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 17

위기를 성공의 기회로 바꾸는 비결(이사야 37:1-7절)

Posted by on Mar 17 2015 at 01:18 pm

                                                                                                          March 8, 2015

여러분들 중에 지금 위기를 겪고 있는 분 계십니까? 사람은 살다보면 누구나 위기를 겪게 됩니다. 저도 지금 위기속에 살고있는데, 인생에 위기가 없다면 그것처럼 삭막하고 무미건조한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가끔씩 위기도 닥쳐야 그것 때문에 머리도 극적거리며 이리뛰고 저리뛰면서 살맛도 나는 것이지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위기는 아주 고통스럽고 매우 불안한 과정입니다. 아무리 힘들지라도 잠시동안은 쉽게 견딜수 있지만 장기간 지속되면 아주 지치고 고통스럽고 무척 힘듭니다. 하지만 위기는 종착점이 아니라 더 높은 고지를 점령하기 위하여 지나가는 하나의 과정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위대한 발명품들은 절대절명의 위기때 만들어 졌습니다. 2차대전 때 일본이 북쪽으로는 한국을 거쳐 중국을 쳐들어가고 있었고, 동쪽으로는 필리핀 인도네시아등 동남아시아를 점령해 갔습니다. 그때 미국에서는, 비행기는 물론 장갑차 트럭등 일본의 모든 중화력 무기에는 바퀴가 달린 것을 착안합니다. 바퀴만 못만들게 하면 조만간에 일본의 모든 무기는 이동을 할수 없기 때문에 손을 들수 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일본에서 고무를 제일 많이 채출해가는 필리핀을 먼저 빼앗습니다. 그리고 일본이 항복하기를 기다렸는데, 얼마후 일본은 인조 타이어를 만들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Good Year라는 사람은 자동차 타이어 공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에 출근해보니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생고무가 쇠보다 단단하게 굳어져 버렸습니다. 엄청난 손실을 당한 그는 망연자실, 그 굳어진 고무덩이를 바라보고 있다가 우연히 그 옆에 넘어진 병을 하나 발견합니다. 황산이 담겨진 병이었습니다.

 

이것하고 고무하고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고 보았더니, 자연산 고무에 황산이 닿으면 고무가 아주 쇠처럼 단단해진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그리하여 그는 곧 이것을 특허를 내서, 자기 이름을 딴 GoodYear Tire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위기가 닥치면 대부분의 경우 침몰해 버립니다만, 위의 예들처럼 때로는 위기가 성공의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위기가 저절로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 Pay the Price, 엄청난 고통과 불안과 위험이 따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몇번 시도를 하다가 포기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히스기야 왕의 삶을 통하여 위기를 성공의 기회로 바꾸는 비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열왕기 상하 그리고 역대상하에 유다의 여러 왕들이 나오는데, 그 여러 왕들중에 히스기야 왕은 믿음이 매우 좋은 왕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는 아주 성공적인 삶을 산 왕으로 추대되고 있는데, 그는 애초부터 그렇게 믿음이 좋은 왕도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을 정복한 앗수르 왕은 팔레스타인 지역은 물론 아프리카의 이집트까지 정벌하여 속국으로 만듭니다. 그후 이집트가 반란을 일으키자 앗수르의 사르곤 왕은 내려와서 반란군을 진압하고 돌아가던 중, 아마도 전염병으로 죽었을 것이라 하는데, 갑자기 죽고 그의 아들 산헤립이 앗수르의 왕이 됩니다.

 

그런데 왕이 갑자기 죽으면서 차기 왕으로 교체되는 기간동안 공백기가 생기자 이 때를 이용하여 이집트는 독립을 선언하고, 히스기야 왕에게 와서 앗수르와 동맹을 끊고 자기와 동맹을 맺으라고 종용합니다. 그리하여 유다의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와 동맹을 끊고, 이집트와 동맹을 맺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30:1-2절에 “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패역한 자식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죄에 죄를 더하도다 2.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도다” 하면서 히스기야 왕과 그 추종자들을 강력하게 책망하였습니다.

