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22

하나님께로 돌아가자(스가랴 1:1-6절)

Posted by on Feb 22 2016 at 09:28 pm

                                                                                                             February 14/2016
이번 주부터 4순절이 시작됩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을 보면 사순절 동안은 먼 여행을 삼가고, 쾌락을 삼가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 하나씩을 금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떤분은 자기가 콜라를 즐기는데 그 것을 끊는다, 텔레비젼을 안보겠다, 술을 끊겠다 라는 등등의 각오를 하더라고요. 저는 이 사순절 기간동안 만이라도 절제하는 것을 실천해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최소한 한가지씩만이라도 희생하셔서 부활주일 때  간증하는 시간때 간증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부터 스가랴 서를 가지고 은혜를 받기를 원하는데, 스가랴서를 택한 이유는 기도하는 중에, “오늘날 우리 한반도 정세가 이스라엘의 스가랴 선지자 시대와 비슷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잘 살아야지 이민자로 사는 우리의 삶의 위상도 높아집니다.

제가 1983년에 미국에 왔는데, “Where are you from, 너 어디서 왔니?” 하고 사람들이 물으면 “Korea, South Korea” 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Japan 은 알겠는데, Korea가 어디에 있지?” 라고 묻더라고요. 그런데 요즘에는 “야, 난 삼성이 일본회사인줄 알았는데 한국회사라면서? 조그만 나라가 대단해!” 라고 합니다.

한국 위상이 올라가니까 이민자를 대하는 미국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대한민국이 잘 살아야 하는데, 지금 대한민국이 이스라엘의 스가랴 시대처럼 힘듭니다. 하지만 우리가 스가랴서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지혜를 구한다면 오늘의 위기는 곧바로 기회로 바뀌어질수 있을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활동한 역사적인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다윗 왕은, 때로는 무력으로 때로는 회유로 혼신을 다하여 흩어진 12지파를 하나로 뭉쳐 통일 이스라엘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그런데 자기 아들 솔로몬이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도 지었지만, 자기 아내를 위하여서는 엄청난 돈과 시간과 정성을 들여 궁전을 짓습니다. 성경에는 솔로몬의 이러한 짓이 미웠는지 그의 아내가 거할 궁궐에 대하여서는 14년이 걸렸다는 것 외에는 크게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여하튼 솔로몬이 이러한 엄청난 공사를 하느라 국고를 탕진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의 원성소리가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그가 워낙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였기 때문에 잠잠하고 있다가 그가 죽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즉위하게 되자 백성들이 세금때문에 못살겠다고 세금좀 내려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그러자 르호보암 왕은 “너희들이 아직 배가 불러서 그렇다” 면서 세금을 더 징수하겠다고 백성들을 윽박질렀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여로보암이라는 사람을 왕으로 추대하여 북쪽에 나라를 세웁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12지파중 10지파가 따라 가버립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우리 한반도처럼 남왕국과 북왕국으로 나뉘어져 동족끼리 서로 불천지 원수처럼 싸웁니다.

그리하여 막강했던 이스라엘 대 제국이 하루아침에 약소국이 되어 강대국 앗시리아와 이집트 사이에서 조공을 바쳐가며 비참하게 살아갑니다.
한편 북왕국 이스라엘에 비하여 열세였던 남쪽 유다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두려워 늘 좌불안석 불안감에 쌓여 삽니다. 그러다가 여호사밧왕 때에 와서는 결혼정책으로 평화조약을 맺게 됩니다. 그러다가 북왕국 이스라엘에 구테타가 일어나면서 평화조약은 꺠지고 맙니다. 그리하여 힘약한 유다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망하게 되면 그 땅이 모두 자기 땅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남쪽으로는 이집트에 그리고 북쪽에는 앗시리아에 열심히 조공을 바치면서 북왕국 이스라엘을 쳐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런데 북왕국 이스라엘을 친다는 명목으로 유다땅으로 들어온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쳐 멸망을 시키고서, 당장 기수를 유다로 돌려 예루살렘을 에워쌉니다. 아차, 정말 큰 실수였구나 깨달은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이제 영원히 사라진 북왕국 이스라엘을 그리워하며 자기 아들 이름을 사라진 지파중의 하나인 므낫세 라 짓게 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깊이 기도하였더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앗수르가 퇴각을 합니다.

