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17
이제라도 회개하라(요엘 2:1-14절)
Feb 8/2015
자녀들을 키워보셨으면 한번쯤은 경험하셨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아이들이 말을 안들을 때가 있지요? 한번 하지 말라고 했을때 그만 두어야 하는데, 계속할때가 있지요? 그럴때 어떻게 하십니까?
“김세현! 너 왜 이랬어? 하지 말라고 했으면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한대 탁 때립니다. 그래도 잘못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이놈! 잘못했지? 어서 잘못했다고 해!” 하면서 또 한대 탁 때립니다. 그래도 잘못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이 녀석이! 어서 잘못했다고 해?” 하면서 또 때립니다. 그러면 종아리가 빨갛게 부어 오르고, 그것을 보는 내 마음이 아프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잘못했다고 하지 않으니까, 이 놈을 더 때리자니 내 마음이 아프고 여기서 그만두면 다음에 또 그럴것 같아 그것도 안될 것 같고, 참 괴롭습니다.
그때 자기 누나들이 와서, “아빠, 이제 그만 때려요! 세현, 빨리 잘못했다고 해! 너 여기 아프잖아! 빨리” 라고 합니다. 그러면 저도, “그래, 우리 아들, 잘못했다고 한번만 해, 그럼 다 용서해 줄께, 다시는 안그렇게 하겠다고 한번만 해, 그럼 다 용서해 줄께” 제가 사정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때서야 마지못해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잘못했어요” 라고 합니다.
“잘못했지? 아이고 우리들, 착하지? 진즉에 잘못했다고 했으면 아빠가 안 때리지, 이리와 봐, 종아리 좀 내 봐! 아빠가 약 발라 줄께. 세실아, 거기 약좀 가져와.”
정말 유치하고 치사하고 답답하지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렇게 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아버지와 자식간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들 아닙니까?
그런데 알고보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그렇게 하십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힘들고 어렵고 괴로움을 당하니까 불쌍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정을 하십니다. 우리가 들을 귀가 없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니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 하나님의 종들을 보내셔서 하나님께 회개하라고 촉구하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내 말을 들어라, 내 말을 잘듣고 내 말대로 하는자가 나를 사랑하는 자니라” 하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을 귀가 없기 때문에 성경말씀을 통하여, 목사님들의 설교를 통하여, 다른사람들의 간증등 여러방법으로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요엘 2장은 하나님께서 “이제 곧 환난이 닥쳐오니 너희는 회개하고 내게로 돌아오라” 라는 경고의 말씀이십니다. “너희들이 내 말을 듣지않고 다른 우상을 섬기다 보니 너희들도 모르는 사이 너희 힘이 약해지고 삶이 황폐해졌다. 그러자 너희 이웃들이 너를 쳐들어와서 너희를 쳐서 죽이고 너희 물건들을 다 빼앗아 갈 것이다. 그들은 얼마나 강한지 너희들 힘으로는 도저 히 감당할수 없는, 지금까지는 너희들이 보지도 겪어봊도 못한 아주 끔찍한 놈들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내 말을 듣고 내 말대로 하라. 그러면 내가 너를 도와 줄 것이요 그들의 침략을 막아주마.” 하나님은 계속해서 사정하시다시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우리가 직접 듣지 못하니까, 하나님께서는 요엘선지자를 통하여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는 미디안이 쳐들어 오고, 불레셋과 전쟁을 하였고, 모압과 에돔 연합군과 맞서서 전쟁도 하였습니다. 그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고, 백성들은 조바심과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럴지라도 우여곡절 끝에 그들을 물리치고, 그래도 밥은 먹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전쟁과는 비교도 되지않는 아주 끔찍한 적이 처들어 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엘 선지자에게, 앞으로 닥칠 환난, 당시 세계 최 강국으로 일어서는 앗수르 제국과, 그 뒤를 이어 일어날 바벨론 제국이 이스라엘을 쳐서 완전히 쑥대밭을 만드는 것을 환상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요엘 선지자는 기도하는 중에 비록 환상으로 보고 있지만, 그들이 쳐들어 와서 사람들을 쳐죽이고 성전을 허물고 불지르는 것을 보니 너무도 끔찍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회개하라, 환난 날이 닥친다, 그 날에 대비하여 지금부터 회개하라고 선포하고 다녔습니다.
