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 14

하나님을 믿는자의 승리(스가랴2:1-13절)

Posted by on Mar 14 2016 at 12:39 pm

지난 주에 보았듯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이민왔던 스가랴는 황폐한 예루살렘을 보면서 자기 민족과 국가의 회복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페르시아 왕 고레스를 사용하셔서, 불에 타 없어진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짓고 그 성전을 중심으로 각국에 티끌처럼 흩어졌던 민족들이 돌아와 나라가 세워지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룹바벨이라는 사람을 총독으로 세웠고, 여호수아라를 제사장으로 삼아, 페르시아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집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당시 페르시아는 오늘날 미국처럼 강대국이고 문화적으로도 발달된 선진국이었습니다. 비록 처음에는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왔지만 이제 바벨론도 망하고 또한 2-3세대가 지나가면서 그 후손들은 잘 정착하여 잘 살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기원전 722년에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망하면서 포로로 잡혀왔던 2만4천9백명의 이스라엘 민족들이 거의 200년을 지내면서 이미 큰 민족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지금 대한 민국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특히 사상적으로 상당한 위기라고 합니다.
국가의 채무는 이전 어느 대통령 때보다 무겁다고 합니다. 여기에 수출은 부진하고 청년 일자리를 만든다고, 임금 피크제라는 극약처방을 하여 50대 후반들은 억지로 떠밀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북한 문제가 저렇게 심각하게 되니까, 북한 주민들은 중국이 자기들을 덮칠것이라며 탈북할 기회만 찾고있다고 하고, 대한민국에서는 북한이 전면전은 아닐지라도 국지전으로 공격해 올 것이다 라며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이를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한반도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한미는 물론 일본 호주 그리고 뉴질랜드 까지 합하여 연합작전을 하고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 우리 조국을 위해 역이민 갑시다. 미국에 있는 집과 재산 다 팔아서 조국으로 돌아가 나라 빚도 갚고, 조국을 위하여 이몸을 바칩시다” 라고 한다면 과연 몇사람이나 갈까요? 그리고 간다고 나서는 사람들 대부분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미국에서 살기 힘들고 적응하기 힘든 사람들, 혹시 거기가면 좀 나아질까 하고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 아닐까요?

 

마찬가지로, 페르시아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돌아온 사람들도 대부분은, 정말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짓고자 하는 열정, 하나님을 위한 희생을 각오하고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페르시아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살기 힘들어 하던 사람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 좀 나을까 하고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돌아와서 성전을 짓다가 좀 힘드니까 다 팽개치고 자기 살길 찾아 나서버린 것입니다. 닦아놓은 성전 터에 기둥 몇개가 흉물스럽게 서 있어도,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아무도 저것 보기 싫으니 얼른 다시 집시다 하는 사람도, 나라를 다시 일으켜야 겠다는 의식도 없이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갑니다. 이런 상황에서 스가랴 선지자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였고, 그러한 스가랴에게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회복되는 환상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환상을 보는 것을 기이히 여기는데, 여러분들도 깊히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볼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11절에 보면 침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제사를 드리던 중 주의 사자, 즉 천사를 봅니다. 그는 너무 놀라 제사를 드리다가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하였듯이, 누구든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고 간절히 기도하다보면 하나님께서 음성으로도 들려 주시고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21-22절에는 사가랴가 말도 못하게 되니까 사람들이 “그가 환상을 본줄 알더라” 하였듯이,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체험을 하였기 때문에 “사가랴가 환상을 본게로구만” 하며 그리 놀라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이러한 환상을 보는 사람도, 혹은 음성을 듣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기도하는데 갑자기 “너 미국간다” 라는 음성이 들리더랍니다. 밑도 끝도없이 들리는 이 음성, 자기가 미국가게 해 달라고 구한 적도 없는데 들린 이 음성, 정말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냥 마음속에 담고만 있었는데, 그 2년후 자기 남편이 미국 주재원으로 발령이 나더랍니다.

