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 18

무너지는 예루살렘(단1:1-2)

Posted by on Sep 18 2012 at 08:36 pm

                                                           September 10/2012
지금은 과거 그 어느때보다도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기가 힘든 때인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물질 문명과 과학의 발전으로 성경의 권위가 점차 무너져 왔습니다.  그리고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전으로 리더들의 사생활이 공개되면서 영적 지도자들의 영적 권위가 그 어느 때 보다도 상실되어만 갔습니다.  그리하여 교회들은 위축되고 기독교가 사회에 주는 영향력은 갈수록 약화되어 갔습니다.

그 반면에 모슬렘의 부각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영적 전투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라마단 기간동안 특별 기도라면서 미국의 심장부인 맨하탄 한거리에서 그것도 가장 분주한 점심시간에 모든 통행을 가로막고 길거리에 엎드려 있습니다.  만일 우리 크리스천들이 그렇게 했더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도 수백명의 경찰들이 와서 즉각 해체시키고 통행방지및 불법집회라 해서 지도자들을 체포해 갈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예수님께서 다시오실 날이 가까워지니까 사단이 먼저알고 더욱 설친다는 것입니다.  사단 숭배자들은 목사와 교회들이 무너지도록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신앙인들과 목회자들 그리고 교회들이 무너져 내립니까?  믿는자들의 가정이 파괴되고 하나님께서 주인이신 교회가 하나님의 음성 대신 사람들의 혈기부리는 소리만 들리는 곳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멀쩡한 교회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이단에 넘어가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기독교 역사상 제일 먼저 이단 시비가 일어났던 것은 예수님이 사람이냐 하나님이시냐 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두고 오랜 세월 동안 기도하고 논쟁하면서 피비린내나는 싸움도 일어났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예수님은 온전한 하나님이시며 온전한 사람이다 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이로써 그간 논란의 여지가 계속해서 잔재하였었던 삼위일체론이 정립됩니다.

그 다음으로는 구원에 대한 것,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는 것이냐, 구원을 받은 증거는 무엇이냐 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억지 선행을 하였고 더욱 열심히 일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지본주의가 시작되었고 마침내는 산업혁명을 가져왔다고 Max Weber 같은 사회학자들은 주장합니다. 그리고 죄인이라는 죄의식과 구원받고 싶은 인간의 연약함을 이용하여 성직자들은 곳곳에 전시장을 만들어 놓고 예수님께서 직접 잡수신 마리아의 젖이라 그리고 예수님께서 직접 지신 십자가라 하여 팔았습니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그 어느 짓도 서슴지 않다가 마침내는 면죄부까지 팔아먹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되지 않습니까?

이제는 마지막으로 종말론에 대한 이단 시비입니다. 특히 17세기 영국에서부터 시작된 Limited Apocalypticism, 소위 말하는 시한부 종말론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일은 Elizabeth 라는16살의 영국 소녀가 어느날 입신체험을 하면서 환상을 보았는데 예수님께서 언제 오시겠다고 알려 주셨다고 교회에 와서 간증을 합니다.

그 간증을 듣고 그 교회 목사님을 중심으로 사람들은 성경에 나온 숫자와 상징적인 단어등을 연구하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을 계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주님께서 오실 날을 막연히 기다렸지 아무도 계산해 낼 아이디어가 없었는데 이 소녀로 말미암아 종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뉴욕에서는 Miller 라는 사람이 일어나 온 나라를 뒤흔들게 됩니다.  침례교 평신도 사역자였던 그는 성경에 나오는 상징적 단어들과 다니엘서 나오는 숫자(날짜)들을 연구하면서 서로 연결하여 마침내는 에수님께서 언제 오실 것이라는 것이 성경에 기록되었다고 설교하고 다녔습니다.  해를 거듭하면서 여호와증인의 창시자 Russell 등 수많은 사람들이 따랐고, 온 나라는 주님의 다시오심에 들떠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정확한 날짜를 정하지 않았지만 그의 추종자들의 압력으로 결국 다니엘서 8:14절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 를 근거로 주님께서1844년 11월 22일에 오신다고 선포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날 주님께서는 오시지 않았고,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 증인의 창시자 Rusell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고 각기 다른 노선을 갖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한부 종말론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계속해서 Miller를 따르게 되었고, 여호와 증인의 Rusell등은 다른 방식의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Russell 은 주님께서 캘리포니아 Long Beach 로 재림하실 것이라 믿고 그 곳에 아주 화려한 별장을 짓게 됩니다.  그런데 그가 예정한 날짜에 주님께서는 오시지 않았고, 그의 추종자들은 그가 죽자 그 별장을 즉각 팔아 없애 버렸습니다.

