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 28

진리가 다스리는 교회(사도행전 5:1-11절)

Posted by on Dec 28 2015 at 05:49 pm

December 27/2015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합심하여 기도하십시다. 오늘 이 예배처소가 진동하는 기도를 하십시다. 우리 교회에 날마다 새벽 5시 반부터 8시 반까지 새벽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힘들더라도 같이 동참하십시다. 내가 힘들면 다른 사람들도 힘듭니다. 내가 힘들면 초대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로 힘들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먹을 것도 귀하고 교통도 좋지않아 한곳에 모이기가 오늘 우리들보다 더욱 힘들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구약과 신약을 통하여 교회 모습을 여러번, 여러 형태로 보여 주셨습니다. 아마도 교회의 몸되신 주님과 신부로 단장되어가는 성도들의 모습을 구약의 아가서처럼 상세하게 보여준 대목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복음서에도 교회 모습이 여러번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을 통하여 주님께서 교회에 주신 권세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주님께서 원래 주신 그 권세를 잃어가기 때문에 세상이 혼란을 가져온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만 보아도, 저를 포함한 우리 목사들이 기도에 게을리 하면서 타락하자 이단들이 들고 일어섭니다. 대형교회가 생기면서 정치가들은 자연 자금과 표가있는 교회로 몰립니다. 그리하여 교회를 자기 정치 기반으로 삼아 교회를 선거운동장으로 만들고, 권력맛을 본 목사들이 영권을 잃어가자 자연히 교회들도 영권을 잃어갔습니다. 여의도 순복음 교회, 소망교회, 사랑의 교회, 명성교회 등등 대형 교회마다 돈과 정치에 휘둘리지 않은 교회들이 거의 없을 지경이 아닙니까? 그래서 대형교회는 한국교회의 자랑이 아니라 악재라고 평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기도에 힘쓰고 전도와 선교에 힘써야 할 교회들이, 돈과 권력 맛을 보면서 주님께서 주신 권세를 잃어가자 이단들이 우후죽순처럼 자라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성교회의 피를 빨아먹으면서 자란 이 이단들이 독버섯처럼 다욱 화려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에서 자생한 이단도 부족하여서 이제는 “천국복음” 이라는 중국 이단을 수입하여, 대한민국은 물론 교포사회에도 급속도로 퍼져가고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이단에 빠지게 되는 것은, 이단이 옳아서가 아니라, 기성교회들이 영적 굶주림을 채워주지 못하고 주님께서 주신 권세를 상실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교회가 그 권세를 회복해야 하는 때입니다. 세상은 교회를 너무도 우습게 압니다. 심지어는 그리스도 인들마저도 예수님의 머리 되시고 예수님의 몸 되신 교회를 서슴없이 비난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교회가 이렇게 되어버린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오늘날의 교회가 초대교회처럼 사생결단을 하는 기도를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살기가 편해지고 먹을것이 풍부해졌기 때문에 사생결단의 기도를 할 필요성을 못느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구호아래 “초대교회, 예루살렘 교회, 예루살렘 초대교회” 등의 교회들도 세워졌지만 초대교회처럼 사생결단의 기도를 합니까? 초대교회처럼 금식기도를 자주 합니까? 초대교회처럼 터가 진동하는 기도를 합니까? 교회 이름만 바꾼다고 저절로 초대교회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무너진 교회의 권세를 회복시키는 길은 오직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음을 성경은, 특히 사도행전은 실제의 사건을 통하여 가르쳐 주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잃어버린 아니 뻬앗긴 교회의권세를 어떻게 회복시킬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교회는 그 시작부터가 힘들고 위협과 핍박이 따를 것이라는 것을 “갈릴리 호수에서 풍랑만난 나룻배”를 통하여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약속을 기다리며 기도에 전념해온 교회는 조롱과 핍박을 이겨내고 순교로 맞서는 교회로 성장합니다. 그리고 더욱 큰 핍박을 이겨내고자 터가 진동하는 기도를 하면서 마침내는 진리가 통치하는, 교회에 있는 거짓 무리들이 끔찍한 종말을 맞이하고 온 교회가 물질을 통용하며 서로 섬기고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되는 데까지 성장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지금 어떤 권세를 가지고 있는지, 성경에서 보여주신 권세를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여러분들과 함께 살펴보면서 도전받고 은혜받는 시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1].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첫번째 교회는 바로 “나룻배 교회“입니다.
마가복음 4:35-41절을 보십시다. 제자들과 함께 나룻배에 타신 예수님께서는 “바다 저쪽으로 가라” 하시고서는, 그대로 주무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다 가운데로 가라 하신 것은, 바다 한가운데에는 항상 풍랑이 있었음을 감안할때 큰 풍랑을 향하여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제자들은 두패로 나뉘어 한 패는 안간힘을 써서 노를 저어가고, 한패는 풍랑이 칠때마다 넘쳐들어오는 물을 퍼냈습니다. 하지만 풍랑이 얼마나 거센지 역부족이었습니다. 이제 심한 풍랑에 배가 뒤집히거나 넘쳐 들어온 물로 인하여 물속에 잠기든지 둘중 하나가 일어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주무십니다. 그 전까지는 곤하게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기가 그래서 어떻게든지 자기들이 해결해 보려고 하였지만, 이제는 불가항력적입니다. 마침내 그들은, “예수님! 우리 다 죽게 생겼어요. 다 물에 빠져 죽는다고요! 어서 일어나십시요!” 공포에 질린채 소리를 질러 댑니다. 당시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아마도 소리만 지른 것이 아니라 마구 흔들어 깨웠을 것입니다.