 

한편 사르곤을 이어 앗수르의 왕위에 오른 산헤립은, 왕권을 확립한 후 반발하는 이집트를 정벌하고자 기원전 701년에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넘어와 유다 땅 아스돗을 점령하게 됩니다. 놀라 자빠진 히스기야 왕은 이집트의 구원군이 오기를 눈이 빠지라 기다렸지만 이집트 병사들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남의 힘을 의존하면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댓가는 너무도 뼈아프고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 따릅니다. 히스기야는 이집트를 하나님보다 더 의존하였던 자신이 하나님께 너무 죄송하고 후회스러웠을 것입니다.

 

다급해진 히스기야는 우선 앗수르에게 벌금을 얼마든지 낼태니 제발 용서해 달라며, 성안에 있던 은금 패물을 모으고, 방백들에게 돈을 거두고, 심지어는 성전기둥에 입혔던 금까지 벗겨서 앗수르 왕에게 보냅니다. 하지만 앗수르 왕은 뇌물은 뇌물대로 받고, 유다 땅에서 물러서지도 않고 거기서 머물면서, 애굽을 칠 준비를 합니다.

 

더욱 다급해진 히스기야 왕은 성안에서 오래 견딜려면 식수가 가장 중요한지라, 성 안에 있던 실로암 연못, 그러니까 저수지를 깊게 다시파서 정비하였습니다. 그리고, 암벽을 뚫어 예루살렘 성위 바위 틈을 흐르던 기혼시냇물을 성 안으로 끌어드려 실로암 연못을 가득 채웠습니다. 이때 실로암 연못을 얼마나 깊게 팠는지, 그로부터 700여년이 지난 예수님 당대에도 이 실로암 연못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한편 강물이 암벽을 뚫어 바위속을 지나 성 안으로 흘러들어 왔기 때문에, 앗수르 병사들은 그 사실을 전혀 눈치는 커녕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앗수르왕 산헤립은 병사들을 둘로 나누어, 한편은 자기 군대장관 랍사게를 시켜 예루살렘을 치도록 하였고, 자신은 이집트를 치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병사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온 랍사게는, 예루살렘 성을 에워싸고서, 히스기야 왕과 사신들과 백성들이 모두 듣는데서 유창한 히브리말로 그들을 모욕했습니다.

 

그 때에도 외국어를 잘하면 출세를 하는 모양입니다. 그는 성안에 있는 모든 백성들이 들으라고 히브리 말로 아주 크게, “유다 백성들아 너희들은 독 안에 든 쥐다. 히스기야에게 속지말라. 그의 말을 듣지말고 항복하고 나와라. 그러면 우리 대왕께서 너희들에게 먹을것과 좋은 포도농장도 주겠다” 며 협박과 회유를 합니다.

 

 

히스기에야 왕은 이 말을 들으면서 참 기가막혔습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자기도 불안한데 백성들은 오죽 더 그러겠습니까? 그래서 본분 1절에 “히스기야가 그 소리를 듣고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었다”, 왕복을 찢고 베옷으로 갈아입었다는 것입니다. 베옷은 사람이 죽었을 때 입는 상복입니다.

 

그는 이판사판, 항복해도 죽고, 잡혀도 죽게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베옷을 입었다는 것은, “나는 이미 죽은 몸입니다. 하나님이 살려 주시면 살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난 죽은 몸입니다” 라는 의미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이처럼 죽을 준비를 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했습니다. 왕이 그렇게 기도하니까 궁내대신, 서기관, 제사장들과 같은 유다의 어른들도 굵은 베옷으로 즉 상복을 입고 기도에 동참했습니다. 비참한 모습이지만, 이 얼마나 아름답고 은혜스러운 모습입니까?

