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 15
위기가 닥쳤을때(단2:1-16절)
위기가 닥쳤을 때
October 14, 2012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느브갓네살 왕과 다니엘을 통하여 하나님의 권능을 바벨론 땅에 증거하는 사건의 시작입니다. 한 사람은 당시 세계 최강의 나라에서 최고의 권세를 누리던 황제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그 황제의 포로요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사람에게 위기가 닥칩니다. 그들은 지금 바벨론의 궁궐에 같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위기를 극복해 나아가는 방법은 사뭇 다릅니다. 그러면 이 두사람이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나는 어떻게 위기를 극복해야겠는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겠는가 도전 받고 은혜를 받는 시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사람은 누구나 위기를 겪게 됩니다.
1장에서는 다니엘에게 아주 큰 위기가 닥친 것을 보았습니다. 유구한 역사와 다윗과 솔로몬 때에는 팔레스타인 뿐만이 아니라 소아시아와 메소포다미아 지역에까지 이르는 대 제국을 건설했던 자기 나라가 바벨론의 침략에 불탄 삼줄처럼 무너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선택 받았다” 고 자부하던 자기 민족이 이 무지막지한 이방 민족으로부터 대 학살을 당하는 참변을 겪게 됩니다.
다니엘은 어린 나이에 그러한 환난을 두 눈으로 보면서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머나먼 이국에 끌려와 자유를 빼앗긴 포로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왕은 그의 유대인식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하고 바벨론식 이름을 지어주며 바벨론식 교육을 시킵니다. 이렇게 되면 자기는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영원히 바벨론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린 다니엘은 그러한 위기 속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민하며 또 고민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신다면 왜 우리에게 이런
환난이 일어나야 하는가? 과연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은 아닌가? 혹 잊으신 것은 아닌가?
하지만 그는 그러한 회의를 과감하게 버립니다. 바벨론 왕이 베푼 기름진 음식을 거절합니다. 바벨론식 학문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죽기를 각오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로 결단합니다. 그는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모든 위기로부터 오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하나님께 맡기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하나님을 의지하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위기를 해결 해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위기가 닥쳐 온다 할지라도 하나님 만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죄많은 나를 과연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까? 티끌같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과연 하나님이 나를 기억 하실까? 믿음도 약하고 기도도 제대로 못하는 나를 하나님께서 과연 일으켜 세워 주실까?” 라는 회의가 찾아온다 할지라도 다니엘처럼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다니엘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도 위기에서 환난에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나라를 멸망시키고 성전을 불태우며 자기 민족을 말살하려던 그리고 자신을 포로로 잡아온 바로 그 느부갓네살 왕에게도 위기는 닥쳐왔습니다. 당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중앙 아시아와 유럽을 정복하고, 앗시리아를 정복하고 중동지방과 아프리카 일부까지 정복하였습니다. 이제는 더이상 정복할 땅이 없었습니다. 온 천하 아무도 감히 그를 대적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그 땅에 전쟁이 그치고 느부갓네살 왕은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2년을 평안히 잘 지내던 어느날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 왕 마음에 심한 동요를 일으키는 꿈을 꾸게 하십니다. 그는 생각만 해도 매우 섬뜩하고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꿈을 꾸었습니다. 분명히 자기 운명과 자기 왕국의 운명에 대한 꿈인 것 같은데 혼자서 해석할 길이 없었습니다. 과연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칠 것이란 말인가? 반란이 일어난 단 말인가? 외적이 처들어 온단 말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죽임을 당한다는 말인가?
외부에서 오는 위기는 제 아무리 강한 자들일지라도 칼로 다 막았습니다. 무력으로 정복했습니다. 그런데 내부에서 오는 위기는 칼로 막을 수도 힘으로 정복할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포로가 되어 자유를 빼앗긴채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다니엘에게도 위기가 닥쳤지만 온 세상을 정복한 가장 강력한 군주 느부갓네살에게도 위기가 닥쳤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에게는 위기가 없습니까?
