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 08

엘리야의 끈질긴 기도(열왕기 상 18:41-46)

Posted by on Dec 08 2013 at 07:36 pm

December 09/2013

오늘은 엘리야처럼 기도하자 마지막 다섯번째,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기도하자 입니다.
마가복음 7:24절 이하에 수로보니게 여인과 그의 딸 사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의 레바논 땅인 두로지방으로 가셨을때 거기 한 어머니가 자기 딸이 귀신이 들렸다고 고쳐 달라고 애걸합니다.
예수님은“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하십니다.
나는 오직 내 민족, 내 자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왔지 너처럼 개만도 못한 이방 민족들을 위하여 온 것이 아니다 라며 아주 냉정하게 거절하십니다.
그러한 치욕적인 말을 듣고서도 이 여인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나를 추악하고 더러운 개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자녀들이 먹다 남긴 그 찌꺼지 은혜라도 내게 허락하소서 라고 간절히 구합니다.
이 처절한 애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네가 이렇게 애절하게 구하는데 거절할수가 없구나. 네가 원하는대로 네 딸에게서 귀신이 나갔다 라고 하십니다.

때로는 기도하였는데, 그 기도를 안들어 주신다고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으로부터 이러한 냉정하고 치욕적인 거절을 당하면서 깨우친 것이 있습니다.
물론 딸을 고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 때문에 굴욕을 참았지만, 한편 자신을 돌아볼 때 정말 지끔까지 잘못 살아왔구나, 주님 나의 죄를 용서하옵시고, 내 기도를 들어 응답 주시옵소서, 첫번째 기도보다 다욱 간절히 매달린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녀의 죄를 용서하여 주셨고 그 기도를 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두번 기도하였을 때 이 기도는 안들어주시는 기도다 라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기도하시면서 죄가 생각나거들랑 그 죄를 인정하시고 진정으로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첫번째보다 더욱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를 제대로 믿지도 않던 이 수로보니게 여인의 기도도 들어주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되신 여러분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런가 하면 누가복음 18:1절 이하에 보면 과부의 기도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사역가운데 과부가 자주 나오는데, 예수님 당시 과부는 가장 비참한 계층의 사람이었습니다.
젊고 얼굴이 예쁘거나 재산이 많은 과부는 서로 데려가려고 남자들이 줄을 섰겠지요.
하지만 나이들고 애들도 여럿딸린 과부는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재혼하지 못하는 이 불쌍한 과부들을 위하여 죽은 남편 형제중의 하나가 아내로 삼아 부양하라는 형사취수법을 재정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데려가 주지 않기 때문에 평생 과부로 살아가는 이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아무런 보호나 보조도 받지 못하는 비참한 빈곤층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과부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어디에 호소할 수도 없이 그렇게 억울하게 지내야 했습니다.

누가복음 18:1절에 나오는 과부도 그렇게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빈곤한 비참한 생활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부에게 참으로 한 맺힌 원한사건이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그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재판관을 찾아갑니다.
아주 인정사정 없다고 소문난 이 무지막지한 재판관은 안된다고 당장 꺼지고 다시는 오지 말라고 냉정하게 거절합니다.
그러면 포기할줄 알았는데, 다음날 또 옵니다.
이제 여기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경고를 하였는데도 다음날 또 옵니다.
그렇게 면박을 주고, 또 나타나면 강제로 끌어 낼 것이라고 협박을 하여도 또 옵니다.
재판관은 이 과부에게 아주 질려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는수 없이 그 과부의 청을 들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주 무지막지한 재판관도 이 힘없는 과부의 청을 들어 주었는데, 하물며 우리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되는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계속해서 기도하라 고 예수님은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아주 심각한 한 말씀 덧붙입니다,“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이제 곧 내가 다시 올텐데, 그 때쯤에는 이 과부처럼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이 있겠느냐?
세상 풍조에 밀려 습관적으로 교회다니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말세에 과연 이 과부처럼 목숨걸고 계속해서 기도할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한두번으로 당장 안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경고입니다.
그러므로 계속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안들어 주신다는 거절 기도응답도 있을수 있습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죽자사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도 하는수 없이 마음을 돌이키실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십시다.
데살로니카 전서 5:17절 말씀처럼 쉬지말고 기도하십시다.
응답될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십시다.
그리하여 원하는 것을 얻으시고 누릴수 있는 축복이 여러분들 한분한분에게 꼭 임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주에 보신 것처럼 엘리야와 백성들이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제단을 쌓고  기도하였더니 제단에 불이 내려왔으며, 그 불이 얼마나 센지 제단위 제물은 물론 그 주변까지 모두 태워버렸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바알신은 가짜임이 판명이 났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 만이 살아계신 참신임이 만 천하에 증명되었습니다.

