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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10/2013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비롯한 우주만물을 모두 창조하셨습니다. 특별히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이 우주 만물들 앞에 높이 찬양하게 하기 위하여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물론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 하신 것 같이 서로 용서하고 서로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내가 사는 것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지만 죽는 것 또한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고백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러한 창조의 목적과는 달리 하나님을 멀리하고 날이 갈수록 심한 죄악에 빠지고 사악한 일들을 행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물로 심판 하셨고, 당대의 의인이었던 노아는 방주를 짓고 결국 그 방주에 탔던 노아와 그 가족 총 8명만 살아 남았습니다. 그런데 홍수가 끝나고 온 세상이 자기 세상이 되자 노아 역시도 교만에 빠져 대낮부터 술을 먹고 벌거벗고 자다가 작은 아들에게 비웃음을 사게 됩니다.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노아는 자기 작은 아들의 맏아들에게 저주를 내렸고, 그 때부터 형제간에는 공존할 수 없는 원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그 후손들끼리 원수가 되고, 하나님 앞에서 악한 일들을 자행하여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억울하고 힘없이 희생되는 그들은 그 고통을 하늘에 호소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죄악에 빠진 자들을 회개시키시고자 계속해서 당신의 종들,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예레미야 등의 많은 선지자들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 선지자들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인정하지도 않았고 그 분들의 말을 듣지도 않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가르치던 서기관, 율법사, 바리새인들이 더욱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이 선지자들을 백성들의 마음을 선동하는 역적들로 몰아 세우고 감옥에 처 넣거나 끔찍한 방법으로 처형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신 하나님께서는“내 종들의 말은 안들었지만 내 외아들을 보내면 저들이 듣겠지”하면서 마지막 수단으로 당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외아들에게 “네가 직접 가야겠다. 너는 인간의 자녀로 태어나서 그들과 더불어 살며 그들의 언어로 내 사랑을 가르쳐라”며 세상에 보내십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늘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모두 포기하시고 이 낮고 낮은 땅에 오시되, 요셉과 약혼은 했지만 아직 혼인식은 치르지 않은 마리아라는 가난한 처녀의 몸을 빌어 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 되심을 버리고 이 낮고 낮은 인간으로 오신 성육신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하나님 되심을 포기하셨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러한 몸 둘 바를 모르는 은혜를 입은 이 미천한 존재가 어떻게 교만함, 자랑, 시기 질투를 생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배, 선교, 봉사등 그 어느 것이든 예수님의 성육신 사랑에서 시작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세미한 과정을 알지 못하던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요셉과 마리아의 평범한 아들이라 여기게 된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약 30세까지는 아버지를 도와 목수일을 하시다가 요단강과 광야생활을 잠시 하십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든자들을 고치시고 심령이 상한자들을 위로하셨습니다. 그러자 주로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 힘없고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는 자들, 과부들과 고아들이 따랐습니다.
많은 백성들이 예수님을 따르자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던 율법사들, 성경을 기록하던 서기관들, 제사를 집전하던 제사장들, 법을 만들고 집행하던 산헤드린 멤버들이 앞장서서 예수님을 핍박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며 그들이 먼저 회개할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자기들을 정죄한다며, 특히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하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를 범했다고 예수님을 체포하여 처형시킬 기회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유대인들의 광복절인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 성전에 오신 예수님을 군중들의 소요사태가 날까 두려워 마지막 날, 즉 목요일 밤에 체포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루를 오늘 밤 자정부터 다음날 자정까지로 하지만 유대인들은 창세기 1:5절에“밤이 되고 아침이 되니 둘째 날이라”고 하였듯이 하루를 해가진 직후부터 다음날 해가 지기 직전까지로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날짜 개념으로 한다면 금요일이 막 시작되는 저녁에 예수님을 체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즉시 그 당시 대 제사장의 장인이자 그 전해의 대 제사장이었던 안나스의 집으로 압송합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을 심문을 한 다음, 그 밤에 다시 대 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옮겨 거기서 심문하고 괴롭히다 날이 새자 로마 총독관저로 압송합니다.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은 로마의 식민지하에 있었던 지라 자기들에게는 예수님을 사형시킬 권한이 없다는 핑계로 당시 로마 총독이었던 빌라도에게 사형언도를 내려 달라고 강요합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종교문제에 개입하지 않으려고 자꾸 발을 빼지만 이들은 군중들을 동원하여 당장 사형언도를 내리라고 아우성을 칩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빌라도는 유대인들의 청을 들어 예수님을 사형시키도록 허락합니다. 빌라도의 허락을 받은 그들은 예수님을 아골 골짜기, 즉 죽음을 의미하는 해골 골짜기로 압송하여 거기서 십자가에 양 손과 발에 못박아 메답니다.