요엘 선지자는, 그들이 얼마나 강한지, 너희들이 보아왔던 보통 메뚜기 종류가 아니라 그 이빨이 사자처럼 강하여 채소는 물론 나무까지도 다 갉아먹어버릴 것이다 라고 경고하셨는데, 이것은, 너희들이 아무리 강해도 감당할수 없는 메뚜기 모양의 막강한 철병거 혹은 기마병들을 앞세우고 올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영화에서 보면, 달리는 말위에서 한손에 칼이나 창을 들고 혹은 화살을 들고 “와!” 하고 함성을 지르며 적진을 향해 진격하는 기마병들, 멀리서 보면 메뚜기 모습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감당할수 없을 정도로 많고 너희들보다 훨신 강할 것이다. 이제 그들이 처들어 올텐데, 그 날은 너희들의 죽음의 날이다. 그 날은 주님의 심판 날이요,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빽빽한 구름이 끼인 정말 무시무시한 공포의 날이다. 너희가 지금 살고있는 이 땅이 완전히 초토화 되어서 황무지가 될 것이다. 너희가 지금 살고있는 이 땅, 날씨도 안좋고 농사도 잘 안된다고 불평하는 이 땅이지만, 그 환난날에 비하면 에덴동산과도 같은 좋은 곳이었음을 너는 알게 될 것이다 라고 합니다.
요엘 선지자는, 1장에서 소개한 메뚜기 종류로 묘사된 그 적병들은 “그 모양은 말 같고 그 달리는 것은 기병 같으며” 했듯이 장차 앗수르와 바벨론의 기마병들이 산과 들을 가로지르며 아주 용맹스럽게 달려오는 모습을 미리 보고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용감할 뿐만이 아니라, 얼마나 잘 훈련되었는지 우왕좌왕하지 않고, 일사 분란하게 진격해옵니다. 유대인들은 성안에서 그들이 성벽을 넘지못하도록 방비하지만, 적들은 아주 민첩하게 척척 움직이면서 성벽을 기어 오릅니다. 그 모습이 마치 벽에 붙어서 기어가는 메뚜기 떼처럼 보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눈앞에서 그들을 보면서도 막지도 못하고, 그들의 창과 칼에 다 찔려 죽임을 당합니다.
성벽을 넘어 성안으로 들어온 그들은, 성안의 거리를 누비면서 보이는대로 닥치는대로 창으로 찌르고 칼로 쳐 죽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유다사람들이 아무리 용감하고 훌륭한 장수가 나온다 할지라도 전술면이나 장비면에서 절대로 이들을 대항할수 없음을 요엘 선지자는 환상을 통하여 미리 다 본 것입니다.
물론 앞으로 200여년 뒤에 일어날 일, 자기가 죽은 한참후에야 일어날 일이지만, 요엘 선지자는 환상가운데 보이는 이 모습이 너무도 끔찍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환상으로 보여주시는, 자기 후손들이 당할 이 끔찍한 사건, 자기가 사랑하는 자기 민족이 당할 이 끔찍한 미래를 본 요엘 선지자는 가슴이 너무도 아프고 고통스럽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환난은 막아야겠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끔찍한 사건은 일어나지 못하게 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2:12-14절에,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라며 외치고 다닙니다. 그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며, 내게로 오라고 구체적으로 명령을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외치고 다닙니다. 백성들이 듣든지 아니듣든지 외칩니다, “오늘 우리 당대에는 일어나지 않을수도 있지만 이는 반듯이 온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이 환상은, 천상에서는 이미 이루어 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 끔찍한 환난의 날이 반듯이 오고야 만다.”
그렇기 때문에 요엘 선지자는 1:3절에서 “그러므로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녀는 후세에 말할 것이니라” 대대로 꼭 잊지말고 전해 주어라 고 당부하고 당부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 닥쳐오는 환난에 대처하는, 소위 말하는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환난 방지법” 을 선포하는데, 그것이 바로 2:12-14절 말씀입니다.
