Pastor Im of Toronto Keun Vit Church has been detained in North Korea for several months, and was sentenced to life time in Labor Enlightened Camp. He visited North Korea numerous times to share the Gospel. He planted blueberry in North Korea to make a fund for the mission. Let’s pray for his freedom and his dream be true.

 

북한 선교를 하는 사람의 하나로서 임현수 목사님 소식을 접하고 나니 마음이 착잡합니다. 북한이 갑작스럽게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이른바 갑작스런 통일을 준비하여야 한다는 고 김영삼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전 국민은 긴장하였습니다. 그 여파로 발빠른 목사님께서 분단 전까지 존재하였던 교회 명단을 내밀면서 북한 교회를 재건하자는 취지하에 북재위가 설립 되었고 많은 교회들이 북한에 무너진 교회를 재건하는데 헌금으로 동참하였습니다. 뒤늦게 한기총에서 동명으로 모금을 하면서 모양새가 흐려졌습니다.

 

1996년 시카고 한인 선교대회에 참여하여 “북한의 갑작스런 붕괴는 없습니다, 북한은 주체사상으로 결집된 정치집단임과 동시에 종교 단체입니다. 흡수통일의 꿈을 깨십시오. 북재위는 근거없는 정치적 논리에 불과합니다. 왜 정부의 허락도 없이 북한에 잠입시켜 아까운 젊은이들의 피를 흘리게 하십니까? 당신의 명예욕과 기금마련을 위한 발상 아닙니까? 이런식으로 하면 앞으로 누가 북한 선교에 동참하겠습니끼? ” 라며 북한선교 Front Runner 들과 논쟁할 때 이 분은 백두산 기슭에 불루베리를 심으셨습니다.

 

내가 주장한대로 흡수통일론은 점차 힘을 잃어가는 동안 햇볕정책쪽으로 기울어 갔고, 이 분이 심으신 백두산 불루베리는 자라갔습니다. 흡수통일의 불가능성을 주장하던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시던 그 분들은 북한의 비참한 실상을 잘 설명하시어 많은 북한 선교헌금을 모으셨는데, 하나님의 그 물질이 북한 선교의 어디에 사용되었는지 구제척으로 밝히시지 않으시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2008년에는 백두산 불루베리가 경운기에 실려 화물열차를 타고 서울에 입성하는 것을 미리보며 크게 기뻐하신 분이신데…… 그나 저나 90년대 말 북한재건위원회가 둘씩이나 양립하여 열심히 모금한 자금을 어디에 사용하셨는지, 아직도 저만 모르고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러한 지난 실수들이 앞으로의 북한 선교를 발목잡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1992년 신학교에 올때부터 북한이 열리기를 고대하였는데, 그래서 박사학위도 교회사로 하려다가 북한 선교로 선회하였는데 아직도 쉽게 열릴 기미가 안보이네요. 남과북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인 야망을 내려놓고 진정으로 민족과 후손을 위하여 고민하고 아파해 하고 서로 양보하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합니다.

 

흡수통일이나 적화통일 같은 자극적인 발언들은 삼가고, 정부 차원이 아닌 민간 차원에서 교류를 해왔더라면 지금쯤은 서울로 출근하여 “벌써 배가 허출하네, 오늘 점심은 어디서 할까? 대동강변 모란각도 괜찮은데……” 라는 사치스런 고민도 해 볼텐데…… 마라톤 대회도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아닌 회령에서 목포까지 아니 신의주 어적도에서 부산 거제도까지 그야말로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마라톤 대회가 될 텐데…… 그리고 이 못난 놈도 전도한답시고 평양거리를 분주하게 다닐텐데…… 누가 압니까? 평양 동교회 서교회 남교회 북교회 이렇게 4개의 클러스터 교회가 아직도 내 머릿속에는 선명하게 밖혀있는데…… 그리고 또 누가 압니까? 평양 시내에는 예수 전도단이 판영하며 전도하고 종로 내거리에는 주체사상 전도 쪽지를 돌리는 사람들이 생겨날지……

 

10년전 상하이에서 교회 지도자들을 가르치고, 푸동항에서 날아서 심양에 내려 찜질방에서 묵으면서 지하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다음날 버스를 타고 5시간을 달려서 단둥에 도착하였습니다. 단둥의 찜질방에서 묵으면서 중국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하여 미군이 투하한 폭탄을 맞아 끊어진 압록강 다리를 밟아보았습니다.

 

간밤에 보았던 깜깜한 신의주 주민들을 생각하며 아픈 가슴을 안고 유람선에 몸을 실은체 강 가운데에서 신의주 시를 바라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양이 차지않아 다음날 아침 일찍 세수도 하지 못하고 헝클어진 머리를 한채 고속정으로 북한 강변을 급히 달리면서 북한 땅을 좀더 자세히 보았습니다.

 

착잡한 기분에 멍하고 있던 나에게 “북한을 본 소감이 어떠냐” 는 선교사님의 갑작스런 질문을 받고, “저 땅에서 설교하고 싶다” 라며 준비되지 않은 답변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강 하류 쪽으로 달려 돈이나 먹을 것을 얻을까 달려오던 북한군을 만나 악수하는데, 나이가 몇이냐 하였더니 19살이라고 합니다. 이름이 뭐냐고 하였더니 **라고 합니다. 세상 물정모르고 보초만 서고있던 ***, 너도 지금쯤은 처자식을 거느린 가장이 되었겠지. 내가 북한에 교회를 세웠더라면 너도 우리 교회 장로, 아니 최소 집사님은 되었을 텐데…… 모르지, 오히려 네가 나를 주체사상 믿으라고 설득할지……

 

임현수 목사님!
무척 힘들고 말로 형용할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겠지만 당분간만 참으실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before they call, I will answer; and while they are yet speaking, I will hear. (KJV. Isaiah 65:24) 세상이 뭐라해도 당신은 믿음의 용사이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당신은 최전방에 서신 하나님의 용사이십니다.

 

 

This, Too, Shall Pass Away by Lanta Wilson Smith

 

When some great sorrow, like a mighty river,
Flows through your life with peace-destroying power
And dearest things are swept from sight forever,
Say to your heart each trying hour:
“This, too, shall pass away.”

When ceaseless toil has hushed your song of gladness,
And you have grown almost too tired to pray,
Let this truth banish from your heat its sadness,
And ease the burdens of each tiring day:
“This, too, shall pass away.”

When fortune smiles, and, full of mirth and pleasure,
The days are flitting by without a care,
Lest you should rest with only earthly treasure,
Let these few words their fullest import bear:
“This, too, shall pass away.”

When earnest labor brings you fame and glory,
And all earth’s noblest ones upon you smile,
Remember that life’s longest, grandest story
Fills but a moment in earth’s little while:
“This, too, shall pass away.”

 

 

 

 

Dec 28

진리가 다스리는 교회(사도행전 5:1-11절)