앗수르가 물러 갔으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더욱 열심히 섬겨야 했는데, 곧바로 우상숭배에 빠졌으며, 유대 지도자들은 친 바벨론파와 친 이집트파로 나뉘어 당파싸움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이때 이사야, 예레미야, 스바냐 등 여러 선지자들이 일어나 국가적인 회개를 촉구하였지만, 왕을 비롯한 제사장들을 중심으로한 유대 지도자들은 하나님께서 항상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 보호하시는 예루살렘 성전은 절대로 함락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었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이 이미 이 성전에서 떠났으니 회개하라고 촉구하였지만, 그들은 오히려 선지자들을 매국노라 밀어부치며 감옥에 쳐넣고 심지어는 톱으로 쓸어 죽이기까지도 하였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나라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안듭니까?

하지만 바벨론에 의하여 예루살렘 성전은 멸망을 당하였고, 이때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고 일부는 바벨론으로 끌려가 전쟁포로생활을 하였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대로 70년이 지나자 잡혀갔던 포로들의 후손들의 일부가 스룹바벨을 지도자로 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이때 나이어린 스가랴도 자기 아버지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 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어오게 된 것은 정말 순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으며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들을 멸망시켰던 바벨론은 60여년후 지금의 이란 땅 페르시아에 멸망을 당합니다.

페르시아 왕 고레스는 종말론 사상이 매우 강한 조르아스터 교를 신봉하였습니다.
그는 말세에 선신과 악신의 전쟁이 있는데, 마침내는 선신이 승리할 것이다. 그런데 너희 유다 백성들이 믿는 하나님은 선신이므로, 너희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무너진 성전을 다시짓고 우리 페르사에 왕실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명령을 받게 됩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는 페르시아 왕의 조서를 받고 유대인들은 스룹바벨을 지도자로 하여 성전을 지을 재료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에게 빼앗겼던 성전 기물들을 가지고 돌아와 성전 건축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몇년 흐르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치자 사람들이 성전건축을 중단하고, 들에나가 밀을 심네 팥을 심네 하면서, 모두 먹고 사는 데에만 열중하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 성전을 짓고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기 위하여 보내여졌다는 사명을 잊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은 그들이 귀환을 원하고 바라며 기도하고 노력하여 취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권하는 사랑으로 얻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 것에 대한 사명감이 약했으며, 환경이 어려워지자 금새 잊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전건축이 멈춰졌어도 이것에 대하여 진정으로 기도하는 사람도 없었고, 기도하는 사람도 벌로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현재의 삶이 잘못된 것인지 깨닫지도 못하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성전을 짓다가 말고 방치해둔지 15년째에 이르러 하나님께서 스가랴에게 말씀이 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천사들이 환상으로 나타나 그에게 멧세지를 주십니다. 이것이 스가랴서가 기록되게 된 동기입니다.

한편, 스가랴서는”다리오 왕 제이년 여덟째 달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로 시작합니다. 예루살렘에 살고있던 스가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묵시를 기록하는데, 유다왕 아무개 몇년이라고 기록되어야 하는데, 유다 왕대신 페르시아 다리오왕 2년이라고 기록합니까?

참 슬픈 이야기 이지만 이스라엘이 망했기 때문에 지금 섬길 왕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일본에게 주권을 빼앗겼을 때, 고종 몇년 순종 몇년 데신에, 소하 몇년 이렇게 일본 왕이름을 썼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일본 왕이 우리나라 왕을 폐위시켰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섬길 왕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정부가 강제로 자기나라 왕을 섬기라고 했기 때문에 할수없이 그렇게 하였던 것입니다.

