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01

브니엘의 아침 해를 체험하라(창세기 32:24-32절)

Posted by on Jan 01 2013 at 11:43 pm

December 30/2012

오늘 본문은 야곱이 얍복강 나루터에서 일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 몹시 두려워하며 안절부절 하고 있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그는 그 강을 건너 자기를 죽이려고 달려오는 형을 맞서야 할지 아니면 다른 길로 도망쳐야 할지 불안하고 두려워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전혀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전혀 예기치 않은 시간에 전혀 예기치 않은 뜻밖의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분과 뒤엉켜 밤을 세워가며 씨름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엉덩이 뼈가 부러지고 만신창이가 된 후에야 비로소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깨우치게 됩니다.

밤새 씨름하느라 온 몸이 쑤시고 아프고 엉덩이 빼가 부러져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도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는 야곱, 지금까지 양을 치며 수없이 보아왔던 아침 해였지만 그 날 그 아침 해는 유난히도 밝게 비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자기를 위하여 비치는 것 같은 황홀경에 빠지면서 “야! 내가 여기서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고서도 살았구나” 희열의 미소를 짓습니다. 그리고 그 곳 이름을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의미로 “브니엘” 이라 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야곱으로 하여금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였습니다. 사기치고 속이고 강탈하는 삶을 일삼던 야곱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되는 Turning Point 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만남은 야곱의 운명을 180도로 바꾸어 놓고 말았습니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하여 그리고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들 역시도 야곱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그 분, 하나님을 꼭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 하셨습니다. 얍복강 나루턱에서 물질과 야먕과 지식과 능력과 자존심을 버리고 비고 비인 마음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한 야곱처럼 이 시간 마음을 비우고 청결하게 하시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이 예배 장소가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브니엘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야곱이 체험한 브니엘의 아침 해를 여러분들도 체험하실 수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예배를 통하여 여러분들의 운명이 뒤바뀌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아무런 노력도 없이 우연히 밝게 솟아 오르는 브니엘의 아침 해를 볼 수 있을까요? 그러면 누가, 어떤 사람이 힘있게 솟아나는 브니엘의 아침 해를 볼 수 있을까요?

첫째, 벧엘을 향하여 일어선 자만이 힘있게 돋는 브니엘의 아침 해를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원래 야심가요 이기주의자요 피해의식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형, 어머니, 아버지를 비롯하여 모든 주변 사람들을 오직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여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가는 곳에는 항상 분쟁이 있었고 그의 주변사람들은 모두 그의 피해자가 되고 맙니다, 자기 형과 아버지까지도 말입니다.

야곱은 쌍둥이로 태어났는데, 태어날 때에 서로 먼저 나오려고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싸웠고 하나가 먼저 나가니까 그의 발뒤꿈치를 붙잡고 따라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먼저 나온 아이는 몸이 붉어서 “에서” 라 하였고, 나중에 나온 아이는 “발 뒤꿈치를 잡고 나왔다” 하여 “야곱” 이라 이름을 지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라는 이름의 어원인 히브리어 “아캅” 은  “사기 치다, 수작을 부려서 빼앗다” 라는 등의 좋지 않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야곱을 지칭하는 Jacob 혹은 James 라는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야곱은 자라면서 간발의 차이로 놓친 장자 권을 빼앗기 위하여 그 기회만 노립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밖에서 일하고 돌아온 형이 “배고프니 너 먹는 팥죽 좀 달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친 형이 밥 좀 달라는데 당연히 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장자 권을 빼앗을 기회만 벼르고 있었던 야곱은 “형이 장자 권을 나에게 포기하라 그러면 주겠노라” 고 거래를 합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자기 어머니와 짜고 형처럼 가장하기 위하여 형의 외투를 훔쳐 입고 팔뚝은 염소 가죽을 둘둘 말아 눈이 어두워서 앞을 잘 못 보는 자기 아버지에게로 갑니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사랑하는 맏아들 에서입니다, 내 팔뚝을 만져 보시고 내 옷의 향취를 맡아 보십시오. 그리고 이제 내게 후계자 축복을 해 주십시오” 라고 합니다. 아버지 이삭은 설마 자기 작은 아들이 그런 못된 짓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채 하나님의 이름으로 장자 축복, 후계자 축복을 다 해버립니다. 나중에 이것을 안 형 “에서” 가 자신을 죽이려고 하자 야곱은 외삼촌 집으로 도망칩니다.