Posted by on Dec 28 2015

December 27/2015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합심하여 기도하십시다. 오늘 이 예배처소가 진동하는 기도를 하십시다. 우리 교회에 날마다 새벽 5시 반부터 8시 반까지 새벽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힘들더라도 같이 동참하십시다. 내가 힘들면 다른 사람들도 힘듭니다. 내가 힘들면 초대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로 힘들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먹을 것도 귀하고 교통도 좋지않아 한곳에 모이기가 오늘 우리들보다 더욱 힘들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구약과 신약을 통하여 교회 모습을 여러번, 여러 형태로 보여 주셨습니다. 아마도 교회의 몸되신 주님과 신부로 단장되어가는 성도들의 모습을 구약의 아가서처럼 상세하게 보여준 대목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복음서에도 교회 모습이 여러번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을 통하여 주님께서 교회에 주신 권세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주님께서 원래 주신 그 권세를 잃어가기 때문에 세상이 혼란을 가져온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만 보아도, 저를 포함한 우리 목사들이 기도에 게을리 하면서 타락하자 이단들이 들고 일어섭니다. 대형교회가 생기면서 정치가들은 자연 자금과 표가있는 교회로 몰립니다. 그리하여 교회를 자기 정치 기반으로 삼아 교회를 선거운동장으로 만들고, 권력맛을 본 목사들이 영권을 잃어가자 자연히 교회들도 영권을 잃어갔습니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 소망교회, 사랑의 교회, 명성교회 등등 대형 교회마다 돈과 정치에 휘둘리지 않은 교회들이 거의 없을 지경이 아닙니까? 그래서 대형교회는 한국교회의 자랑이 아니라 악재라고 평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기도에 힘쓰고 전도와 선교에 힘써야 할 교회들이, 돈과 권력 맛을 보면서 주님께서 주신 권세를 잃어가자 이단들이 우후죽순처럼 자라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성교회의 피를 빨아먹으면서 자란 이 이단들이 독버섯처럼 다욱 화려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에서 자생한 이단도 부족하여서 이제는 “천국복음” 이라는 중국 이단을 수입하여, 대한민국은 물론 교포사회에도 급속도로 퍼져가고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이단에 빠지게 되는 것은, 이단이 옳아서가 아니라, 기성교회들이 영적 굶주림을 채워주지 못하고 주님께서 주신 권세를 상실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교회가 그 권세를 회복해야 하는 때입니다. 세상은 교회를 너무도 우습게 압니다. 심지어는 그리스도 인들마저도 예수님의 머리 되시고 예수님의 몸 되신 교회를 서슴없이 비난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교회가 이렇게 되어버린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오늘날의 교회가 초대교회처럼 사생결단을 하는 기도를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살기가 편해지고 먹을것이 풍부해졌기 때문에 사생결단의 기도를 할 필요성을 못느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구호아래 “초대교회, 예루살렘 교회, 예루살렘 초대교회” 등의 교회들도 세워졌지만 초대교회처럼 사생결단의 기도를 합니까? 초대교회처럼 금식기도를 자주 합니까? 초대교회처럼 터가 진동하는 기도를 합니까? 교회 이름만 바꾼다고 저절로 초대교회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무너진 교회의 권세를 회복시키는 길은 오직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음을 성경은, 특히 사도행전은 실제의 사건을 통하여 가르쳐 주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잃어버린 아니 뻬앗긴 교회의권세를 어떻게 회복시킬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교회는 그 시작부터가 힘들고 위협과 핍박이 따를 것이라는 것을 “갈릴리 호수에서 풍랑만난 나룻배”를 통하여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기다리며 기도에 전념해온 교회는 조롱과 핍박을 이겨내고 순교로 맞서는 교회로 성장합니다. 그리고 더욱 큰 핍박을 이겨내고자 터가 진동하는 기도를 하면서 마침내는 진리가 통치하는, 교회에 있는 거짓 무리들이 끔찍한 종말을 맞이하고 온 교회가 물질을 통용하며 서로 섬기고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되는 데까지 성장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지금 어떤 권세를 가지고 있는지, 성경에서 보여주신 권세를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여러분들과 함께 살펴보면서 도전받고 은혜받는 시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첫번째 교회는 바로 “나룻배 교회“입니다.
마가복음 4:35-41절을 보십시다. 제자들과 함께 나룻배에 타신 예수님께서는 “바다 저쪽으로 가라” 하시고서는, 그대로 주무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다 가운데로 가라 하신 것은, 바다 한가운데에는 항상 풍랑이 있었음을 감안할때 큰 풍랑을 향하여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제자들은 두패로 나뉘어 한 패는 안간힘을 써서 노를 저어가고, 한패는 풍랑이 칠때마다 넘쳐들어오는 물을 퍼냈습니다. 하지만 풍랑이 얼마나 거센지 역부족이었습니다. 이제 심한 풍랑에 배가 뒤집히거나 넘쳐 들어온 물로 인하여 물속에 잠기든지 둘중 하나가 일어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주무십니다. 그 전까지는 곤하게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기가 그래서 어떻게든지 자기들이 해결해 보려고 하였지만, 이제는 불가항력적입니다. 마침내 그들은, “예수님! 우리 다 죽게 생겼어요. 다 물에 빠져 죽는다고요! 어서 일어나십시요!” 공포에 질린채 소리를 질러 댑니다. 당시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아마도 소리만 지른 것이 아니라 마구 흔들어 깨웠을 것입니다.

 

그러자 39절에,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하였듯이, 예수님은 우선 바다에 명령을 하셔서 풍랑을 잠재우셨습니다. “와! 정말 신기하다. 어떻게 바다에 명령을 하시고, 그렇다고 어떻게 바다가 그 명령에 순종하냐?” 하면서 놀라서 어쩔줄을 모르고있는 제자들에게 40절에,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책망하셨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왜 이 풍랑이 일어날줄 잘 아시면서 이 풍랑길을 가라고 하셨으며, 실제로 엄청난 풍랑이 일어나는 것을 허용하셨습니까? 그리고 심한 풍랑이 일어나면 공포에 질릴 것은 당연한데, 왜 믿음없는 자들처럼 두려워 하느냐고 책망하십니까?

 

주님은, 이것이 바로 교회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풍랑만난 배, 예수님은 주무시듯 이제 곧 제자들의 곁을 떠나 십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 교회라는 그 배에 예수님이 임재하시는 이상 그 배는 절대로 파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룻배 교회는 어떤 교회 입니까? 늘 깨어 기도하는 교회 입니까? 아닙니다. 어려움이 닥치고, 극한 상황에 처하니까 비로소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가 무슨 권세가 있겠습니까? 간신히 Survive 해가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혹, 여러분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매사가 다 평안하면 기도하기 힘들지요? 건강에 이상없고 직장도 평안하고 아이들도 잘 자라주는데 뭣하러 정초부터 궁상맞게 금식기도원에 쫕아갑니까? 그럴 시간에 애들하고 스키를 타러 가든지 멋았는 것을 사먹으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지요. 하지만, 한치 앞이 어떻게 되지 모르니까 기도하게 되고, 내 힘으로 어떻게 할수 없는 숨막히는 일이 닥치니까 하는수 없이 무릎꿇는 것 아닙니까?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가 우리나라 교회들의 신앙이 가장 불탔습니다. 먹고살기 힘들어 걱정인데, 남편은 직장에서 짤릴까 걱정입니다. 대학생을 둔 부모는 자녀들이 데모하다 잡혀가 죽지는 않는가? 걱정입니다. 그래서 아직 캄캄한 새벽부터 교회에 나와서 마루바닥 두두리며 가슴을 치고 통곡하던 그때, 그 때 우리나라 교회는 800% 성장하고 경제는 400% 성장 했더라고요.

 

그런데, 이제는 먹고 살만 하니까 수요예배 새벽예배 나오는 사람들이 교인수 30%도 안된다고 해요. 그런데 우리 교회는 수요예배와 새벽예배에 70% 이상 출석을 해요.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 예수 소망교회가 정말 예수님께서 주신 소망가운데 큰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만하지 마십시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의 단을 거두리로다 라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주님의 놀랍고 크신 일을 기대하시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더 기쁘고 좋은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날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두번째 교회는 바로 “약속을 기다리는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1:4-5절을 보십시다. 예수님께서는 약속을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약속을 믿고 마가의 다락방에 숨어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잡히면 예수님처럼 죽을수 밖에 없는 처지인지라, 다락방에 숨어서 식음을 전폐하고 밤낮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나룻배 교회는 큰 문제와 위기가 닥치니까 기도하였지만, 이번에는 큰 문제가 생겨서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한 것입니다. 병고침의 기도를 한 것도, 사업을 위한 기도도 아닙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임하시기를, 불같은 성령님을 체험하고자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도행전 2:1-4절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하였습니다.

 

거참, 신기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도하는데, 불같은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그리하여 기도하던 모든 무리가 불같은 성령님을 체험하였고, 모두 성령이 충만하여 밖으로 나가서 전도하기 시작합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가슴 가득한 성령님, 그 뜨거운 불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나가서 전도하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는 잡히면 죽으니까 두려워서 골방에서 숨어서 기도하였는데, 이제는 백주에 길가로 나가서 전도합니다. “잡혀 죽으면 순교다, 순교하는 것도 영광이다” 라며 목숨을 걸고 나가서 힘차게 전도합니다.

 

이들이 전도 훈련을 받았습까? 언어를 배웠습니까? 물론 전도훈련이 도움은 좀 되겠지만, 결정적인 것은 불같은 성령을 받고 뜨거운 가슴으로 나아가는 열정입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다 할지라도 열정이 없으면 성과도 없고 기술은 필요없는 지식에 지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들에게 신기한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자기 민족은 물론 당시 예루살렘에 온 외국인들을 붙잡고 그냥 자기들 말로 전도하였습니다. 무슨 의미냐 하면, 내가 중국사람 붙잡고 한국말로 “내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사니까 정말 이렇게 좋을 수가 없네요. 당신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 보십시요. 그러면 내가 누리는 행복을 당신도 누릴수 있을 것입니다” 라며 전도를 하였더니 그 중국사람이 자기 말로 하는 것처럼 다 알아듣고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신기하고 신나는 일입니까? 물론 직장을 위하여 사업을 위하여 자녀들을 위하여 건강을 위하여 기도하시겠지만, 무엇보다도 불같은 성령 받기를 기도하십시요. 그리고 오늘 본문의 성도님들처럼 능력을 받고 나가 전도하시고 선교하십시요.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는 구하지 않은 것 까지도 다 이루어 주실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세번째 교회는 “여호와 라파, 치료하는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3:1-10절을 보십시다. 이렇게 교회가 성령 충만해지자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서 전도하고 선교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는데, 자기들의 소유들을, 논과 밭을 팔아 교회로 가져옵니다. 그리하여 가난한 사람들과 서로 나눕니다.

