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 24
Jesus Touched Me( 예수님이 나를 만지셨네 마태복음 8:1-3절)
December 22/2013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왕림하신 것을 기념하는 성탄 주일입니다. 특히 금년에는 행함이 있는 믿음의 교회와 연합하여 성탄예배를 같이 드리게 된 것을 예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경민 목사님, 홍성준 목사님을 비롯한 행함이 있는 믿음의 교회 성도님들 그리고 예수소망교회 성도 여러분들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찾아 오심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의 각 가정에 예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치도록 임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을 맞이하러 나갔다가 예수님께서 만져주심, Touch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문둥병이 고침을 받은 사건입니다. 오늘 이 성탄주일 아침에 이 땅에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본문의 문둥병자처럼 겸손하게 엎드려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문둥병자를 만지셨듯이 여러분들도 Touch, 만져주심의 체험을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같이 보시면서 예수님의 만져주심으로 말미암아 문둥병자가 온전히 고침받듯이 여러분들의 문둥병과 같은 죄악들과 수치심들이 사라지고 간절한 소원들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성탄 주일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우리를 만나시려 내려 오셨습니다.
본문 1절에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셨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산은 신성한 곳,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을 상징합니다. 2000여년전 예수님께서는 여자의 몸을 빌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왜 하필 여자의 몸을 빌어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을까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저와 여러분들을 포함한 우리 인간들이 너무나도 불쌍하였던 것입니다. 죄악에 빠져 아무런 소망도 없이 살아가는, 그러면서도 죄악에 빠져있는지 조차도 모르며 소망없이 죽어가는 우리가 너무도 불쌍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고 타이르기도 하시고 경고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듣지 않았을 뿐만이 아니라 듣기 싫다고 더러는 선지자들을 옥에 가두기도 하였고 심지어는 톱에 켜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물론 우리 인간이 악해서이었지만, 또 다른 이유중의 하나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즘 소통이 잘 안되는 사람을“말이 안통해네뜨”라고 하던데,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서로 소통이 잘 안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감옥에 가두고 무참히 짓밟은 우리에게 엄청난 화가 나셨지만 우리의 허물을 사랑으로 덮으시고 소통하여 당신의 말씀을 이해시키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우리의 말로 소통을 하시고자 당신의 외아들을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소통은 그냥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의 위치나 모습으로 내려가야 소통이 됩니다. 여러분들이 자녀들과 소통을 원하시면 여러분들 스스로가 자녀들의 위치로 내려가야 합니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소통을 하고자 하면 허리를 굽혀서 어린 아들의 눈높이로 자세를 낮추고 다가가야 합니다.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내려놓고 아들의 입장에서 대화를 시도해야지 아들이 들을 귀가 생기게 됩니다. 아버지로서의 선입견과 문화차이의 벽을 내려 놓아야지 비로소 아들의 마음이 열리게 됩니다. 70년대 한국 문화와 권위로 무장하고서 여기서 태어난 10대 아들에게 무슨 대화를 하겠다는 것입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온 세상을 다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그 모든 권세를 다 내려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눈높이를 맞추시려고 부자나 권세자가 아니라 나사렛의 가난한 처녀 마리아의 몸을 택하셔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집 맏아들로 자라시면서 가난과 소외감에 엄청난 고생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희생의 성육신, 사랑의 성육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사랑이신 줄 다 아실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못 알아들으니까 우리 말로 사랑을 고백하시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하셔야 했는지,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이 성탄 주일 아침에 주님의 그러한 엄청난 희생의 사랑에 감사를 드리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리고 나의 가족, 나의 교우들,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먼저 낮아져서 그들에게로 다가가는 성육신 사랑의 소통방법을 실천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둘째,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왜 따르십니까?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릅니다. 호기심에서 따라 다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정 받고 싶어 따라다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업도 잘 되고 건강도 회복된다고 하기에 따라 다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한번 해보려고 따라다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왜 무엇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 다니십니까? 예수님을 믿는 이유나 목적은 무엇입니까? 물론 구원받기 위해서라고 하시겠지만, 그러한 성경적인 모범 답안 말고, 진정으로 왜 예수님을 따라 다니십니까?
부자로 잘 살기 위해서입니까? 자녀들 건강하고 좋은 배필 만나서 잘 살게 하기 위해서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좋아서 따라 다녀야 합니다.
난 예수가 좋다오, 나안 예수가 좋다오.
예수님을 좋아하게 되면, 밤낮으로 예수님을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을 만나려고 매일 기회만을 엿보게 되는 것입니다.