이러한 실수와 과오를 거듭하면서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자기들의 이론을 보완하고 더욱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믿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012년과 2013년은 아마도 종말론, 특히 시한부 종말론 자들에 의하여 현혹되는 사람들이 그 어느 때 보다도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이미 마야 달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습니다.
서기 3세기경에 지금의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와 과테말라에 걸친 큰 나라를 일으킨 마야제국은 천문학과 수학이 특별히 발달하여 수준 높은 문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태양신을 섬기던 그들은 농사를 위하여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달력에 2012년12월 21일은 태양이 가장 짧게 비치는 동지로써 이 날에 종말이 올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Doom’s Day에 은하수 중앙에서 우주의 모든 것을 빨아드릴수 있는 힘이 있는 검은 태양이 떠오를 것인데, 이 검은 태양을 우주의 어머니 혹은 “검은 구멍” 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주에 불랙홀이 있다는 것이 발견된 후로는 이 달력의 신빙성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상형문자를 해석한 인류학자(Anthropolgist)들의 해석은 다릅니다. 그들이 달력을 2012년 12월 21일까지만 만든 것은 인류의 종말이 오기 때문이 아니라 그 때가 되면 자기들보다 훨씬 더 발달된 문명이 생길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들의 달력은 더 이상 쓸모가 없을 것이다 라고 판단하여 그 날까지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들이 말한 종말의 날이 오기 훨씬 전인 서기 900년경에 갑자기 그 제국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한때에는 수백만명이 모여살던 그 당시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최고의 문명을 자랑했던 이 정글 도시가 그렇게 하루아침에 무너집니다.  자기들의 왕국은 영원하리라고 믿었는데 그렇게 어이없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외적의 침입이나 전염병등이 아니라 가뭄이라는 것이 정설로 받아드려지고 있습니다.

그 도시국가 안에는 가뭄을 대비한 4개의 큰 저수지가 있었는데 그 당시 화석을 분석하여 본 결과 강수량이 여러해를 거쳐 약 15% 감소하였다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날마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향하여 비를 달라 울부짖으며 숫쳐녀의 목을 쳐 그 피를 그들의 신에 바쳤지만 기다리던 비는 오지않고 저수지의 물은 말라만 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뭄의 원인은 살림훼손이라고 최근 콜롬비아 대학 연구팀은 발표했습니다. 도시가 커지면서 사람들은 나무를 베어 더 크고 높은 집들을 짓기 시작하였고, 정글에 나무가 사라지자 결국은 기후 변화 특히 강수량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농사를 더욱 많이 지어야 했고 식수도 더욱 많이 필요로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은 물 때문에 집단살인이 일어났고 마침내는 종말을 가져 온 것이라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발달했던 문명, 태양계의 움직까지도 철저하게 관찰하여 그 당시 아주 탁월한 달력을 만들어 냈지만 정작 기후변화에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은 믿기 힘든 현실입니다. 그 당시 그렇게 발달된 수학으로 수로를 개설하여 강물은 끌어드릴 수는 없었을 까요? 물이 좀더 많은 지역으로 이주하지는 못했을 까요? 좀더 직설적인 질문은 태양계는 물론 은하계의 행성운동까지 정확하게 관측하고 또한 비가 오게도 안오게도 할수 있는 오늘날 과학을 무시하고 태양과 별자리 움직임을 보고 1400여년전에 만들어낸 이 달력을 믿을 것이냐 입니다.

또 다른 종말론은 점성술가들과 천문학자들에 의하여 시작되었습니다. 일부 천문학자들은 Grand Cross 라 해서 2012년 12월 21일에는 태양과 지구, 그리고 은하계 중심이 일직선이 될 것이라 주장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매 2만 6000년을 주기로 일어나며, 그 때마다 천체의 변화로 인한 지구의 자기장과 중력의 변화로 천재지변이 일어나 인류가 멸종을 당했었을 것이라 주장합니다.

