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 22
무너진 신앙을 회복하자(누가복음 2:41-48)
2013년 2월 03일
지금부터 약 200 여년전 영국에 Robert Robinson 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믿음이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젊었을 때에는 우리 예수님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여 은혜스러운 찬양곡을 여러개 작곡했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의 찬양곡으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인가부터는 그가 주님을 점차 멀리하더니 교회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타락한 길로 빠져들어 가더니 결국은 술주정뱅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거의 매일을 술로 살면서 우울증에 빠진채 아무런 소망도 없이 자포자기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오늘날 마을버스처럼 그 당시에는 마차가 있었는데, 그 날도 여느 때처럼 술에 취한 채 집으로 오는 마차를 탔습니다. 그런데 마차에 탄 사람들이 무엇이 좋은지 기쁨에 넘친채 손뼉을 치면서 힘차게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들어도 참으로 은혜스러운 찬송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듣던 곡 같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과거에 자신이 작곡한 찬송가였습니다. 그 사실을 발견한 그는 술에 취한 상태였는데도 정신이 버쩍 들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그는 타락하고 초라한 자신을 바라보며 주님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는 “오 주님! 그들은 내가 작곡한 찬송으로 은혜를 받고 저렇게 기쁘게 살아 가는데 정작 그 곡을 작곡한 나는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라며 통곡을 하였습니다. “주여, 이 죄인을 용서해 주옵소서. 주여 이 죄인이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난 지금까지 주님을 잊고 있었다 가 이제야 찾았습니다. 탕자처럼 돌아온 이 죄인을 주여 용서하옵소서“ 하며 그는 깊은 회개를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다시 쓴 찬송가가 우리가 방금 전에 불렀던 찬송가 28장“복의 근원 강림하사” 입니다.
이제 곧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신 사순절이 곧 시작됩니다. 그리하여 기도하면서 사순절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데 방금 말씀 드린 찬송가 28장을 작곡한 Robert Robinson이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제 책을 읽어 보셨겠지만, 제 책을 통하여 은혜를 받았다는 분들이 꽤 많으십니다. 심지어는 제 책을 머리맡에 두고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할 때 그 책을 읽으며 힘을 다시 얻는다는 목사님도 계십니다. 그런데 난 지금 어떤가? 나의 신앙 상태는 어떤가? 내가 바로 Robinson이 아니냐, 전에 기도원에서 금식기도 하면서 찾았던 그 신앙, 그 뜨거웠던 신앙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이냐 는 생각이 들어 우리 주님께 참 죄송스러웠습니다. 그러면서 금년 사순절 40일 동안에는 매일 아침 한끼씩 금식하면서 기도하기로 하였습니다. 갑자기 하면 힘들 것 같아 요 몇 일 전부터 해 보았는데 몸이 오히려 가벼워지고 힘도 더 나며 살도 5파운드나 빠졌습니다. 오늘이 13일, 다음주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는데, 동참하실 분들은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12살이 되던 해에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 요셉과 마리아는 유월절을 지키려고 나사렛에서부터 걸어서 약 3일 거리인 예루살렘 성전에 제사를 드리러 갔다가 오던 길에 예수님을 잃었습니다. 유월절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명절로써 전세계 각처에 흩어져있던 유대인들까지도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이것을 그 때에 지키지 못하면 결례라 하였고, 나중에라도 와서 꼭 그 결례를 채웠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 당시 유월절에 예루살렘에는 자그 만치 150만 내지 200 만명이나 모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 인구가 약 20만명이었다고 하는데 갑자기 이보다 10배나되는 150만 내지 200 만명이 들이 닥쳤으니 온 시내가 사람들어설 곳도 없이 북적댓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 한눈 팔다가는 같이 온 식구들을 잃어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리아와 요셉은 유월절을 지내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예수님이 안보입니다. 나이 12살이나 되었으니까 잘 따라오겠지 하면서 천천히 집으로 향하여 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도록 예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동네의 아는 사람들과 동행하여 오는가 하였더니 그들 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계속해서 예수님을 찾으며 예루살렘에까지 오던 길을 되돌아갔습니다. 그렇게 3일간이나 찾다가 맨 나중에 가본곳이 예루살렘 성전이었는데, 예수님께서 거기에 계시는 것입니다.