 

그러므로 환상이나 하나님의 음성에 대하여 말한다고 신비주의에 빠졌다 라는 선입견을 버리십시요. 중요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환상인지, 마귀가 주는 것인지, 아니면 피그말리온 효과처럼 계속해서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실제로 일어난 것으로 착각해서 나타난 것인지 영 분별을 잘 할수 있어야 합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계속해서 환상을 보고 있는데, 스가랴 2장 1-2절에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측량줄을 그의 손에 잡았기로 네가 어디로 가느냐 물은즉 그가 내게 대답하되 예루살렘을 측량하여 그 너비와 길이를 보고자 하노라” 하였습니다. 환상 중에 스가랴는 한 사람이 척량줄을 가지고 가는 것을 본 것입니다. 그런데, “척량 줄” 로 번역된 히브리어 “헤벨 미다”는 토지나 건물의 경계선을 측량할 때 사용되는 도구로서, 다림줄(Plumb Line)이라 해서 실에 추를 달아 건물이나 어떤 물체가 지면에 수직으로 잘 서있는가를 판단하는 도구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쉽게 말하면 어떤 사람이 땅을 측량하려고 측량기를 들고 가는 것을 본 것입니다. 스가랴가 환상중에 본 이 사람은 예루살렘을 재건하기 위해서 그 땅이 얼마나 넓어야 하는가를 재 려고 척량줄을 손에 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손에 척량줄을 잡은 이 사람은 앞뒤 내용으로 보아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성전에 기초만 해놓고15년 동안 방치해두자, 예수님께서 직접 나서셔서 이 성을 재건하시고자 천사의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100여년 전에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하여 무너지지만, 남은자들을 통하여 그 무너진 예루살렘을 다시 건설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레미애 선지자는 구체적으로 70년후에 수축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선포하였습니다. 하지만 성전을 짓다가 성전 지을 재료도 바닥이 나기 시작하자, 성전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생활 전선에 뛰어든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약속을 안지킬수 있지만, 예수님께서 70년 후에는 예루살렘을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시기 위하여 직접 예루살렘으로 오신 것을 환상을 통하여 본 것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공사를 재게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하시면 반듯이 지키십니다. 사람은 잊어 버리고, 때로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하나님과의 약속도 못지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은 반듯이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아브라함과 사라는 믿지 못했습니다. 아니, 나이는 먹어가고 경도도 끊겼는데 무슨 애기입니까? 그래서 자기의 몸종 하갈을 씨받이, 즉 아들을 낳기 위해 여자를 취하였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여 취한 하갈을 통하여서도 열매를 맺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약속대로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람의 생각과 계획으로 난 아들 이스마엘이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아들 이삭을 괴롭히지 않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는 우리들의 혼란된 삶이 아닙니까?

 

이처럼 약속하신 것들을 반듯이 지키시는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수고하고 희생한 것들을 보상해 주신다는 약속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이민 생활에 힘들고 바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일성수하시고 십일조와 헌금 하시면서 주님 섬기시는 것, 주님께서 다 보시고 계십니다. 예수 믿기 때문에 잃은것 손해본 것, 예수님 섬기느라 희생한 것,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다 보상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절에, 다른 천사가 와서 “너는 달려가서 그 소년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예루살렘은 그 가운데 사람과 가축이 많으므로 성곽 없는 성읍이 될 것이라 하라” 합니다. 달려가서 라고 한 것은 지금 이 계시가 매우 급한 것, 임박한 것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이 다시 재건되어 그 가운데 사람과 육축이 많아지게 될 것이고 계속 늘어나서 결국 예루살렘은 성벽이 없는 엄청나게 큰 성읍이 될 것인데, 그 때가 임박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곧 이루어 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산호세는 아주 작은 도시였습니다. 주변에 과수원이 많았고, 집값도 3만에서 4만불 정도였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산 중턱을 넘어 산 봉우리까기 까내리고, 거기에 고급 호텔을 짓고 은퇴촌을 건설하더라고요. 지금은 산호세 인구만 해도 100만이 넘고, San Francisco를 포함한 이 베이 지역 전체는 800만 정도 된다고 합니다.

 

예루살렘도 옛날에는 4만명 정도 살 정도의, 산 분지에 있던 조그만 도시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천연 요세지였습니다. 그곳에 성을 건설하고 적들이 이 성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 뺑둘러 성벽을 다 쌓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새로 건설되는 예루살렘은 그 조그만 분지를 넘어 멀리까지 퍼지는데 얼마나 큰지 성벽을 쌓을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이 얼마나 넓고 크게 번창하는지 성곽, 즉 성 벽을 쌓을수가 없다는데, 당시 스가랴 생각으로는 참 난감합니다. 고대 사람들은 성을 건설하고는 보호막으로 반듯이 성곽, 즉 높고 튼튼히 쌓은 성벽을 건설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벽 각 구석에 요새(Fortress)를 지어, 그 위에서 적이 오는가 보초도 서고, 공격해 오는 적을 대항해 싸우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성곽이 없으니 얼마나 불안합니까? 적이 오는지 누가 어디서 감시할 것이며, 사방에서 적이 쳐들어 오면 어떻게 막을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스가랴의 마음을 읽은 하나님께서는 5절에,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 하였습니다. 성을 지켜줄 사람도 없고 나가 싸울만한 병사들도 없으니까 I myself will be a wall of Fire around it, 내가 스스로 불로 성곽이 되어주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예루살렘에 가셔서 영광이 되어 주신다 하셨습니다.

