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 02

무너진 네 인생을 일으켜 세워주마(요엘3:1-8절)

Posted by on Mar 02 2015 at 07:10 pm

March 1/2015

요엘 2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진정으로 가슴을 찢고 회개하라, 이제 갓 결혼한 신랑 신부뿐만이 아니라, 어린아이 젖먹이들 까지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나아와서 회개하라. 그러면 지은 죄로 말미암아 그간 잃었고 빼앗긴 것들을 모두 찾아 주시고 또한 회복시켜 주실 것이며, 환난 속에서도 기쁨을 주실 것이며, 그간 잃었던 것 빼앗겼던 것 까지도 날짜대로 다 계수하여 갚아 줄 것이며, 만민에게 성령을 부어 주셔서, 늙은 자나 젊은 자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갖고 소망 가운데 기쁨으로 살게 될 것이라” 라는 약속이 담긴 즉 조건적인 명령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다 백성들은 그렇게 회개하지 않을 것을 요엘 선지자는 환상을 통하여 미리 보았습니다. 오히려 불순종의 댓가로 맨 처음 경고하였던 메뚜기, 팥종이, 늣, 황충이 다 먹어 치우듯 예루살렘을 짓밟는 모습을 이미 다 보게 됩니다.

요엘 선지자가 이 말씀을 선포할 때에 유다는 아직 평온하였습니다. 하지만 기원전 8세기에 이르러 앗수르가 아람과 사마리아를 치는 것을 본 유다왕 아하스는 자진하여 앗수르왕 앞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고 조공를 바칩니다. 그때부터 자기 아들 히스기야 왕 때까지 40년 이상을 허리가 휘도록 조공을 바쳤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국고가 바닥나자 백성들을 착취하고 그것도 부족하여 성전기둥에 입혀져있던 금박까지 다 벗겨서 앗수르 왕에게 바쳤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앗수르는 유다를 침략하여 오직 예루살렘 성만 아직도 함락되지 않았을 뿐 전국이 앗수르에 의하여 유린되고 있었습니다. 비록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지는 않았지만, 예루살렘 성 역시도 3년 동안이나 포위되어 있으면서 완전히 초토화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앗수르가 물러간 후에도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의 재침이 두려워 계속해서 조공을 바칩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므낫세, 그 아들 요담, 그의 아들 요시야 왕때까지 앗수르에게 100여년 동안 허리가 휘어 쓰러질 정도로 열심히 조공을 바쳤습니다.

 

한편 그때까지 앗수르의 지배를 받으면서 명맥만 이어가던 바벨론이 기원전 6세기에 메데와 바사와 연합하여 앗수르를 치자 앗수르는 더이상 팔레스타인 지역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됩니다. 이 틈을 타서 유다는 애굽과 동맹을 맺게 됩니다. 그런데 바벨론은 앗수르를 정복한후 여세를 몰아 애굽을 겨냥하고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들어오면서 유다를 치게 됩니다. 거의 저항없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바벨론은 곧바로 애굽 정벌에 나서게 됩니다. 하지만 원래는 누비아라라는 나라로서 당시에는 쿠스라 불리었던 에디오피아와 연합한 애굽 연합군의 완강한 저항에 많은 병사를 잃고 퇴각합니다. 애굽 연합군에 바벨론이 패하는 모습을 본 유다는 곧바로 바벨론과 주종관계를 끊고 다시 애굽과 동맹을 맺게 됩니다.

 

퇴각한 바벨론은 의외로 빨리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다시 넘어와 유다를 재 침공합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애굽의 지원군은 끝까지 오지 않았고, 별 저항없이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온 바벨론은 성전에 있던 값비싼 물건들을 모두 노략질하고,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1만여명을 포로로 잡아 갑니다. 그리고 왕이 될 자격이 없었던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워 충성맹세를 시켰습니다.