 

그러자 39절에,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하였듯이, 예수님은 우선 바다에 명령을 하셔서 풍랑을 잠재우셨습니다. “와! 정말 신기하다. 어떻게 바다에 명령을 하시고, 그렇다고 어떻게 바다가 그 명령에 순종하냐?” 하면서 놀라서 어쩔줄을 모르고있는 제자들에게 40절에,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책망하셨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왜 이 풍랑이 일어날줄 잘 아시면서 이 풍랑길을 가라고 하셨으며, 실제로 엄청난 풍랑이 일어나는 것을 허용하셨습니까? 그리고 심한 풍랑이 일어나면 공포에 질릴 것은 당연한데, 왜 믿음없는 자들처럼 두려워 하느냐고 책망하십니까?

 

주님은, 이것이 바로 교회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풍랑만난 배, 예수님은 주무시듯 이제 곧 제자들의 곁을 떠나 십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 교회라는 그 배에 예수님이 임재하시는 이상 그 배는 절대로 파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룻배 교회는 어떤 교회 입니까? 늘 깨어 기도하는 교회 입니까? 아닙니다. 어려움이 닥치고, 극한 상황에 처하니까 비로소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가 무슨 권세가 있겠습니까? 간신히 Survive 해가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혹, 여러분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매사가 다 평안하면 기도하기 힘들지요? 건강에 이상없고 직장도 평안하고 아이들도 잘 자라주는데 뭣하러 정초부터 궁상맞게 금식기도원에 쫕아갑니까? 그럴 시간에 애들하고 스키를 타러 가든지 멋았는 것을 사먹으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지요. 하지만, 한치 앞이 어떻게 되지 모르니까 기도하게 되고, 내 힘으로 어떻게 할수 없는 숨막히는 일이 닥치니까 하는수 없이 무릎꿇는 것 아닙니까?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가 우리나라 교회들의 신앙이 가장 불탔습니다. 먹고살기 힘들어 걱정인데, 남편은 직장에서 짤릴까 걱정입니다. 대학생을 둔 부모는 자녀들이 데모하다 잡혀가 죽지는 않는가? 걱정입니다. 그래서 아직 캄캄한 새벽부터 교회에 나와서 마루바닥 두두리며 가슴을 치고 통곡하던 그때, 그 때 우리나라 교회는 800% 성장하고 경제는 400% 성장 했더라고요.

 

그런데, 이제는 먹고 살만 하니까 수요예배 새벽예배 나오는 사람들이 교인수 30%도 안된다고 해요. 그런데 우리 교회는 수요예배와 새벽예배에 70% 이상 출석을 해요.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 예수 소망교회가 정말 예수님께서 주신 소망가운데 큰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만하지 마십시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의 단을 거두리로다 라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주님의 놀랍고 크신 일을 기대하시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더 기쁘고 좋은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날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두번째 교회는 바로 “약속을 기다리는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1:4-5절을 보십시다. 예수님께서는 약속을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약속을 믿고 마가의 다락방에 숨어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잡히면 예수님처럼 죽을수 밖에 없는 처지인지라, 다락방에 숨어서 식음을 전폐하고 밤낮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나룻배 교회는 큰 문제와 위기가 닥치니까 기도하였지만, 이번에는 큰 문제가 생겨서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한 것입니다. 병고침의 기도를 한 것도, 사업을 위한 기도도 아닙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임하시기를, 불같은 성령님을 체험하고자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도행전 2:1-4절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하였습니다.

