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 05

아프리카 선교(2)

Posted by on Dec 05 2015 at 10:41 am

신학교에 다닐때 나이지리아  남 아프리카 공화국등에서 온 친구들로 부터 아프리카에 대하여  많은 것을 들었고 또한 아프리카 선교에 다녀오신 분들로부터 선교보고를 들었기 때문에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 사역은 처음이었던 지라 무엇을 준비해 기야할지 막막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무슨 계획으로 나를 부르시는지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기도를 하기는 하였지만, 기도를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하튼 부흥성회에서 급히 돌아와 토요일 새벽예배를 마치고 아프리카에 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거기는 지금 우기인데 무슨 신발을 신어야 할까, 옷은 어떻게 입어야 할까, 파상풍 예방주사도 맞고 말라리야 예방 약도 먹었지만 Yellow Fever 주사는 못맞았는데…… 등등의 생각을 하며 하루가 금새 지나갔습니다.

 

주일 설교를 한후 교우들과 친교를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난 내 앞에 무슨 장벽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프리카 땅에 이르면 어떤 영적 전투를 치뤄야 하는지 알수 없기 때문에 막막한데 그것은 나와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의 생각인것 같아서 거론을 자제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에 대한 필요성을 더욱 크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기도 동역자 Dr. Almaz와 Freda 에게 이 메일로 특별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이윽고 월요일이 되어서 짐을 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집을 나와 터키의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를 타려고 샌프란 시스코 공항으로 달렸습니다. 늘 다니던 길이었지만 내 마음 탓인지 오늘은 좀 색다르게 보였습니다. 옆에 앉아있는 아내도 평소와는 달리 아무 말없이 앞만 보고 있습니다. 이윽고 공항에 들어서자 비로소 입을 엽니다, “어디가 터키 항공사 터미날일까?” 깊은 숨을 내쉰 후, “우선 내려서 들어가 보면 알겠지” 하고서 차에서 내려 짐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파킹하고 오라고 하고서는 짐을 차에서 내려 터미널 안으로 들어 갔습니다. 나 혼자가 되자 아프리카 생각은 잠시 사라지고, “이스탄불, 이 역사적인 도시, 콘스탄틴이 세웠다는 이 웅장한 도시, 성 소피아 성당으로 유명한 이스탄불, 이 성당의 보수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U-Tube 에 나오던데, 폐쇄되기 전에 한번 구경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행기가 하루 한번씩만 있어서 그런지 일찍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기다리는 줄은 정말 길기만 하였습니다. 그리고 히잡이나 두건같을 것을 쓴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 사람들이 대부분 모슬렘들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자 약간은 긴장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그들 중에 상당수가 Farsi(이란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또한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엄청나게 큰 가방들을 두세 개씩 가지고 있어서, 저 비행기가 미 대륙을 횡단하여 대서양을 거쳐 터키의 이스탄불까지 날아 가려면 정말 힘들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 기다림 후에 이윽고 내 차례가 되어 짐을 부치고 나니 이제 곧 들어갈 시간이 되어버렸습니다. 어서 들어가라는 아내의 얼굴이 영화 장면과는 달리 묘하였습니다. 저 지난주 금요일부터 시작하여 지난 목요일까지 강행군 하고 돌아와 집안 정리는커녕 피로도 풀리기 전에 주일 예배마치고 휑하니 떠나버리는 남편이 무심하게도 느껴졌을 것입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인디애나 주로 그리고 오하이오 주로 미국을 급히 횡단하고 또다시 지구 저쪽편 나라로 가는 내 마음이 약간의 설렘도 있었지만, 내 처는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습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여유있는 표정으로 “사랑한다, 기도하겠다, 건강 잘 챙기라” 라고 하였을 텐데,  갑자기 침묵을 깨고서는 “죽으면 안돼, 살아서 와야 해”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농담으로 하는 줄 알고 웃으면서 답하려고 하였더니 표정을 보니 그런 기분이 아니네요. 나를 한번 쳐다 보더니, “어서 들어가요, 뭐 먹을 시간도 없겠네” 하면서 휑하니 돌아서서 가는 뒷모습이 갑자기 “어쩌면 이 것이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게 하였습니다. 여태까지 이런 생각을 한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아니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연고일까? “괜한 생각이다” 하고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우리 가정을 침범하려는 모든 Unclean Spirit들은 썩 물러가라. 주여, 우리 가족들을 지켜 보호하여 주옵소서” 라며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비행기는 출발시간이 두 시간이나 지났는데도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왜 늦는가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이 Delay 된다는 방송만 두번 연거퍼 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못해서 그런지 아니면 내 인내심의 부족인지 여하튼 짜증이 났지만 아무도 불평하거나 발을 동동거리지 않았습니다. 혹시는 이 비행기가 자주 이렇게 늦게 이륙을 하였기 때문에 승객들이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내하고 우동이라도 한 그릇 먹을 것인데……