 

요즘 상당수의 교회들은 좀 가진자들이 돈으로 교회를 좌지 우지 하는 것을 봅니다. 제가 처음 미국에 와서 한인교회를 다녔는데, 그 교회에 돈 잘버는 장로님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이 분을 그렇게 칭찬하시더라고요. 심지어는 설교시간에 “우리 장로님은 정직한 십일조를 하시는 분이십니다. 지난 달에는 5천불을 하셨습니다” 라고 칭찬을 하시더라고요. 그러더니 그 몇개월 후 그 곳을 떠나시더라고요. 들리는 이야기로는 그 장로님이, “목사님께서 기도를 열심히 하시지 않으셔서 우리 사업이 기울어져 갑니다” 라는 경고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 내에 부자 가난한 사람들이 없습니다. 있는자들, 가진자들이 없는 자들을 위하여 자기 전답을 팔아서 먹을 것과 쓸것을 교회로 가져 오니까 빈부의 차이가 없이 모두 동일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내적인 변화가 일어나자 치료의 능력이 일어나게 되는데, 먼저는 사도들을 통하여 일어납니다. 사도행전 4:1절이하를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할때 앉증뱅이가 문 앞에서 구걸을 합니다. 이에 4:6-7절에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8.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하였습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 만을 통하여 일어났던 이적이 이제는 사도들을 통하여 일어나게 됩니다. 어디 안증뱅이 하나만 고침을 받았겠습니까? 고혈압, 당뇨, 심장병, 소화기관, 암 등등 못고친다는 병들까지도 다 고침을 받았을 것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병도 낫고 갖은 것을 서로 나누는등 정말 분위기 좋다는 소문이 나니까 날로 성장하여 하루에도 결신자가 3000명씩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닙니까? 그러면 교회가 안정되고 태평성대를 누려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어디 그렇습니까?

 

 

[4].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네번째 교회는 “순교에 맞선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4:1-13절을 보십시다. 교회가 이렇게 급속히 성장하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하였습니다.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려야 할 사람들이 모두 교회에 쏠리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제사장들은 제사드리러 오는 사람들의 제물을 식량으로 삼고있는데, 제사드리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면 당장 먹을 것이 부족해 집니다. 성전에서 일하는 레위인들도 제사드릴 필요가 없어지면 할일을 잃게 됩니다. 사두개인들도 따르는 사람들이 없으면 정치적 기반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보통 때에는 서로 으르렁 거리며 싸우던 이들도, 교회를 탄압하자는 데에는 의기투합하였습니다. 그리하여 4:13절에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하였습니다.

 

사도들은 그들의 이러한 모의를 다 알면서도 순교할 각오를 하고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러다가 체포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공개적인 처벌을 가하여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겁을 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왠 일입니까? 무식하다고만 여겼던 이 갈릴리 촌놈들이 성경을 인용하여 척척 받아 넘깁니다. 그리고 공중 앞에서는 겁먹고 쥐눅들어 말도 잘 못할 줄 알았던 그들이, 아주 죽을 각오를 하고서는 오히려 호통을 쳐가며 아주 당당하게 말합니다. 이에 놀란 그들이 “이 도를 한번만 더 전하면 너희들은 다 죽을줄 알아!” 라고 겁만 주고 하는수 없이 풀어 줍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죽을 각오를 한다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때, 염세주의에 빠져서 2년 동안을 “죽었으면 좋겠다” 라며 살았었습니다. 날마다 죽고는 싶은데, 차마 내 스스로 목숨을 끊을수는 없고, 그래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세월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제가 미국에 오면서 제 물품을 정리하다가 그 때의 일기장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죽을 놈이 무슨 짓을 못해” 라고 써 놓은 것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와서도 힘들 때마다 “그래, 죽을 놈이 무슨 짓을 못해” 라며 다시 일어 섰습니다. 죽기를 각오하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목숨을 걸고 기도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금식기도하다가 멀쩡한 대낮에 쓰러져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죽자 사자 금식기도 한답시고 몇일 굶으면서 잠도 제대로 못잤더니, 어느날 분명히 내가 걷고 있었는데 눈을 떠보니 길바닥에 누워있더라고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목숨걸고 기도한번 해 보십시요. 저도 금식기도 한다면서 맨날 냉장고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 궁금해하고, “이번 금식 끝나면 이것좀 먹어 보아야겠다”하며 먹을 것만 생각했었는데, 이제부터는 그렇게 하지 마십시다. 죽자 사자 기도한번 해 보십시다. 그러면 지금까지 못이루었던 기적이 여러분들을 통하여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르완다에서 남수단으로 들어가려고 르완다 공항에 들어가서 Check Point 도 지나 비행기를 타려고 Gate를 향하여 가는데 비자가 없다고 딱 걸렸습니다. 무비자로 가서 공항에서 비자를 사는줄 알았는데, 대사관에서 미리 끊어와야 한답니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급히 남수단 대사관에 가자고 하였더니, “수단” 대사관에 데려다 주는 것입니다. 르완다에는 남수단 대사관이 없었습니다. 우간다 대사관에서 도와 줄수도 있다고 하여 우간다 대사관에 갔더니 거기서도 안된다고 합니다. 하는수 없이 비행기 표를 다시끊고, 르완다에서 하루를 더 묶고 다음날 우간다로 왔습니다.

 

겨우 남수단 대사관을 찾았는데, 문 을 지키던 수위가 너무 늦게 도착하였다고 내일 다시 오라고 합니다. 내 친구가 안에 있는데, 그 친구에게 알려야 할 것 아니냐고 잠깐 들어가자고 사정하여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비자 신청을 하였는데 다른사람들은 대사관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여서 인터뷰를 하는데 우리는 그냥 가라고만 합니다. 비자가 3일내로 안나오면 어떻게 하나, 비행기표는 이미 끊어 놓았는데……

 

“영적 전투가 너무 심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조급한 마음에 호텔에 돌아와서 금식기도를 하였습니다. 먹는것도 시원하지 않은 아프리카에서 금식을 한다고 생각하니 좀 서럽기는 하였지만 다급하니 어떻게 합니까? 그런데 금식기도를 하고나자 비자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문제들이 정말 일사천리로 척척 해결되더라고요. 안될 것 같은 일도 척척 잘 이루어 집니다.

 

그런데 마지감 고비에서 일이 또 터졌습니다. 남수단 가는 비자를 얻은지라 짐까지 다 부치고서는 마지막 Gate에서 황열예방주사 안 맞았다고 잡는데 그 때에는 참 난감하더라고요. “위험한 고비는 넘긴줄 알았는데, 아직도 영적 전투가 격하구나” 라는 깨달음이 와서 급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명령쪼로 “얼른해, 탑승 시간이 다가오지않나! 비자 때문에 르완다에서 와서 3일동안이나 묶여있었는데, 이 비행기 넟지면 되겠어! 어서해!” 라고 오히려 명령조로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어디서 그런 용기와 배짱이 났는지 모릅니다. 그 사람이 “NO” 한마디면 끝장이 나는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그때 역사,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났습니다. “안되는데” 하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상관에게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하며서 가는 것이었습니다. 난 “이때다” 하고서 더욱 기도하였습니다, 물론 속으로 기도한 것이지요. 그랬더니 잠시후 돌어온 그는 내 여권과 찹승권을 만지작 거리면서 “안되는데”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서 도장 찍어, 시간없다!” 라고 재촉하자 머리를 극적거리더니 담승권에 도장을 찍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영적 전투를 이겨내자, 남수단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주님의 큰 역사를 체험하였습니다. 아파서 앙고나무 아래서 누워있던 자가 기도를 받고 벌떡 일어나 너무 좋아서 축믈 추자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도 좋아서 몰려들고…… 신학교 강의시간에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크게 임하여 병고침도 일어나고 진정한 회개와 용서의 눈물이 강의실 마른 흙바닥을 적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십시다. 목숨을 걸고 기도하십시다. 그리하여 못고칠 병도 낫고, 콱 막힌 문제들도 시원시원하게 뚫리고, 기울어져가는 사업도 팍팍 일어나는등 이전에 체험하지 못한 주님의 능력과 이적을 체험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4].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다섯번째 교회는 바로 “터가 진동하는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4:29-31절을 보십시다. 사도들이 공개석상에서 목숨을 걸고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을 다 지켜본 교인들은 힘이 났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핍박을 이겨낼 수 있도록 이전보다 더욱 깊고 더욱 심각하고 진지한 기도를 하기 시작합니다. 얼마 동안 그렇게 기도하였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간절하게 더욱 오랫동안 기도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합심하여 구호를 외치며 기도합니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아멘.

 

 

우리도 한번 같이 해 보십시다, 사도행전 4장 29절에서 30절입니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아멘.

 

 

그렇기 간절히 기도하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31절에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성령님께서 얼마나 크게 역사하셨는지 터가 진동하였다 하였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전기가 찌릇찌릇하게 오는 것은 체험을 하였어도, 이 구절 외에는 터가 진동하는 것은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분은 “저녁에 합심기도하다가 성령님이 얼마나 강하게 역사하시는지 교회 앞에 있던 변압기가 탔다” 라고 간증하시던데, 진실인지 확인은 못해보았습니다.

 

 

여하튼 우리도 터가 진동하는 기도를 해 보십시다. 아직 들어보지 못하였지만 일어나니까 기록된 것이겠지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씻음을 받고 깨끗함을 받는 신실한 회개도를 통하여 우리의 불결해진 거룩이 회복되고, Pure Heart, 청결한 마음에 주님께서 직접 찾아와 주시는 기도를 드리십시다.