 

거참, 신기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도하는데, 불같은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그리하여 기도하던 모든 무리가 불같은 성령님을 체험하였고, 모두 성령이 충만하여 밖으로 나가서 전도하기 시작합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가슴 가득한 성령님, 그 뜨거운 불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나가서 전도하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는 잡히면 죽으니까 두려워서 골방에서 숨어서 기도하였는데, 이제는 백주에 길가로 나가서 전도합니다. “잡혀 죽으면 순교다, 순교하는 것도 영광이다” 라며 목숨을 걸고 나가서 힘차게 전도합니다.

 

이들이 전도 훈련을 받았습까? 언어를 배웠습니까? 물론 전도훈련이 도움은 좀 되겠지만, 결정적인 것은 불같은 성령을 받고 뜨거운 가슴으로 나아가는 열정입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다 할지라도 열정이 없으면 성과도 없고 기술은 필요없는 지식에 지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들에게 신기한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자기 민족은 물론 당시 예루살렘에 온 외국인들을 붙잡고 그냥 자기들 말로 전도하였습니다. 무슨 의미냐 하면, 내가 중국사람 붙잡고 한국말로 “내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사니까 정말 이렇게 좋을 수가 없네요. 당신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 보십시요. 그러면 내가 누리는 행복을 당신도 누릴수 있을 것입니다” 라며 전도를 하였더니 그 중국사람이 자기 말로 하는 것처럼 다 알아듣고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신기하고 신나는 일입니까? 물론 직장을 위하여 사업을 위하여 자녀들을 위하여 건강을 위하여 기도하시겠지만, 무엇보다도 불같은 성령 받기를 기도하십시요. 그리고 오늘 본문의 성도님들처럼 능력을 받고 나가 전도하시고 선교하십시요.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는 구하지 않은 것 까지도 다 이루어 주실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세번째 교회는 “여호와 라파, 치료하는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3:1-10절을 보십시다. 이렇게 교회가 성령 충만해지자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서 전도하고 선교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적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는데, 자기들의 소유들을, 논과 밭을 팔아 교회로 가져옵니다. 그리하여 가난한 사람들과 서로 나눕니다.

 

요즘 상당수의 교회들은 좀 가진자들이 돈으로 교회를 좌지 우지 하는 것을 봅니다. 제가 처음 미국에 와서 한인교회를 다녔는데, 그 교회에 돈 잘버는 장로님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이 분을 그렇게 칭찬하시더라고요. 심지어는 설교시간에 “우리 장로님은 정직한 십일조를 하시는 분이십니다. 지난 달에는 5천불을 하셨습니다” 라고 칭찬을 하시더라고요. 그러더니 그 몇개월 후 그 곳을 떠나시더라고요. 들리는 이야기로는 그 장로님이, “목사님께서 기도를 열심히 하시지 않으셔서 우리 사업이 기울어져 갑니다” 라는 경고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이 교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 내에 부자 가난한 사람들이 없습니다. 있는자들, 가진자들이 없는 자들을 위하여 자기 전답을 팔아서 먹을 것과 쓸것을 교회로 가져 오니까 빈부의 차이가 없이 모두 동일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내적인 변화가 일어나자 치료의 능력이 일어나게 되는데, 먼저는 사도들을 통하여 일어납니다. 사도행전 4:1절이하를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할때 앉증뱅이가 문 앞에서 구걸을 합니다. 이에 4:6-7절에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8.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하였습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 만을 통하여 일어났던 이적이 이제는 사도들을 통하여 일어나게 됩니다. 어디 안증뱅이 하나만 고침을 받았겠습니까? 고혈압, 당뇨, 심장병, 소화기관, 암 등등 못고친다는 병들까지도 다 고침을 받았을 것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병도 낫고 갖은 것을 서로 나누는등 정말 분위기 좋다는 소문이 나니까 날로 성장하여 하루에도 결신자가 3000명씩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닙니까? 그러면 교회가 안정되고 태평성대를 누려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어디 그렇습니까?