 

교회에 문제가 생겼을때, 목사가 먼저 식음을 전폐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더니, 그 교회 장로, 권사, 집사들도 따라 금식기도하게 되었고, 그렇게 하자 온 성도들도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이 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이 어디 있겠습니까?   히스기야 왕은 죽을 준비를 하고 기도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사야 선지자에게 기도를 부탁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옆에 제사장들도 있고 백성의 장로들도 있었지만, 누군가 영적으로 더 센사람의 가도가 필요함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저도 웬만하면 영성집회를 안가려고 했었는데, 많이 고민하다가, 저보다 영성이 깊은 분들로부터 기도고 받고 또한 같이 기도하면서 다 깊은 기도를 할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Randy Clark, Bill Johnson, Blaine Cook등 신학적으로도 바르고 영성도 깊은 분들이 합하여서 하기 때문에 기대가 큽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이 이사야에게 기도를 부탁한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대 제사장, 온 백성들이 존경하고 영성이 깊다고 믿고있는 대 제사장이 옆에서 같이 기도하고있고, 어디 그 뿐입니까? 지금 유다에 영적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다 모여서 히스기야와 같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사람에게 기도를 부탁하다니, 그것도 이사야에게. 이거 정말 말로 안되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당시 이사야는 유다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인정되고 있습니까? 이사야 20:1-3절에, “1. 앗수르 왕 사르곤이 군대장관을 아스돗으로 보내매 그가 와서 아스돗을 쳐서 취하던 해  2. 곧 그 때에 여호와께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에게 일러 가라사대 갈지어다 네 허리에서 베를 끄르고 네 발에서 신을 벗을지니라 하시매 그가 그대로 하여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니라  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종 이사야가 삼년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행하여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예표와 기적이 되게 되었느니라” 하였듯이,

이사야는 아마도 빤스만 입고 예루살렘 거리를 다니면서 “유다가 이렇게 홀랑 벗겨질 것이다. 너희들은 치부를 다 드러내는 수치를 당하고 헐벗고 굶주릴 것이다” 라며 외치고 다녔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선지자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정신병자 마귀에 사로잡힌자 이단 3단 취급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왕이 다른 대형교회 유명한 목사들 다 버리고, 이 거리의 왕자에게, 그것도 사신을 시켜서 기도해 달라고 정식 공문을 보낸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자기와 함께기도하는 대 제사장을 비롯한 제사장들이 아니라, 이사야에게 있음을 안 것입니다. 그는 누가 진실된 하나님의 사람인지 영을 분별할줄 아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편지내용은 3-4절에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 그가 그 주 앗수르 왕의 보냄을 받고 사시는 하나님을 훼방하였은즉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 말에 견책하실까 하노라 그런즉 바라건대 당신은 이 남아 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유다의 왕께서 자기를 보필하고 있는 대 제사장들은 모두 버려두고, 이 거지같은 미치광이에게, 그것도 자기를 비판하고 다니는 이 사람에게 국가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기도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한 것입니다. 같이 기도하는 대 제사장, 서기관등 종교 지도자들의 체면이 뭣이 됐습니까? 자기들의 영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아주 공개적으로 수모를 당하게 하였으니, 이보다 더 수치스럽고 창피한 일이 어디있습니까? 이들이 나중에 정치적으로 보복을 해 올 것이라는 두려움은 없었을 까요? 혹은 왕이 미쳤다, 귀신이 들렸다, 영적으로 무지하다 라는 비판을 받을 염려는 없었을 까요? 이미 왕은 체면이고 뭐고 모두 내려놓은 상태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참 딱한 처지입니다. 생각 같아서는 “나를 개취급 할때는 언제고, 내 말 안듣다가 잘됐소. 꼴 좋소이다” 라고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왕이 자기 만을 위한 것이 아리나 이렇게 민족과 나라를 위하여 몸을 낮추고 간절히 요청을 하니 안들어 줄수도 없는 상태입니다.