이것을 보며 자신들이 지금까지 거짓 제사장들에게 속아왔음을 깨달은 백성들은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들에게 분노합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그 제사장들은 하나도 못도망치게 다 붙잡으라 한뒤, 그 제사장 850명을 기손시내로 데려다가 거기서 모두 쳐 죽입니다.

우리말로 꾸불꾸불하다 라는 의미의 이 기손강은 갈멜산, 이스르엘 골짜기등 발원지가 여러개로써 양 편이 절벽으로 된 산 골짜기를 꾸불꾸불 흐르는 좁은 시내입니다.
엘리야는 한사람도 못 도망 가도록 이 절벽 사이를 두고 흐르는 좁은 강물에 밀어넣고 백성들로 하여금 쳐 죽이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엘리야는 아합왕에게“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고 합니다.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한 것은 아합왕도 기손 시내에 내려와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 보았다는 의미입니다.

아합왕은 머릿속이 복잡하였을 것입니다.
자기 아내 아세벨은 바알에 미친 여자입니다.
그렇기에 시집올 때 자기 본국 시돈에서 그 많은 바알 제사장들을 데리고 왔는데, 이제 그들을 엘리야가 다 쳐 죽였으니 이 일을 어찌한단 말입니까?
더구나 왕으로서 자기가 그 대결을 허락하였고 또한 처형과정까지 모두 다 참관 하였으니 결국 자기 책임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부인 이세벨은 자기도 죽이라며 마두 대들텐데, 마음이 참 무거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바알신은 가짜고, 역시 여호와 하나님 만이 참으로 살아계신 유일한 하나님이심이 만 천하에 증명이 된 마당에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 바알 우상숭배 때문에 우리나라가 이렇게 기근이 들었고 토탄에 빠지게 된 거야.
하나님 진정으로 회개합니다.
이제부터는 내 마음속의 모든 바알 우상을 제거하고 여호와 하나님 만을 섬기겠습니다 라는 각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엘리야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던 아합왕은 오히려 엘리야의 말을 믿고 올라가서 먹고 마시게 됩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왜 구름한점 없는 맑은 날임에도 불구하고 비소리가 들린다고 호언장담 선포하였을까요?
열왕기상18:1절에“많은 날이 지나고 제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하신 말씀을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합에게 보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자기 목에 현상금을 걸고 자기를 찾아 죽이려고 안달이 난 아합 왕에게 스스로 나아가 갈멜산 대결을 청하였습니다.
그리고 비를 내리게 할 것이라는 것은, 이 땅에 비가 내리지 않는 죄악의 근본원인인 바알 숭배자들을 쓸어 버리실 것이고,  그렇게 되려면 자신이 이 대결에서 살아야 할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감을 가지고 그러한 끔찍한 대결을 자처하였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께서도 로마로 압송되어 가면서 탔던 배가 유라굴라라는 심한 풍랑을 만나 파선되고 금방이라도 침몰할 것같아 배에 탔던 자들이 모두 두려워 할때 죄수의 몸이면서도 담대하게 큰 소리로 외친 것이 사도행전 27:23-25절에 기록되어있습니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자기가 로마 황제 앞에 가서 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내가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으려면 자신이 죽지않고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그리고 여러분들도 이 사건을 통하여 모두 예수를 믿고 구원을 것이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 중 한사람도 죽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럴려면 이 배는 절대로 침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심하십시오.
얼마나 논리 정연하고 확실합니까?
엘리야도 바울처럼 하나님께서 비를 주신다고 하신 그 약속을 아합왕에게 자신있게 선포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바알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의 죄악으로 토양이 황폐해진 것입니다.
그 땅에 비가오지않고 가뭄이 들어 초목이 무성하고 풍성한 과일을 내야할 토양은 임신하지 못하는 태처럼 말라 붙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산천의 초목들도 풀도 말라비틀어지고 짐승들도 목말라 그리고 굶어 죽어갔습니다.
도처에 굶주려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깔렸지만 그 시체를 묻어줄 사람들이 없으니까 그대로 방치돼 버렸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진 결과라는 것입니다.
이제 그러한 악의 근원들을 제하였고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왔으니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일이 잘 풀리지 않고 힘들어 진다면 혹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막혀있는지,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축복의 통로가 끊겼다면 진정한 회개로 다시 뚫어야 합니다.