 

시드기야는 바벨론을 잘 섬기다가 9년째 되던해 바벨론을 또 배반하고 애굽에 동조하게 됩니다. 그러자 분노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은 병사들을 몰고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와 닥치는대로 죽이고 부수고 불로 태워버렸습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을 바벨론으로 끌어다가 노예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화려했던 예루살렘 거리는 시체들이 썪어 해골들이 굴러 다니고, 들짐승들이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루살렘이 완전히 초토화되어 사람이 살수없는 황무지로 변하여버리는 것을 환상을 통하여 보면서 요엘 선지자는 3:1절에 “보라 그 날 곧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가운데에서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그 때에” 라면서 하나님께서는 바베론에 포로로 잡혀간 유다사람들이 돌아와 무너진 성을 다시 쌓으리라고 선포합니다.

 

이것 정말 말이나 되는 이야기 입니까? 당시 바벨론은 오늘날 미국보다도 훨씬 강력한 세계 최 강국입니다. 이 나라가 멸망을 당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수 없는 일입니다. 설령 바벨론이 멸망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이스라엘이 독립할수 있습니까? 그리고 설령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독립의 기회가 주어진다 할지라도, 왕도 백성의 유지들도 모두 처형을 당하거나 옥살이하다가 죽었기 때문에 나라를 이끌어갈 지도자도 없습니다.

 

그러한,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에서 요엘은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여 무너진 성을 일으켜 세우실 것이다” 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산다는 것은 현실을 보면서 논리적으로 판단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의 미래를 바라보며 사는 삶입니다. 내가 논리적으로 계산한 미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미래, 그것을 우리는 비전이라고 하는데, 이 비전이 이루어질 것을 미리바라보며, 오늘의 현실을 이겨내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오늘 요엘 선지자를 보십시오. 유다가 아직 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앗수르가 아직 쳐들어 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벌써 앗수르와 바벨론이 쳐들어 오는 것을 이미 환상중에 본 것입니다.

 

앗수르가 쳐들어 오기도 전에 미리 겁에질려 아하스가 엄청난 금은 보화를 가지고 앗수르 왕에게 나아가 “난 당신의 종입니다, 살려만 주십시오” 하고 엎드려 큰 절을 할 것을 미리 본 것입니다. 그러면서, “너는 왜 나를 버리고 앗수르 왕에게 나아가 그렇게 비굴한 짓을 하느냐. 너희들이 하도 말을 안들어서 내가 앗수르 왕의 마음을 움직여서 너희를 징계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이 진정으로 가슴을 찢는 회개를 하고 나에게로 돌아오면 내가 너희들을 보호해 주마, 내가 그 악한 자들의 침공을 막아주마. 나만 믿어라” 라고 설득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을 듣지 않고, 결국은 앗수르와 바벌론에 의하여 멸망을 당할 것임을 요앨 선지자는 미리 보신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전쟁 포로로 잡혀서 바벨론으로 끌려가 죽을 고생을 하면서 굴욕적인 삶을 살게 될 것임을 보십니다. 그리고 매일같이 짐승취급과 오락거리 취급을 당하며, 힘이 부치도록 막노동에 시달리는 그 수치스럽고 굴욕적인 삶에 밤잠을 못이루고 흐느끼는 유다 백성들, 너무도 괴롭고 힘들어서 세상은 다 잠들어 고요한 한밤중에 가슴을 치며 눈물로 회개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요엘선지자는 환상으로 미리 보신 것입니다.

“내가 왜 그랬던가? 내가 왜 하나님을 떠났던가?” 하며 가슴을 찢고 총곡하는 자기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그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신 다는 것도 요엘 선지자는 환상을 통하여 미리본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외칩니다:

 

너희들이 하나님을 떠나 죄악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가슴을 찢고 회개하면 하나님깨서 너희들을 구원해 주시겠지만, 너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치실 것이다. 너희들 중 대부분은 죽임을 당할 것이나, 그중의 얼마는 포로로 잡혀갈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이 지금은 회개하지 않았지만, 잡혀간 그곳, 그 포로수용소 구석에서 너희들은 가슴을 찢고 통곡하며 회개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신명기 30:3-4절에 ‘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네 쫓겨간 자들이 하늘 가에 있을지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이라’ 하신 약속대로 너희들을 이 땅으로 다시 돌려 보내리라.”