 

원어로 보면, 내가 친히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곽이 되어 주고, 내가 가서 영광이 되어 주신다는, 즉 “내가 직접 가서” 라는 말을 거듭 강조하셨니다. 왜 그렇습니까?

 

당시 예루살렘에 있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도우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면 왜 어떻게 우리나라가 망할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면 왜 성전이 불탔습니까?” 라는 탄식과 불신으로 가득찾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내가 가겠다 내가 너를 지키고 보호해 주겠다” 라며 그들에게확신을 주시기 위하여 그렇게 거듭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불로 성곽이 되어 주십니까?
열왕기 하 6장에 보면, 아람 왕이 이스라엘의 엘리사 선지자를 죽이려고 합니다. 열왕기 하 6:14절에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하였듯이 아람 왕이 수많은 병사들을 야밤에 몰래 보내어 엘리사가 거주하던 집을 사방으로 에워 쌓습니다.

그러자 15절에,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엘리사의 시중드는자 게하시가 아침에 밖이 웅성웅성 하여서 보니, 수많은 아람병사들이 자기와 엘리사 선지자가 머물고 있는 집을 완전히 포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엘리사에게 와서 “우리, 완전 포위 되었나이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우리는 완전히 죽은 목숨 아닙니까?” 라고 합니다.

 

 

이에 엘리사 선지자는 16-17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17.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하였습니다.

 

 

엘리사의 기도로 게하시의 영적인 눈이 열리자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영적인 눈으로 보니,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 깨우치지 못했던 것이 보이고 깨우쳐 집니다.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스가랴 선지자에게, 엘리사가 거주하던 도단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그 불말과 불병거로 새 예루살렘을 지켜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누구도 감히 침범하지 못할뿐만이 아니라, 설령 침범하였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수많은 불말과 불 병거를 보내 주시니 아무것도 두려워 할 것이 없게 된 것입니다.

 

 

또한,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 임재 (The Shekinah Glory) 를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을 떠났던 하나님의 영광이 이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영광이 되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작년에 Randy Clark Conference 에 갔더니, 그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North Carolina 주에서 컨퍼런스를 하고 있는데, 이틀째 되던 날, 참석자가 천여명 되는가운데 오전 세미나를 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갑자기 “아!” 하고 소리를 지르더랍니다. 지금 컨퍼런스에 참여한 천여명이 모두 이 장면을 보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보니 빛이 비치는데 기둥, 아니 세로로 세워진 칙경 한 1미터쯤 되는 연통같은 빛이 그 Conference Room앞줄 오른쪽에 비치고 있더랍니다. 어떻게 보면 불기등인데 훨훨타는 불기둥이 아니라, 금빛 은빛 빨강 파랑 오색찬란한 빛으로 된 그 불기둥이 바닥에서 거의 천정에 닿을 정도로 서 있더랍니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놀라 그리고 두려워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자기도 좀 두려웠지만, 그래도 사람들 앞에서 두려운 척 하면 안될 것 같아 강단에서 내려와, 이게 도대체 무엇일까? 아주 조심스럽게 그 불기둥을 관찰하였더니, 그 안에 먼지처럼 작은 금조각 같은 것이 수억개가 떠다니면서 빛을 발하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떨리지만 가만이 손을 넣어 보았답니다. 그랬더니 괜찮더랍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그 불기둥 있는 곳으로 들어 갔답니다. 그래도 괜찮더랍니다. 그래서 다시 강단으로 올라와 강의를 계속하였답니다.

 

 

그러자 잠시후 앞줄에 앉았던 노인 양반이 벌떡 일어나더니 “아, 들린다” 라고 소리를 지르더랍니다. 알고보니 6.25 참전용사인데, 한국 전쟁때 폭탄이 옆에 터져 고막이 나갔답니다. 지금 85세인데, 지금까지 60년 이상을 거의 귀머거리로 살아 온 것입니다. 그러데, 그날 이 기둥이 그 사람위로 지나간 것입니다. 그러자 그렇게 터졌던 고막이 다시 생겨나고 청력이 다시 회생된 것입니다.