청소년들의 탈선의 위기, 학업의 위기, 입시의 위기만 있는 줄 알았더니 중년의 위기, 노년의 위기 등 위기는 연령에 상관없이 찾아 옵니다. 사업의 위기, 직장의 위기, 주식에 투자한 사람들은 주식 시장에 대한 위기, 그리고 걸핏하면 이혼하는 부부간의 위기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결혼을 앞두고 교제를 하는 남녀간의 관계에도 위기는 항상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뇨병, 고혈압,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과 심장 마비등으로 말미암아 건강의 위기를 맞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하게, 신앙의 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합니다. 성직자들이 타락하고 교회들이 문제에 휩싸여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물질에 시험들고 성적이 유혹에 빠지고 거기에 세습문제까지 겹쳤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교회들이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고있는 실정입니다.
여하튼 우리 모두는 좋든 싫든 위기와 더불어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기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위기를 피할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도 위기에 면역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가오는 위기를 피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의지하고 닥쳐온 위기에 정면으로 다가가십시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주신 능력과 권세로 위기가 오히려 성공의 승리의 기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이 안 계신 분들은 위기가 닥칠 때 어떻게 합니까?
위기가 닥치자 불안해서 견딜 수 없던 느부갓네살 왕은 바벨론의 모든박수와 술객과 점쟁이와 갈대아 술사, magicians, the conjurers, the sorcerers and the Chaldeans 를 급히 부릅니다. 요즘으로 말한다면 최고의 천문학자들, 점성술가들, 예언자들, 미래학자들, 과학자들을 총망라하여 부른 것입니다.
그런데 왕이 이 사람들을 부를 때 이 사람들만 따로 불렀을까요? 이미 왕의 신하들도 궁궐에서 왕의 눈치만 보며 안절부절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왕궁에 초 비상이 걸린 것입니다. 자기 꿈 하나 때문에 전국에 비상령이 내리고 온 나라가 소동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자들은 위기가 닥치면 우선 불안해서 견딜수 없어 합니다.
그런데 위기가 닥치면 오직 느브갓에살 왕 만 이렇게 불안해 합니까? 저와 여러분들에게는 전혀 상관도 없는 문제입니까?
마음에 하나님이 안 계신 분들,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그 분을 의지하지 못하는 분들은 위기가 닥치면 불안해서 견딜수 없어 합니다. 그리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들볶습니다. 사람이 악하고 나빠서가 아닙니다. 혼자서는 감당할수 없기 때문에 불안해서 견딜수 없기 때문에 주변사람들을 들볶는 것입니다.
남편이 그러면 자기 부인과 자녀들 할 것 없이 온 식구들이 들볶입니다. 자기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형제들에게도 연락하여 소동을 피웁니다. 그리고 장인 장모 및 처가식구들까지도 시달릴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심하면 멀리 도망쳐 버리든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생깁니다.
또 하나의 심각한 증상은 다른 사람에게 책임 전가를 합니다. 왕의 명령을 받은 바벨론의 모든 박수, 술객, 점쟁이들은 급히 궁궐에 입궐하여 모든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바벨론 왕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습니다. 그러한 그들을 향하여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왕은 “내가 꿈을 꾸고 그 꿈을 알고자 하여 마음이 번민하도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나의 꿈을 해몽하여라” 고 명령합니다.
자기가 꾼 꿈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몽하도록 한 것입니다. 아마도 그는 이 꿈이 정말 자기 운명이나 자기 왕국의 운명에 관한 것이 확실하다면 그리고 그 꿈이 우주를 주관하는 절대자에게서 온 신탁이라면 이 박수와 술객들을 통해서도 보여 주었지 않겠는가 라고 시험하였는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는 자기가 꾼 이 꿈때문에 얼마나 심각했는지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왕이 그렇게 명령하자 바벨론의 박수와 술객과 무당들 그리고 점치는 자등 거기에 모였던 모든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폐하께서 꾸신 꿈의 내용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해몽해 드리겠나이다” 라고 합니다. 이에 화가난 왕은 “너희들이 정말 신령한 점성술가요 무당이요 점치는 자들이라면 내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 그 꿈의 내용도 알아야 할 것 아니냐. 내가 명령을 내렸나니 너희가 만일 꿈과 그 해석을 나로 알게 하지 아니하면 너희 몸을 쪼갤 것이며 너희 집으로 거름 터를 삼을 것이요 너희가 만일 꿈과 그 해석을 보이면 너희가 선물과 상과 큰 영광을 내게서 얻으리라 그런즉 꿈과 그 해석을 내게 보이라” 고 아주 단호하게 명령합니다.