 

 

비행기는 저녁 7시가 훨씬 넘어서 출발하였습니다. 예상대로 빈자리가 하나도 없이 가득 찼습니다. 내 옆에는 독일로 여행을 가는 젊은 남자와 이란으로 가는 중년의 여인이 앉았습니다. 이 비좁은 공간에 12시간 55분 동안 앉아있을 것을 생각하니 정말 아득하였습니다.

옆 자리 젊은 남자와 대화를 하면서 “예수님을 믿느냐?” 고 하였더니 그렇다고 합니다.  어디 가느냐고 하였더니 “산호세에서 일하는데 그간 돈좀 모아서 독일로 휴가를 떠난다”는 것이었습니다. “Frankfurt 로 직접가는 것도 있는데 그것은 좀 비싸서 이 비행기를 택하였다” 면 마음이 들떠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 옆에 이던 이란 여자분이 “난 영어를 잘 못합니다. 난 이란 사람이요.” 라고 말을 거는 것이었습니다. “아, 그러면 테헤란으로 가시는 중이십니까?” “네, 이스탄불에서 테헤란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야 해요”.  이제 내 차례가 되어 “난 아프리카에 갑니다, 선교하러요”. “그것이 무엇인데요?” 라며 이란 여인이 묻는 것입니다. “성경 아십니까? 성경을 가르치고 예수 믿으라고 권하러 갑니다” 하면서 자연스럽게 신앙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독일로 가는 남자는 교회를 다니고 있었고, 이란 여인은 만약의 사태를 감안하여 예수믿으라고 직접적으로 권하지는 않았습니다. 여하튼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은 잘 갔습니다.

 

그 긴 시간을 날아 마침내 이스탄불 상공에 들어온다는 기장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와서 밖을 보았더니 또 밤이었습니다. 원래 비행시간이 12시간 55이라 하였는데, 2시간도 넘게 지연하여 이륙하였음에도 불고하고 15분 밖에 늦지 않았습니다. 미 대륙에서는 속도를 지켰겠지만 대서양을 건너면서 과속을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비록 15분 연착을 하였다고 하지만, Uganda Entebbe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는 시간이 겨우 55분인지라 조바심이 들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이번에는 2대의 버스가 우리를 터미널에까지 실어 나르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원 세상에 이렇게 유명한 도시의 공항 시설이 어쩌면 이렇게 구석기 시대의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을까?” 의아해 하면서 급히 버스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나의 조급함을 알 수 없는 버스 기사는 비행기에서 내린 손님들이 다 오를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급히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자 Uganda 로 가는 비행기 Boarding 시간은 이미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얼른 엔테베로 가는 Gate Number 를 보고서, 그 게이트로 가는 싸인만 보고 사력을 다하여 뛰었습니다. San Francisco 에서도 2시간 넘게 연발을 하였는데, 아프리카로 가는 데에는 연발할 가능성이 많겠지 하고서는 뛰었습니다.