 

 

[4].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네번째 교회는 “순교에 맞선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4:1-13절을 보십시다. 교회가 이렇게 급속히 성장하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하였습니다.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려야 할 사람들이 모두 교회에 쏠리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제사장들은 제사드리러 오는 사람들의 제물을 식량으로 삼고있는데, 제사드리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면 당장 먹을 것이 부족해 집니다. 성전에서 일하는 레위인들도 제사드릴 필요가 없어지면 할일을 잃게 됩니다. 사두개인들도 따르는 사람들이 없으면 정치적 기반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보통 때에는 서로 으르렁 거리며 싸우던 이들도, 교회를 탄압하자는 데에는 의기투합하였습니다. 그리하여 4:13절에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하였습니다.

 

사도들은 그들의 이러한 모의를 다 알면서도 순교할 각오를 하고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러다가 체포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공개적인 처벌을 가하여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겁을 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왠 일입니까? 무식하다고만 여겼던 이 갈릴리 촌놈들이 성경을 인용하여 척척 받아 넘깁니다. 그리고 공중 앞에서는 겁먹고 쥐눅들어 말도 잘 못할 줄 알았던 그들이, 아주 죽을 각오를 하고서는 오히려 호통을 쳐가며 아주 당당하게 말합니다. 이에 놀란 그들이 “이 도를 한번만 더 전하면 너희들은 다 죽을줄 알아!” 라고 겁만 주고 하는수 없이 풀어 줍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죽을 각오를 한다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때, 염세주의에 빠져서 2년 동안을 “죽었으면 좋겠다” 라며 살았었습니다. 날마다 죽고는 싶은데, 차마 내 스스로 목숨을 끊을수는 없고, 그래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세월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제가 미국에 오면서 제 물품을 정리하다가 그 때의 일기장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죽을 놈이 무슨 짓을 못해” 라고 써 놓은 것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와서도 힘들 때마다 “그래, 죽을 놈이 무슨 짓을 못해” 라며 다시 일어 섰습니다. 죽기를 각오하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목숨을 걸고 기도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금식기도하다가 멀쩡한 대낮에 쓰러져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죽자 사자 금식기도 한답시고 몇일 굶으면서 잠도 제대로 못잤더니, 어느날 분명히 내가 걷고 있었는데 눈을 떠보니 길바닥에 누워있더라고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목숨걸고 기도한번 해 보십시요. 저도 금식기도 한다면서 맨날 냉장고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 궁금해하고, “이번 금식 끝나면 이것좀 먹어 보아야겠다”하며 먹을 것만 생각했었는데, 이제부터는 그렇게 하지 마십시다. 죽자 사자 기도한번 해 보십시다. 그러면 지금까지 못이루었던 기적이 여러분들을 통하여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르완다에서 남수단으로 들어가려고 르완다 공항에 들어가서 Check Point 도 지나 비행기를 타려고 Gate를 향하여 가는데 비자가 없다고 딱 걸렸습니다. 무비자로 가서 공항에서 비자를 사는줄 알았는데, 대사관에서 미리 끊어와야 한답니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급히 남수단 대사관에 가자고 하였더니, “수단” 대사관에 데려다 주는 것입니다. 르완다에는 남수단 대사관이 없었습니다. 우간다 대사관에서 도와 줄수도 있다고 하여 우간다 대사관에 갔더니 거기서도 안된다고 합니다. 하는수 없이 비행기 표를 다시끊고, 르완다에서 하루를 더 묶고 다음날 우간다로 왔습니다.

 

겨우 남수단 대사관을 찾았는데, 문 을 지키던 수위가 너무 늦게 도착하였다고 내일 다시 오라고 합니다. 내 친구가 안에 있는데, 그 친구에게 알려야 할 것 아니냐고 잠깐 들어가자고 사정하여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비자 신청을 하였는데 다른사람들은 대사관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여서 인터뷰를 하는데 우리는 그냥 가라고만 합니다. 비자가 3일내로 안나오면 어떻게 하나, 비행기표는 이미 끊어 놓았는데……

 

“영적 전투가 너무 심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조급한 마음에 호텔에 돌아와서 금식기도를 하였습니다. 먹는것도 시원하지 않은 아프리카에서 금식을 한다고 생각하니 좀 서럽기는 하였지만 다급하니 어떻게 합니까? 그런데 금식기도를 하고나자 비자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문제들이 정말 일사천리로 척척 해결되더라고요. 안될 것 같은 일도 척척 잘 이루어 집니다.