말로만 듣던 수 만리 떨어진 외갓집으로 도망치다가 날은 저물고 배는 고픈데 당장 갈 데도 없습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산중 길에 날은 어두워져 가는데 늑대나 이리 떼를 만나면 어떻게 될까 무섭습니다. 그래서 길바닥에 누워 돌멩이 하나를 주워서 베고서는 혹시나 들짐승의 밥이나 되지는 않을까 불안한 마음으로 하늘을 쳐다봅니다. 밤 하늘에 수없이 걸려있는 별들을 바라보니 엄마 생각도 나고 슬프기도 하고 배도 고프고 자기가 생각해도 자기 모습이 참 처량합니다. 그런데 그 때 하늘에서 긴 사닥다리가 내려오더니 그 사닥다리로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습니다.

잠깐 잠이 들었던 야곱은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본 것입니다. “아이고, 여기에도 하나님께서 계셨구나” 야곱은 깜짝 놀라 일어나 무릎을 꿇고 자기가 베고 누웠던 돌멩이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께 맹세를 합니다, “하나님! 내가 지금 알지도 보지도 못한 외삼촌 집으로 도망칩니다. 내가 외삼촌 집을 잘 찾게 될지 혹은 가다가 노중에서 강도를 만나든지 아니면 굶어 죽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건강하게 다시 돌아올 수만 있다면 내가 이곳에 하나님의 집을 짓고 내 소유의 10분의 일을 바치겠습니다.” 라고 서원을 합니다. 그리고 그 곳을 “하나님의 집” 이라는 의미로 “벧엘” 이라 합니다.

그 후 여러 날이 걸려 마침내는 하란이라는 곳에 있던 자기 외삼촌 집에 당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기꾼 들은 서로 통하는 뭐가 있는가 봅니다. 야곱이 자기 외삼촌 라반에게 “난 당신 누이 리브가의 둘째 아들입니다. 그런데 형의 장자 권을 빼앗으려다가 형에게 잡혀 죽을 뻔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간신히 몸만 빠져 도망쳐 나왔습니다” 라고 자기 소개를 하자 외삼촌 라반은 손뼉을 치며 “너는 나의 참 골육이로구나” 기뻐하며 맞아 줍니다.

야곱 못지않게 나쁜 방향으로 머리 회전이 빠르던 외삼촌 라반은 자기 조카지만 자기 두 딸을 미끼로 야곱을 14년 동안이나 품삯도 안주고 머슴으로 부려 먹습니다. 하지만 야곱도 만만치 않습니다. 14년 동안 공 머슴을 살아 준 뒤, 그 다음부터는 품삯을 챙겨 받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7년 만에 자기 두 아내에 딸린 두 하녀들도 자기 아내로 삼고, 외삼촌 양떼도 거의 다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10명이 넘는 자녀들과 함께 대 가족을 이루고 큰 양떼와 소 떼를 거느린 거부로 등장했습니다. 요즘 말로 한다면 자기 외삼촌 라반은 지는 달이 되었고 야곱은 하란의 유지로 등극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서원까지 한 하나님 백성의 이러한 행각을 하나님께서는 그냥 놓아두실 리 없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큰 부자로 거듭난 야곱을 보면서 외삼촌과 그의 아들들은 질투가 끓어 오릅니다. 저 놈이 우리 집에 올 때에는 빈손으로 들어 왔는데, 그렇다면 저놈이 가진 모든 것은 바로 우리 집에서 나간 것 아니냐. 이것 어찌된 일이냐! 저 것을 어떻게 빼앗는담 하면서 시비를 걸어 빼앗을 기회만 보고 있었습니다.

눈치 빠른 야곱이 이것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거기서의 삶이 삶이 너무 편하니까 웬만하면 그냥 그대로 눌러 살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외삼촌 가족의 위협은 날로 심해지고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불안과 공포에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습니다.