 

 

이렇게 신실하고 간절하고 죽기를 각오한 기도를 드리니까, 온 교인들이 성령 충만함을 입게 되었고, 이제는 사도들만 병고치는 능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온 성도들이 다 그런 능력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 예수소망교회 여러분들도 밖에 나가셔서 병든자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면 그 자리에서 주님의 치료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귀신이 떠나고 병든자가 고침을 받는 예수님의 능력과 표적과 기사가 여러분들을 통하여서도 일어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5].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다섯번째 교회는 바로 “진리가 다스리는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5:1-11절을 보십시다. 이 일이 있고나니까 성도들이 가난한 교우들과 나누기 위하여 자기 물품을 아낌없이 교회에 바칩니다. 3장에서는 일부만 그렇게 하였는데, 이제는 온 성도들이 자기 있는 것을 아낌없이 교회로 가져와서 서로 나눕니다. 이제 교회가 물질적으로 풍족합니다. 헌금 강조하지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가져온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한번 그렇게 주님을 만나고 그런 능력을 받게 되니까 이 세상 별것 아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체험을 하고 나면, 그저 주님만 옆에 계시면 되지 먹을것 입을것 걱정 안됩니다. 먹을것 쌓아 놓았거나 지갑에 돈이 두둑해서가 아닙니다. 이세상 살동안 굶기시지는 않으시겠지 하는 믿음의 빼짱이 생깁니다. “오늘 당장이라도 부르시면 주님 품으로 가면 더좋지” 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내일에 대한 걱정이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데 가진것 아낌없이 내 놓을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성령충만하고 능력이 일어나는 교회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 터집니다. 한참 성령 충만하고 화기 애애하고 분위기 좋았던 교회가 하루아침에 초상집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간 무릎을 마주하고 같이 기도하여왔던 기도의 동지가, 갑자기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것도 성령을 속인 죄로 성령님의 치심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교회는 화기애애하고 분위기 좋다고 좋은 교회는 아닙니다. 거짓이 있으면 반듯이 골라내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이십니다. 오늘 본문을 가끔씩은 십일조와 헌금을 강조할때 인용하기도 하는 것을 봅니다. 물론 물질 욕심때문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시험에 들었지만, 하나님께서 보신 근본 문제는 물질이 아닙니다. 자기만 살려고 하는 이기심입니다.

 

공동체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는 자기만 살겠다는 이기심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희생을 하여도 자기는 살겠다는 것입니다. 아니 어느 정도까지만 희생하고 더 이상은 안된다고 스스로 선을 그어놓고 사는 사람들이 공동체 안에 존재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공동체의 가장 암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물질 문제로 불거진 일이지만, 물질문제에만 국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적군이 쳐들어오는 것을 본 보초가 자기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치면 나머지 병사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들 순교를 각오하고 있는데 “불면 살려주겠다”고 하니까 자기만 살겠다고 조직의 비밀을 다 불어 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유대인들과 로마의 박해하에 있었던 당시, 교회내의 이기심은 주님의 사랑으로 뭉쳐진 공동체를 붕괴시켜 버릴 가장 큰 위협이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령님께서 극한 방법으로 치신 것입니다.

 

이 사건이 있은후 교회는 대 내외적으로 완전히 바꾸어 집니다. 이제는 교회에서 함부로 농담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감히 거짓말 하는 사람들도 없습니다. 교회를 비난하다가 자신이 해를 받을까 두려워 아무도 교회를 비난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사모하며 기도하는 무리가 늘어만 갔습니다. 모두들 예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경건하게 예배드리고, 그야말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몸되시는 교회를 섬기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5:11절에,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한 것처럼 마침내 교회는 교회로서의 권세를 회복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 교회에도 이와 똑같은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권세를 회복하여야 하는데, 이런 경지에까지 아르려면 그 만한 기도가 쌓여야 합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분, 즉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지만, 열왕기상 18:42절에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나도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얼굴을 무릎사이에 넣으려고 하니까 안되더군요. 그런데 금식 기도원에서 25일째 되던날 드디어 되더라고요. 뱃살이 빠지니까 되는, 예리야 선지자는 금식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셨는지 뱃살이 하나도 없으신 분이 아니었나 생각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진실인줄 믿으시지요? 그러므로 우리도 그렇게 하면 됩니다. 우리도 무릎을 꿇은 채로 얼굴을 무릎사이에 넣고 기도할수 있습니다. 우라도 성경에 기록된 대로 터가 진동하는 합심기도를 할수 있습니다. 하면 됩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대로 목숨을 걸고 기도 하면 우리 교회도 이러한 권세를 누릴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합심하여 기도하십시다. 오늘 이 예배처소가 진동하는 기도를 하십시다. 우리 교회에 날마다 새벽 5시 반부터 8시 반까지 새벽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힘들더라도 같이 동참하십시다. 내가 힘들면 다른 사람들도 힘듭니다. 내가 힘들면 초대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로 힘들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먹을 것도 귀하고 교통도 좋지않아 한곳에 모이기가 오늘 우리들보다 더욱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들은 해 냈습니다. 그 분들은 금식하며 메달렸습니다. 배고픔을 참아내며 유대인들과 로마인들의 핍박을 피해가며 목숨을 걸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터가 진동하는 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도 그렇게 기도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그 분들처럼 그렇게 목숨을 걸고 기도한다면 그 분들이 부여받은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를 부여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합심하여 기도하십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때 귀신들이 떠나고, 병든자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할때 못고칠 질병들이 온전히 고침받는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를 받으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Dec 28

크리스마스 Spirit(눅2:8-20절)

Posted by on Dec 28 2015

December 20/2015
요즘은 기독교의 수난시대라고 보아도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다른 이유들도 있겠지만, 아마도 저를 포함한 많은 기독교인들의 식어버린 믿음과 타락이 가장 큰 원인일 것입니다. “크리스마스가 왜 12월 25일이냐, 그것은 역사적으로 근거가 없는 일이다. 산타클로스가 어디 있는냐, 그것도 사람들이 장삿속셈으로 만들어낸 짓이다.” 라며 세상은 급격히 반 기독교 정서로 돌아서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성경구절이 들어있는 크리스마스 카드도 보기 힘들어져가고 “Holyday Season” 이라는 카드가 주로 많이 나돌아 다닙니다. 교회내에서도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Happy Holyday” 라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있는 추세입니다.

 

물론 크리스마스나 산타클로스에 대한 역사적인 근거는 빈약합니다. 예수님은 목자들이 들에서 야영을 하다가 베들레헴의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당시 베들레헴의 기후를 감안할때 4월 말에서 9월초 어느때에 탄생하셨서야 맞습니다. 겨울에는 상당히 춥기 때문에 그 이전이나 그 이후는 추워서 들에서 야영을 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어떻게 해서 12월 25일이 되었습니까? 당시 구테타로 황제에 오른 콘스탄틴은, 로마의 귀족세력을 견재하기 위하여 오늘날 터키의 Istanbul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여 천도를 단행하고, 자기 이름을 따 콘스탄티노플이라 합니다.  구테타로 왕위에 오른 전주사람 이성계가 개성의 고려 귀족들 때문에 정치하기 힘들자 한강 이남으로 천도를 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리고 콘스탄탄은 정치 지지세력을 얻기 위하여 기독교를 국교로 삼고, 당시 로마에서 성행하던 우상종교중 가장 규모가 컸던 시리아의 태양신 숭배자들의 가장 큰 절기인 동지후 3번째 날을 크리스마스로 정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주를 7일로 정하고, 첫번째 날을 Lord’s Day 라 정하고 그 날에는 아무도 일을 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 후에 율리시스 시져때 에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해를 기준으로 하여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달력에 동지가 12월 22일로 되면서 크리스마스가 자연스럽게 12월 25일이 된 것입니다. 리고 매 Lord’s Day, 즉 주님의 날을 태양 날, 즉 Sunday로 정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마스나 Sunday를 주일날로 정한 그 배경에는 우상숭배와 정치적 야망과 상술이 어우러져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12월 25일에 태어나셨다는 것은 신빙성이 없습니다. 콘스탄틴이 이렇게 정하였기 때문에 12월 25일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학자들이 계산해 보니까, 우리가 지금 쓰고있는 달력에 의하면, 예수님은 기원전 6년에 태어나셨어야 맞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마스 날도 가짜고, 예수님께서 기원전에서 기원후로의 시작점이라는 말도 틀렸습니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가 12월 25일이 아니라고 해서 예수님께서 구세주로 오시지 않으신 것입니까? 생일좀 잘못 기록하였다고 갑자기 그 사람의 신분이 달라 집니까?

 

 

제 고향은 아주 시골이라서 집에서 면사무소 한번 가려면 정말 힘듭니다. 당시 우리 동네에서 면사무소로 가는 버스도 없었기 때문에, 동네 지나고 논길거쳐서 면사무소 한번 가려면 두시간은 잡아야 했었습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천연두 소아마비등으로 갓난 아이들의 치사율이 높았기 때문에 대개 돌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돌이 지나면 그때서야 출생신고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 아버님께서 바로 위 누님 출생신고를 3년이나 늦게 하셨습니다. 돌이 지났으면 당장 해야 하는데, 면사무소가 멀고 거기에다가 딸이니까 차일피일 미루다가 제 형이 태어나니까 아들 낳다고 좋아서 그때 같이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 누님은 출생일은 물론 출생연도도 맞지 않습니다.