우선, “이제라도” 라고 하십니다. 너희들이 죄를 짓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리고 진즉에 회개하였어야 했는데, 너희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죄를 졌기 때문에 이 재앙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당장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더 늦기 전에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길이 사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형편이 좋아졌어도, 형편이 나빠졌어도 , 굶주려도, 부해도, 건강해도, 건강을 잃었더라도, 우리는 돌아 와야 합니다. 환난이 닥칠때에도 주님께로 돌아와야 하지만, 기쁜 일이 닥쳐도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늦었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구제 불능이라고 절망하지 마십시오. 지금 돌아 오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께로 돌아와야지 우리의 걱정도, 근심도, 두려움도, 아픔도, 슬픔도 멈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께 돌아 올때,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아 주소서” 라고 했다고 그냥 이모습 이대로 돌아 올수는 없습니다. 확연히 달라진 것이 있어야 합니다.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회개할 때, 우선 금식하며 기도라하라 하였습니다. 1장에서도 금식기도하라 하셨는데, 오늘 본문에서도 계속해서 금식기도를 하라고 하십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유대인들은 위기가 닥치면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하였습니다.
불레셋의 침략으로 온 나라가 아주 황폐해지고 흩어진 민심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하여 사무엘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사무엘상 7:5절에,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라며 온 백성들에게 미스바로 모이라고 소집명령을 내립니다. 그러자 사무엘상 7:6절에,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도없을 뿐만이 아니라 맨손으로 오르기도 힘든 미스바 언덕에 올라가서 종일 금식하며 진정으로 회개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여호사밧 왕은 암몬, 모압, 에돔 이 세 연합군이 갑자기 쳐들어 오자 전국에 금식을 선포하고 자신도 제사장들과 함께 금식기도를 하였습니다. 전쟁을 하려면 잘 먹어야 하는데, 금식을 선포하는 것은 이 전쟁은 사람의 힘에있지 않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로 인하여 생긴 전쟁인만큼, 내힘으로 전쟁을 하지않고 하나님의 도움을 절실하게 원한다는 의미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은 위급할 때나 절실할 때 마다 금식을 하였는데, 왜 그랬을까요?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아마도 가장 힘든 일, 가장 즐기는 일, 가장 소중한 것을 희생한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저도 먹기를 참 좋다 하는데, 전 세계적으로 유대인들이 먹기를 제일 좋아 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무슨 모임이든지, 모였다 하면 우선 먹고 마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번 보십시오. 우리 교회다니는 사람들이 일반 사람들보다 더 자주 먹습니다. 물론 일반 모임에도 먹기를 자주 하지만, 교회는 못따라 갑니다. 모였다 하면 커피라도 마시고, 밥차리기 귀찮으면 국수를 삶든지 빵을 먹든지 여하튼 뭐라도 먹지 않습니까? 그런데 교회에서 자주 먹는 습관도 알고보면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본따온 것입니다.
그들은 모였다 하면 먹는다고 합니다. 어찌나 자주 모이고 어찌나 자주 먹는지 500명 모이는 회당에는 식당이 최소한 2개는 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먹기좋아하는 이들에게 먹는 것을 금하는 것은 가장 특이하고 소중한 일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금식은 단순히 음식을 먹지 않고 그 시간에 기도한다 라는 차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희생하며, 가장 힘드는 일을 택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금식할 때에, 일부러 더 까칠해 보이도록 화장도 하지않고 머리도 안 빗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금식을 하는지 않는지 그 얼굴만 보아도, 머리만 보아도 알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는 금식할때 얼굴에 기름도 바르고 머리도 단정히 빗으라 고 하셨습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금식, 남에게 보이기 위한 희생, 이런 것은 하나님이 좋아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금식을 가볍게 여기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40주야를 금식하셨습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 교인들은 금식기도를 참 자주 하였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기도모임은 식음을 전폐한 거의 모두 금식기도였습니다.