단순한 사건 같지만 이 사건이 주는 의미는 사뭇 준엄합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오시기에 심히도 가까운 이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다음과 같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늘 우리 곁에 계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잠시 동안 자기 일에 몰두하다가 예수님을 잃었습니다. 다른 자녀들은 아직 어리니까 잃어버릴까 염려하며 늘 조심하였더니 안 잃어 버렸는데, 정작 12살이나 먹은 예수님은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일에만 정신이 팔리면 예수님을 잃을 수 있습니다. 자기 논리와 자기 생각에만 빠져있으면 예수님을 잃을 수 있습니다. 본문을 보니까 난 예수님 없이는 못산다고 울고 불고 하던 사람들도 신앙생활 계속해서 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잃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물론 로마서 8:38-39절에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라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장로교나 침례교 할것없이 누구든 칼빈주의 영향을 입은 사람들은 “성도의 견인”이라 해서 한번 구원 받으면 절대로 빼앗기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우리에게 무척 위안이 되는 말이지만 요한 계시록 2:10절에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3:11절에는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나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경고입니다. 시험과 어려운 환난 속에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킨 사람들만이 생명의 면류관 즉 구원을 얻을수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처음 시작했던 그 뜨거운 신앙을 굳게 잡지 못하고 중간에 믿음을 포기한 사람들도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는 준엄한 경고입니다.
그리고 “빼앗지 못하게 하라”하신 것은 빼앗길 수도 있다는 의미 아닙니까? 저도 어렸을 때 한번 구원 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고 배웠는데, 혹시 이단이 아닌가 라는 의심이 들 수도 있겠지만 심각하게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시험이 닥치고 어려움이 닥치니까 처음신앙을 지키지 못하고 믿음을 완전히 포기한 사람들, 심지어는 집사 장로직분까지 받고 열심히 교회를 섬기다가 어느 날“예수는 없다, 다 가짜다” 라며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된 사람들도 저 천국에 들어갑니까? 그러니까 “네가 가진 것, 그 처음신앙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경고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미국 연합 감리교 등 Wesleyan을 따르는 사람들은 성도의 견인을 안 가르치더라고요. 소위 말하는 캘빈의 예정설을 안받아 드리더라고요.
여하튼, 이 사순절동안 나의 신앙을 다시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정말로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는 것인지, 아니면 내 생각에 그렇게 여기고 있는 것인지 한번 심각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늘 깨어 근신하며 기도함으로써, 예수님을 꼭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열두 해를 혈루 증을 앓던 여인이,“내가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내 병이 낫겠지”하였던 그 간절한 소망으로 예수님을 꼭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그들이 예수님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기 까지는 만 하루가 걸렸습니다. 예수님이 안보이기 시작한지 하루가 지난 후에야 그들은 예수님을 잃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기 식구가 눈에 안보이면 바로 찾아 나서야 하는 것인데, 온 종일 보이지 않자 그때서야 비로소 찾아 나서게 된 것입니다. 하루가 지나려면 최소한 두 번 내지는 세 번의 식사를 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끼니때 안보이면 바로 찾아 나서는 것이 우리나 유대인들을 포함한 동양사람들의 풍습입니다. 더구나 여행 중에 안 보이는 아들을 찾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예수님에 대하여 무관심했다는 것입니다.
금식해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음식을 전혀 안 먹은 채 하루를 지내려면 대단한 결단력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영의 양식은 한끼가 아니라 여러 날을 섭취하지 않아도 배고픈 것조차 못 느끼고 사는 것이 현실이 아닙니까? 배고픈지도 모르고 지내다가 사건이 터지고 어려움이 닥치면 그때야 비로소 예수님을 찾는 것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신앙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영적인 양식에 대한 영양실조 현상입니다. 식사를 거르면 배고픔을 느끼게 되듯이 영의 양식에도 배고픔을 느낄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영의 양식도 늘 충족히 섭취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풍성히 먹는 영의 양식을 통하여 예수님과 땔래야 땔 수 없는 깊은 교제를 나누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믿음 생활 열심히 하다가 그 믿음을 까먹는데에는 오랜 시간이나 큰 이변이 필요 없이 쉽고 간단합니다. 그저 교회에 안 나오고 예수님께 대하여 무관심하고 나태해지면 아무리 깊은 신앙이라고 자부했을지라도 곧 잃게 됩니다.