혹시 마음속에 하나님보다 더 소중한 우상이 있는지, 물질, 자녀, 건강, 명예등 하나님보다 다 소중하게 여기던 것이 있으면 회개하여 우선순위를 하나님 첫번째로 바꾸십시오.
그리고 기도중에 죄가 생각나면 진정으로 회개하십시오.
그러면 막혔던 축복의 통로가 다시 소통될 것입니다.

아합 왕에게 비가 올 것이라고 선포한 엘리야는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합니다.
저는 그가 땅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이해를 하지만 왜 얼굴을 무릎사이에 넣고 기도하였을까,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여러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대한 주석도 여러권 보았지만 대부분 별것 아닌것으로 취급하였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가 얼굴을 무릎사에에 넣고 기도하였다는 그의 기도 자세를 이렇게 상세히 설명한 것에는 분명히 깊은 뜻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슨 뜻일까?
어떤 분들은 그가 겸손하게 기도하였다고 해서, 저도 겸손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제 머리를 양 무릎사에에 넣으려고 해도 안되더라고요. 내가 아직 겸손하지 못해서 그런가 회개하는 마음으로 또 다시 해 보아도 안됩니다.

그런데 제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전에 금식 기도원에서 기도할때, 처음에는 내 얼굴이 무릎에 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거의 20일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내 얼굴이 내 무릎에 닿더라고요.
어린 아이들이나 허리가 유연한 사람들은 그게 가능하지만, 일반 사람들, 특히 중년의 남자들은 뱃살이 다 빠질 때까지 얼굴이 무릎에 안닿습니다.

이것은 엘리야가 금식을 밥먹듯이 한 분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아마도 그는 이 엄청난 대결을 금식기도로 준비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번 앉았다 하면 몇시간씩 안 일어나고 계속해서 기도한 분임을 알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엘리야처럼 무릎을 꿇고 얼굴이 무릎에 닿을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기도해 보십시오.
중단하거나 포기하지 마시고 끈질기게 기도해 보십시오.
그러면 엘리야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기도도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엘리야는 기도하다가 사환에게“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의 사환이 올라가 바라보고“아무 것도 없나이다”합니다.  그런데 이미 비룰 주신다는 기도 응답을 받았으면 비가 올때까지 기다리든지, 그리고 기도를 하려면 그대로 믿고 계속해서 기도를 하든지 할 것이며, 궁금하면 자기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되었지 왜 다른사람까지 귀찮게 굽니까? 하지만 엘리야의 그러한 행동을 통하여 우리는 세가지를 배울수 있습니다.

첫째는,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거기서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기도 응답을 받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비가 오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비가 곧 올줄 알면서도 그는 그름이 몰려오고 비가 올 때까지 기도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 응답받았다고 섣불리 중단하지 마시고 확실히 이루어 질때까지 기도줄을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둘째, 엘리야와 같은 기도의 용사들도 기도하기란 정말 지루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도 정말 지겹고 지루하기 때문에 속히 비가 오기를, 속히 자기 기도가 응답되기를 그렇게 간절히 바라며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엘리야와 같은 기도의 용사도 그렇게 지루한데 우리같은 사람은 오죽 하겠습니까?
어떤 때는 서너시간도 금새 가지만 어떤 때에는 한시간 기도도 정말 지루하여 억지로 시간 때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렇게 힘드는 줄 알면서도 주님께서는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쉬지말고, 포기하시지 말고 끈질기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세번째 이유는, 자기의 깊은 기도를 중단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기도하다 말고 일어나서 하늘을 쳐다보고나면 집중했던 마음이 흩어집니다.
그래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계속해서 무릎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집중기도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한참을 기도하다가 또 묻습니다, 가서 보아라.
“없어유, 오늘따라 하늘이 참 맑네요”
그는 포기하지 않고 또 기도합니다.
한 참을 기도하다가, 이제는 뭔가 징조가 있을 것인가?
사환에게 물으니“비는 커녕 구름 한 조각도 없습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기도합니다.
이번이는 됐겠지.
아직 아무 이상 없습니다.

그 이상하다.
그 전에는 한번의 기도로 비가 왔는데 이번에는 왜 이리 더딜까?
하나님께서 분명히 비를 주신다고 약속하셨는데. 왜 이리 빨리 주시지 않는 것일까?
엘리야 같은 기도의 거장 용사도 얼마나 초조하고 지루하였으면 이렇게 여러번 물었을 까요?

그렇습니다.
이처럼 집중 기도는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붙잡히시던 날 밤 산기도를 하시는데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혼신을 다하여 하셨습니다.