여하튼 본문에서, 회개할 때 너희는 금식을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금식기도는 더욱 절실함, 절박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응답이 더욱 빠르다고 가르치십니다. 이사야58:6-10절에,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10.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나, 금식하네” 하면서 머리도 빚지않고 꾀죄지 하게 하고 있지 말고, 또한 금식해서 힘이 없다고 방구석에만 쳐박혀있지 마라. 금식하면서 잘못한 것이 생각나면 회개하고, 용서를 구할것이 있으면 구하고, 용서를 해야 할 사람이 있으면 용서하라. 그리고 주변에 굶주린 사람들 있으면 양식도 좀 나누어 주고, 특히 네 친척중 못사는 사람 있으면 멀리 피하거나 모른척 하지 말고 도와 주어라. 그러면 네 기도가 더빨리 응답될 것이고, 아픈 곳이 속히 낫게 될 것이다 라는 약속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실 때, 금식도 해 보시고, 특히 마음에 나쁜생각, 부끄러운 생각, 혹은 음식생각만 하시지 마시고 정결한 마음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으로는, 울며, 애통하며 내게로 오라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울며 애통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어떤 때에 울며 애통하는가를 찾아 보았습니다. 먼저 에스더 4:3 절에 “왕의 명령과 조서가 각 지방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같은 왕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왕께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왕의 땅에있는 저 유대인들은 모두 학살을 시켜버리는 것이 마땅한줄 아옵니다” 라는 왕의 일등공신 하만의 주청을 왕이 받아드려, 페르시아 내에 있었던 모든 유대인들을 다 쳐 죽여라 라는 조서가 내려집니다. 그러자 전국에 있던 유대인들이 절망상태에 빠진채 길가에 나와 나뒹글면서 애통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18:19 절에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며 애통하여 외쳐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으로 치부하였더니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 하였는데, 이 화려한 로마, 세계의 중심지 로마가 멸망을 당할때 그 아픔과 슬픔이 얼마나 큰지 사람들이 머리에 티끌을 뿌리고 울며 애통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울며 애통하는 것은 아주 극심한 슬픔, 절망 상태에 빠져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요엘 선지자는, 이러한 극심한 환난이 너희들에게 닥쳐오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이라도 울며 애통하며 회개하라 하십니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라며 당장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 같지 않으시고,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신 분이시기 때문에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 기도를 안들어 주실 것이라 라는 생각을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당장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11절 이하에 보면 탕자 이야기가 나오지요? 형은 열심히 일하는데,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가서 “아버지! 돈좀 주세요, 아버지 죽으면 어짜피 그 재산 우리가 나누어가질 것 아닙니까? 그 돈 미리좀 주십시오. 내 그것으로 사업해서 돈이나 좀 벌어야겠습니다”
아버지는 이 불효막급한 아들에게 두말하시지 않으시고, 그 아들 몫을 떼어 주십니다. 그러자 이 아들은 아버지가 주신 전답을 팔아 곧장 외국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그 가산을 다 탕진합니다. 저도 우리 아버님이 열심히 일하셔서 마련하신 논인데, 제가 다 팔아먹어서, 꼭 저를 두고 하는 말 같아서, 이 대목을 읽을때면 찔립니다.
나갈 때에는 다시는 안돌아 올것처럼 하고 당당하게 나가더니, 돈 다 떨어지니까 어떻게 합니까? 자존심과 체면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혼자 살아버려고 애썼지만, 결국 굶어 죽게생겼으니까 아버지에게로 갑니다. 아버지가 “다시는 오지 않을줄 알았는데, 왜 왔니? 네 말대로 한번 잘 살아보시지 왜 왔니? 당장 꺼져!” 라고 할수도 있을텐데, 머슴을 살아도 다른데에서 살수도 있었을 텐데 왜 아버지께로 갑니까? 이 아들은 “우리 아버지는 다른 아버지들과 같지않고 좋으신 분”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너는 더이상 내 아들이 아니야, 나가 이놈아! 네가 어떻게 하고 간줄 알아? 여기가 어디라고 와, 당장 꺼져!” 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이 아들은 알았던 것입니다.
내가 배고파 왔다고 하면, 아무리 미운자식, 불효자식이라 할지라도 밥은 먹여 주지 않을 것 아니냐. 그러면서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고 가니까 아버지가 뭐라고 합니까?