민족은 있는데 나라가 없는 슬픔, 이것은 정말 말할수 없는 비극입니다. 요즘 우리 대한민국에 청년들은 취직이 안되고, 부자가 대물림 하기 때문에 헬조선이라고 부른답니다. 서울에 아파트 한채라도 장만하려면 의사, 변호사, 혹은 대기업 사원이나 부잣집에서 태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누구나 다 그렇게 다 의사되고 변호사되고 대기업에 취직할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자들은 그렇게 조건이 준비된 남자만 찾으니까 청년들이 장가를 못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들도 가난하게 살기 싫다고 시집을 안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잣집 아들들은 돈 한푼 안벌어도 외제 고급차 타고 잘나갑니다. 수원대학교 총장은 박사논문이 남의 것 표절한 것으로 드러났고, 자기 아들은 그 학교 다니지도 않았는데, 아버지가 알아서 박사학위를 만들어 주었더라고요. 그리고 자기 학교 졸업생과 내연관계를 맺고 그녀에게 아파트를 사주었더라고요. 돈없는 남자 만나서 평생 고생하느니 그렇게 돈 잘쓰는 유부남 만나서 몇년 동거하면서 아파트 한채 챙기는 것이 능력이요 성공의 지름길처럼 생각하는 여자들도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우리 젊은이들이 신세한탄하며 대통령 욕하고 정부 비판하며 나아가서는 헬조선이라 나라까지 비판합니다. 물론 이것은 정부가 잘못하는 것들 중의 지극히 일부입니다. 이보다 훨씬 잘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럴지라도 내 조국도 있어야 하고, 대통령도 있어야 합니다. 남편이 무능하다 할지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60년대에는, “아이고 저것이 뭣하러 생겨나서 밥만 축내?” 하며 자기 딸에게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도 가난해서 먹을 양식도 귀한데 당시에는 피임도 못했으니까, 자녀를 적게 낳는 사람들이 6-7명 아니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오기도 하였지만, 그런 딸이 시집가서 한복한벌해서 친정에 다녀갔는가 봅니다. 그렇게 딸을 구박하던 아주머니가, 저녁밥 지으려고 물떠가느라 북석대는 동네 공동샘에 때아닌 한복을 입고 나와서 “아무 것이 엄마, 나좀 봐봐, 이것 괜찮아? 우리 복순이가 해왔는데 너무 촌스럽지 않어?” 하면서 은근히 자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스가랴 선지자, 글을 쓰는데 연대를 기록해야 하는데 자기나라 왕이 없어서 자기 왕이름을 쓸수 없었던 그 서러움이 얼마나 컸을 까요. 민족은 있는데 나라도 없고 왕도 없는 그 슬픔, 참으로 비참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하게, 그들에게는 흩어진 민족을 하나로 묶어줄 하나님이 있었고, 이러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전건축을 포기한 이스라앨 백성들을 향하여 선포합니다, “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고 내게로 돌아오라”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라며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한 적이 엊그제 같은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 조상들이 한짓거리들을 본받지 말라 하였습니다.  도대체 그들 조상의 무엇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까?

 

 

그들은 페르시아 왕이 “너희들은 본국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건축하라” 고 보냈기 때문에 온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해서 몸은 예루살렘으로 왔는데 마음은 아직 페르시아에 있습니다. 예루살렘 돌아오면 좋을줄 알았는데, 조상들이 말씀하신대로 살기 좋은 곳인줄 알고 왔더니,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열심히 성전을 건축하였는데, 점차 살기가 힘들어져 자연스럽게 중단해 버리고, 누가 다시 일어나 건축하자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성전을 건축하고 나라를 다시 세워야 하는데, 아무도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은 페르시아에서의 노예 근성을 버리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너희는 너희 조상을 본받지 말고 내게로 돌아오라” 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조상들의 무엇을 버려야 할까요?

첫째, 강자에게는 아부하고 약자는 누르는 노예근성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나라의 헌법은 성경에 입각하여 약자와 피해자를 보호해야한다는 정신으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처음에는 백성들을 잘 보살피고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타락하여 자기들이 가진 권세로 백성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착취하였습니다. 하지만 법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아무도 제사장을 고소하거나 항의할수 없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페르시아에 노예로 살면서, 페르시아 관리들에게는 아부하고 자기 민족들중 약한자들은 짓밟으며 살았을 것입니다. 페르시아의 법은 그나라 관리들이 포로들을 어떻게 관리할까? 이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기 힘들었겠지요. 우리 민족도 일제하에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모든 법이 일본을 위하여 만들어졌으니까 일본사람들이 조선사람 죽여도 괜찮지만 조선사람들이 일본사람 죽이면 사형감이지요.

이것을 본받지 말라고 하였는데, 노예근성을 가진 나라일수록 그 나라의 헌법은 지배자와 가진자,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 유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대한민국 법을 보십시요. 성경에는 계획적으로 이웃을 죽인자는 처형시키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미국 법도, 계획적인 살인은 사형이나 무기징역등 아주 엄격합니다. 하지만 우리 대한민국은 자기 아내를 죽여도 5년살고 나오더라고요.

