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13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다니엘 2:26-49절)

Posted by on Nov 13 2012 at 12:05 pm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지난주에는 다니엘처럼 “위기가 성공의 기회로 바뀌게 하는 비결”이라 는 주제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고 그 꿈이 하도 이상하고 신비하고 두려워 자기 왕국에 있는 지금으로 말하자면 천문학자, 미래학자, 철학자, 종교 지도자 등을 소집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 그 꿈의 내용과 또한 그 해석은 어떤지 당장 알아내라고 독촉하였습니다. 어떻게 자기가 잠자다가 꾼 꿈의 내용이 무엇인지 다른 사람들이 알수 있겠습니까? 이 얼토 당도 않은 명령에 항의를 하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이 지금 당장 알아내지 못하면 모두 처형을 시키겠노라” 는 협박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바벨론의 모든 지식인들이 당장 처형을 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도 예외가 될수는 없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니엘은 이 일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자기를 처형시키려고 오는 시위대 장관 아리옥에게 시간을 좀 주면 자신이 반듯이 왕의 꿈을 알아내겠으니 기다려 달라고 당부합니다. 그리고 자기 친구들을 찾아가 이 문제를 놓고 합심하여 기도하였습니다.

한편 궁궐에 소집된 이 학자들, 이제 당장 죽게 되었는데, 누구든지 속히 왕의 꿈을 알아내기를 얼마나 애타게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겠습니까? 그렇게 피를 말리는 시간이 흐르는데 마침내 합심하여 기도하던 다니엘에게 그 꿈이 환상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니엘이 기도하는데 환상중에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이 나타 난 것입니다. 기도하시면서 가끔씩은 환상을 보신 분들도 있을 줄 압니다. 그리고 그 환상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것인지 내가 원하고 바라던 생각인지 대부분은 내가 느낌으로 알게 됩니다. 다니엘은 기도 중에 보인 환상이 바로 느브갓네살 왕이 꾼 꿈인줄 직감적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이제 왕이 꾼 꿈이 기도 중에 나타나자 다니엘은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아직 문제는 전혀 풀리지 않고 그대로 있는 상태지만 하나님께서 이미 해결해 주셨다고 믿고 먼저 감사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기가 닥치면 다니엘처럼 우선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그 위기를 놓고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응답후 미리 감사를 드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현재 처해있는 위기가 성공으로 바뀌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주신 응답을 실천에 옮기는 단계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라는 제목으로 위기가 어떻게 성공으로 변하게 되는가 그과정을 같이 보시면서 은혜와 도전을 받는 시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니엘이 급히 왕의 시위대 장관을 불러 “내가 왕의 꿈을 알아 내었으니 당장 왕에게 고하시오” 라고 합니다. 그러자 왕의 시위대 장관 아리옥이 왕에게 가서 “폐하께서 무슨 꿈을 꾸셨는지 그리고 그 꿈의 해석까지 다 할수 있는 자를 바로 제가 찾았습니다” 라고 합니다.

지금 이 사람이 자기를 나타내려고 얼마나 간교하게 말합니까? 자신이 한 일은 다니엘을 죽이려고 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왕 앞에 가서는 “내가 왕의 꿈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꿈을 해석할 자를 두루 찾고 다녔는데 드디어 찾았습니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들은 왕은 급히 다니엘을 불러오라고 합니다.

시위대 장관이 왕께 고하는 이 말을 들은 사람들, 왕 앞에서 당장 처형을 당할 사람들이 방금 들은 이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했겠습니까? “여러분! 마침내 왕의 꿈은 밝혀졌습니다. 여러분들은 죽지 않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애타고 간절하게 기다리던 소식입니까? “후유! 이제 살았다” 라며 그들은 서로 부등켜 안고 울고 불고 난리 소동을 폈을 것입니다. “내가 죽지않고 살게 되었다” 라는 이 기쁜 소식,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알고 그리고 모르고 지은 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께서 죄라하면 “나”를 믿지않는 것이라 하셨는데 우리는 나면서부터 예수를 안믿는 죄인입니다. 또한 그 옛날에 지었지만 이제는 다 잊어버려 생각도 나지않는 죄들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앞으로 계속헤서 짓는 죄는 또 어떻게 합니까? 그러므로 이 죄들 때문에 우리는 영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그 사망권세를 깨뜨린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어 육신은 죽지만 영혼은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저 영원한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이것이 바로 Εωανγελιον, Good News, 복음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쁜 소식은 자꾸만 전해야 합니다. 만나면 다른 이야기나 다른 사람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 참 감사하지요” 라는 기쁜 소식을 자꾸만 전하고 증거하여야 합니다.