이처럼 믿음을 상실하고 포기 하는 데에는 너무도 쉽고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잃었던 신앙을 회복시키기는 결코 쉽거나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잃었던 신앙을 되찾으려면 결단과 엄청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잃었던 신앙, 나태해진 신앙을 찾으려면 견디기 힘든 희생이 반듯이 따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한번 시작한 신앙, 한번 찾았던 예수님을 다시는 잃지 않도록 늘 기도하시고 열심히 교회생활 하시고 말씀을 많이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늘 주님과 함께하는 삶, 주님과 자나깨나 동행하는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셋째, 예수님을 잃게 되면 두렵고 방황하게 됩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허겁지겁 예수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지금까지의 평안한 삶이 깨지고 불안과 조바심에 떨면서 예수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크리스천으로서, 별 이유도 없이 기도를 하지않고 특히 주일날 교회에 나오지 않아 보세요. 불안해서 견딜 수 없습니다. 나름대로는, 누구 때문에 혹은 무엇 때문에 교회에 가지 않았다고 정당화 시키려고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불안한 마음은 고조되어 갈 것입니다. 특히 예배시간이 되면 꼭 무슨 불행한 일이 발생할 것 같은 마음에, 불안하여 견딜 수가 없고 안절부절 해 집니다. 그리고, “내가 괜히 교회에 나가지 않았구나” 하며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이 안 계시면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운 생각에 참된 평화가 없어집니다. 이것은 에베소서 2:14절의 말씀처럼, 예수님 자신이 바로 우리의 평화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이 계신다는 것은 우리의 삶속에 평화가 있다는 증거요,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이 안 계시면 우리 삶속에 평화가 없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평화, 돈으로 살수없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진정한 평화를 얻으시려면 에수님을 내 마음속에 항상 모시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늘 예수님을 생각하며 무슨 결정을 내릴 때에도 “예수님 어떻게 할까요? 지혜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십시오. 힘들고 어려울 때“예수님, 저 오늘 보셨지요? 오늘 참 힘들었어요. 짜증도 많이 났었어요. 나 좀 도와 주세요.”라며 늘 주님과 대화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넷째, 마리아와 요셉은 오던 길을 되돌아가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요한 계시록 2:5절에,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고 신앙이 식어진 에베소 교인들을 권면하셨습니다. 이처럼 식어진 신앙을 회복시키려면 반듯이 회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무작정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라는 막연한 회개가 아닙니다. 진정한 회개란 I am sorry 한마디로 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회개를 의미하는 헬라어 메타 노이아는 잘못된 길을 꺾어서 올바른 길로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마음속으로 혹은 입술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으로 하는 것입니다.
운전을 하다가 길을 잃었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이고 길을 잃어버렸네! 하면서 계속 가던 길을 갑니까? 가던 길을 중단하고 되 돌려서 내가 길을 잃지않고 확실히 알고 있었던 곳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여 찾아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회개를 하려면 어디서부터 자신의 신앙이 식어지기 시작했는지 그 분기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기점에서 왜 무엇 때문에 나의 신앙이 식어지기 시작했는지 그 원인을 분석하여 알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원인부터 회개하여 해결한 다음,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이러한 철저한 회개의 역사가 없이 임기응변적이거나 임시방편적인 회개는 삶의 변화는커녕 오히려 악순환을 되풀이시킬 뿐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삶을 해부해보시고 잘라낼 것은 잘라내시고 고쳐야 할 부분은 고치셔서 건강한 신앙인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열왕기 하 6장에는 엘리사 선지자가 오늘날로 한다면 신학교 건물을 증축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신학생도들을 데리고 요단강 강변에 있는 나무를 자르는데 5절에“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가로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어온 것이니이다”라고 합니다. 도끼로 나무를 열심히 찍는데 도끼가 자루에서 쑥 빠져서 강물에 빠졌으니 어떻게 합니까?
그 때 6절에 “하나님의 사람이 가로되 어디 빠졌느냐 하매 그 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무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서 도끼로 떠오르게 하고” 하였습니다.