 

자 그렇다면 제 누님은 생일 날을 정확히 알수 없다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무효입니까? 호적이 늦게 되니까 취학통지서가 늦게 나와서 국민학교를 9살에 들어 갔어도 대학도 졸업하고 중학교 선생하였고 지금은 정년퇴직하여 연금 타먹고 있는데, 그 모두 무효입니까? 어느 종교그룹은 구원받은 날을 기억해야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는데, 그 사람들 주장과 무엇이 다릅니까?

 

 

우리가 본질을 흐려서는 아니됩니다. 결혼을 하여서 애까지 낳고 사는데, 어느날 둘째놈 출생신고를 하러 갔더니 결혼 날짜가 잘못된 것이 발견되었다 합시다. 동사무소 직원이 혼인 날짜를 10월 10일로 한다는 것이, 잉크 아끼느라 그랬는지, 앞 뒤에 “0”을 다 빼먹어서 1월 1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결혼이 무효입니까? 요즘처럼 우중충 하고 쌀쌀한 날, 혼자 있으면 추우니까 서로 살대고 등긁어 주는 재미로 사는 것이 중요하지, 결혼식 날짜가 뭐 그리 중요합니까?  그러므로, 사람들의 입맛대로 크리스마스가 날조 되었다 해서 크리스마스 정신까지 버려서는 아니됩니다. 아무리 역사적으로 날조되었다 할지라도 크리스마스 정신은 늘 지켜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켜야할 크리스마스 정신은 무엇입니까?
크리스마스의 첫번째 정신은, 다시오실 예수님을 Expectation,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로마의 학정에 시달리던 유대인들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메시야가 곧 오신다,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그 분을 맞이할 준비를 하여라” 는 말씀을 귀가 아프도록 들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메시야가 곧 올것이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살기가 힘들면 힘들수록 그들은 메시야 오심이 더욱 가까워 졌다고 믿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 한국에 가짜 예수들이 여기 저기 나타나듯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 가짜 메시야들이 여기 저기서 나타났습니다. 갈리리 지역에서 유다라는 사람이 일어나서 “내가 메시야다” 하였습니다. 아마도 그는 성경에 “메시야가 유다지파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날 것이다” 라는 사실을 이용하여, 자기가 오실 그 메시야라고 하였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가짜 메시야를 별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드다”라는 사람이 메시야라고 하니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도 가짜 메시야로 드러나는데 까지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침례요한(John the Baptist)이 요단강에서 사역을 하자 그 분이 메시야인줄 알고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그 멀고 험한 길을 지나 그 골짜기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침례요한은 대놓고 “나는 메시야가 아니요” 라고하자 “그러면 네가 무슨 연고로 침례를 주느냐? 너도 그 가짜 메시야와 똑같은 놈이 아니냐” 고 책망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제 곧 메시야가 오십니다. 그래서 나는 그 분의 길을 예비하는 종에 불과한 사람입니다. 나는 너무도 미천하여 그분의 신발 끈 풀었다 메워주는 종의 처지도 못됩니다” 라고 하여 사람들을 크게 실망시킵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메시야는 곧 오실텐데” 라며 기다리고는 있었지만, 여러번 속자 식상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는 데에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통하여 여자들만 좀 따랐지 실제로 따르는 사람들이 별로 많지는 않았습니다. 교회를 개척해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초창기에는 친교를 비롯한 교회의 궂은 일들은 여전도회에서 잘 맡아 해 주어야지 교회가 돌아가지 않습니까?

 

사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자기 아들이 메시야인줄 제일 먼저 알고 믿었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일어난 일도 보십시요. 마리아가 예수님을 모시고 갔고, 그곳에서 사람들도 붙여주었으며, 또한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는 이적도 마리아의 믿음으로 된 것 아닙니까? 여하튼 예수님의 사역이 마리아를 통하여 시작되었고, 마리아를 통하여 퍼져 나갔음은 부정할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초창기에는 따르는 사람들도 적었고, 예수님께서도 “내가 오실 그 메시야 라는 말을 함부로 하고다니지마, 너희들만 알고있어” 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하기도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지금까지 가짜 메시야들에 의하여 여러번 속은 사람들이 “내가 진짜 메시야다” 라고 해 보았자 들을 귀가 없다는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땅에 오신 사명을 펼쳐보기도 전에 유대 관원들에게 신분이 노출되면 잡혀 핍박을 받으실수도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현실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목회자들에 대한 비리가 연이어 줄을 잇자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 자체에 회의를 품고 떠나 버렸습니다. 폭력과 사기, 돈과 관련된 죄악, 성적인 죄악, 정치적인 죄악등등 범죄 현장에 종교인들이 다 끼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우리 크리스천들이, 그리고 다른 종교 지도자들에 비하여 저를 포함한 우리 목사들이 탁월하게 많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되자 이때다 하고 이단들이 우우죽순격으로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내가 재림예수라고 문선명이가 죽자, 지금은 그의 아내가 여교주가 되었지 않습니까? 박태선에 빠졌다가 나와서 “나는 영원히 사는 존재다” 라며 떠들었던 영생교 교주 조희성이 죽자, 그 교리를 이만희가 따서 신천지를 시작하여 수많은 교회들을 훼손시키지 않습니까?

 

 

부산을 중심으로 한 영남지방에서는 안상홍이 메시야라고 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따르다가, 그가 죽자 그의 아내를 “하나님 어머니” 로 모시면서 교세가 더욱 늘어나 지금 200만명도 넘는답니다. 이 사람들이 돈이 얼마나 많은지 아프리카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 중심지에 아주 화려하고 멋있는 건물을 지어 우간다 최고의 교회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그래서 상당수의 그곳 주민들은 그 무리들이 우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교회로 알고 있습니다. 우간다 르완다에 우리 대한민국 선교사님들이 열심히 사역하고 계시는데, 그 흔적은 잘 안보이고 소위 말하는 이 “하나님의 교회”만 휘황 찬란한 것을 보면서 마음속에 은근한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직전에 가짜 예수에 시달리며 식상해 했던 당대 유대인들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가실때 다시오마 약속하셨던 예수님, 오늘날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목사들이 가슴을 찢으며 회개하고, 사람들이 열심히 예수님을 믿고, 교회마다 기도소리로 가득차고, 골짜기마다 예수님의 찬송이 메아리칠때 주님이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들은 타락하고 교회들은 분쟁에 시달려 문을 닫고, 술집마다 광란과 음란의 소리로 밤을 지세우며, 가짜 예수 이단들이 설치고 사람들은 길잃은 양들처럼 방황하는 이 때에 주님은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오히려 가장 중요하고 두렵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한층 더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언제 오실지 확실한 날짜는 알수 없지만, 그 날이 멀지 않았음을, 심판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어 기도하는 분들은 느낄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실날에만 Focus 를 두시지 마시고 나 자신의 종말에 대한 준비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 크리스마스 주일에 예수님, 말 밥통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님은 이제 머리속에서 지우십시요. “그 어리신 예수 너무 착하셔서 우시지도 않으시네” 예수님께서 정말 우시지 않으셨는지는 알수 없지만, 여하튼 이런 베이비 예수님은 머리속에서 지우십시요.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밖혀 죽으신 예수님께서는 아직도 그 십자가에 달리셔서 “아, 목마르다” 하시지 않으십니다. 이미 2000년전에 부활하셔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셨고, 이제는 심판하러 오실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요한 계시록에 등장하시는, 좌우에 날선 검(sharp two-edged sword)를 물고 심판주로 오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기대하며, 기다리십시요.

 

 

사람들은 “니체는 ‘신은 죽었다’ 라고 하였습니다’” 라고 그 분의 말을 인용합니다. 하지만 제가 알고있는 니체는 “신은 죽었다, 하지만 만일하나……” 라고 말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말, 심판주로 오신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수 있겠습니까? 말도 안됩니다. 하지만 만일 하나, 다시 오실 확률이 천만분의 일이 된다 할지라도 만일의 경우 그게 진실이라면, 만일 정말로 그분이 내 생애에 오신다면…… “만에 하나……” 이 대목이 떨리지 않습니까? 신이 죽었다고 외치던 니체가 죽음을 앞두고서는 “만에 하나…… IF……” 이렇게 떨림속에 죽어 갔다는 것을 아십니까?