최근에 탈렌트 한사람이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을 하였답니다. 그 소식을 어떻게 알았는지 한국 여자 애들은 물론 일본 여자 애들까지도 그 멀리서 비행기를 타고와서 부대 앞에서 장사진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학생들은 공부나 열심히들 할 것이지 무슨 짓들이냐 라고 할수 있습니다만, 그 사람이 좋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 분을 만나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청춘 남녀가 사랑에 한번 빠지게되면 뜯어 말려도, 죽인다고 협박을 하여도 소용없습니다. “나보고 미쳤다고 해도 좋아. 나, 그 사람 없으면 난 못살아, 나좀 이해해줘”하면서 오히려 사정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왕자되시고 신랑되신 예수님께서는 나같이 보잘것 없는 인간 하나에 미쳐 그 엄청난 권세, 왕자님의 권세를 다 포기하시고 이 낮고 낮은 이곳에 오셨습니다. 나 같은 미천한 존재 하나를 만나시기 위히여 그 엄청난 고통과 고난과 수치를 감수하시면서 찾아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우리 왕자님께서 나를 이처럼 미치도록 사랑하신다는데 나도 그 분께 미쳐야지 않겠습니까?
이 성탄 주일 아침에 예수님께 미쳐 보십시다. Steven Spilburg의 말대로 어느 일에 미치지 않으면 그 목표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남의 제사에 와서 구경하듯 아기 예수 탄생만 외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예수님께 미쳐 보십시다. 이제 더이상 갓난 아기가 아닌, 부활하셔서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께 미쳐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셋째, 예수님을 만나면 문제는 해결됩니다.
우리 말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백번 듣는것 보다 한번 보는것이 낫다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수십년 동안 수백번 설교를 듣는다 해도 긴가 맨가 할 때가 많지요? 하지만 그 분을 한번 딱 만나면 일이 생깁니다, 그것도 아주 큰 일이 생깁니다. 일단 예수님과 딱 맞부닥드리면 나의 생각이나 상식은 물론 세상이 뒤바뀝니다.
건강 문제, 경제적인 문제, 자녀문제, 고통스런 문제, 수치심, 죄책감 기타 문제거리들이 다 해결됩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내가 원하는 대로 다 해결되는 것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전에 내가 그토록 소중하고 그토록 절실하게 여겼던 것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까 별것 아니라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돈 떨어지면 금방 죽는줄 알았는데, 돈이 없으니까 불편하고 고생스러워서 그렇지 당장 종말이 닥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사가“아무래도 암 같은데요”라고하면 그 말 한마디에 그 시각부터 죽은 목숨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지금 데려가셔도 좋고 나중에 데려가셔도 좋습니다 라며 태평해집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나는 꼭 살아야 돼, 어떻게 해서든지 설어야 돼”라며 발버둥 치는 사람은 죽습니다. 하지만 죽어도 좋고 살면 더좋고 하며 태평한 사람들은 대부분 살아나더라고요.
그런데 무엇 보다도, 예수님을 한번 만나게 되면 예수님 생각만 하여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누가 잔소리를 하여도 협박을 하여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어도 걱정이 안됩니다. 힘든 문제들이 닥쳐와도 절망하거나 불안해 하지않고“주님께서 어떻게 해결해 주시겠지”하면서 마음이 태평해 집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교회들이 있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녀도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입술로는 성령체험을 했다고 간증까지 하면서도 개인적인 체험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체험이 없는 사람들이 교회의 중책을 맡고 있기 때문에 교회가 세상적으로 가게 됩니다. 심지어는 단상에서 설교하시는 분들 중에도 개인적인 체험이 없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을 만날려면, 예수님께서 나를 찾아오시지만 나도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디에 계시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께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8절에“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하셨습니다. 예수님 나좀 만나 주십시오 라고 목이 터지라고 외친다고 예수님이 만나주시는 것 아니라는 것입니다. 방언기도 잘한다고 예수님께서 만나 주시는 것 아닙니다. 손이 다 망가져 피가 나도록 마루바닥 치며 통곡을 한다고 예수님께서 만나 주시는 것 아닙니다. 옷을 찢고 머리털을 쥐어 뜯어내며 대성통곡을 한다고 예수님께서 만나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찌기 요엘 선지자는 요엘 2:13절에“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하셨습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회개, 위선적인 기도, 남에게 보이기 위한 선행, 남에게 보이기 위한 헌금과 십일조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남의 눈치보지말고 정말 진실된 마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자, 마음에 거짓이나 사심이 없고 오직 예수님 앞에 깨끗한 자, 마음이 예수님의 피로 온전히 씻김을 받고 깨끗이 청소가 된 자가 예수님을 볼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을 청결하게 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회개, 가슴을 찢는 진정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회개가 있기 위해서는 내가 정말로 나쁜 죄인이라는 고백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다 놀랐습니다. 그는 살이 문들어지고 온 몸에 진물이 줄줄 흐르는 문둥병자 였기 때문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왜 이 한사람만 주님 앞에 나아갔을 까요? 그리고 그 당시 유대지방에 문둥병자가 이 한사람 뿐이었을 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당시 그 땅에는 수많은 문둥병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 한 사람만 예수님께로 나아갔을 까요? 다른 문둥병자들과 무엇이 달랐을 까요?