그러자 그들은 “세상에는 왕의 그 일을 보일 자가 하나도 없으므로 크고 권력 있는 왕이 이런 것으로 박수에게나 술객에게나 갈대아 술사에게 물은 자가 절대로 있지 아니하였나이다” 라고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지금까지 바벨론에 훌륭한 왕들이 많았는데 그들 중에 왕처럼 그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자기들 책임이 아니라 왕의 책임이고 왕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데 자기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려고 하는 당신은 훌륭한 왕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2:11절에 “왕의 물으신 것은 희한한 일이라 육체와 함께 거하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일 자가 없나이다” 라고 조아립니다. 어떤 꿈을 꾸었는지 그 내용을 말해 주어도 해몽하기 어려운데 더구나 어떤 꿈을 꾸었는지 그 꿈 내용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우리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직 육체와 함께 거하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그런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육체와 함께 거하지 않는 신이라는 표현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들이 믿던 조로아스터 교의 표현입니다. 그들은 영지주의와 비슷하여 영혼은 항상 맑고 순결하지만 육은 항상 음란하고 불결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순결하고 깨끗한 영혼이 더러운 육체에 갇혀 있기 때문에 하늘의 지혜를 깨닫지 못하고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며, 이것이 바로 인간사의 불행과 비극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의 신들은 육체가 없이 영만 있기 때문에 항상 순결하고 깨긋하여 하늘의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믿엇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말한 것처럼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오직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밖에는 우리의 위기를 온전히 해결해 주실 분이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미 불안하여 견딜수 없어하던 느부갓네살 왕은 이러한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말을 들을 귀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화만 더 크게 불러오게 됩니다. 화가 극도로 오른 왕은 바벨론의 모든 점쟁이 무당 꿈 해몽자들을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시키라 명령을 내립니다.
셋째,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께 맡기는 것 뿐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을 시키라는 바벨론의 천문학자, 점성술가, 미래학자, 무당 등에는 다니엘과 그 친구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의 위기, 자기에게 닥친 위기를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자 주변사람들에게 그 책임을 물고 화풀이를 하는 것입니다.
체포하여 처형을 시키라는 명령을 받은 시위대장관이 다니엘도 죽이려고 잡으러 왔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있던 다니엘이 그 까닭을 묻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오? 그러자 왕의 시위대장은 자초지종을 말해줍니다. 사건의 진상을 파악한 다니엘이 급히 왕에게 들어가서 시간을 좀 주시면 반드시 그 꿈과 해석을 왕께 알려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였습니다.
다른 박사들에게는 시간을 끌려고 한다면서 분노하고 죽이려고 했던 왕이 시간을 좀 달라는 다니엘의 요청에는 순순히 응하고 허락했다는 것입니다. 왜 왕이 그랬을 까요?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합니다. 첫째로, 자기보다 똑똑하고 더욱 지식이 많은 사람들의 요청은 모두 거절하였는데 오직 다니엘의 요청은 들어 준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말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이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기로 작정합니다. “나는 할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지난번에도 나의 요청을 들어주신 하나님, 이 위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다니엘은 간절히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운 말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지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주십니다. 중대한 문제 앞에 어떻게 해결할까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때, 궁지에 몰려 빠져나갈 길이 없을때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십시오. 그러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라고 하신 야고보서 1:5절 말씀대로 지혜의 하나님께서는 문제 해결의 답을 주실 것이요 궁지에서 빠져나올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두번째로는, 왕이 다니엘의 요청을 받아 드린 것은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자들의 권세 때문입니다. 다른 경륜이 높고 왕과 오랫동안 지내왔기 때문에 왕의 마음을 잘 아는 박식한 학자들이 아주 논리적이고 명철한 방법으로 말하였지만 상황이 나아지기는 커녕 오히려 왕의 분노만 더 샀습니다. 그런데 이제 겨우 2년도 안된 초급학자 다니엘이말하자 그렇게 분노하였던 느부갓내살 왕도 신기하게 다니엘의 요청을 들어 줍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들의 Authority, 권세입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임재하심(Presence)로 말미암아 말이나 행동에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가 따릅니다. 마태복음 7:28-29절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라고 한 것처럼 주님의 기름부으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주님께서 주신 권세가 따릅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의 느부갓네살 왕이 다니엘의 요청에 순종한 것은 그가 말한 그 내용보다는 그의 입술을 통하여 나오는 말의 권세에 순종하여 허락한 것입니다. 아마도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의 말을 듣는 순간 이전에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 입술의 권세에 놀랐을 것입니다. 세상적으로는 그가 다니엘을 지배하였지만 영적으로는 다니엘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름부으심을 받은 자들의 영적 특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기름부으심, More Anointing, 더욱더 강한 기름부으심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굳게 믿지 않습니까? 위기가 닥쳤을 때 예수님께 맡기십시오.