 

 

그런데 이 공항 정말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버스가 터미널 중간 입구가 아니라 한쪽 끝에 내려주었던 것인데 내가 가야 할 Gate는 다른 쪽 끝이었습니다. 가방을 들고 뛰는데 일직선으로 한참을 가니 터미널 중앙을 통과하게 되었고, 거기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가라고 하여서, 2층으로 간 뒤 또 뛰어 가는데 총 20분 정도는 걸렸습니다. 혹시나 하였지만 비행기는 가고 없었습니다. 직원에게 물었더니 African Time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정시에 출발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사정도 모르고 Entebbe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실 목사님은 어떻게 연락을 해야하나?  그 분 전화번호도 없고, 그저 구두로만 이야기를 했었는데 어떻게 해야되나? 내일부터 당장 시작될 강의는 어떻게 되는가?  내 짐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미 아프리카로 갔을까 아니면 여기에 있을까? 황당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복잡한 생각과 함께 “비행기가 연착하여 놓쳤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 직원에게 물었더니 전혀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터키 항공사 민원실로 가시오” 라고 합니다. 아마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가보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선교지에서의 첫번째 규칙은 Flexibility(융통성) 이지, 이제부터는 나의 미국식의 고정관념을 께고 터키식으로 아프리카 식으로 해야지” 하면서 여유있는척 터벅터벅 걸어갔습니다.

민원실이라는 곳을 갔더니 예상대로 비행기를 놓친 사람은 나 하나 뿐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상당수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순서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는데, 한 미국인 아가씨가 주춤거리며 다가왔습니다.  “이태리에 갔다가 LA로 가는 비행기를 놓쳤습니다. 그래서 내일 가는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당신은 어디로 가십니까?” 하며 말을 거는 것이었습니다. “난 Uganda 로 가는 중인데, 비행기가 연착하여 아프리카로 가는 비행기를 놓쳤습니다” 라고 답하면서 직원 앞으로 갔더니, 우선 차표만 내일 같은 시간 것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 고 직원에게 물었더니 “그런 것도 모르냐?” 는 표정으로 터키 항공호텔로 가라고 퉁명스럽게 말합니다.

 

어딘지 물어도 자세히 가르쳐 주지도 않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서 호텔로 가는 문을 통과하려고 하였더니 세관에서 막습니다. 그러면서 비자를 사라고 합니다. 비행기가 연발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내 스케줄이 하루 늦어졌는데 사과하지는 못할 망정 이게 무슨 소리냐 따지고 있는데, 언제 왔었는지 방금 전에 보았던 그 아가씨가 옆에 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은 말도 안 된다”고 거들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있는데 옆 창구에 있던 중년의 신사가 영어로 “왜 미국 여권소유자는 $30불인데 캐나다는 $70입니까? 우리나라하고 무슨 원수라도 졌습니까?” 하더니, “할 수 없지 뭐. 대합실에서 잘수는 없잖아” 하면서 돈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 사람 따라서, “할 수 없지 뭐!” 하고 샀습니다.

 

 

비자를 사고 나오는데, 문 옆에 있던 그 아가씨는 내가 말을 걸지도 않았는데 “내 비행기는 내일 오전이니까 난 터미널에서 날을 샐까 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표정을 보니 비자를 살 돈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니야, 여기 $40 이 있다. 이것으로 사라” 며 $20짜리 두 장을 주고서 터키 항공호텔로 가기 위하여 세관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따라오면서 “You made me cry” 하는 것이었습니다.  “설마 이 작은 돈 가지고 울기 까지 하겠는가?” 하면서 돌아보았더니 정말로 빨갛게 된 두 눈이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너 몇 살이냐?” 하였더니 21살이고 이름은 신티야 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딸이 25살이다. 너를 보니 우리 딸이 생각난다. 교회는 다니냐?” 하고 물었더니 “네, 매주는 아니지만 예수님은 믿습니다”. 그래서 “내가 기도 해주마” 하고서 머리에 손을 얹고 안전한 여행과 예수님 잘 믿고 훌륭한 일꾼이 되라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이윽고 비행기회사에서 정해준 호텔에 들어 갔는데, 하룻밤에 70유로달러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녁밥 식권까지 줍니다. 비록 아프리카 선교일정에 그 시작부터 차질을 빚었지만, 내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면 돈 안들이고 좋은 호텔에서 좋은 음식을 먹으며 하룻동안 내가 원했던 이스탄불 여행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이것이 저에게 내리는 축복입니까? 아니면 우간다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영적 전투입니까?