 

그런데 마지감 고비에서 일이 또 터졌습니다. 남수단 가는 비자를 얻은지라 짐까지 다 부치고서는 마지막 Gate에서 황열예방주사 안 맞았다고 잡는데 그 때에는 참 난감하더라고요. “위험한 고비는 넘긴줄 알았는데, 아직도 영적 전투가 격하구나” 라는 깨달음이 와서 급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명령쪼로 “얼른해, 탑승 시간이 다가오지않나! 비자 때문에 르완다에서 와서 3일동안이나 묶여있었는데, 이 비행기 넟지면 되겠어! 어서해!” 라고 오히려 명령조로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어디서 그런 용기와 배짱이 났는지 모릅니다. 그 사람이 “NO” 한마디면 끝장이 나는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그때 역사,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났습니다. “안되는데” 하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상관에게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하며서 가는 것이었습니다. 난 “이때다” 하고서 더욱 기도하였습니다, 물론 속으로 기도한 것이지요. 그랬더니 잠시후 돌어온 그는 내 여권과 찹승권을 만지작 거리면서 “안되는데”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서 도장 찍어, 시간없다!” 라고 재촉하자 머리를 극적거리더니 담승권에 도장을 찍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영적 전투를 이겨내자, 남수단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주님의 큰 역사를 체험하였습니다. 아파서 앙고나무 아래서 누워있던 자가 기도를 받고 벌떡 일어나 너무 좋아서 축믈 추자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도 좋아서 몰려들고…… 신학교 강의시간에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크게 임하여 병고침도 일어나고 진정한 회개와 용서의 눈물이 강의실 마른 흙바닥을 적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십시다. 목숨을 걸고 기도하십시다. 그리하여 못고칠 병도 낫고, 콱 막힌 문제들도 시원시원하게 뚫리고, 기울어져가는 사업도 팍팍 일어나는등 이전에 체험하지 못한 주님의 능력과 이적을 체험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4].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다섯번째 교회는 바로 “터가 진동하는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4:29-31절을 보십시다. 사도들이 공개석상에서 목숨을 걸고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을 다 지켜본 교인들은 힘이 났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핍박을 이겨낼 수 있도록 이전보다 더욱 깊고 더욱 심각하고 진지한 기도를 하기 시작합니다. 얼마 동안 그렇게 기도하였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간절하게 더욱 오랫동안 기도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합심하여 구호를 외치며 기도합니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아멘.

 

 

우리도 한번 같이 해 보십시다, 사도행전 4장 29절에서 30절입니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아멘.

 

 

그렇기 간절히 기도하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31절에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성령님께서 얼마나 크게 역사하셨는지 터가 진동하였다 하였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전기가 찌릇찌릇하게 오는 것은 체험을 하였어도, 이 구절 외에는 터가 진동하는 것은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분은 “저녁에 합심기도하다가 성령님이 얼마나 강하게 역사하시는지 교회 앞에 있던 변압기가 탔다” 라고 간증하시던데, 진실인지 확인은 못해보았습니다.

 

 

여하튼 우리도 터가 진동하는 기도를 해 보십시다. 아직 들어보지 못하였지만 일어나니까 기록된 것이겠지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씻음을 받고 깨끗함을 받는 신실한 회개도를 통하여 우리의 불결해진 거룩이 회복되고, Pure Heart, 청결한 마음에 주님께서 직접 찾아와 주시는 기도를 드리십시다.

 

 