야곱은 여러 날을 고민 고민합니다. 정말 오랜 만에 하나님께 심각하게 기도하였다는 의미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나는 네가 21년 전 네 외삼촌 집으로 도망치다가 벧엘에서 나에게 서원했던 너의 하나님이다. 지금 네 외삼촌 집을 떠나 벧엘로 가라” 하십니다. 그리하여 자기 아내들에게 이 사실을 고하게 됩니다. 그러자 자기 아내들도 “그렇지 않아도 말하려고 했는데 우리 아버지가 요즘 우리에게도 어찌나 퉁명스럽게 대하는지 이 집에서 못살겠습니다. 떠납시다.” 라고 합니다. 사위가 미우니까 같이 사는 딸들도 미운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느 날 외삼촌 식구가 양떼를 치러 멀리 나간 틈을 이용하여 밷엘을 향하여 야밤 도주 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의 외가 라반의 집은 우상을 섬기며 사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우상을 섬기고 사는 세상 속에 살아서도 안되지만 살수도 없습니다. 원래 아브라함도 밧단 아람에서 우상을 섬기며 살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불러 내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 이삭은 혼인을 못 시키면 못 시켰지 절대로 그곳으로 가지 못하게 합니다. 여러분들도 미국으로 오고 싶으셔서 오신 것 같겠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보내셨기 때문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 교회로 오신 것은 하나님을 더욱더 열심히 잘 섬기라고 하나님께서 보내셨기 때문에 오신 것입니다. 초대 교회 때 교회를 에클레시아 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세상으로부터 부르심을, 건져 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 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여러분들은 세상에서 불러내심을 받고 하나님의 집으로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세상과는 구별된 삶, 세상 사람들의 윤리나 도덕의 수준을 넘어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방법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죄를 짓고 아버지의 집, 하나님의 집을 떠난 야곱은 우상을 섬기는 외삼촌 집으로 왔으니 평안한 날이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곧 돌아가리라 고 하였지만, 일단 세상에 발을 들여놓으면 빠져 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야곱은 자그만치 21년을 거기서 지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마침내 일어 섰습니다. 벧엘을 향하여 일어 섰습니다. 지금까지는 세상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속고 속이면서 살아 왔지만, 이제는 하나님 방법대로 살아가겠노라고 결단하고 일어 선 것입니다.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는 남편과 아들들을 다 잃고 난 후 마지막 수단으로 하나님께로 돌아 왔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하나께로 돌아 왔더니 그 때부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집을 떠났던 탕자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게 되자 하는 수 없이 아버지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역사는 시작되었고, 잃었던 상속자의 신분도 되찾았고 탕진했던 가산도 회복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벧엘, 하나님의 집을 향하여 일어서는 자만이 힘있게 떠오르는 브니엘의 아침 해를 볼 수 있습니다. 세상적인 삶을 버리고 하나님의 집을 향하여 일어 서는 자만이 힘있게 떠오르는 브니엘의 아침 해를 볼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벧엘로 가는 장애물을 이겨내는 자만이 브니엘의 아침 해를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이 자기 양떼를 가지고 도망친 것을 뒤늦게 알아챈 외삼촌은 자기 아들들과 함께 일주일을 추격하여 야곱을 붙잡습니다. 지금 라반의 눈에, 21년 전 야곱이 자기 집에 올 때에는 홀홀 단신이요 아무것도 없는 알거지였습니다. 그런데 자기 두 딸과 두 하녀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난 손자와 손녀들도 다 자기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가지고 있는 이 많은 양과 소떼도 자 자기 것이어야 맞습니다.

물론 공정한 방법으로 품삯을 정해 주었지만 무엇인가 사기를 당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어떻게 그렇게 짧은 기간 동안에 그렇게 많던 자기 재산이 야곱에게로 흘러 갑니까?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어 기회만 보고 있었는데, 야곱이 먼저 눈치채고 도망쳤으니 이제는 빼앗을 명분이 선 것입니다. 그래서 밤낮 10일 동안 추격하여 마침내 붙잡았습니다. 그런데 야곱을 붙잡은 라반은 뜻밖에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을 명분도 있고 내 능력도 있지만 간밤에 네 하나님께서 너를 건드리지 말라고 하셔서 내가 참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그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야곱을 보호해 오셨다는 사실이 그의 모든 소유를 다 빼앗으려고 밤낮 10일 동안이나 달려온 라반의 입을 통하여 선포됩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이 말을 듣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우시고 보호하신다는 확신에 찬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외삼촌이 나의 품삯을 열 번씩이나 속여 먹었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 주셔서 내가 이만큼이라도 챙긴 것입니다” 라며 라반이 두려워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반격합니다. 그런 식으로 하여 결국 두 사람은 화해하였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벧엘을 향하는 야곱 앞에는 외삼촌 보다 더욱 더 준엄하고 무서운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기가 벧엘로 돌아 간다고 하면 결국 형 에서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고향 떠나 온지가 이미 21년이나 지났기 때문에 혹시 형이 자신을 용서했는지 아니면 아직도 죽이려고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됩니다. 그래서 형의 심중을 알아 보려고 형에게 심부름꾼을 보냅니다. 그랬더니 급히 되돌아온 사환은 용서는커녕 자신을 죽이려고 400명이나 되는 병사들을 소집하여 지금 자기 있는 쪽으로 달려오고 있다고 전합니다.