꼴 좇다, 당장 꺼져. 난 너를 호적에서 지운지 오래야! 라고 하십니까? “이 자식아! 그러니까 뭣하라 나가!” 하실줄 알았는데, 상상을 초월하여 아버지는 그냥 맨발로 쫓아가서 부등켜안고, “아이고 내 자식, 그래 고생 많았지, 배고프지. 어서 씻고 밥먹자.” 그리고는 목욕을 하라고 하고서, 아들이 목욕을 하는동안 짐승을 잡고 친구들을 불러 잔치를 배설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 앞에서, “여러분. 난 오늘 내 잃은 자식을 찾았습니다. 그간 이 녀석이 돌아오기를 잠도 못자고 기다려 왔는데, 이렇게 제 발로 찾아왔어요! 세상이 이보다 더 기쁠수가 있습니까?” 하면서 아버지는 기뻐서 눈물을 흘리십니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우리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회개하면 맨발로 뛰쳐나오시는 아버지처럼 우리를 받아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회개할 때, 요엘 2:13절에,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하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복장은, 부자들은 천으로 된 것을 입었겠지만, 일반 사람들은 부드러운 짐승가죽으로 통으로짠 팬티를입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짐승가죽을 말린후 잘 두둘기고 부드럽게 하여, 그것을 몸에 걸치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당시 이불이 없으니까, 낮에는 그 겉옷을 몸에 두르고서 외출을 하고, 밤에는 그 겉옷을 덮고 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벌 신사일 뿐만이 아니라, 그것이 외출복도 되고 이불도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극심한 슬픔에 잠기면, 그 겉옷을 탁 벗어서 위로부터 아래로 짝 찢습니다. 그러면 찌익 소리가 나면서 찢기겠지요. 그리고는 머리에는 재를 뒤집어 쓰고 있습니다. 이제 그 사람은 겉옷을 그렇게 찢어버렸으니, 무엇을 입고 외출을 하며 밤에는 무엇을 덮고 잘까요? 이러한 최후의 수단처럼 겉옷을 찢고 머리에는 티끌을 날리면서 애통하였습니다. 그런데, 본몬에서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 하였습니다. 그렇게 귀한 겉옷을 찢으면서 까지 회개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마음은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형식적인 회개 말고, 진정한 회개를 하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진정으로 가슴을 찢고 회개할때, 14절은 그 결과입니다.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주님께서 재앙을 내리고자 이미 천상에서 결정 난 것도 번복하여 재장이 임하지 않게 하신 다는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느니웨성이 망할 것이라는 멧세지를 전하라고 니느웨로 보냈습니다. 요나는, “그 놈들은 다 멸망을 당하여 죽어야 할 놈들인데, 왜 회개하라고 하십니까?” 라며 다른 길로 가다가 결국 큰 환난을 통하여 니느웨로 갑니다. 그리고는 니느웨 사람들에게, 크게 말하지도 않고, “너희들은 40일 이내에 다 죽을 거야. 하나님꼐 죄지은 너희들은 다 죽을 거야. 내가 기도하는 중에 환상으로 보았어. 이미 천상에서 이루어 진 일이니까, 너희들은 죽었어.” 라고 멧세지를 전하였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우리 부모 형제를 죽인 이 나쁜 놈들, 이제 너희들은 다 죽었어” 하면서 그들이 회개하지 않고 그대로 멸망을 당하기를 바라며 멧세지를 선포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니느웨 사람들이 왕을 비롯하여 온 백성들이 그 즉시로 회개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를 칠 계획을 철회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한편 요나는 “이제 니느웨가 곧 망하겠지. 그 성이 망하는 꼴이나 좀 보자” 하면서 시내 밖에서 니느웨가 망하기만 기다립니다. 그런데 40일이 지나고 42일이 지나고 42일이 지나도 니느웨는 꿈쩍도 않습니다. 하늘에서 유황불은 커녕 하늘은 맑고 청명합니다. 그러자 요나는 하나님께 “하나님, 어찌 이럴수가 있습니까? 니느웨를 완전히 멸망시키신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선포하였는데 왜 안 쳐죽이십니까? 난 하나님 때문에 거짓말 장이가 되어버렸습니다.” 라며 항의합니다. 그리고는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들과 달라서 노하시기를 더디하시며, 사랑과 자비로우심이 많으시기 때문에 우리가 회개하면 언제든지 용서헤 주십니다. 이 시간 조용하 눈을 감으시고,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십시다. 생각나는 죄들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께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하십시다. 미워하고 용서하기 힘드는 자들을 모두 용서할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다. 형식적인 회개가 아니라, 그저 소리만 지르는 기도가 아니라, 악어의 눈물처럼 억지 눈물을 짜는 기도가 아니라, 진정으로 가슴을 치고 찢는 기도를 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