 

 

그래도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으니까 계속해서 강의만 하였답니다. 강의가 끝나고 보니까 그 사이즈가 아주 작아져서 오른쪽 천정쪽에 있더랍니다. 그리고 몇시간 후에 사라졌답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하니 이것이 바로 셰키나 하나님의 영광이었는데, 자신이 그것을 놓쳤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한번만 더 나타나면 강의고 무엇이고 다 내려놓고, 당장 방송국에 전화하여 취재하도록 하고, 아픈 사람들 다 나와서 그 통속으로 들어가게 하고, 그 도시의 아픈사람들 예수 안믿는사람들, 성령을 거부하는 사람들 다 나오라고 하겠다 벼르고 있는데, 1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안 나타나신다고,자기 일생 일대기에 가장 큰 실수를 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스가랴의 환상을 통하여, 이러한 세키나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에 임하게 하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은 꼭 이렇게만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도 나타나시는데, 우리는 이 때에도 민감하게 잘 분별할줄 알아야 합니다.

 

 

 

이제 6-7절에, “오호라 너희는 북방 땅에서 도피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내가 너희를 하늘 사방에 바람 같이 흩어지게 하였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7. 바벨론 성에 거주하는 시온아 이제 너는 피할지니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북방땅에서 도피하라, 도피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많이 죽이고 바벨론 땅에 그야말로 티끌처럼 흩으셨습니다. 그래서 바벨론 성 안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사는데, 이것이 바로 바벨론 성에 거주하는 시온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바벨론 성에서 부터 돌아오라 하십니다.

 

 

이 책이 기록되기 훨씬 전에 돌아 온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지금 그 땅에서 잘먹고 잘사는데, 뭐하러 생고생하러 예루살렘으로 역이민 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너희들은 돌아와 내 무너진 성을 수축하라” 고 하십니다. 내가 그 성을 환난에 처하게 할 터인즉 너희들은 내가 거주하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라 고 하십니다. 또한 돌아와서 지금 예루살렘에 거하는자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성에 거하는마음을 끊으라” 고 책망하십니다. 그들이 비록 몸은 돌아왔지만 바벨론에서의 70년 동안살면서, 바벨론 우상 섬기면서, 좋은 음식 기름진 음식 먹으며 재밌게 살던 그 추억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껍데기만 왔지 속 마음은 아직도 바벨론의 살진 음식, 음란한 생활을 그리워 하는데, 이제는 다 버리고 마음까지도 가지고 오라 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왔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광야에서 뭐라고들 합니까?
출애굽기 16:3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라고 불평하였습니다. 노예신분으로 주인 솥 살짝 열고 고기 훔쳐먹던 일이 그립다는 것입니다.
또한 민수기 11:5-6절에, “5.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6.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라며 불평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페르시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 온 이수라엘 백성들에게, 이제는 페르시어 바벨론 옛추억 다 잊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도, 예배시간에도, 몸만 교회에 와 있지 생각은 다른 곳에 있을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에배를 드리면서도, “예배 끝나고 무엇하지? 점심은 무엇을 먹지?” 라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러한 네 마음도 예배당 안으로 데리고 와서 네 마음과 몸이 합심하여 예배를 드려라” 하십니다.

 

 

그러면서 8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영광을 위하여 나를 너희를 노략한 여러 나라로 보내셨나니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하셨는데, 참 놀라운 표현입니다. 발 바닥에는 가시가 찔려도, 참을수 있는데 눈에는 조그만 티끌만 들어가도 못참습니다. 그리고, 누가 내 팔을 친다할지라도 참을수 있는데, 조그만 일이라도 눈에 거슬리면 참으로 참기 힘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너희를 핍박하고 힘들게 한 자들, 그들이 한번만 더 그렇게 하면 그가 내 눈을 주먹으로 친것처럼 내가 참지않고 처벌하겠다 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너를 헤치거나 괴롭힐 놈들이 없을 터인니 너희는 안심하고 돌아오라 하십니다.

 

 

 

그러면서 9절에, “내가 손을 그들 위에 움직인즉 그들이 자기를 섬기던 자들에게 노략거리가 되리라 하셨나니 너희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리라” 하셨는데, 무슨 뜻이냐면, 내가 손을 들어 그들을 치면, 그들은 저희가 부리던 종에게 노략질을 당할 것이다.” 그 때에야 비로소 너희는 만군의 주께서 나를 보내셨음을 알게 될 것이다 라는 의미입니다. 즉, 내가 내 백성을 위하여 손을 들라치면 내 백성을 괴롭히던 자들, 바벨론 페르시아는 물론 이수라엘을 괴롭혀온 모든 민족이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노략질, 약탈과 괴로움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여 종과 주인이 바뀌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0절에, “여호와의 말씀에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와서 네 가운데에 머물 것임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렇게 엄청나고, 이제 이 일이 다름질 치는 것 처럼 임박해 왔는데, 너희는 “Shout and be glad”, 크게 소리지르며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이방 땅에 안주하여 “먹을것 풍부하고 등다숩고 배부른 이것이 천국이 아니냐!” 하는 너희들은 속히 돌아와 하나님을 찬양하라, 소리지르고 기뻐뛰어라 고 하십니다. 