이것 큰 일 났습니다. 다시 외삼촌 집으로 돌아 갈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법 천지인 타지에서 홀로 살수도 없고 정말 갈 바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고민 끝에 야곱은 형에게 뇌물 공세를 펴기로 하였습니다. 자기가 소유하고 있던 짐승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들로 골라서 한번에 다 주는 것이 아니라 몇 마리씩 여러 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한 떼씩 한 떼씩 줄 수 있게 준비를 하였습니다. 형이 자기를 죽이려고 달려오면서 그 짐승들을 한 떼씩 한 떼씩 접수하다 보면 마음이 점차로 누그러져 자기를 만날 때쯤에는 마음이 다 풀리지 않을까 그렇게 계산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주도 면밀하게 각본을 짜놓고서도 만약의 경우 형이 그래도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면 어떻게 할까 마음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가족들 까지도 떼로 나누어, 자신이 덜 사랑하던 아내 레아와 그의 아들들은 앞서게 하고 자기가 더 사랑하는 라헬과 그녀의 소생들은 그 한참 뒤에 따라가게 해 놓고 하나하나 모두 얍복강을 건너 보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강을 건너지 않고 혼자 뒤에 남았습니다. 형이 와서 짐승들을 다 차지하고서도 분이 풀리지 않아 자기를 죽이러 오려면 우선 자기 아내들과 자녀들을 칠 텐데 그 틈에 자신은 도망치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로서 그리고 남편으로서 얼마나 치사한 행위입니까?

자기 목숨을 위하여 그렇게 치사한 행위를 하면서도 그는 벧엘로 가는 길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그 길 밖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알았던 그는 벧엘을 향하였습니다. 목숨이 두려워 밷엘로 가는 길을 포기하였다면 그의 생에 브니엘의 아침 해는 떠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벧엘로 가는 길 앞의 장애물을 넘어 서는 자만이 힘있게 떠오르는 브니엘의 아침 해를 볼 수 있습니다. 중간에 넘어지고 쓰러진다 할지라도 그 장애 물을 피하지 않고 극복하고 나아가는 자만이 브니엘의 아침 해를 볼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얍복강에서 모든 마음을 비운자만이 브니엘의 아침 해를 볼 수 있습니다. 24절에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하였습니다. 야곱은 지금 속으로 불안하고 괴롭고 화가 난 상태에서 얍복강 나루턱을 배회하고 있습니다. 자기 앞에 거슬리면 그 사람에게 울분을 터뜨리며 화풀이를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야곱에게 와서 다짜고짜로 시비를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화풀이를 해야 하는데 잘되었습니다. 야곱은 있는 힘을 다하여 그와 대결하였으며, 그리하여 그 둘은 밤이 세도록 뒤엉켜 싸웠습니다. 힘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자신이 있었던 야곱이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감당하기 힘든 상대입니다. 나중에야 알게 되지만 그 상대는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방황하던 야곱을 찾아오시듯, 이처럼 하나님은 찾아 오십니다. 우리가 부르짖을 때 만나 주시기도 하시지만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고난 중에 서러워 울부짖을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 오십니다. 절뚝발이 신세로 아무 소망도 없이 로드발 마길의 집에서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브비보셋을 찾아온 다윗처럼 하나님은 절망 가운데 흐느끼는 저와 여러분들을 찾아 오십니다.

얍복강에서 고민하며 방황하던 야곱을 찾아오신 하나님은 오늘 여러분에게도 찾아오십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든지, 하나님을 떠나 죄악 속에 빠져 을 헤매고 있었을 지라도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잊으신 적이 없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고 이사야 49:15절은 단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야곱처럼 야망과 욕심을 이루기 위하여 거짓과 위선과 더러운 죄 가운데 살아왔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잊지 않고 찾아오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야곱에게 찾아오신 하나님께서는 다짜고짜로 야곱을 치십니다. 야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야곱의 자존심과 교만을 꺾고 그러 말미암아 야곱이 진정으로 회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하나님의 징계를 자기 힘으로 이겨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인간적인 꾀를 버리고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내 힘으로 할 수 있다” 고 굳게 믿고 자기 방법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씨름을 걸어오신 얍복 이라는 지명은 “비운다. 쏟아 붓는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자신을 쏟아 내 버리고 자신을 온전히 비우기를 원하셨습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자기 힘으로 살았습니다. 무엇이든지 노력만 하면 안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노력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생각을 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얍복이라는 말 그대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비우고 쏟아내 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너는 더 이상 네 지혜와 네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나를 의지하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끝내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좀더 준엄한 방법을 취하십니다. 25절에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 되었더라”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환도뼈, 즉 엉덩이 뼈를 부러뜨려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리셨습니다.