우리 눈은 사진기의 조리개와 같아서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그 물체가 커보이기도 하고 작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사진기의 조리개를 맞추듯이 여러분들의 눈을 예수님께 맞추십시오. 그리고 문제를 자세히 보십시오. 예수님보다 더 큰 위기는, 문제는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십시오. 주님의 더욱다 강한 기름부으심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우리 주님은 피할 지혜를 주실 것이요, 능히 이겨낼 권세를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능력과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흑암의 세력들이 물러가고 귀신들이 도망칩니다. 환난 중에라도 심지어는 죄악중에라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모든 위기와 환난을 능히 이겨낼 능력과 권세를 주실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위기의 삶을 사신 분을 하나 소개합니다.
지금 교황의 바로 직전 교황 바오로 2세입니다. 그 분의 생애를 그린 “Have No Fear: 두려움을 갖지 말라” 라는 영화를 보셨습니까? 아직 안 보셨으면 꼭 한번 보십시오.
폴랜드에서 태어난 이 분은 어렸을 때에 어머니를 잃습니다. 별로 자상하지 못하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던 그는 정말 깊은 실의에 빠집니다. 어린 나이에 정말 큰 위기였습니다.
장례식을 마친후 이사하여 그 슬픔을 겨우 이겨내며 열심히 공부하는데, 청소년기에 의대에 다니던 하나 밖에 없던 형이 죽습니다. 이 또한 극복하기 힘든 위기였습니다. 형의 유품 속에서 나온 성경을 그때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으면서 위로를 받게 됩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축구를 하였고 또한 연극에 취미를 얻어 열심히 연극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같은과 여학생과 교제를 하면서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며 행복한 나날을 냅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깐, 또 하나의 커다란 위기, 2차 대전이 일어납니다.
독일군이 폴랜드를 점령하면서 온 나라는 쑥밭이 되어 갑니다. 친구들은 징병을 당하여 군에 끌려가고 참혹한 삶을 살아 갑니다. 그가 다니던 학교는 폐쇄되었고 사랑하는 그녀와도 영원히 헤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 마져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 세상에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가난과 고독과 언제 독일군에게 징병을 당할지 모르는 위기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 갑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수도원에 들어가 은거하면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수도원에서 비밀리에 신학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다시 로마로 유학하여 신학박사가 된후 고향으로 돌아와 주교가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교황이 됩니다.
교황이 된 얼마후 이탈리아 청년이 암살을 시도합니다. 총알은 복부를 관통하였지만 다행이 심장을 1인치 차이로 벗어나 생명은 건졌습니다. 그는 자기를 쏜 그 청년을 찾아가 용서하여 주었습니다.
그 뒤 필리핀을 방문하였을 때에는 테러들이 연설장에 폭탄을 터뜨려 암살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폭탄은 연설장으로 옮겨가기 전에 터져버렸습니다. 그 뒤 필리핀에 재차 방문하고자 하였는데 갑자기 취소하였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때 방문하였더라면 테러들이 완벽하게 암살준비를 하였었기 때문에 그는 틀림없이 암살을 당하였을 것입니다.
이처럼 그는 어렸을 때부터 여러번 위기를 당하였고 심지어는 교황이 된 후에도 끊임없이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권고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We are the Easter people and hallelujah is our song. 우리는 부활의 백성이요 할렐루야가 우리의 노래다.” “Do not be afraid. Do not be satisfied with mediocrity. Put out into the deep and let down your nets for a catch. 두려워 하지말라. 적당주의에 빠지지 마라.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부활의 백성입니다. 거대한 위기가 쓰나미처럼 달려와 삼키려 하여도 “풍랑아 잠잠하라 고요하라” 명하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외면의 풍랑은 물론 내면의 풍랑까지도 잠잠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십시오. 수심이 깊다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풍랑이 거세다고 겁내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지금 깊은데로 가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물을 던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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