그런데 농사 짓는 사람들은 과일들이 이 때가 가장 건강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며 기대에 차 있습니다. 특히 술공장을 하는 사람들은 이 때 열린 포도로 담은 술이 가장 좋은상품이 될 것이라며 오히려 반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심리를 이용하여 술장사들은 몇년 후에 금년도 산 포도주와 내년도 산 포도주를 가장 비싸게 팔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가 하면 천문학자들은 2004MN4라 명명한 행성이 지구를 향하여 약 17000Kim/hour로 달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속도로 온다면 2015년쯤에는 지구와 충돌할 것이라 예측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것이 지구와 충돌하게 되면 지구 전체 표면이 멍석을 걷어 올리듯 두르르 말리는 “지각해일”이 일어나 여기 저기서 화산이 폭발할 것이며, 팽이 돌듯 도는 지구의 축이 바뀌어 지구가 거꾸로 돌지 옆으로 돌지 예측을 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달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것이며 지구도 공전궤도를 이탈하여 다른 행성에 부딫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미 항공 우주국은 여기에 대체할 방법을 마련해 놓았으므로 염려할 것은 아니다고 합니다. 이 행성이 정말 지구에 부딫힐 지는 그리고 부딫힌다면 어느 곳에 부딫힐지는 좀더 기다려 보아야 할 것이며, 설령 부딫히게 된다 할지라도 좀더 가까이 오면 대기권으로 들어 오기 전에 로켓을 쏘아 해결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고 2015년까지는 앞으로 시간이 있으니까 그 때가면 더욱 발전된 방법이 개발 될 것이기 때문에 염려할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종말은 그런 곳에서 오지 않고 사람들이 종말을 만들 것 같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아프가니스탄 과 이라크 전쟁은 유대교 플러스 기독교와 이슬람교와의 종교전쟁이었고 이슬람 교도의 패망으로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도 복음이 전해졌고 마침내는 터어키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면 주님께서 오실 것이라며 많은 기독교인들이 “Back to Jerusalem” 이란 슬로건을 내세우며 기뻐하였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예루살렘에서 부흥성회를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 직후에는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에 교회가 세워지고 매주 700여명이 모여 예배를 드린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환희에 찬가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내에 있는 기독교인들은 전쟁 전보다 훨씬 심한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이슬람 교도들이 정권을 장악한뒤 기독교인들에게 얼마나 극심한 학대를 가하는지 터어키와 시리아로 피난간 기독교인들이 연일 줄을 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슬람 교도들의 기독교와 유대교를 향한 감정은 날로 심각해지고 결국은 종말 전쟁으로 치닫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후예들인 이란의 군사기지, 특히 핵무기 개발 시설을 금년 11월 대통령 선거 전에 폭파하겠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오바마가 재선될 가능성이 좀 희박해지니까 오바마 정책에 전면 도전하면서 압력을 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한다면 “총 유권자의 3%를 차지하는 우리 유대인들을 좌시하지 마라, 대통령을 또 한번 하고 싶으면 우리 말을 들어라” 는 멧세지입니다.
그것을 놓칠세라 몰론교도인 공화당의 롬미 후보는 유대인들의 표심 잡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습니다.

여하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면 미 지상군이 투입되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주한 미군 중에서도 일부 병력이 그 쪽으로 차출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는 가장 중요하게, 이 틈을 북한이 이용하여 남침해 올 가능성이 그 어느때보다 높아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한반도에서 남북한이 아니라 인류의 종말을 고하는 미, 중, 소의 전쟁이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의 계획은 어떠신지 잘 모르지만, 이 외에도 지구의 종말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는 얼마든지 많습니다. 그러므로 그 날이 언제일지 우리 당대일지 다음세대일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다가오는 이 종말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며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집안 식구중에 그리고 주변의 친구들로부터 먼 곳에 있는 사람들까지 예수 안믿는자들에게 속히 복음을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다시오심이 심히도 가까워진 이 때에 어떻게 다시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까 라는 마음속의 부담감이 많았습니다. 그리하여 이번주부터 다시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마음에서 요한 계시록과 함께 종말론에 주로 인용되는 다니엘서를 가지고 말씀을 같이 나눌 것입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다니엘 서는 성경의 다른 책에 비하여 난해합니다. 성경을 이해할 때 디음과 같은 3가지의 방법이 사용된다고 언젠가 말씀을 드렸을 것입니다:

첫째로는 Literal Translation 이라해서 문자적인 해석입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방법으로서 성경을 이해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 문자 뒤에 숨어있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 방법만 가지고는 성경을 깊고 폭넓게 이해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39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하셨습니다. 정말 뺨을 대라는 의미도 되겠지만 부끄럼, 아픔, 손해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Allegorical Interpretation 이라 하여 상징적인 의미만 찾는 방법이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자적인 의미나 역사적인 사실은 무시하고 상정적인 의미만 찾으면 본래의 의도와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릴 것입니다. 특히 상징적인 의미가 많이 사용된 요한 계시록을 이해할 때 당시의 정치적 경제적인 상황이나 문자적인 해석은 무시하고 참으로 기발한 생각을 주장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징적인 의미만 찾는 분들에게 어떻게 그런 발상이 나왔느냐고 하면 대부분 “기도하는 중에 주님께서 알려 주셨습니다” 라고 답변합니다.
글쎄요 정말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자기 상상이 거기까지 미쳤는지는 분간하기 힘들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역사적인 근거, 당시 문화적,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인 상황등을 고려한 좀더 종합적인 해설을 Typological Interpretation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바울 사도께서 사라와 하갈의 관계와 율법과 예수님, 이방인들을 향한 할례와 음식법등을 해설하실때 이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1-6장은 역사적인 해설이요 7-12장은 다니엘이 받은 꿈과 환상및 예언인 만큼 상징적인 단어나 표현들이 많이 등장하는 다니엘서도 이 Typological Interpretation이 빈번히 사용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장황한 설명을 드렸는데, 조금은 학술적인 설명일지는 모르지만 이렇게 해석하는데 있어서 확실한 테두리를 정하여야지 근거없는 주장이나 이단적인 해석을 배격할수 있기 때문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저 나름대로 기도하면서 많이 연구하여 말씀을 준비하니까 앞으로 제 설교를 메모해 두시면 다니엘서의 주석이 될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서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통하여 이방민족에게 어떻게 복음을 증거하게 하셨는지 깨우치게 될 것입니다.

그럼 다니엘서를 시작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은 나의 심판자”(God is my Judge), 또는 “하나님은 심판자이시다”(God is Judge)란 뜻입니다. 다니엘의 어린 시절이나 그의 부모님들이 언급되고 있지 않지만, 아마도 그는 제사장이나 귀족 출신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의 화려했던 예루살렘 삶은 바벨론의 침공으로 말미암아 끝이나고 전쟁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잡혀왔습니다. 아마도 그의 부모님들이나 나머지 식구들은 바벨론 사람들에 의하여 희생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여하튼 그의 새로운 삶은 바벨론에서 시적 되었고, 다니엘서 역시도 그이 바밸론 포로생활에서부처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인 다니엘 1:1-2절의 역사적인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원전 23세기경에 바벨론이라는 아주 강력한 나라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세워집니다.

그리고 지금의 인도에서 아프가니스탄, 이란, 이라크, 유럽, 소아시아와 중동지방에 걸친 대 제국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한 때에는 세계 최 강국이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법전중의 하나인 하무라비 법전등을 자랑하는 고도로 발달된 문명국이 세월이 흐르면서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자연히 여러 곳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마침내는 그 반란군들을 규합한 앗시리아가 일어나면서 대부분의 바벨론 영토를 장악하게 됩니다. 그렇게 가물가물 명맥만 이어가던 바벨론이 기원전 6세기에 앗시리아가 약해진 틈을 타 바벨론이 다시 패권을 차지하게 됩니다. 특히 기원전 627-605년까지 22년간 바벨론을 통치해왔던 바벨론 왕 나포폴라살은 기원전 612년에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함락시킴으로 바벨론은 명실공히 또다시 세계 최대의 강대국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니느웨를 빼앗긴 앗수르 왕은 나머지 병사들을 데리고 급히 하란으로 피하게 됩니다. 한편 앗수르의 수도를 장악한 바벨론의 나포폴라살은 1년동안 군사를 정비한 후에 다시 하란에 있는 앗시리아 군대를 공격하게 됩니다. 하지만 앗수르 군사들도 완강하게 버팁니다. 1년 이상이 지나도록 하란이 정복되지 않자 나포폴라살은 그 당시 신흥국가로써 우리 성경에 메대라고 쓰인 미디아라는 나라와 손을 잡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하란에 있는 앗시리아 군대를 쳐 기원전 610년에 앗수르 군사들을 하란에서 격퇴시킵니다. 그러자 앗수르 왕은 이번에는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서 도주하면서 이집트에 원병을 요청합니다.

그 소식을 들은 애굽 왕 느고 2세가 앗수를 돕기 위해 애굽에서 출정합니다. 그리고 역대하 35:20-23절에 “이 모든 일 후 곧 요시야가 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애굽 왕 느고가 유브라데 강 가의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온 고로 요시야가 나가서 방비하였더니 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가로되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뇨 내가 오늘날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로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를 명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리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노라 하나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변장하고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활쏘는 자가 요시야 왕을 쏜지라 왕이 그 신복에게 이르되 내가 중상하였으니 나를 도와 나가게 하라” 라고 하였습니다. 기원전 609년에 유다 땅 므깃도에서 일어난 참으로 슬픈 사건입니다.