이제는 만연자실 모든 소망이 끊어졌습니다. 형 에서가 400명의 병사들을 거느리고 자기를 치러 오고 있는데 부러진 다리를 질질 끌고 어디로 도망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야곱은 하나님을 다시 붙듭니다. 싫어도 하나님 밖에는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본문 26절에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 수 없이 야곱은 자기를 비웠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시지 않으면 나는 어떻게 합니까?” 흐느끼며 매달립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그의 두 눈에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얍복 강 나루터에 서기를 바랍니다.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비우는 얍복 강 나루터에 서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나의 지혜를 의지하고, 나의 재물을 의지하고, 나의 능력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며 살던 모든 것을 다 내려놓는 얍복 강 나루터에 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매달려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 가게 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만 붙들고 의지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넷째, 진정으로 회개한 자만이 힘있게 떠오르는 브니엘의 아침 해를 볼 수 있습니다. 본문 27절에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이름을 몰라서 물으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진정한 회개를 듣고 싶으신 것입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에 “야곱이니이다” 라는 이 말 속에 야곱의 회한이 다 담겨져 있습니다. 제 이름은 야곱, 이름대로 저는 거짓말 장이요 사기꾼입니다. 우리 형에게 사기를 쳤고 우리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외삼촌의 양들을 계략을 써서 빼앗았습니다. 난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 “야곱이니이다” 라는 이 한마디에 이러한 고백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죄악된 자신의 이러한 모습을 어떻게 눈물없이 고백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마도 처음으로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시인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며, 추악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대성 통곡을 하였을 것입니다.

야곱의 진실되고 이 뼈아픈 회개를 들으신 하나님은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잘못했다고 울며 비는 자식 앞에 어떤 부모가 모르는 척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인간 세상도 그런데 하물며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오죽 하였겠습니까?

하나님은 “야곱아, 네가 이겼다. 내가 너를 더 이상 해하지도 상하지도 않겠다. 너는 더이상 야곱이 아니다. 네 죄는 다 씻음을 받았다. 이제는 다시는 야곱으로 돌아가지 말아라” 눈물로 회개하는 야곱을 달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야곱은 속이는 자였습니다. 거짓으로 속이고 사기를 치고 도망치며 수작을 펴서 빼앗던 자였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안될 일이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재산을 많이 끓어 모은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얍복 강가에서 자신을 비웁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버립니다. 재산은 물론 자신의 명예와 심지어는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내려 놓습니다. 그리고 가족들 맨 뒤에서 자기를 죽이러 달려오는 형이 어떻게 할 것인가 조바심에 망을 보고 있던 그가 이제는 가족들 맨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제는 자기를 죽이려고 달려오는 형이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형을 피하여 도망칠 궁리만 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죄에서 해방되어 참으로 오랜 만에 홀가분하고 기쁜 마음이 되어 스스로 형을 맞으러 나아 갑니다. 브니엘의 아침 해를 체험한 그의 눈에는 자기를 죽이려고 달려오는 험상궂은 형조차 하나님의 얼굴로 보입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고 비인 마음으로 힘있게 떠오르는 브니엘의 아침을 체험한 그가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 성령 충만한 상태로 자기를 죽이러 달려오는 원수 앞으로 웃으면서 나아가자, 지난 21년 동안이나 칼을 갈아왔던 에서, 칼과 창을 빼어 들고 달려오던 그 형이 달려와 부등켜 안고 “내 동생아, 사랑하는 내 동생아!” 하며 엉엉 웁니다. 이 보다 더 큰 승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야곱이 그렇게 했습니다. 거짓말 장이 사기꾼 야곱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마음을 비우고 진정으로 회개하면 야곱처럼 힘있게 떠오르는 2013년 브니엘의 아침 해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다같이 일어나셔서 찬송가  278장 “여러해 동안 주 떠나” 같이 부르십니다. 얍복강에서 씨름하던 야곱이 바로 저 입니다. 제가 거짓말 장이고 제가 사기꾼입니다. 하지만 이제 얍복강 나루턱에 섰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을 비웁니다. 환도뼈가 부러지는 심정으로 제 고집과 아집을 꺾습니다. 그리고 비고 비인 마음으로 주님 앞에 다시 서서 진정으로 회개합니다.

우리 다같이 “오 하나님, 이 놈이 바로 아곱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마음으로 이 찬송 같이 부르십니다. “오 하나님, 브니엘의 아침 해를 저에게도 보여 주십시오” 간절한 심정으로 부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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