 

 

오늘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심판주로 다시 오심을 여러분들이 정말 믿기지 않는다 할지라도, 만일의 경우, 니체처럼 만의 하나를 위하여 준비해 두는 것이 지혜롭지 않을까요? 마치 자동차 보험을 드는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 안에 계시는 여러분! 주님께서 다시오심이 심히도 가까워진 이 때에 심판주로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사십시요. 그름을 준비하지 못하여 신랑을 만나지 못한 어리석은 처녀가 되지 마시고, 가름을 넉넉히 준비하고 오실 신랑을 만날 준비를 하며 사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크리스마스 정신의 두번째는, 예수님을 열심히 찾는 것입니다. 메시야가 오실것을 기대하며 고대하고 있었던 동방박사들은 별자리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을 계속해서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왕림하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다 팽개치고, 오직 예수님을 찾는 먼 길을 떠나게 됩니다.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그들은 옛날 페르시아 제국 땅에서 온것 같습니다. 헬라 제국에 망하기 전 페르시아 왕실은 조르아스터 교를 신봉하고 있었는데, 이 조르아스터 교는 종말론 사상이 아주 강하였습니다. 이들은 “종말이 곧 올 것이며, 종말에는 선신들과 악신들의 대결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하여 대 환난이 올 것이지만, 마침내는 선신들이 승리할 것이다” 라고 굳게믿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자기 식민지 내에 있던 자기들이 생각할때 선신을 섬기는 백성들은 본토로 되돌려 보내면서, 그곳에서 무너진 성전을 다시 건축하고 페르시아 왕실을 위하여 제사를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함한 여러 민족들이 각기 자기 고향으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이 때에 페르시아에 살던 유대인들 중 약 2%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무너진 성전을 수축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동방박사들도 “종말 전쟁”을 기다리던 조로아스터 교를 신봉하던 사람들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종말에 왕림하실 왕을 기다리며 계속해서 하늘의 징조, 즉 별자리를 연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왕이 태어난 것을 보고서, 행차를 준비하여 그 먼거리에서부터 유다 땅으로 왔던 것입니다. 낙타를 탔다 할지라도 빨리 달리지 않고 걸어서 왔다면, 줄잡아서 2주 이상은 걸렸을 것입니다.

 

 

여하튼 성경에 기록되기를 그들은 별자리의 안내를 받으면서 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별은 깜깜한 밤에만 보입니다. 그리고 한곳에 있지않고 계속해서 유다 쪽으로 내려오고 있기 때문에 자기들의 위치가 계속해서 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깜깜한 밤에 망원경도 없이 별자리를 계속해서 관찰한다는 것은 많은 집중력과 시간을 필요로 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별을 보면서 왔다면 낮이 아니라 주로 밤에 이동하였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밤에 비가 오거나 구름이 끼인 날에는 별을 볼수 없었기 때문에 이동할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은 다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에 별자를 연구하여 그 별을 따라 온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볼때, 그들이 예루살렘 까지만 가자, 예루살렘은 큰 성이고 거기에는 훌륭한 율법학자 서기관들이 있으니까 거기에 가면 이미 이 새롭게 태어난 왕에 대하여 다 알고 있겠지 하고서 예루살렘으로 들어 갔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에 들어갔는데, 새로 태어난 왕에 대하여 아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기들이 제일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 안에 들어가자 여태까지 의존하며 왔던 별마져도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예루살렘 성 밖으로 나와서 하늘의 별자리를 보자 그 별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누구나 쉽게 신앙생활을 하고자 합니다. 밝은 대낮에 즐기면서 예수님을 찾고 싶지만, 주님을 만나는 길은 밝은 대로가 아닙니다. 왜 개척교회, 조그만 교회, 남의 방 빌려서 옹색하게 살림하는 교회에 힘들게 다닙니까? 시설좋고 프로그램 좋고 성가대 찬양좋고 목사님 말씀좋은 큰 교회에 가면 주님 만나는 길을 잘 알려 주는 안내원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레서 큰 교회를 선호하지 ㅇ낳습니까? 하지만 오늘 본문을 보니까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동방 박사들처럼 깜깜한 한밤중에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울부짖는 자들을 만나 주십니다. “그믐달은 한많은 청상과부가 잠못이루고 보는 달이다” 라는 나도향의 말처럼, 남들은 따뜻한 이불속에서 새끈 새끈 단잠을 자는 한밤중에 마당에서서 서산에 기울어져가는 달빛을 보며 “주님! 너무 힘드네요. 나좀 붙들어 주시옵소서” 라며 울부짖는 자들을 주님께서는 만나 주실 것입니다.

 

천국은 땅을 쳐다보며, 땅의 것을 먹고 즐기며, 땅에 엎드려 자는 자들의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평안히 침대에 누워서 하늘을 본다고 해서 주님을 만나는 것도 아닙니다. 광야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늘을 쳐다보며 하늘의 신령한 것을 먹으면서 가나안 땅에 들어왔듯이,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의 신령한 것을 사모하고 먹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가르치는 대로 좁은 길로 가십시오. 남들은 먹고 쉬는 한밤중에 하늘을 바라보며 주님을 찾으십시요. 주님은 이런 분들을 만나 주실 것이요, 천국은 바로 이런 분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도 특별 기도가 필요함을 저 뿐만이 아니라 여러분들도 매번 느껴왔지 않습니까? 매년 초부터 매일 새벽 5:00분부터 8:00분까지 하려고 합니다. 하루에 3시간을 채우려고 하는데, 바쁘시거나 너무 지루하면 중간에 가셔도 됩니다. 여하튼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기 42:4-5절)” 라는 욥의 고백을 할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크리스마스의 세번째 정신은 보고 확인한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베들레헴 근처에서 양을 치고있던 목자들은 밤에는 양 도둑들을 지키느라 양들과 함께 야영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목자들은 밤을 지세우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밤을 지세우는 자들, 깨어 있는 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오늘 본문 15-17절에 “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하였습니다.   목자들은 천사들이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소식을 전하자 천사들이 말한 그 곳에 가 보았습니다. 정말 예수님이 계시는지 정말 천사들이 말한 것이 사실인지 찾아 가 보았습니다. 자기들의 양떼들, 자칫 이리들이 물어 갈 수도 있고, 도둑들이 훔쳐 갈수도 있고, 무단 이탈로 주인으로 부터 해고를 당할 위험을 무릎쓰고 그들은 갔습니다. 그리고 보고 확인한 것을 그들은 전하였습니다.

 

 

목자들은 이 기쁜소식을 자기들만 간직한 것이 아니라 주변사람들, 아직 이 기쁜소식을 모르는 자들에게 나누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이웃에게 전하고 나누는 것입니다. 선물을 주고 받으실때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소식도 같이 주고 받으시기 바랍니다.   물론 저는 복음을 전하러 멀리 아프리카 까지 갔었지만,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변에도 아직 예수님께서 이 땅에 구세주로 오셨음을 모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분들에게 나누십시요. 단순히 소식만 전할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의 예수님으로부터 받으신 사랑도 전하십시요. 그리고 주님께서 곧 다시오심도 전하십시오.

 

 

저와 여러분들은 주님으로부터 이 땅에 부르심을 받은 주님의 심부름꾼들입니다. 심부름꾼들은 보내신 분의 멧세지를 가감없이 정확하고 신속하게 전하여야 합니다. 자기 생각이 아니라 보내신 분의 의도를 정확히 전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실컷 전하고서도 심부름 값은 커녕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3) 라는 비참한 책망을 듣게될 것입니다.

 

 

주님의 다시오심을 확실히 믿으시고, 그 분께서 곧 오심을 기대하며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을 열심히 찾으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회개로 마음을 청결하게 하시고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 분을 찾으십시요. 동방박사들이 멀고 험한 길을 찾아온 것처럼 대로로 가지 마시고 좁을 길을 걸으며 꾸준히 찾으십시요. 그리하여 이 크리스마스 아침에 주님을 꼭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소식을 전하십시요. 가까운 가족들, 형제들, 자매들, 친척들, 그리고 친구들에게 전하십시요. 그리하여 금년 크리스마스는 진정한 기쁨을 나누는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김진환 목사

Dec 05

아프리카 선교(2)

Posted by on Dec 05 2015

신학교에 다닐때 나이지리아  남 아프리카 공화국등에서 온 친구들로 부터 아프리카에 대하여  많은 것을 들었고 또한 아프리카 선교에 다녀오신 분들로부터 선교보고를 들었기 때문에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 사역은 처음이었던 지라 무엇을 준비해 기야할지 막막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무슨 계획으로 나를 부르시는지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기도를 하기는 하였지만, 기도를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하튼 부흥성회에서 급히 돌아와 토요일 새벽예배를 마치고 아프리카에 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거기는 지금 우기인데 무슨 신발을 신어야 할까, 옷은 어떻게 입어야 할까, 파상풍 예방주사도 맞고 말라리야 예방 약도 먹었지만 Yellow Fever 주사는 못맞았는데…… 등등의 생각을 하며 하루가 금새 지나갔습니다.