 

이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이 얼마나 눈물겨운 위로의 말씀입니까?

 

제가 처음 군에 입대하였다니, 이제 1개월 후면 제대한다는 말년 병장 하나가, “어이, 이등병 아저씨!  제대할려면 얼나마 남았지요?”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계산해 보지 않았습니다. “하하, 난 3개월 남았어도 이렇게 죽겠는데, 내가 너 같으면 자살하겠다.” 라며 희롱하더라고요. 차리리 얻어맞는 것이 낫지, 참으로 기가 막히더라고요.

 

아무리 고생스럽다 할지라도 풀려날 기한이 있으면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20년 징역형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후에는 풀려날 소망이 있기 때문에 풀려나서 무엇을 할까 하는 계획을 세울수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끝이없는 기다림, 소망이 없는 삶은 죽음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로는 현실이 우리를 참 슬프게 합니다. 고통으로 밀어 넣기도 합니다. 물론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저지른 잘못의 댓가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낙망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우리의 허물을 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을 보십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허물을 보고 비판하고 책망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그 하물로 인하여 겪는 아픔을 보시고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그 환난에서 구원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절에,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서 내 백성 곧 내 기업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거기에서 그들을 심문하리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나라들 가운데에 흩어 버리고 나의 땅을 나누었음이며 “ 하십니다.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징계하는데 사용되었던 나라들에 대한 심판을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치는 회초리로 사용하셨던 나라들을 이제는 몽둥이로 다스리시겠다고 경고하십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중요한 가르침은 다른 사람을 심판하거나 징계하는데 쓰임을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치는데 사용되었던 그 잣대로 우리도 심판을 받게되고 그 댓가를 치르게 되기 떄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지 않을수 없습니다. 전도하는데 쓰임을 받고, 봉사하는데 쓰임을 받습니다. 넘어진 자들을 일으켜 세우는데 쓰임을 받게 됩니다. 궁핍자들을 구제하는데 쓰임을 받기도 합니다. 가르치는데 쓰임을 받기도 합니다. 기도하여 병을 고치는데, 아픈 상처를 치유해 주는데도 쓰임을 받게 됩니다. 고통받는 자들을 위로하고 힘을 내게 하는데 쓰임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잘못한 자를 책망하고 징계하는데에도 쓰임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양심있는 분들은 남을 정죄하고 징계하는데 쓰임을 받을 때마다 참 괴로워 합니다.

 

시청에 다니시던 제 친척 한분은 어느날 무허가 건물을 강제로 거하라는 시의 결정을 집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미리 경고를 여러번 내렸지만 오갈데가 없었던 이 가정들, 도대체 어디로 가라는 말입니까? 하지만 무허가 건물인만큼 철거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철거반원들을 인솔하여 현장에 갔는데, 그 주민들의 원망서린 그 눈빛, 정말 너무도 괴로워 밤새 술을 먹고 울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말로 위로하고 혀를 끌끌차며 눈물을 흘려주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능력의 하나님, 이 우주만물을 소유하시는 하나님은, 노예 상태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을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그들이 빼앗겼던 모든 것을 다시 찾게 해 주시고, 명예도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는데 사용되었던 나라들을 여호사밧 골짜기로 데려다가 심판하시겠다 하십니다. 원수를 갚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왜 실컷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는 막데기로 사용하시고서, 이제는 그들을 심판하여 치시겠다고 하십니까?