 

 

하지만 영적 전투의 결과라기 보다는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시는 은혜라는 생각이 들어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렷습니다. 그리고는 얼른 컴퓨터를 켜서 이제 곧 Entebbe 공항에 마중나오실 목사님께 이메일로 현지 사정을 써서 보내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호텔 로비에 가서 하루동안 여행할 수 있는 행선지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성 소피아 성당과 박물관이 명소이며 다 구경하려면 3-4시간은 걸릴 것입니다. 아침 9시에 박물관과 성 소피아 성으로 가는 호텔버스가 있으니 그 것을 타시오” 라며 지도를 꺼냅니다.  그러더니 “우리가 지금 여기 있습니다. 내일 가시고자 하는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호텔로 돌아오실 때에는 호텔버스가 오기는오는데 두시간 마다 있어서 맞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지하철이 바로 여기이니까 지하철을 타면 편리합니다” 라며 아주 자상하게 알려 줍니다. 좀 전에 그 아가씨에게 $40을 베풀었는데 난 그 몇 곱절을 받은 것입니다.

 

방으로 돌아와 창문너머로 비치는 이스탄불 시내를 바라보는데, 야경이 멋있서서라기 보다는 내가 이스탄불에 와 있다는 그 자체가 감격스러웠습니다.  그 옛날 콘스탄틴 황제는 오늘 이 야경을 상상이라도 하였을까?  날이새면 그 유명한 성 소피아 성당, 그간 사진으로만 보면서 상상만 해왔던 그 성당에 갈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 졌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떤 사건들이 나를 기다리고있을까? 어떤 식의 영적 전투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오늘처럼 감사할 일들이 계속해서 생겼으면 참 좋겠다. 터키 말을 모르기 때문에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술탄”이라는 단어가 여기 저기 붙어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술탄 침대, 술탄 목욕실 등등이라는 의미 같다. 여하튼 아마도 당분간 포근한 잠자리 따뜻한 목욕은 오늘 저녁이 마지막 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더운 물을 받아놓고 물속에 몸을 담그고서는 생각에 빠졌습니다:

나같이 미천한 자를 돌보시는 하나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내가 어떻게 여기에까지 올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그간 말로만 듣던 소피아 성당을 내 두 눈으로 보고 만지게 될 것입니다.  내가 고통가운데 몸부림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주님을 원망하였는데도 주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너무도 힘들어 포기하고자 하였지만 주님은 나를 포기하시지않으셨습니다.  미워할수도 원망할수도 없어 애증으로 사랑을 고백할 때에도  주님은 실망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나같은 미천한 존재가 감히 어떻게 주님과 함께 그 엄청난 사역을 감당할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주님을 더욱 힘들게 할 것이고 주님께 누가 되는 일들이 발생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기어코 저의 손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생각 저런생각으로 나그네, 아니 금암리 촌놈의 이스탄불의 밤은 깊어만 갔습니다.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있고 징계를 받는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뷰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8-10)

 

 

 

바울 사도께서 꼭 나를 보시며 하신 말씀같은 착각, 나의 현 상황에 대하여 이 말씀보다 더 잘 설명된 표현이 또 어디 있을까? 지금까지의 고난의 떡을 먹으며 수고의 땀을 흘렸던 지난 8년여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두눈에서는 주체없는 눈물이 흐른다.  우리 아버님께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을 때에도 마지막 흙을 넣을 때 외에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는데, 그래서  “나도 참 독하다” 라는 생각을 하였었는데, 내가 왜 이렇게 눈물이 잦아 졌는지…… 감사합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생명이요 나의 인도자 되시는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진심으로.  오늘처럼 내일도 인도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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