이제 사람들은 왕의 꿈을 알아낸 다니엘이 과연 누구일까? 여기에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아직 정식 학자로 등록된 것도 아니고 소위 말하면 바벨론 왕립학교 학생이기 때문에 사실 다니엘이 누군지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이 왕 앞에 급히 불려 갔을 때, 머리가 허옇고 나이가 지긋한 그리하여 참으로 연륜이 많고 신령한 사람일줄 알고 모두 경의를 표하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앞에 나타난 사람은 전쟁 포로로 잡혀온, 아직 20살도 채 안된 유대인 청년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아마도 왕은 “아무 경험도 없는 이런 어린 아이가 무슨 그 비밀스런 큰 일을 알아 낼수 있다는 말인가?” 하고 대단히 실망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미덥지 못한 표정으로“너는 내가 꾼 꿈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해몽을 능히 알게 하겠느냐?” 고 묻습니다. 그러자 다니엘은 26-27절에, “왕이 물으신 바 은밀한 것은 지혜자나 술객이나 박수나 점쟁이가 능히 왕께 보일 수 없으되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라고 대답합니다.

그는 자신을 최대로 부각시키고 출세가도를 달릴 최고의 기회에 하나님을 믿지않는 왕과 신하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렸습니다.

Lew Wallace의 1880년작 Ben-Hur: A Tale of the Christ를 원작으로 하여 제작된 영화 벤허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 영화의 주인공 Charlton Heston은 잘 알려졌지만 그 영화를 감독한 William Wyler 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여하튼 그 영화를 제작하고 난후 평가회를 하는 중에 William Wyler는 자신이 너무 큰 은혜를 받고서 “주여! 제가 만든 것입니까?” 라며 주저하지 못하는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는 모든 영예를 하나님께 돌려 드렸던 것입니다.

느브갓네살 왕을 비롯한 왕의 신하들과 거기에 모인 학자들은 모두 이방 신을 섬기고 해와 달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선포하였다가는 자칫 처형을 당할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다니엘은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교만해 하지않고 “이것은 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는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것입니다” 하며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시위대 장관 이리옥처럼 기회만 다면 자신을 나타내기에 안간힘을 쓰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능입니다. 대통령 선거에서도 보시듯이 상대방을 헐뜯어서라도 자신을 나타내고 우월성을 강조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능입니다. 상대 후보가 아니라 꼭 내가 아니면 안되는 이유를 잘 드러내야 선거에 이기게 됩니다.

그런데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데에는 크게 두가지 형이 있습니다. 첫번째 Style은 “I did it, 내가 했다” 형입니다. 무슨 일을 성취하였을 때 혹시 자기가 인정받지 못할까 “그것은 내가 한 것입니다” 라고 미리 나서서 말하는 부류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일어난 일인데, 야외예배에 갔을 때 일입니다. 참 좋은 일이 있어서 제가 폐회시간에 그것을 소개하면서 그 일을 하신 분에게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한분이 “목사님! 그것은 내가 하라고 해서 이집사가 한 것이에요” 라고 합니다. 갑자기 찬물을 끼얹는 것처럼 은혜스런 분위기를 완전히 깨버리더라고요.

두번째 Style은 자기가 해놓고 가만히 지켜보는 스타일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야! 이거 누가했지? 정말 좋다” 라고 고마워 하면 몰래 웃으면서 기뻐하는 스타일입니다.

여하튼 왕의 시위대 장관 아리옥처럼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능인데 다니엘은 그 절호의 찬스에 하나님을 드러내고 자신은 뒤로 숨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용하시지만 특별히 이런 사람을 더욱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창세기 41장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나옵니다. 애굽의 바로가 이상한 꿈을 꾸고 그 꿈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오늘 본문과 비슷하게, 애굽의 술사나 박사들도 그 꿈을 능히 해몽하지 못합니다. 그때 술관원이 감옥에서 만났던 요셉을 생각하고 왕에게 요셉을 소개하게 됩니다.