 

그들은 이스라엘을 칠때 교만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스라엘을 치는 도구로 사용되는 줄도 모르고, 그저 자신들이 힘이 있고 능력이 있어서 이스라엘을 짓밟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면서 2-3절에 “이스라엘을 나라들 가운데에 흩어 버리고 나의 땅을 나누었음이며 3. 또 제비 뽑아 내 백성을 끌어 가서 소년을 기생과 바꾸며 소녀를 술과 바꾸어 마셨음이니라 “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땅은 하나님 땅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가 쳐들어와서 빼앗았으니 내 땅이다 하며, 그 땅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고 나머지는 다른 곳에 다 강제이주 시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어린 소년 소녀들을 잡아다가 인신매매를 하였습니다. 남자애들은 종으로 팔아먹고 여자애들은 기생으로 팔아 자기들의 술값으로 사용했습니다. 참으로 매정하고 백정보다도 더 못한 짓을 저지른 것입니다.

 

얼마 전에 신문을 보니까 뉴저지에 사는 무기 소개사 재미교포 한분이, 30년된 고물장치를 우리나라 통영호 군함에 들어가야 할 최신 장비라고 속여 큰 돈을 챙겼더라고요. 우리 정부는 그것도 모르고 최신식 통영호, 북한의 함정들이 오면 초전박살을 낸다고 선전하였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세상이 이럴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이 무기 소개상은 나라를 속여서 받은 그 돈으로 뉴저지에 호화 저택을 사는등 화려한 삶을 살았더라고요.  부당하게 모은 돈을 선하게 사용하는 사람들 거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을 쳐서 백성들을 흩어버리고, 인신매매를 한 돈으로 술과 기생을 샀던 앗수르와 바벨론을 여호사밧 골짜기로 대려다가 심판을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사람을 잡아 노예로 판 돈으로 기생과 놀아난 이 앗수르 사람들을 철저하게 벌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 여호사밧 골짜기는 없습니다. 여호사밧이란 어떤 특정한 지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사밧 골짜기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대로 철저하게 심판하시는 바로 그 곳을 의미합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나 바벨론 사람들보다 착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먼저 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체면이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님을 믿지않는 사람들의 도덕적 윤리적  차원은 아주 다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한 죄악들은 주로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숭배를 하고 음란한 짓을 하는등의 죄입니다. 그런데 앗수르나 바벨론이 지은 죄는, 왕의 눈알을 빼고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며 하나님을 자기 신의 이름으로 저주하는 죄입니다.  죄악의 차원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럼데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스라엘 백성들 보다 더욱 악한 민족을 들어 징계하시는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도 수준이 있으신데, 자기 백성이 맨날 끔찍한 죄나 짓고, 수치스러운 일만 저지르면 하나님을 믿지않는 이방 민족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믿는자들에게 더욱 엄격한 잣대를 대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징계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나라들은,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와 바벨론은 자기들이 더욱 착한 줄 알고 이스라엘을 정말 열정적으로 쳐부수었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교만함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끔찍하게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대로 앗수르나 바벨론은 정말 비참하게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평탄한 삶을 살고싶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살려면 다른 사람을 치는 도구로 사용되지 마십시오. 그리고 하는수 없이 그런 위치에 서게 되면, 정말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기 책임도 통감하면서 행하십시오. 자칫 앗수르나 바벨론처럼 하나님께서 “너도 여호사밧 골짜리로 와라” 라는 끔찍한 호출을 당할까 염려하며 자신을 살피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직접 친 앗수르와 바벨론은 그렇다 할지라도 4-5절에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 사방들아 너희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가 내게 보복하겠느냐 만일 내게 보복하면 너희가 보복하는 것을 내가 신속히 너희 머리에 돌리리니 5. 곧 너희가 내 은과 금을 빼앗고 나의 진기한 보물을 너희 신전으로 가져갔으며 ” 하였습니다.

 

앗수르와 바베론의 침공으로 유다는 쑥밭이 됩니다. 성전은 약탈되고 기물이 다 훼손되며 급기야는 불에 타 버립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아주 끔찍하게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때 두로와 시돈및 불레셋지방의 사람들은 바벨론의 편에 서서 같이 약탈을 합니다. 그리고 바벨론의 칼날을 피하여 도망치는 유대인들의 숨은 곳을 알려주어 죽임을 당하게 하였고, 바벨론 사람들이 성전의 기물들을 약탈해 갈때, 자기들도 슬쩍 슬쩍 훔쳐갔습니다.