겨울에 난방비가 비싸서 연탄도 제대로 못때는 사람들이 잘사는 서울에도 꽤 많이 살고 있는데, 그런사람들은 지원해주지 않고 왜 돈잘버는 기업에 매년 수천억원씩 지원해 주더라고요. 일반 사람은 마약을 하거니 판매하다 걸리면 당장 징역행인데, 여당 대표사위나 전직대통령 아들은 환각파티를 열고 남녀 엉클어져서 피워대도 검찰이 손도 못댑니다.

오늘날 친일세력을 정리해야 한다고 떠들어 대지만, 그보다 더 먼저 해야 할일은 우리나라 헌법부터 약자,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으로 고쳐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강한자에 아부하고 약한자를 짓누르는 악순환이 계속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경고하십니다, 그러한 노예근성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둘째, 준법정신이 약한 너희 조상들의 노예근성을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초창기 때에는 준법정신이 무척 강했습니다. 가나안으로 들어오기 직전부터 가나안에 들어와 애호수아가 살아있을 동안에는 제사장들부터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며 잘 살았습니다. 하지만 야호수아도 죽고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헤이해져, 나중에는 하나님의 성전일을 도맡아 하는 레위인들부터가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사사기 마지막에 보면 누구보다도 더욱 경건하게 살아야 레위인이 첩을 얻고, 여자에 미쳐 제사드려야 할 성전을 비우고 떠났다가 변을 당하지 않습니까?  그리고도 자기 잘못은 깨닫지도 못하였으며, 분노를 참지못하여 죽은 첩 시체를 12동강 내어 각 지파에게 보내지 않습니까? 일반 사람도 아닌 레위인이 말입니다.
이러한 조상들의 법을 어기는 타락을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 처음왔을때 가장 먼저 배운 것은 관공서에 가서 줄서는 것이었습니다.
오래 기다라려니까 짜증이 나는데, 다른 사람들은 차분히 잘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에 한국에 가서 시내를 다닐때 주로 시내버스를 이용하였는데, 4거리 큰길 신호등 앞에서 빨간불인대도 양쪽에 차가 없으면 속도를 조금 줄이다가 그냥 지나갑니다. 처음에는 정말 놀랐는데, 나중에는 숙달되니까 괜찮더라고요.

그런데 이것모두 노예근성입니다. 식민지에서는 헌법이 지배자들을 위하여 정해졌기 때문에 그 법을 어기는 것이 애국입니다. 지배자를 잔인하게 죽이는 것이 최고의 애국입니다. 그래서 아직 독립국을 이루지 못한 팔레스타인들은 자살폭탄을 터뜨리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제 독립국가를 이루었으면 그래서는 아니됩니다. 자기나라 법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을 보십시요. 자긷,ㄹ이 법을 만들어 놓고 자기들이 먼저 어깁니다. 회의중에 자기들끼리 분노를 참지못하고 쌍욕을 하고 추태를 부리니까, 오죽하면 지금 대통령께서 소위 말하면 “선진화법”을 추진하여 통과시켰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제는 그 법을 없애자고 하십니다.

누가 잘한다 잘못한다 라는 차원이 아니라, 선진국에서 볼때 우리나라는 선진국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일본 식민지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한나라로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상을 탈피하는 길은 오직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공동체 의식이 약한 너희 조상의 노예근성을 버려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서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라 하시고,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내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음에는 열심히 성전을 지어갔습니다. 그런데 2년째 접어들면서부터 포기해 버립니다.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공동체의식이 사라진 것입니다. “우선 내 배부터 채워야지 왜 성전에 돈을 쏟아붓고 지게지고 흙벽돌 날아야 돼? 나 바빠, 처자식 먹여 살리려면 밀도 심어야 하고 팥도 심어야돼!” 하며 성전건축을 중단한 것입니다.