 

주일 설교를 한후 교우들과 친교를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난 내 앞에 무슨 장벽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프리카 땅에 이르면 어떤 영적 전투를 치뤄야 하는지 알수 없기 때문에 막막한데 그것은 나와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의 생각인것 같아서 거론을 자제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에 대한 필요성을 더욱 크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기도 동역자 Dr. Almaz와 Freda 에게 이 메일로 특별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이윽고 월요일이 되어서 짐을 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집을 나와 터키의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를 타려고 샌프란 시스코 공항으로 달렸습니다. 늘 다니던 길이었지만 내 마음 탓인지 오늘은 좀 색다르게 보였습니다. 옆에 앉아있는 아내도 평소와는 달리 아무 말없이 앞만 보고 있습니다. 이윽고 공항에 들어서자 비로소 입을 엽니다, “어디가 터키 항공사 터미날일까?” 깊은 숨을 내쉰 후, “우선 내려서 들어가 보면 알겠지” 하고서 차에서 내려 짐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파킹하고 오라고 하고서는 짐을 차에서 내려 터미널 안으로 들어 갔습니다. 나 혼자가 되자 아프리카 생각은 잠시 사라지고, “이스탄불, 이 역사적인 도시, 콘스탄틴이 세웠다는 이 웅장한 도시, 성 소피아 성당으로 유명한 이스탄불, 이 성당의 보수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U-Tube 에 나오던데, 폐쇄되기 전에 한번 구경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행기가 하루 한번씩만 있어서 그런지 일찍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기다리는 줄은 정말 길기만 하였습니다. 그리고 히잡이나 두건같을 것을 쓴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 사람들이 대부분 모슬렘들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자 약간은 긴장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그들 중에 상당수가 Farsi(이란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또한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엄청나게 큰 가방들을 두세 개씩 가지고 있어서, 저 비행기가 미 대륙을 횡단하여 대서양을 거쳐 터키의 이스탄불까지 날아 가려면 정말 힘들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 기다림 후에 이윽고 내 차례가 되어 짐을 부치고 나니 이제 곧 들어갈 시간이 되어버렸습니다. 어서 들어가라는 아내의 얼굴이 영화 장면과는 달리 묘하였습니다. 저 지난주 금요일부터 시작하여 지난 목요일까지 강행군 하고 돌아와 집안 정리는커녕 피로도 풀리기 전에 주일 예배마치고 휑하니 떠나버리는 남편이 무심하게도 느껴졌을 것입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인디애나 주로 그리고 오하이오 주로 미국을 급히 횡단하고 또다시 지구 저쪽편 나라로 가는 내 마음이 약간의 설렘도 있었지만, 내 처는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습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여유있는 표정으로 “사랑한다, 기도하겠다, 건강 잘 챙기라” 라고 하였을 텐데,  갑자기 침묵을 깨고서는 “죽으면 안돼, 살아서 와야 해”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농담으로 하는 줄 알고 웃으면서 답하려고 하였더니 표정을 보니 그런 기분이 아니네요. 나를 한번 쳐다 보더니, “어서 들어가요, 뭐 먹을 시간도 없겠네” 하면서 휑하니 돌아서서 가는 뒷모습이 갑자기 “어쩌면 이 것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게 하였습니다. 여태까지 이런 생각을 한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아니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연고일까? “괜한 생각이다” 하고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우리 가정을 침범하려는 모든 Unclean Spirit들은 썩 물러가라. 주여, 우리 가족들을 지켜 보호하여 주옵소서” 라며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비행기는 출발시간이 두 시간이나 지났는데도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왜 늦는가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이 Delay 된다는 방송만 두번 연거퍼 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못해서 그런지 아니면 내 인내심의 부족인지 여하튼 짜증이 났지만 아무도 불평하거나 발을 동동거리지 않았습니다. 혹시는 이 비행기가 자주 이렇게 늦게 이륙을 하였기 때문에 승객들이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내하고 우동이라도 한 그릇 먹을 것인데……

 

 

비행기는 저녁 7시가 훨씬 넘어서 출발하였습니다. 예상대로 빈자리가 하나도 없이 가득 찼습니다. 내 옆에는 독일로 여행을 가는 젊은 남자와 이란으로 가는 중년의 여인이 앉았습니다. 이 비좁은 공간에 12시간 55분 동안 앉아있을 것을 생각하니 정말 아득하였습니다.

옆 자리 젊은 남자와 대화를 하면서 “예수님을 믿느냐?” 고 하였더니 그렇다고 합니다.  어디 가느냐고 하였더니 “산호세에서 일하는데 그간 돈좀 모아서 독일로 휴가를 떠난다”는 것이었습니다. “Frankfurt 로 직접가는 것도 있는데 그것은 좀 비싸서 이 비행기를 택하였다” 면 마음이 들떠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 옆에 이던 이란 여자분이 “난 영어를 잘 못합니다. 난 이란 사람이요.” 라고 말을 거는 것이었습니다. “아, 그러면 테헤란으로 가시는 중이십니까?” “네, 이스탄불에서 테헤란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야 해요”.  이제 내 차례가 되어 “난 아프리카에 갑니다, 선교하러요”. “그것이 무엇인데요?” 라며 이란 여인이 묻는 것입니다. “성경 아십니까? 성경을 가르치고 예수 믿으라고 권하러 갑니다” 하면서 자연스럽게 신앙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독일로 가는 남자는 교회를 다니고 있었고, 이란 여인은 만약의 사태를 감안하여 예수믿으라고 직접적으로 권하지는 않았습니다. 여하튼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은 잘 갔습니다.

 

그 긴 시간을 날아 마침내 이스탄불 상공에 들어온다는 기장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와서 밖을 보았더니 또 밤이었습니다. 원래 비행시간이 12시간 55이라 하였는데, 2시간도 넘게 지연하여 이륙하였음에도 불고하고 15분 밖에 늦지 않았습니다. 미 대륙에서는 속도를 지켰겠지만 대서양을 건너면서 과속을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비록 15분 연착을 하였다고 하지만, Uganda Entebbe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는 시간이 겨우 55분인지라 조바심이 들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이번에는 2대의 버스가 우리를 터미널에까지 실어 나르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원 세상에 이렇게 유명한 도시의 공항 시설이 어쩌면 이렇게 구석기 시대의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을까?” 의아해 하면서 급히 버스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나의 조급함을 알 수 없는 버스 기사는 비행기에서 내린 손님들이 다 오를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급히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자 Uganda 로 가는 비행기 Boarding 시간은 이미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얼른 엔테베로 가는 Gate Number 를 보고서, 그 게이트로 가는 싸인만 보고 사력을 다하여 뛰었습니다. San Francisco 에서도 2시간 넘게 연발을 하였는데, 아프리카로 가는 데에는 연발할 가능성이 많겠지 하고서는 뛰었습니다.

 

 

그런데 이 공항 정말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버스가 터미널 중간 입구가 아니라 한쪽 끝에 내려주었던 것인데 내가 가야 할 Gate는 다른 쪽 끝이었습니다. 가방을 들고 뛰는데 일직선으로 한참을 가니 터미널 중앙을 통과하게 되었고, 거기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가라고 하여서, 2층으로 간 뒤 또 뛰어 가는데 총 20분 정도는 걸렸습니다. 혹시나 하였지만 비행기는 가고 없었습니다. 직원에게 물었더니 African Time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정시에 출발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사정도 모르고 Entebbe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실 목사님은 어떻게 연락을 해야하나?  그 분 전화번호도 없고, 그저 구두로만 이야기를 했었는데 어떻게 해야되나? 내일부터 당장 시작될 강의는 어떻게 되는가?  내 짐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미 아프리카로 갔을까 아니면 여기에 있을까? 황당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복잡한 생각과 함께 “비행기가 연착하여 놓쳤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 직원에게 물었더니 전혀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터키 항공사 민원실로 가시오” 라고 합니다. 아마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가보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선교지에서의 첫번째 규칙은 Flexibility(융통성) 이지, 이제부터는 나의 미국식의 고정관념을 께고 터키식으로 아프리카 식으로 해야지” 하면서 여유있는척 터벅터벅 걸어갔습니다.

민원실이라는 곳을 갔더니 예상대로 비행기를 놓친 사람은 나 하나 뿐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상당수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순서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는데, 한 미국인 아가씨가 주춤거리며 다가왔습니다.  “이태리에 갔다가 LA로 가는 비행기를 놓쳤습니다. 그래서 내일 가는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당신은 어디로 가십니까?” 하며 말을 거는 것이었습니다. “난 Uganda 로 가는 중인데, 비행기가 연착하여 아프리카로 가는 비행기를 놓쳤습니다” 라고 답하면서 직원 앞으로 갔더니, 우선 차표만 내일 같은 시간 것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 고 직원에게 물었더니 “그런 것도 모르냐?” 는 표정으로 터키 항공호텔로 가라고 퉁명스럽게 말합니다.

 

어딘지 물어도 자세히 가르쳐 주지도 않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서 호텔로 가는 문을 통과하려고 하였더니 세관에서 막습니다. 그러면서 비자를 사라고 합니다. 비행기가 연발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내 스케줄이 하루 늦어졌는데 사과하지는 못할 망정 이게 무슨 소리냐 따지고 있는데, 언제 왔었는지 방금 전에 보았던 그 아가씨가 옆에 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은 말도 안 된다”고 거들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있는데 옆 창구에 있던 중년의 신사가 영어로 “왜 미국 여권소유자는 $30불인데 캐나다는 $70입니까? 우리나라하고 무슨 원수라도 졌습니까?” 하더니, “할 수 없지 뭐. 대합실에서 잘수는 없잖아” 하면서 돈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 사람 따라서, “할 수 없지 뭐!” 하고 샀습니다.