그렇기 떄문에 오늘 본문은, “내가 내 백성 유다를 치는데 너는 뭣하는데 와서 이런 짓을 하느냐” 면서 너도 여호사밧 골짜기로 데려다가 심판하시겠다 하십니다. 그렇지 않아도 내 백성들이 고통중에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데, 너는 얼마나 착해서 그들을 괴롭히느냐

 

여러분들도 아이들을 키워보셨으니까 잘 아실텐데, 애가 잘못하면 “왜 이런 짓을 했어? 잘못했지?” 하면서 회초리로 한대 때리지 않습니까? 종아리가 벌겋게되고 애는 아파서 눈물을 질질 흘리는데, 옆집 아주머니가 와서, “아이고, 그걸로 되겠어요? 애하고 아주 장난을 치는고만. 그렇게 하면 애 성질만 더 나빠져요. 자, 여기 쇠몽둥이 있어요, 이 것으로 한번 내려쳐야지 애가 무서워서라도 말을 듣지” 라고 하는격 아닙니까?

 

아니, 지금 나는 눈에 넣어도 않아플 아이, 지금 회초리로 한대 때리면서도 가슴이 얼마나 아픈지,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데, 옆집 아줌마는 이 애를 쇠몽둥이로 잡으라니……  그것이 아이를 사랑하는 것입니까?

 

두로와 시돈과 불레셋, 하나님께서는 요놈들, 반듯이 치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자기 백성을 친 앗수르나 바벨론도 나쁜 놈들이지만, 옆에서 부추기는 놈들, 아니면 좋다고 구경하는 놈들, 고소하게 생각하는 놈들, 다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환난 당한 이웃을 보면서, 그놈 교만하게 행하더니 꼴 좋다 라고 하기 쉽습니다. 사업이 망하여 집이 은행에 넘어간 친구집에 짜장면 한그릇 사가지고 가서, “이거라도 먹고 힘네. 그나저나 아파트로 가면 저 냉장고 필요없지? 그리고 이 소파도 아파트에 놓을 데도 없잖아 내가 가져갈께.” 이렇게 하기가 쉽습니다. 나의 무심코 하는말, 나의 이기적인 말, 듣는 사람에게는 가슴에 대못이 박히는 아픔이 될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환난당하는 이웃을 업신여겨서는 아니됩니다.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도와 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내가 살 길이요,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람들은 나의 허물을 보고 책망하지만 하나님은 나의 허물로 인한 고통과 아픔을 보시며 같이 아파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슴을 찢고 진정으로 회개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우리의 잘못 때문에 잃고, 빼앗기고, 망가졌던 모든 것까지도 환난 당한 날수까지 계산하여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아프게 하였던 자들을 하나님의 방법대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변에 지치고 힘들어 쓰러진 이웃을 능력없는자라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환난에 처한자를 훈계하려거나 책망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당신의 책망을 듣기위하여 그렇게 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힘이없어 넘어지고 못 일어나는 이웃을 비판하거나 외면하지 마십시오.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임을 잊지마십시오. 그들의 아픔에 하나님도 아파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나도 저렇게 될수가 있다는 마음으로 당신의 손을 내밀어 주십시오. 나도 여호사밧 골짜기의 심판대에 오를수 있음을 늘 생각하며, 주님 앞에 겸손하게 행하십시오. 그 길이 내가 사는 길이요 그 길이 주님으로부터 축복받는 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은 죄가 생각나면 주님께 즉시로 회개하십시오. 너무도 잘못과 실수로 인하여 도저히 헤어날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할지라도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마십시오.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불타없어지고, 거기에 비참하고 굴욕적인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십시오. 소망을 가지고 일어서십시오. 그리고 무너진 나의 인생을 예수님과 함께 다시 수축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Responses to “무너진 네 인생을 일으켜 세워주마(요엘3: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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