그 생도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모시고 도끼가 빠진 곳으로 갔습니다. 즉, 하나님의 사람을 모시고 실수의 현장 실패의 현장에 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사람은 그 생도의 실패의 현장에, 나무, 즉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님을 그 곳에 초청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물속에 빠진 도끼, 즉 지금까지 감추어져있었던 자신의 실수및 실패의 본체를 드러나게 고백하고 거기서 회개하여 잃었던 도끼, 즉 잃었던 믿음을 회복시킨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사순절동안만이라도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창으로 찔리시고 피 흘리시며 돌아가신 예수님을 초청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가정에, 직장에, 옷장 속에, 침실에, 지갑에도 예수님을 초청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믿음을 회복하고 늘 믿음으로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섯째, 마리아와 요셉은 잃었던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았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와 요셉의 친척 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동네의 아는 사람들 틈에도 안 계셨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계실만한 곳은 모두 찾아보고 사람들에게도 수소문 해 보았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마 하는 마음으로 성전에 갔더니 뜻밖에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 계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계십니다. 물론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에서 찾았다고 예수님께서 에루살렘 성전 안에만 계신다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의 성전은 오늘날의 교회를 상징하며, 교회건물이 아니라 크리스천들의 모임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특정한 자리에는 계시고 어떤 자리에는 안 계시는 것 아닙니다. 그런데 예배당에서의 특석은 모든 것이 잘 보이고 말씀이 잘 들리는 맨 앞줄입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느니라” 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대로, 지금 우리가 예배 드리는 이곳에도 주님께서는 임재하십니다. 그러므로 잃었던 주님, 잃었던 신앙을 되찾기 위해서는 교회에 나오셔서 각종 예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방법대로 예수님을 찾고자 합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친척중에서 그리고 아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찾으려고 했던 것처럼 쉬운 방법으로 예수를 믿으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는 한번도 가 본적이 없다고 하면서도, 자신은 독실한 크리스천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일수록 자신은 옳은척하며, 교회에 대한 수준 높은 비판과 비평을 가합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10:25절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러하자” 고 하셨음을 기억 하십시오. 로마서 3:10절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의로운 체하는 Self-Righteous 한 사람들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친척 중에나 아는 사람들 사이에 안 계셨고, 성전에 계셨듯이, 예수님을 만나려면 예수님께서 기다리시는 교회로 나와야 합니다.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라고 했듯이 신앙에도 신분여하에 따라서 주어지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남녀노소 부자나 가난한자나 모두 잃었던 신앙을 되찾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는 교회로 나아와야 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리아와 요셉이 성전에서 예수님을 찾았듯이, 잃었던 신앙을 교회에 나와서 회복시키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제 결단의 시간입니다. 물론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예루살렘 성전에서 찾았다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 안에만 계신다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의 성전은 오늘날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교회건물이 아니라 크리스천들의 모임을 의미합니다. 살아계신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예배 드리는 이곳에 계시면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혼신을 다하여 오직 예수님께만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요한복음 2:19-21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하였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성전이란 예수님께서 계신 곳, 지금 우리가 예배 드리는 이 곳에도 예수님께서 임재 하시므로 이곳이 곧 성전입니다. 여러분들이 집에서 가정예배를 드리든지 기도를 하시든지 하면 그 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후서 6:16절에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하였습니다. 이제는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모임만이 성전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시면 우리 마음이 곧 성전이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 안 믿는 사람들에게 우리 마음에 살아계신 예수님이 게심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우리의 행실로 살아계신 예수님, 내 마음속에 살아계신 예수님이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속에 미운 생각, 분노, 부끄러운 생각, 나쁜 생각, 질투, 거짓 등이 가득 차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태복음 12:34-35절에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시면서“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고 하십니다. 우리의 말은 결국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타난 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전화하다가도 딴 생각을 하고 있으면 무의식 중에 내 생각을 말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 상대방이 “예? 지금 뭐라고 하셨지요?”그러면 그 때서야 정신이 버쩍 들어서 “아, 미안합니다, 제가 다른 생각을 하다가 그만…….”그런 경험 안 하셨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 마음속에는 예수님께서 계시지요? 그렇다면 여러분들 마음이 모두 거룩한 성전입니다. 그러면 이번 사순절을 기하여 거룩하신 예수님께서 계시는 내 마음을 좀 깨끗하고 거룩하게 청소하고 단장합시다. 그리하여 내 마음도 깨끗해져서 좋을 뿐만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께서 이 좋아하시니 내게 얼마나 많은 복을 주시겠습니까?
Robinson 처럼 믿음 좋은 분도 아버지를 떠나 탕자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패가 망신하고 절망의 깊은 늪에 빠진 채 죽음을 기다리던 그가 한줄기의 찬송가를 통하여 주님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쇳물이 녹아 내리는 용광로처럼 뜨거운 눈물로 회개하여 정금처럼 나아온 Robinson, 이전보다 더욱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이전보다 더욱 깊은 사랑의 찬송 시를 쓸 수 있었습니다.
Robinson을 변화시킨 하나님이 바로 우리 하나님 이십니다. 그렇다면 나도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이 Robinson이 하나님을 만나듯, 여러분 한분 한분이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형식적인 회개가 아닌 진정으로 가슴을 찢는 회개, 의복을 찢지 않고 가슴을 찢는 회개를 하십시다. 너희는 나를 전심으로 찾고 찾으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만나줄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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