 

 

물론, “나만 잘살면 되었지 무슨놈의 나라가 필요하고 민족이 필요해, 조국이 나에게 해준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 사람들은 그래도 좀 나은 편입니다. 나라를 지키는 국방비를 훔친 해군 참모총장이 있는가하면, 가짜 짝퉁물건을 넘겨주면서 최첨단무기라며 엄청난 돈을 챙긴 군수업체 중간 상인들,
병사들이야 죽든 말든 나라야 망하든 말든, 그 돈으로 호화저택 사서 편안히 잠을 자면서도 양심에 조금도 걸리는 것이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노예주제에 무슨 국가의 필요성을 느낍니까? 다른 사람들 등을 쳐서라도 나만 잘 살면 되는 것이지” 이러한 노예근성을 버리고 주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넷째, 회개하지 않는 너희 조상을 따르지 말라하십니다.
성경에는 죄를 범하는 죄와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는 죄를 엄격하게 구분하여 책망을 하십니다. 다윗은 자신이 왕이라는 위치를 이용하여 자기 부하의 아내와 동침하고, 심지어는 자기 군대장관 요압을 시켜 살해하고 그녀를 아내로 빼앗아 옵니다. 그런데 그가 나단 선지자가 그 죄를 지적하자 진심으로 회개를 합니다.

시편 32편이나 58편을 보면, 밤마다 죄책감에 시달려 마치 큰 돌에 짓눌려 몸에서 진액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다는 고백을 합니다. 또한 얼마나 괴롭고 아팠는지 회개의 눈물로 침상이 젖었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왕은 교만죄인데, 어떻게 보면 다윗에 비하여 그리 큰 죄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무엘이 그 죄를 지적하였을때 그는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 승전비를 세우게 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비참한 최후를 당하게 하십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범하는 죄보다 회개하지 않는 죄를 더욱 심하게 책망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회개를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고 하시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너희에게로 돌아 오신다 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로 돌아 올때, 옛날 죄지은 그 모습 그대로 돌아 올수 있습니까?
지은 죄를 회개하여 용서를 받아야지요.

호세아 선지자는 바람피워 남의 남자의 애를 낳고, 나중에는 집을 나가 창녀가 된 아내를, 포주에게 몸값을 다 물어주고서 빼내어 옵니다. 그리고는 무어라고 합니까?
나도 너만 사랑할테니, 너도 이제부터는 네 애인들 다 잊어버리고 나만 사랑하라.
정말 얼마나 애처로운 말씀입니까? 그러면서, 광야로 가자고 합니다.

오랜만에 아내를 만났으면 집으로 데리고 가서 맛잇는 것도 주고 편히 쉬게하여야 할텐데, 아무 먹을 것도 마실것도 없는 광야로 가자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하였던 곳, 옛날 처음 만났던 그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주님 처음 만난 날 처음 만났을 때의 그 감격, 거기로 가서 거기서부터 새 출발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창녀가 된 고멜이 바로 우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우상과 영적 바람을 피웠다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은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광야로 가자. 바벨론 시절 이전, 가나안 시절 이전, 끔찍하게 범죄하고 노예근성에 빠지기 전 그 모습으로 나와 만나자 주님은 지금 초청하십니다.

이집트를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횔을 하면서, “야 그래도 이집트에서 살때가 봄날이었지. 그때 주인님 고기를 삶을때 놀래 건져먹던 그 맛, 아 먹고싶어. 그래, 그때 그 고기, 마늘과 부추함께 먹으면 기가 막햤는데, 그리고 힘이 펄펄 났었는데…… 다시 이집트로 돌아 갔으면 좋겠다. 몸은 지금 애굽을 나와 광야에 있지만, 마음은 애굽에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는 애굽 왕에게, “Let my People Go, 내 백성을 가게하라” 고 요구하였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Let your Heart Go, 네 마음이 가게하라” 하신 것입니다.  비록 포로에서 풀려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짓고 있었지만, 마음은 아직도 페르시아에 있었던 그들, 거기에는 살만한 집이 있었고 먹을 만한 음식이 있었고 수리만한 물가도 있었는데, 이 황량한 예루살렘, 내가 무엇하러 왔던고…… 페르시아에 마음을 빼앗긴채 성전 건축을 중단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내게로 돌아오라, 그러면 나도 너에게로 돌아 가리라” 애처롭게 간청하십니다.

 

 

혹 오늘 우리들의 마음이 그렇지는 않습니까? 몸은 주님 전에 와 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있으시지는 않습니까? 이시간 우리 마음이,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행실이, 우리의 가치관이, 우리의 물질관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의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도하십시다. 아니 그에 앞서 우리 대한민국의 교회를 섬기시는 분들의 마음과 생각과 행실이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도하십시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