여하튼, 여기 시온의 딸들은 오늘날 예수믿는 우리들을 의미하는데,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예배 시간에 하나님이 너무좋고 너무 감사하고 기뻐서 소리지르고 뛰고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기도드리고 그렇게 찬양하고 그렇게 말씀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런 식으로 예배를 드리면, 정말 성경에서 말씀하시는대로 예배를 드리면 이단소리 듣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일부러 소리지르고 춤추고 두르리고 하지 마십시요. 자연스럽게 경건하게 예배를 드리다가 성령께서 임하시면, 성령께서 그렇게 시키시면, 그렇게 소리 지르고 뛰고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찬양을 하는 중에, 예배를 드리든지 말씀을 읽으시든지 기도를 하시는 중에, 언제가 마지막으로 너무 기쁘고 즐거워서 펄쩍펄쩍 뛰어 보셨습니까? 언제가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너무 감사하고 고마워서 말로 표현할수 없어서 가슴을 두두리며 소리지르며 엉엉 울어보셨습니까? 아직 한번도 그런 체험을 하시지 못하신 분들, 하나님을 깊이 믿으시고 간절히 기도하십시요. 그러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너무 기뻐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올고 뛰고 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11절에, “하나님의 영광, 쉐키나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그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네 가운데 거하리라” 하셨습니다. “나는 네 가운데 거하리라 하였는데”,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만, 당대 사람들에게는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이시며, 그리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만 하여도 그 즉시 죽게 되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백성가운데 거하십니까?
그런데 이 말도 안되는 예언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루어 졌지 않습니까?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나같은 죄인, 더러운 추악한 내 마음속에 와사시겠다는 것입니까? 대통령도 아니고, 높은 사람도 아닌, 친한 친구만 온다고 하여도 방청소를 하고 난리인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방문하신다는데 …… 그러므로 회개하셔서 항상 마음의 청소를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러운 것은 쓸어서 쓰레기 통에 버리시고, Vacuum 으로 마음의 먼wl도 털어 버리고, 그리고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12-13절에, “여호와께서 장차 유다를 거룩한 땅에서 자기 소유를 삼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시리니 13. 모든 육체가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의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심이니라 하라 하더라”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황폐한 예루살렘에 거하시겠노라고, 내가 너를 다시 축복하겠노라고 약속하십니다. 특히 13절에, “Be silent, all flesh, before the LORD; for He is aroused from His holy habitation” 이제 예루살렘에 하나님이 계시니까 너희는 잠잠하라 고 하셨는데, 원 뜻은 이제 하나님이 계시니 너희는 혈기를 부리지 말라 는 뜻입니다.

 

 

왜 혈기를 부립니까?
배가 든든하고 쌓아둔 것이 있어서 마음이 평안하고 든든하면, 햘기를 잘 안부리는데, 살기가 힘들면 혈기를 부리더라고요. 요즘 저를 포함한 우리 한국 사람들 혈기들 많이 부립니다. 사소한 일에도 혈기부리고 목숨을 걸고 싸우더라고요. 매운 고추먹어서가 아닙니다. 살기 힘드니까 그리고 짜증이 나고 억울한 생각이 드니까 혈기를 부리는 것입니다.

 

 

이민 생활에 몸도 망가지고 마음도 아픕니다. 처음 올때 그 꿈은 사라지고 황폐해질대로 황페해진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모습, 어쩌면 황폐해진 예루살렘과 같은 처지 아니겠습니까?

 

 

 

주님은 약속하십니다;

“Behold, 볼지어다 내가 너를 다시 일으켜 세우리라. 네 황폐해진 마음을 내가 기름진 밭으로 회복시켜 줄 것이라. 네가 짓다 만 성전, America Dream 을 가지고 왔는데 생활고에 지치고 가정사에 찌들어 포기하고 방쳐 놓았던 그 America Dream, 내가 이루어 주마.

그러므로 네 마음을 청소하여 하나님을 받아 드려라. 그리고 네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는데, 이제는 혈기를 부리지 말아라. 하나님 앞에 잠잠하라. 하나님 앞에 겸손하라.”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 임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말씀 붙잡고 다시 일어서시기를 바랍니다. 이 약속의 말씀 붙잡고 주님과 함께 새 일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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