문둥병은 가장 무서운 질병 중의 하나입니다. 한센병을 앓고 소록도에 격리 수용된 자기 아버지를 면회하고 온 어느 여 집사님의 간증을 통하여 문둥병이 얼마나 사람을 절망에 빠뜨리고 좌절시키는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소록도에도 야산이 있는가 봅니다. 그런데 딸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내려오던 아버지의 발에 가시가 찔려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못하시기 때문에 발에 가시가 찔렸는지 피가 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딸이 너무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아 붉은 피가 흐르는 자기 아버지의 발을 부여잡고 통곡을 하였답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 사회에서는 문둥병에 걸린 사람은 그 지역에서 멀리 격리시켰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굴속이나 벼랑 밑에 있다가, 가족들이 두레박으로 음식을 내려 주면 그것을 받아 먹다가 결국 거기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둥병자들은 질병으로부터의 고통 뿐만이 아니라 소외감과 외로움에 더욱 큰 고통을 앓다가 죽어갔던 것입니다.
문둥병자가 배가고파 죽음을 무릎쓰고 수용소에서 나오게 되면 사람들은 그에게 모래를 뿌리면서 저주를 퍼 붓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당하기 전에 미리“나는 문둥병자입니다”라고 소리를 지르고 다녀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율법에 의하여 정죄를 받고 돌에 맞아 죽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 앞에 나타날 수 없는 그가 이 허다한 무리 속에서 예수님께 나아 온것, 정말 보통의 결단이 아닙니다. 그는 군중들의 온갖 저주와 돌로 쳐 죽임을 당할 것을 각오하고 예수님께 나아 온 것입니다. 육신의 고통 뿐만이 아니라 마음속의 고통과 원망과 불안감을 극복하고 주님 앞에 나온 것입니다. 그는 세상에 그 누구도 의지할수 없는, 심지어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도 자기를 위해서 아무것도 해 줄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정말 심령이 지극히 가난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해 나왔습니다.
세상 아무도, 심지어는 나의 부모 형제들도 나를 멀리하지만 저분만은 나를 박대하지 않을 것이다. 형들로부터 멸시를 받고 심지어는 아버지로부터도 무시를 당하던 때를 상기하며 시편27:10절에“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라고 절규했던 다윗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 나의 친한 친구는 물론 심지어는 나의 가족들까지도 돌이켜 나에게 돌을 던질 지라도 저 분만은 나를 거절하지 않으실 것이다 라는 믿음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오늘 이 문둥병자, 예수님게서 거절하시면 그는 거기서 죽어야 합니다. 문둥병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성난 군중의 돌에맞아 죽어야 합니다. 아마도 뒤에서, 아니 저 놈이 어떻게 여기에 왔지, 돌에 맞아 죽기전에 당장 문둥촌으로 돌아가 하면서 소리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휴 냄새야, 저 놈을 끌어내라 라고 악을 쓰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돌을 던져 죽이려고 돌맹이를 찾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문둥병자,“너희들이 그래 보았자 나를 죽이기 밖에 더 하겠느냐. 어짜피 소망도 없이 끝나가는 내 인생, 죽일려면 죽여라, 난 예수님 만나러 간다” 라는 심정으로 나아왔던 것입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주 앞에 나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라는 심정으로 주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누가 끓으라고 시켜서 꿇은 것 아닙니다. 그는 자기가 누구이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겸손하게 그 분 발 앞에 꿇어 엎드려 그분께 경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예배를 드릴때 어떤 심정이십니까? 오늘 이 문둥병자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오늘 이 문둥병자의 심정으로 예수님께 예배를 드리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정말 낮아진 자세로, 예수님 아니면 난 죽어야 할 몸입니다, 어쩌면 이 예배가 이 땅에서 드리는 마지막 예배가 될지도 모릅니다 라는 정말 갈급하고 절박한 심령으로 드리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자식들과 재산을 다 잃고 서러움에 견딜수 없어 자기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던 욥의 심정으로 예배에 임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문둥병자 그는 예수님을 향하여 절규합니다,“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문둥병자는 율법적으로 볼 때 부정한 자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올 자격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질병을, 그 징그럽고 넌더리가 나는 이 문둥병을 고치실 것을 확실히 믿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병이 고침을 받고 안받고는 예수님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주께서 원하시면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이 많은 군중들 앞에서 율법을 어기면서까지 자신을 고쳐 주실 것인지, 주님은 과연 자기를 택하실지 이 무리들을 택하실지 주님의 의향을 물은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한순간의 망설임이나 주저함이 없이 즉각적으로 손을 내미십니다. 그리고는 그 문둥병자의 몸에, 진물이 줄줄흐르고 역겨운 냄새가 풍겨나는 그의 몸을 만져 주십니다. 진물을 만지면 감염되어서 문둥병을 앓게 되는데,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다 피하는데, 예수님은 즉각적으로 그의 몸에 손을 대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심지어는 자기 가족들도 피하는 그의 몸에 손을 대십니다.