이렇게 신실하고 간절하고 죽기를 각오한 기도를 드리니까, 온 교인들이 성령 충만함을 입게 되었고, 이제는 사도들만 병고치는 능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온 성도들이 다 그런 능력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 예수소망교회 여러분들도 밖에 나가셔서 병든자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면 그 자리에서 주님의 치료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귀신이 떠나고 병든자가 고침을 받는 예수님의 능력과 표적과 기사가 여러분들을 통하여서도 일어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5].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다섯번째 교회는 바로 “진리가 다스리는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5:1-11절을 보십시다. 이 일이 있고나니까 성도들이 가난한 교우들과 나누기 위하여 자기 물품을 아낌없이 교회에 바칩니다. 3장에서는 일부만 그렇게 하였는데, 이제는 온 성도들이 자기 있는 것을 아낌없이 교회로 가져와서 서로 나눕니다. 이제 교회가 물질적으로 풍족합니다. 헌금 강조하지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가져온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한번 그렇게 주님을 만나고 그런 능력을 받게 되니까 이 세상 별것 아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체험을 하고 나면, 그저 주님만 옆에 계시면 되지 먹을것 입을것 걱정 안됩니다. 먹을것 쌓아 놓았거나 지갑에 돈이 두둑해서가 아닙니다. 이세상 살동안 굶기시지는 않으시겠지 하는 믿음의 빼짱이 생깁니다. “오늘 당장이라도 부르시면 주님 품으로 가면 더좋지” 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내일에 대한 걱정이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데 가진것 아낌없이 내 놓을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성령충만하고 능력이 일어나는 교회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 터집니다. 한참 성령 충만하고 화기 애애하고 분위기 좋았던 교회가 하루아침에 초상집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간 무릎을 마주하고 같이 기도하여왔던 기도의 동지가, 갑자기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것도 성령을 속인 죄로 성령님의 치심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교회는 화기애애하고 분위기 좋다고 좋은 교회는 아닙니다. 거짓이 있으면 반듯이 골라내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이십니다. 오늘 본문을 가끔씩은 십일조와 헌금을 강조할때 인용하기도 하는 것을 봅니다. 물론 물질 욕심때문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시험에 들었지만, 하나님께서 보신 근본 문제는 물질이 아닙니다. 자기만 살려고 하는 이기심입니다.

 

공동체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는 자기만 살겠다는 이기심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희생을 하여도 자기는 살겠다는 것입니다. 아니 어느 정도까지만 희생하고 더 이상은 안된다고 스스로 선을 그어놓고 사는 사람들이 공동체 안에 존재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공동체의 가장 암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물질 문제로 불거진 일이지만, 물질문제에만 국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적군이 쳐들어오는 것을 본 보초가 자기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치면 나머지 병사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들 순교를 각오하고 있는데 “불면 살려주겠다”고 하니까 자기만 살겠다고 조직의 비밀을 다 불어 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유대인들과 로마의 박해하에 있었던 당시, 교회내의 이기심은 주님의 사랑으로 뭉쳐진 공동체를 붕괴시켜 버릴 가장 큰 위협이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령님께서 극한 방법으로 치신 것입니다.

 

이 사건이 있은후 교회는 대 내외적으로 완전히 바꾸어 집니다. 이제는 교회에서 함부로 농담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감히 거짓말 하는 사람들도 없습니다. 교회를 비난하다가 자신이 해를 받을까 두려워 아무도 교회를 비난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사모하며 기도하는 무리가 늘어만 갔습니다. 모두들 예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경건하게 예배드리고, 그야말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몸되시는 교회를 섬기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5:11절에,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한 것처럼 마침내 교회는 교회로서의 권세를 회복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 교회에도 이와 똑같은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권세를 회복하여야 하는데, 이런 경지에까지 아르려면 그 만한 기도가 쌓여야 합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분, 즉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지만, 열왕기상 18:42절에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나도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얼굴을 무릎사이에 넣으려고 하니까 안되더군요. 그런데 금식 기도원에서 25일째 되던날 드디어 되더라고요. 뱃살이 빠지니까 되는, 예리야 선지자는 금식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셨는지 뱃살이 하나도 없으신 분이 아니었나 생각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진실인줄 믿으시지요? 그러므로 우리도 그렇게 하면 됩니다. 우리도 무릎을 꿇은 채로 얼굴을 무릎사이에 넣고 기도할수 있습니다. 우라도 성경에 기록된 대로 터가 진동하는 합심기도를 할수 있습니다. 하면 됩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대로 목숨을 걸고 기도 하면 우리 교회도 이러한 권세를 누릴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합심하여 기도하십시다. 오늘 이 예배처소가 진동하는 기도를 하십시다. 우리 교회에 날마다 새벽 5시 반부터 8시 반까지 새벽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힘들더라도 같이 동참하십시다. 내가 힘들면 다른 사람들도 힘듭니다. 내가 힘들면 초대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로 힘들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먹을 것도 귀하고 교통도 좋지않아 한곳에 모이기가 오늘 우리들보다 더욱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들은 해 냈습니다. 그 분들은 금식하며 메달렸습니다. 배고픔을 참아내며 유대인들과 로마인들의 핍박을 피해가며 목숨을 걸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터가 진동하는 기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도 그렇게 기도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그 분들처럼 그렇게 목숨을 걸고 기도한다면 그 분들이 부여받은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를 부여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합심하여 기도하십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때 귀신들이 떠나고, 병든자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할때 못고칠 질병들이 온전히 고침받는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를 받으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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