창세기 41:15-16절에,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요셉은 자신의 명망을 드러낼 가장 좋은 기회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루스드라 지방에서 기도하여 안증뱅이가 일어나자 제우스 산당을 지키던 제사장이 바울을 살아계신 신이라고 소를 잡아 제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이 때 바울사도 역시도 “당장 그만 두십시오. 이 사람을 고친 것은 내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라고 뜯어 말립니다. 베드로 사도가 성전 입구에서 기도하여 안증뱅이를 일으켜 세우자 제사 드리려고 성전에 왔던 수많은 사람들이 베드로를 따라옵니다. 이때 베드로는 “왜 나를 주목하십니까?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라고 무리를 향하여 외칩니다. “하나님께서 하셨는데 왜 나를 주목하십니까?”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이번에 책 출판 기념회를 갖는 것, 저를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이 계기를 통하여 우리교회가 잘 홍보되어 전도의 문이 활짝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의외로 신문사에서 그리고 방송국에서 돕겠다고 하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다니엘처럼 여러분들의 삶도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왕은 자기 꿈 하나 때 온통 난리를 피우고 사람들을 처형시키라 하며 이 난리 소동을 피웠겠습니까? 그리고 다니엘이 이 모든 사람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증거를 해야 합니까?

사실 하나님은 꿈 해몽에는 큰 관심이 없으셨을 것입니다. 세계 최 강국의 황제가 이렇게 소동을 피워야  온 세상이 여기에 집중할 것이고, 이러한 숨막히는 순간에 하나님을 중거해야 역사에 크게 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계획으로 느브갓네살 왕과 다니엘을 사용하신 일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된 다니엘은 왕을 비롯한 온 백성들이 손에 땀이 나도록 긴장감 속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하나님의 권능과 권세를 보인 것입니다.   다니엘이 소개하고 있는 하나님은 왕이 침상에서 생각하던 것까지 아시고 그에게 장래일을 보여주시며, 또 느부갓네살이 그것을 잊어버린 것을 다니엘에게 다시 보여주신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침상, 왕의 침상은 매우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곳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대부분의 음모가 왕의 침상에서 시작됩니다. 침상에서 편히 죽는 왕도 많지만 침상에서 살해당하는 왕들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왕의 침상은 보안과 경계가 가장 철저한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정말 믿을수 있는 사람, 동침할 여자, 술 장단 맞춰줄 내시만이 왕의 침실을 드나들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비밀스러운 왕의 침상에서 일어난 일들을 아시는 분이라 다니엘은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의 이 말은 “느브갓네살 왕이여. 당신이 아무리 철저히 숨기려는 것이 있을 지라도 하나님께는 숨길수가 없습니다.” 라는 경고입니다.

이제 31절부터는 바벨론 왕이 꾼 꿈의 내용입니다: 31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매우 찬란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32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33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34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이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 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

자신이 꿈꾼 꿈의 내용을 다니엘이라는 이 처음보는 청년이 그대로 말하는 것을 보고 왕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왕은 다니엘의 입술을 통해서 나오는 말은 다니엘의 말이 아니라, 방금전에 다니엘이 소개한 다니엘의 하나님께서주신 말씀으로 믿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지금 바짝 긴장하여 듣고 있습니다. 자기가 꾼 꿈을 너무도 정확하게 말하자 아마도 왕의 입은 놀라서 쩍 벌어지고 혀는 덜덜 떨고 있었을 것입니다.

37절부터는 그 꿈에 대한 해몽입니다. 이제는 “다니엘의 입술을 통하여 선포된 예언이 어쩌면 이렇게 정확히 맞아 들어갈까” 하며 우리가 놀라야 할 차례입니다.

37왕이여 왕은 여러 왕들 중의 왕이시라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 38사람들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 어느 곳에 있는 것을 막론하고 그것들을 왕의 손에 넘기사 다 다스리게 하셨으니 왕은 곧 그 금 머리니이다 그렇습니다. 바벨론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대한 나라, 금머리였습니다.

39.왕을 뒤이어 왕보다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요 했는데, 이것은 바벨론 바로 뒤에 일어나는 미디아 페르시아를 의미합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죽은후 그의 아들 에월 므로닥이 왕위에 올랐으나 살해되고 결국 그의 사촌 나보니더스가 왕위에 오릅니다. 각처에서 반란이 심하여 바벨론 왕국을 자기 아들 벨사살에 맡기고 나보니더스는 반란을 진압하러 간 사이, 미디아의 다리오 왕에게 바벨론은 함락되고 맙니다. 한편 페르시아의 고레스는 미디아의 왕이자 자기 외할아버지 격인 다리오 왕이 죽자 두 나라를 병합하여 페르시어 제국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성경에 예언된 대로 바벨론 보다는 영토나 또한 세계에 비치는 영향이 훨씬 약하였습니다.