 

우리도 히스기야 왕처럼 어려운 문제로 다른 이들에게 기도를 부탁할 때는 체면을 무릎쓰고 기도를 부탁하시기 바랍니다. 나와 관계가 불편하다고, 그에게 부탁하면 다른 사람들이 실망하고 배신감 느낄것 같아서, 그 사람은 평판이 안좋아서, 그 사람은 여자라서 등등 꺼리는 것들이 있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무릎한번 끓어서 우리 민족이 살게되고, 우리 교회가 살아나고, 우리 가족이 잘 된다면, 그까짓 체면이 무슨 문제가 될수 있습니까? 대통령이 목사님이 집도하는 예배에 참석하여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였다고 난리 법석을 떠는 상황에, 목사가 자신보다 영성이 더한 평신도 앞에 기도 부착하기가 어디 쉬운 일입니까? 그저 자기 밥그릇 안뺏길려고 안간힘을 쓰며, 교인들 중에 자기보다 영성이 깊은 사람이 있으면 좌불안석 그사람이 나갔으면 하고 바라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히스기야는 했습니다. 여기에 히스기야의 위대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 딱한 사정을 들은 이사야는 6-7절에, “너희는 너희 주에게 이렇게 고하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들은바 앗수르 왕의 종들이 나를 능욕한 말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보라 내가 신을 그의 속에 두리니 그가 풍성을 듣고 그 고토로 돌아갈 것이며 또 내가 그를 그 고토에서 칼에 죽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영(a spirit)을 보내셔서 앗수르 왕 산헤립이 소문을 듣고 자기 고향에 돌아가 칼에 죽게 할 것이라는 응답입니다.

 

그런데 이 응답이 있은 후에 앗수르 왕에게는 복잡한 일이 계속 일어납니다. 8-9절에, “랍사게가 앗수르 왕이 라기스를 떠났다 함을 듣고 돌아가다가 그 왕이 립나 치는 것을 만나니라 그 때에 앗수르 왕이 구스 왕 디르하가의 일에 대하여 들은즉 이르기를 그가 나와서 왕과 싸우려 한다 하는지라.” 하였습니다. 본래 산헤립은 예루살렘을 지나 저 남쪽으로 라기스라는 도시에서 애굽을 치려고, 군사를 정비하고 있으면서 윗쪽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랍사게를 보내서 예루살렘을 정복하라고 시킨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서쪽, 그러니까 자기로서는 북서쪽의 도시 립나에서 반란이 일어납니다. 애굽을 치러 가려는데 뒤에서 치고일어나는, 정말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엎친데 겹친다고 앞에서는 구스 왕 디르하가가 10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온다는 소식도 듣게 됩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의 계획이 자꾸만 꼬입니다. 사람의 인생이 자꾸 꼬이고 복잡해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그사람이 하는 일이 못마땅하시니까 간섭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복잡하지 않고 스므스하게 잘 나갑니다. 그런데 복잡한 얘기, 복잡한 이론은 하나님의 뜻이 아닐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일이 계획대로 진행이 되지않고 꼬이고 복잡해지면 하나님의 건섭함이 있는지, 자기성찰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하튼 이렇게 복잡한 가운데서도 앗수르 왕은 예루살렘을 포기하지 않고 히스기야 왕을 계속 협박합니다. “내가 구스 왕과 전쟁한다고 해서 너희를 포기할 줄 아느냐? 여호와가 너희를 구원하리라는 히스기야의 말을 믿지 마라! 내 손에서 자신들의 백성을 건진 신이 아직까지 없느니라!”

 

산헤립의 2차 협박을 받은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전에 산헤립의 편지를 펴놓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요, 유일하신 하나님이요, 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사시는 하나님을 훼방하는 말을 다 들으셨다면 하나님 스스로 명예를 지키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의 명예를 지키실 때에 우리도 함께 구원하여 주옵소서!”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히스기야 왕에게 “산헤립이 감히 나를 훼방하고 능욕하였으니 내가 그의 코에 갈고리를 꿰고 입에 자갈을 매어서 오던 길로 돌아가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사건을 볼때, 우리에게 닥치는 환난은 오히려 유익이 될수도 있습니다. 환난이 닥치면 믿음이 없던 사람들도 하나님께 매달리게 됩니다. 남편이 아프니까 믿음도 없는 분이 새벽예배에 참석하여 1년 작정기도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나서는 주일예배도 잘 빠지더라고요. 여하튼 환난을 당하면 기도하게 되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믿음으로 그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도 놀라운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다음 날, 185,000명이나 되는 앗수르 군사들이 가의 전멸을 해버립니다. 당시 역사가들은 아마도 그들이 전염병으로 죽었을 것이다, 구스 병사들에게 겁을 먹고 급히 도망치다가 깔려 죽었을 것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천사가 밤에 그들을 모두 쳤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이것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그리고 산헤립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니느웨로 돌아가서 자기 신의 묘에 경배하던 중에 자신의 두 아들에게 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가 나이가 들자 자기 3째 아들 에살핫돈을 후계자로 삼았더니 맏아들과 둘째아들이 자기 아버지 산헤립을 칼로 찔러 죽입니다.