마가복음에 그 당시 상황이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은 아침 9시경이었습니다. 그리고 12시가 되자 갑자기 하늘이 깜깜해지고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쭉 찢어져 두 쪽이 납니다. 그리고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땅이 크게 흔들리고 바위들이 터져 사람들은 다 겁에 질리게 됩니다. 그리고 3시쯤에 숨을 거두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대략 여섯 시간 가량 달려 계셨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양손과 발에 대못이 박힌채 십자가에 달려있는 동안 얼마나 고통이 심하셨겠습니까? 웬만한 사람들은 자기 손과 발에 대못이 박히는 그 순간 너무도 무섭고 고통스러워 기절해 버렸다고 합니다. 저는 아직도 주사 맞을 때 너무 끔찍하여서 일부러 주사바늘을 안쳐다 보고 다른 데를 보는데, 정말 상상이 안 갑니다. 그렇게 십자가에 달려 극심한 고통 중에 일곱 마디의 말씀을 하셨는데, 십자가에서 하신 일곱 마디 말씀이라고 해서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가상칠언은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만 했는지, 우리를 구원하시는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그리고 그 십자가의 죽음으로 무엇을 성취하셨는지 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럼 이번주부터 그 일곱 마디의 말씀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은혜받고 도전받는 시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은,“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저들은 아마도 예수님을 체포하여 사형언도를 내리게 하고 마침내는 십자가에 못박게 하는데 관여한 모든 사람들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남기는 유언은 미리 기록해 놓지 않는 이상, 임종 당시의 상황에 따라 내용이 다양할 것입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후계자를 위한 유언을 할 것이며, 재산이 많은 사람들은 재산 분배를 위한 유언을 할 것입니다. 젊은 부인을 남겨두고 먼저가는 남편은“재혼하여 잘 살아라, 혹은 절대로 재혼해서는 아니된다”등의 유언을 하겠지요.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자녀들에게는 “제발 공부 좀 열심히 해라”고 하겠지요. 자녀들이 늘 다투고 싸우면“내가 죽고 없더라도 너희들은 싸우지 말고 서로 사랑하라”고 하겠지요.
그런가 하면 복수를 당부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야곱은 죽을 때까지 자기 맏아들 루우벤을 용서하지 못하였습니다. 믿음이 좋았던 다윗 왕도 “너는 내 평생을 괴롭혀왔던 요압을 반듯이 죽여라”라고 자기 아들 솔로몬에게 복수를 요구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억울하게 죽으면서도 원수를 갚아달라고 하는 대신에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유언하십니다.
사실 예수님을 죽이는데 가담했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 그리고 장로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직접 계획하고 작전을 짜고 명령을 내린 사람들입니다. 일반 백성들도 아니고 하나님을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자기들의 죄악을 백성들에게 폭로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예수님이 자기들에게 위협이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살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이 사람들이 가장 큰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유다, 대 제사장에게 매수되어 자기의 주 예수님을 팔아 넘긴 일류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오욕을 남긴 가룟유다, 예수님은 그를 용서하셨지만 그는 그 용서를 받아드리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또한 장로들과 대 제사장의 말을 듣고 그 이른 아침부터 빌라도 법정에 몰려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고 윽박질렀던 군중들은 어떻습니까? 바로 3일 전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 하실 때 그들은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흔들면서 호산나, 오실 구세주시여 어서 오시옵소서 소리치며 환영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불과 3일 사이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위협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빌라도는 민란이 일어나려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이 예수님의 사형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형 언도를 내린 빌라도는 “이 사람의 피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라며 손을 씻었으니까 책임이 없습니까?