 

 

비자를 사고 나오는데, 문 옆에 있던 그 아가씨는 내가 말을 걸지도 않았는데 “내 비행기는 내일 오전이니까 난 터미널에서 날을 샐까 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표정을 보니 비자를 살 돈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니야, 여기 $40 이 있다. 이것으로 사라” 며 $20짜리 두 장을 주고서 터키 항공호텔로 가기 위하여 세관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따라오면서 “You made me cry” 하는 것이었습니다.  “설마 이 작은 돈 가지고 울기 까지 하겠는가?” 하면서 돌아보았더니 정말로 빨갛게 된 두 눈이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너 몇 살이냐?” 하였더니 21살이고 이름은 신티야 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딸이 25살이다. 너를 보니 우리 딸이 생각난다. 교회는 다니냐?” 하고 물었더니 “네, 매주는 아니지만 예수님은 믿습니다”. 그래서 “내가 기도 해주마” 하고서 머리에 손을 얹고 안전한 여행과 예수님 잘 믿고 훌륭한 일꾼이 되라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이윽고 비행기회사에서 정해준 호텔에 들어 갔는데, 하룻밤에 70유로달러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녁밥 식권까지 줍니다. 비록 아프리카 선교일정에 그 시작부터 차질을 빚었지만, 내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면 돈 안들이고 좋은 호텔에서 좋은 음식을 먹으며 하룻동안 내가 원했던 이스탄불 여행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이것이 저에게 내리는 축복입니까? 아니면 우간다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영적 전투입니까?

 

 

하지만 영적 전투의 결과라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시는 은혜라는 생각이 들어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렷습니다. 그리고는 얼른 컴퓨터를 켜서 이제 곧 Entebbe 공항에 마중나오실 목사님께 이메일로 현지 사정을 써서 보내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호텔 로비에 가서 하루동안 여행할 수 있는 행선지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성 소피아 성당과 박물관이 명소이며 다 구경하려면 3-4시간은 걸릴 것입니다. 아침 9시에 박물관과 성 소피아 성으로 가는 호텔버스가 있으니 그 것을 타시오” 라며 지도를 꺼냅니다.  그러더니 “우리가 지금 여기 있습니다. 내일 가시고자 하는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호텔로 돌아오실 때에는 호텔버스가 오기는오는데 두시간 마다 있어서 맞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지하철이 바로 여기이니까 지하철을 타면 편리합니다” 라며 아주 자상하게 알려 줍니다. 좀 전에 그 아가씨에게 $40을 베풀었는데 난 그 몇 곱절을 받은 것입니다.

 

방으로 돌아와 창문너머로 비치는 이스탄불 시내를 바라보는데, 야경이 멋있서서라기 보다는 내가 이스탄불에 와 있다는 그 자체가 감격스러웠습니다.  그 옛날 콘스탄틴 황제는 오늘 이 야경을 상상이라도 하였을까?  날이새면 그 유명한 성 소피아 성당, 그간 사진으로만 보면서 상상만 해왔던 그 성당에 갈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 졌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떤 사건들이 나를 기다리고있을까? 어떤 식의 영적 전투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오늘처럼 감사할 일들이 계속해서 생겼으면 참 좋겠다. 터키 말을 모르기 때문에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술탄”이라는 단어가 여기 저기 붙어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술탄 침대, 술탄 목욕실 등등이라는 의미 같다. 여하튼 아마도 당분간 포근한 잠자리 따뜻한 목욕은 오늘 저녁이 마지막 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더운 물을 받아놓고 물속에 몸을 담그고서는 생각에 빠졌습니다:

나같이 미천한 자를 돌보시는 하나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내가 어떻게 여기에까지 올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그간 말로만 듣던 소피아 성당을 내 두 눈으로 보고 만지게 될 것입니다.  내가 고통가운데 몸부림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주님을 원망하였는데도 주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너무도 힘들어 포기하고자 하였지만 주님은 나를 포기하시지않으셨습니다.  미워할수도 원망할수도 없어 애증으로 사랑을 고백할 때에도  주님은 실망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나같은 미천한 존재가 감히 어떻게 주님과 함께 그 엄청난 사역을 감당할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주님을 더욱 힘들게 할 것이고 주님께 누가 되는 일들이 발생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기어코 저의 손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생각 저런생각으로 나그네, 아니 금암리 촌놈의 이스탄불의 밤은 깊어만 갔습니다.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있고 징계를 받는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뷰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8-10)

 

 

 

바울 사도께서 꼭 나를 보시며 하신 말씀같은 착각, 나의 현 상황에 대하여 이 말씀보다 더 잘 설명된 표현이 또 어디 있을까? 지금까지의 고난의 떡을 먹으며 수고의 땀을 흘렸던 지난 8년여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두눈에서는 주체없는 눈물이 흐른다.  우리 아버님께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을 때에도 마지막 흙을 넣을 때 외에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는데, 그래서  “나도 참 독하다” 라는 생각을 하였었는데, 내가 왜 이렇게 눈물이 잦아 졌는지…… 감사합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생명이요 나의 인도자 되시는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진심으로.  오늘처럼 내일도 인도하여 주옵소서.

Nov 16

대 장정길 1

Posted by on Nov 16 2015

 주님안에서 동역자된 여러분들께.

저는 지난달 19일에 산호세로 갔다가 제 처와 함께 23일부터 26일까지 인디애나에서 부흥성회를 하였습니다. 작년보다는 덜 했지만 금년에도 많은 역사가 일어 났습니다. 내가 지시한 대로 하여 교회는 양적인 성장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매우 안정을 찾았고 목사님도 훨씬 자신있게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작년 성회때 크게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교회에 주축이 되어 열심히 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첫사랑을 잃은 에베소 교회처럼 교회 전체 분위기는 열정들이 많이 식었습니다.

낮에는 세미나를 하면서 3일동안의 부흥성회를 통하여 여러사람들이 병도 고치고  은혜도 체험하였습니다. 수십년동안 체증으로 배가 늘 그득하여 고생하던 사람이 그 자리에서 쓰러지더니 일어서면서 완전히 낫았다고 울먹이며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에는 이제 마음놓고 마음껏 먹어보겠다고 접시에 음식을 가득 담는 것을 보며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아무도 못말리는 알콜 중독자에게 “당신은 우울증이 있습니다. 젊어서 무슨 큰 꿈이 있었던 것 같은데 좌절되면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하였더니 그렇다고 합니다. 이탈리아에서 이민 온 이민자의 명문 가정에 태어난 그는 어려서 부터 큰 꿈이 있었는데, 그 꿈을 포기할수 밖에 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고,  AAA 모임에도 그리고 알콜 중독 Rehab 에 수용되기도 하였지만 그 때뿐 금새 술을 찾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기도를 해보니 마음이 완전히 닫쳐서 돌덩이 같았습니다. 마음을 열고 잠시 있으라고 한뒤, 잠시후 기도하였더니 그 무표정하고 강직했던 얼굴에 화색이 돋고 눈이 빨개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의 목소리가 울음섞인 목소리로 떨리기 시작하자, 그 뒤에서 그 광경을 보고있던 그 분의 아내의 얼굴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쁘면서도 금방이라도 폭발할것 같은 표정에 내가 울뻔 하였습니다.

작년에 기도받고 은혜를 체험한 찰스라는 연세든 분은 병세가 위증하여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오전 세미나 시간에 “그 분을 위하여 기도하자” 고 하였더니 오후 세미나에 산소호흡기를 꽂고 왔습니다. 자칫 생명을 잃을수도 있는 위독한 상태에서도 세미나에 온 이분을 보고 너무도 놀라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외에도 다 열거하려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여하튼 이제 이 교회에도 내 할일은 끝났다, 나의 도움이 없이도 잘 해나갈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11년 만에 데이튼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교회가 참힘든 상태였습니다. 에베소에서 열심히 사역하시던 사도 바울께서 고린도 교회에 대한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라고 마음이 아팠을 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1995년에 교단에 5개년 계획을 제출하여, 교단으로부터 약간의 지원을 받으면서 정말 먹을것 제대로 먹지도 못하며 고난가운데 세워진 교회인데,  교회를 제대로 안다니던 교회생활에 전혀 익숙하지 못하였던 창립멤버들, 그 분들의 헌신과 눈물의 기도로 이루어진 교회인데,
아직 박사학위 학생이었던지라 주말에 와서 머물면서 주일 오후에는 떠나야 하는 우리를 믿어주고 아껴주시던 그 분들의 사랑과 헌신으로 이루어진 교회인데, 7시 반에 모여야 할 금요예배에 길이 막혀서 10시에 도착하였어도 한분도 흩어지지 않고 모두 모여서 열심히 기도하시던 그분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된 교회였는데……  개척 5년만에 건물을 구입하였을 때에는 땀을 흘려가면서 쓸고 닦고 베쿰하면서도 지치는줄 모르고 헌신하는 모습을 보며 남몰래 눈물을 훔쳤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러한 아가페 교회가 첫사랑을 잃은 에베소 교회처럼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참 안타까웠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자기들을 버리고 떠났기 때문이라는 핀잔과 푸념을 하면서 허그하는 그 분들의 눈에는 두 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물론 현실성이 없는 말인줄 본인들이 더 잘 알면서도 가지 말라고 붙잡는 그 분들, 지금 멀리 아프리카 르원다의 키갈리 한 골방에서 이 글을 쓰노라니 낙락공주의 섬섬옥수를 뿌리치고 금강산에 들어갔다던 태자가 생각납니다.

 

물론 날이 새면 난 또 이곳 사역에 집중하여야 합니다. 이제 새벽 5시, 날이 새려는데 여명을 깨고 멀리 모슬렘사원에서 울리는 그들 기도소리가 스피커를 통하여 굉장한 소음을 내고 있네요. 오 주님 오늘도 이 종을 통하여 주님의 냄새가 나게 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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