더구나 오래도록 무릎을 꿇고 엎드려 기도하여 머리가 양 무릎 사이까지 완전히 내려오도록 기도하였으니 허리는 얼마나 아플까요?
그래도 쉬지 않았습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동물의 왕국을 보니까, 사자가 자기보다 더 큰 소를 물고 안 놓아 주는 장면울 보여주더라고요.
처음에는 소가 도망치려고 안간힘을 쓰니까 사자가 질질 끌려가면서도 안놓아 줍니다.
그렇게 손에 땀이나는 생사의 실랑이를 벌이다가 3시간 반 만에 결국 소가 푹  쓰러지더군요.
한끼를 먹기 위해서도 저렇게 안간힘을 쓰는데 기도가 우리의 운묭을 좌우할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본문 44절에,“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마침내 일곱번째야 드디어 바다에서 손바닥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본 것입니다.

여기 일곱번째 응답되었다는 것은,물론 정확히 7번 기도하였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지만, 숫자 7은 하나님 숫자임을 감안할 때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때까지 기도하였다 라는 의미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면서 나 지금 7번째 기도하는데 왜 응답이 안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가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때까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엘리야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의 기도를 반듯이 들어 응답 주실 것입니다.

작은 구름조각을 본 엘리야는 비가 올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그것도 소나기가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제가 동부에서 교회를 개척하였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미국교회를 빌려 쓰고 있었는데, 평소에는 작은 예배실을 사용하였지만  부흥성회니까 본당을 사용하였습니다.
1층 바닥이 450석 그리고 2층 좌석과 발코니까지 합하면 700석이 넘는 큰 예배당이었습니다.

그런데 성회 둘째날 대표 기도를 맡으신 집사님께서“주여, 이 성회가 끝나기 전에 이 전이 다 차고 넘치도록 채워 주시옵소서”라고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러자 부흥강사님께서“집사님 믿음이 제 믿음보다 더 큰 것 같습니다. 집사님 믿음대로 되기를 기도합니다”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내년에는 우리 교회가 4배로 성장시켜 달라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제 믿음보다 더 큰 믿음을 가지신 줄 믿습니다.
엘리야처럼 작은 구름덩이를 보고도 큰 소나기를 주실 것이라는 큰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결단의 시간입니다.
무엇인가를 큰 일을 해 내려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성품은 바로 끈질김입니다.
야곱은 얍복 강에서 하나님의 천사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축복하기 전까지 절대 놓지 않겠다고 협박하면서 끈질기게 매달려 마침내는 축복을 받아 냅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끈질기게 돌았습니다.
성 위에서 돌맹이가 날아오고 뜨거운 물이 쏟아지고 온갖 야유가 터져나와도 오늘도 한바퀴 돌았습니다.
병사들이 불평하고 짜증을 내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마지막 날은 일곱바퀴를 모두 돌았습니다.
그리고 큰 함성과 함께 그 성을 무너 뜨렷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았지만, 즉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지만 한가지 다른 것은 그의 끈질긴 기도였습니다.
우리도 엘리야처럼 끈질긴 기도를 할수만 있다면 엘리야가 받은 기도 응답을 우리도 받을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엘리야처럼 머리를 두 무릎 사이에 집어넣을 수 있을 때까지 끈질기게 기도할수 있다면 우리도 엘리야처럼 비가 오게도 그리고 멈추게도 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십시다.
끈질긴 기도를 하십시다.
기도하다가 죄가 생각나면 회개하면서 기도하십시다.
맑은 하늘에 검은 구름이 몰려왔다고 거기서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기도하십시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질 때까지 기도줄을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축복이 임하실 때까지 기도줄을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난 10월부터 금요일을 제외한 매일 저녁 9-11시까지 여기 바로 여기서 기도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금요 심야기도를 하던 모습이 떠오르면서 그 기도를 하여야 한다는 부담이 왔습니다.
산호세로 올때까지 약 3년 동안 꾸준히 해 왔는데, 그 기도로 말마암아 흔들리던 가정들이 회복되고 Radical Conversion Experience를 하는등 많은 응답을 받았지만, 무엇보다도 교우들의 신앙이 많이 성장하였습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금요일 저녁을 제외한 매일 저녁 9시부터 11시까지 바로 이 자리에서 치유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엘리야처럼 기도하시고 싶으신 분들, 그러한 응답을 받고 싶으신 분들, 꼭 참여하십시오.
엘리야가 확신에 찬 기도를 하였듯이 1년 이내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을 확신하며 기도할 것입니다.
엘리야가 비가 올 때까지 끈질긴 기도를 하였듯이 우리 예수 소망교회에 생명의 비가내릴 때까지 끈질기게 기도할 예정입니다.
하나님의 이 놀라운 역사에 참여하시고 싶으시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의 엄청난 기적의 주인공이 되고 싶으시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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