 

말씀을 정리해 봅니다. 당시 예루살렘에 있던 유다 백성들은 국가적인 위기를 맞아 모두 패망을 맞이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마도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탄식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왕이 하나님께 매달리자 위기는 성공으로 변하였습니다. 지도자의 믿음이 이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히스기야 왕은 자신도 기도하면서 이사야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지금 자기와 함께 자기와 국가를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고 있는 대 제사장의 체면이 말이나 됩니까? 왜 하필 이런 미치광이에게 기도를 부탁합니까? 이것은 국가적인 망신입니다. 하지만 히스기야는 대 제사장의 반격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장로들의 반발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도하던 중 하나님의 말씀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깨닫게 되었을 것이고, 즉각적으로 실행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말한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습니다. 당시에 히스기야 왕과 함께 기도하던 무리들 중에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고 하면서 “앗수르에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앗수르를 정벌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라는등 여러가지 제안을 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히스기야는 영 분별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식적인 사역을 하시기 전에 유대인들은 너무도 영적으로 갈급하였습니다.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에 매일 깨끗하고 흠없는 짐승을 잡고, 더운 떡을 올려놓고, 금촛대에 불은 아름답게 타고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적으로 갈급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단 북쪽 광야에 침례요한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은 괴나리 봇짐을 싸가지고 거기까지 갑니다.

 

가는 길도 험하고, 열심히 일하여도 먹을 양식도 귀한데 모든 것을 접어두고 그 험한 곳까지 갔습니다. 그들이 아름다운 말을 들으러 갔습니까? 너는 참 복받을 것이다, 하나님이 네 직장을 견고하게 해 주실 것이다 라는 말을 들으러 간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돌려주고, 폭리를 취하려 하지말고 회개하여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 는 아주 간단한 멧세지를 들으려 거기까지 간 것입니다. 물론 그런 말은 아무라고 할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도 제사장들이 그런 말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침례요한의 입술에는 하나님의 말씀,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

 

 

제가 돈도없는데 먼데까지 영성집회에 가는 것,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 분들의 입술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Randy 아들이 쓴 글을 보니까, 아빠 엄마가 일하면서 목회하느라 너무 바쁘고 힘들었기 때문에, 9살 먹었을 때부터 자기가 동생들을 돌보면서 자랐다고 합니다. 엄마가 그로서리 명단과 돈을 주면 그것으로 시장도 보아오고, 월요일은 아예 학교를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Randy 역시도 도넛 가게에서 일하면서 교회를 개척하였느넫, 교인들이 모이지 않자 목회를 그만 두나 마나 날마다 고민하면서 7년여를 눈물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한 고난을 통하여 Brokenness를 가지게 되고, 바닥에 까지 낮아진 상태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고, 그 주님을 통하여 다시 일으켜 세움을 받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를 하시되 히스기야처럼 기도하십시다. 목숨을 내놓고 기도하십시다. 그러면 히스기야를 구원하신 하나님, 바닥을 기며 기로에 샀던Randy 를 다시 일으키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도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 그럼 지금 마음에 상복을 입히시고 겸손히 낮아진 미음으로 “주님, 나를 구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죽은 몸입니다. 그러니 나를 만나 주시옵소서”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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