왜 그의 더러울 뿐만이 아니라 만지면 병에 걸릴수도 있는 그의 몸에 손을 대셨을까요? 그의 몸에 손을 대어야 병이 낫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말씀만으로 모든 병을 고쳐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Touched him, 손을 대셨습니까? 그것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소외당하고 멸시당하는 그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어제 행하는 믿음의 교회와 Reynold Park Church 와 함께 노숙자들 급식을 하였습니다. 노숙자들에게“Thank you for coming.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들 드세요”하고 그 자리를 뜰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과 악수하고 그들과 나란히 앉아서 그들의 이야기도 들으면서 밥을 같이 먹어야지 그들의 마음이 편합니다.
오늘 예수님, 그간 아무도 만져주지 않았던 그의 몸, 고약한 냄새에 또한 자기들도 병에 오를까 모두들 피하던 그의 몸에 주님은 손을 대셨습니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절망과 좌절에 빠져 있던 그의 몸, 아무도 만져주지 않고 피하던 그 버림받은 몸에 예수님께서 손을 대셨습니다.
I am your friend, 난 너의 친구야. 그간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고 너무 외로웠지? 세상은 너를 배신하고 너를 버렸지만, 난 항상 너와 함께 있을 거야. 네 친구들이 심지어는 네 부모 형제들이 너를 외면하였지만 난 너를 버리지도 외면하지도 않을 것이다. 두려워하지도 말고 놀라지도 마라. I love you, my Firend.
주님의 손이 그의 몸에 닿는순간 그는 무엇인가 알수 없는 뜨거움을 느낄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견딜수 없는 뜨거움이 그 온 몸에 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Shackled by a heavy burden ‘Neath a load of guilt and shame
Then the hand of Jesus touched me And now I am no longer the same
He touched me Oh He touched me And oh the joy that floods my soul Something happened and now I know He touched me and made me whole
Amen
그렇습니다, He Touched Me. When He touched me something had happened in me. I can Feel it. I know something is going on in Me. I do not know, I cannot explain exactly what had happened. But something happened to me. So I am no longer the same.
그리고 그 다음순간,“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주님의 단호하고도 부드러운 음성이 들립니다. 주님께서 원하신다는데 누가 감히 뭐라고 할수 있습니까?
주님의 말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의 몸은 변하였습니다. 그는 아직도 엎드려서 폭발할 것 같은 주님의 열기를 받고있는데, 그의 몸은 변하였습니다. 썪어서 진물이 줄줄 흐르던 피부는 어느새 새 살이 돋고 깨끗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만져 주심으로 나의 질병이 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예수님의 만져 주심으로 내 속에 깊이 흐르던 한맺힌 눈물이 멈췄습니다. 예수님의 만져주심으로 인하여 문둥병자와 같았던 나의 삶이 기쁨으로 변하였습니다.
이 시간 다같이 일어나셔서 He touched me 같이 부르십니다. 두 손을 들고 문둥병자가 주님 앞에 나아가는 심정으로 부르십니다.
Shackled by a heavy burden ‘Neath a load of guilt and shame
Then the hand of Jesus touched me And now I am no longer the same
He touched me Oh He touched me And oh the joy that floods my soul Something happened and now I know He touched me and made me whole
Amen
나 같은 죄인 하나 만나시려 이 낮고 낮은 땅에 왕림하신 주님 앞에 나아 오십시오. 주님의 만져 주심을 고대하며 나아오십시오. 그 분의 만져주심으로 말로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수 없는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 나아오십시오. 두 손을 들고 주님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He is touching you. I can feel that He is here. I can feel it. He is touching you. I do not know excatly what had happened. But something is going on. Because He is touching me, I am no longer the same. He is touching you now.
지금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문둥병보다도 더욱 고약한 내 죄를 주님 앞에 고백하며 나아갑니다. 오직 주님께만 소망을 두고 나아갑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라는 심정으로 나아갑니다. 제 몸을 Touch 해 주시옵소서.
문둥병처럼 썩어져가는 나의 몹쓸 병을 고쳐 주옵소서. 나의 찢어지고 상한 심령을 싸메주시고 고쳐 주옵소서. 썩어진 피부에 새 살이 돋아나오듯 소망이 없는 내 인생에 새 살이, 새로은 삶이 시작되게 하옵소서. 두려움과 불안감과 죄책감과 수치심의 쇠사슬을 끊어주시고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