그는 예수님이 죽을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의 종교적인 이견 때문에 저런 것이지 로마 법에 저촉된 일이 없는 분이신 줄 로마 총독이었던 빌라도가 제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왜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소란을 피우며 협박하면서 재판을 서두르고 있는지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그 분에 대하여 당신은 절대 관여하지 마세요, 내가 어젯밤 그 분 때문에 꿈자리가 어찌나 사나운지 한숨도 못 잤어요”라고 만류할 때 그는 심상치 않은 사건임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민란이 일어날까, 그리고 로마에 자기에게 불리한 제보가 들어 갈까 봐, 자기 출세 길이 막힐까 봐 군중들의 요구대로 성급하게 결정을 내렸던 것입니다. 그는 진리에 정의에 서지 않고 양심을 속이며 예수님의 사형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그의 결정에 의하여 예수님은 십자가 형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체포하고 채찍으로 때리고 사형을 집행했던 군병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변명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손에 쥔 채찍으로 예수님께서는 맞으셨습니다. 벌건 대낮에 예수님을 발가벗겨 그 옷을 서로 가지려고 가위 바위 보, 제비 뽑았던 그들은 죄가 없습니까? 그들이 망치를 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바로 그들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죽인 것은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십자가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죄가 없습니까? 그들은 머리를 흔들면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네가 누구를 구원해? 너나 많이 구원하세요!”고 조롱하였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십자가에 달린 체 극심한 고통 중에 있는 예수님께 침을 뱉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자기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 주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지옥 불에 던져지는 죽어가는 영혼들이 너무 불쌍하여 그 영혼들을 살리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 하지만 그들은, 아니 우리 인류는 이렇게 모질게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채 피 흘리시며 극심한 고통 속에 죽어 가시는 예수님, 우리 주님께서는 자신을 죽음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고 “이제는 됐다, 이제부터는 두발 쭉 뻗고 편히 잘 수 있겠다” 라며 기뻐하는 그들을 내려다보시면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기도입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왜 그들을 모두 용서해 달라고 아버지께 부탁하셨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요한복음 3:17절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듯이,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들을 위하여 죽는 것, 그들의 모든 죄를 지고 죽는 것, 죽기까지 원수를 사랑하는 것, 그것이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이 땅에서의 사역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시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일 자기들이 십자가에 매단 분이 하나님의 아들인줄 알았다면 누가 그런 끔찍한 짓을 하겠습니까? 누가 감히 그 앞에 설수나 있겠습니까?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대로 그 분이 누구신 줄, 가난한 목수의 아들인줄, 미치광이처럼 떠들고 다니는 사람으로 착각했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한 것 인줄 예수님께서 먼저 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르고 한 짓이니 용서해 달라고 주님은 아버지께 구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가를 보여주는 좋은 증거입니다. 내가 오늘 하는 일이 옳은 것 같아서 자신만만하게 하지만, 사실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수가 많습니다. 오늘은 이것이 정의이고 진실인 것 같아 자신 있게 행하지만 내일에 가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바울사도께서도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것인 줄로 알고 혼신을 다하여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감옥에 처 넣거나 처형시켰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다메섹에 나타나셔서 그의 눈을 멀게 하시고“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핍박하느냐?” 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후에 유대인들이 크리스천으로 변한 바울을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것인 줄 착각하고 바울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특히 다른 사람을 정죄하거나 비난할 때 조심하십시오. 그 정죄가 잘못된 것으로 밝혀지면 그 정죄가 고스란히 자신에게 뒤집어씌워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고 마태복음7:2절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아버지께 부탁하셨습니까? 예수님도 하나님이신데 왜 직접 용서해 주시지 아버지께 부탁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면서 또한 완전한 인간이십니다. 그런데 지금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있습니다. 완전한 인간이기에 또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안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는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그 죄를 지고 그 희생의 대가를 짊어져야 그 죄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 말씀대로 짐승으로는 사람이 지은 죄, 즉 우리의 죄를 대속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지은 죄는 사람이 대신 지고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지은 죄, 그리고 앞으로 지을 모든 죄를 다 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완전한 인간이시기에 돌아 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의 죄 용서개념은 우리 인간은 할 수 없는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하나님의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내 이웃을 용서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용서하신 그 결정을 내가 받아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나를 아프게 하고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상하게 하고 나의 것을 빼앗은 자를 용서하고 안하고는 나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신 그 하나님의 결정을 내가 받아드리냐 안받아 드리냐 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용서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이제 결단의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서 마지막 유언하시기를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기도하셨습니다. 청개구리처럼 평소 때의 말은 지키지 않아도 유언은 특별히 들어야 합니다.
이 사순절 고난 절기 동안 주변에 내가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까? 십자가에서 고통 중에 부탁하시는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때리고 침 뱉고 못을 박은 사람들을 용서하시라 기도하시는 예수님, 그 모습 생각하면서 용서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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