셋째로 또 놋 같은 나라가 일어나서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며 했는데 이 나라는  그리스를 말합니다. 소아시아와 팔레스타인 지역까지 다 점령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는 유럽 진출을 서두르며 10만 병사를 몰고 그리스 까지 진격하여 항복을 요구하였습니다. 하지만 페르시아의 10만 대군이 그리스의 1만 대군에 패하여 퇴각합니다. 그 뒤 그리스는 군사들을 재 정비하여 페르시아를 치는데, 그 유명한 팔랑크스 전법으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병사 15만명을 궤멸 시킵니다. 이로써 유럽, 페르시아, 팔레스타인 지역을 장악했지만 알렉산더가 35살에 전염병으로 죽자 그리스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40. 넷째 나라는 강하기가 쇠 같으리니 쇠는 모든 물건을 부서뜨리고 이기는 것이라 쇠가 모든 것을 부수는 것 같이 그 나라가 뭇 나라를 부서뜨리고 찧을 것이며 41.왕께서 그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쇠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 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쇠 같은 든든함이 있을 것이나 42.그 발가락이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인즉 그 나라가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서질 만할 것이며 43.왕께서 쇠와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 민족과 서로 섞일 것이나 그들이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쇠와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

이 넷째 나라는 로마입니다. 로마는 그야말로 쇠처럼 모든 나라를 부수고 정복하였습니다. 하지만 여러나라를 정복하여 세운 나라였던 고로 항상 여기저기에서 일어나는 반란과 또한 자국내의 노예들의 반란에 늘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44-45절에,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45.손대지 아니한 돌이 산에서 나와서 쇠와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서뜨린 것을 왕께서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은 참되고 이 해석은 확실하니이다”

하였는데, 로마는 크리스천들을 그렇게 심하게 박해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예수님의 11사도들도 그리고 바울사도도 로마의 손에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하지만 어디선가 조그마한 돌맹이 하나가 날아옵니다. 이 돌은 사람이 던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날아오는 돌입니다. 그리고 이 돌이 그 거대한 신상의 발을 치니까 그만 이 신상이 무너져 내리는데, 금 머리, 은 가슴, 놋 배, 철 다리 할 것 없이 모조리 부서져서 가루가 되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돌은 점점 커지더니 거대한 산이 되어 온 세계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돌이 날아와 신상을 맞춘다면 머리나 몸통을 겨냥하는 것이 상식인데 발을 맞췄습니다. 이것은 다른 나라 시대가 아닌 바로 로마시대에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는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로마의 위세가 절정에 달했던 때에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약 550년 전에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다니엘의 꿈의 내용과 해석을 다 듣고 난 후 느부갓네살 왕은 어떻게 합니까? 46절에, 이에 느부갓네살 왕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명하여 예물과 향품을 그에게 주게 하니라 하였습니다. 천하를 정복하고 다스리는 느부갓네살 왕이 포로로 잡혀온 어린 청년앞에 엎드려 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세계제국을 건설한 왕이 전쟁포 앞에 엎드려 절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느부갓네살은 지금 다니엘에게 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니엘의 뒤에 계시는 다니엘의 하나님께 절하고 있습니다.

이제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의지하지만 포로생활을 하던 다니엘처럼 힘들고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돈과 권력에 속수무책일 때가 많습니다. 막강한 권세와 돈을 가진 느부갓내살이 부러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포로생활을 하던 다니엘 앞에 무릎을 꿇은 느부갓네살 왕을 보십시오.

다니엘은 그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내 민족을 죽이고 하나님의 성전을 불태워버린 죄를 자복하고 내 앞에 무릎을 꿇으라 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깨우치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자를 두려워하게 된 것입니다.

피를 흘려 승리하고, 표 대결로 승리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와서 무릎을 꿇게 하는것,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승리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을 가슴에 품고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아프게 하고, 나를 슬프게 하며, 나를 좌절시키는 세상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세상이 내 속에 있는 그 말씀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입니다.

이 시간 다 같이 일어나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찬송가 280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같이 부르시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실 분들은 그렇게 하십시오.

다니엘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다니엘의 기돌르 들어주신 하나님은 나의 기도도 들어 주실 것입니다. 다니엘의 뿔을 높혀주신 하나님은 아늬 뿔도 높혀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니엘과 같은 믿음을 달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감으로 기도하십시오. 지금 내 앞에 예수님께서 나를 보고 계심을 상상하면서,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들을 이 시간 주저함이나 주위사람 의식하지 마시고 그대로 토해 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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