자기 믿음만 내세우며 무모하게 나아가다가 멸망을 당하게 되는 우리 믿는자들에게 좋은 교훈이 되는 사건입니다. 요시아가 죽은 후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유대의 왕으로 추대됩니다.

한편 유다와 전쟁하느라 시간도 빼앗기고 병력도 다소 잃었지만 이집트의 왕 느고는 앗수르왕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나머지 병사들을 이끌고 북상합니다. 그리고 앗수르병사들과 연합하여 바벨론과 싸웠지만 기원전 605년에 갈그미스에서 참패를 당하고 맙니다. 그리고 이집트는 이 전투를 마지막으로 그때까지 지배해왔던 팔레스타인 지역의 주도권을 빼앗긴후 점차 약화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여하튼 바벨론에 참패를 당한 애굽왕 느고는 애굽으로 퇴각하는 중에 예루살렘에 들려 화풀이를 합니다. “유다왕 여호아하스를 잡아다가 립나에 가두고 벌금을 잔뜩 물렸으며, 엘리야 김으로 대신 왕을 삼고 여호아하스를 애굽으로 잡아갔더니 그가 거기서 죽었다” 라고 열왕기 하23:31-35절은 기록하였습니다.

한편 전쟁에는 승리를 하였지만 바벨론 왕 나포폴라살 역시도 이 전투에서 전사합니다. 그러자 나포폴라살의 아들이며 유대인들에게는 가장 치욕을 당하게 하였고, 기원전 605년에서 562년까지 자그만치 43년간을 통치했던 그 악명높은 느부갓네살이 병사들을 이끌고 급히 옵니다. 그리고 곧장 그러니까 기원전 605년에 퇴각하는 애굽 병사들을 치기 위하여 팔레스타인으로 내려와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목인 예루살렘 성을 에워쌓게 됩니다.
이 때 애굽왕 바로는 이미 유다왕 야호아하스를 잡아 애굽으로 내려간 상태였습니다. 유다왕 여호와김의 항복을 받은 느부갓네살은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을 포함한 일부 유능한 젊은이들을 포로로 잡아 바벨론으로 끌고 옵니다.

이것이 바로 제 1차 포로 사건이며, 다니엘서 1:1-2절의 역사적인 배경입니다. 그리고 열왕기하 23장과 24:1절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여호와김이 죽자 그의 아들 여호야 긴이 유다 왕으로 즉위합니다. 그의 나이 겨우 18세에 왕위에 오른 그는 바벨론을 배반하고 조공을 바치지 않습니다. 그러자 애굽을 치기 위하여 아직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었던 느브갓네살은 곧바로 예루살렘에 들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첫번째보다 더욱 잔혹하게 죽입니다. 그리고 에스겔 서를 기록한 에스겔을 포함한 일부 귀인들과 제사장들을 여호와킴과 함께 포로로 잡아 바벨론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그의 아자비 시드기야를 유대 왕으로 추대합니다. 이것이 기원전 597년에 있었던 2차 포로사건이며, 이때 예루살렘 성전을 부수고 성전 기물들을 더러는 훼파하고 더러는 바벨론 궁으로 가져 갑니다.

11년 동안 바벨론을 잘 섬기던 시드기야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고, 또 다시 애굽과 손을 잡고 바벨론을 배반하게 됩니다. 그러자 화가치민 느부갓네 살은 이번에는 아예 유대 민족을 말살시켜 버리려고 수많은 사람들을 칼날로 쳐 죽이고 일부는 바벨론으로 데려다가 흩어 버립니다. 그리고 성전은 다시는 복원할수 없도록 불태워 없애버리고 성의 주거지는 완전히 초토화시켜 아무도 성안에 살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원전 588-586년에 일어난 3차 포로사건입니다.

이렇게 해서 예루살렘은 무너져 내리고 유다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지은 성전, 이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는 것을 목격한 유대인들은 정말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됩니다.

솔로몬 이후로도 오늘날로 말하면 우상숭배와 혼합된 형태의 산당제사가 성행했는데 역대 믿음이 좋은 왕들은 이 산당을 허물고 산당제사를 철저하게 막았습니다. 그러면서 오직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드리는 제사만이 하나님께서 받으신다는 믿음이 그들에게 심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언약궤를 안치한 예루살렘 성전에는 항상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기 때문에 절대로 멸망을 당할수 없다는 믿음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루살렘 성전이 이방 원수들의 손에 의하여 약탈되고 훨훨 불에 타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메시야가 오셔서 이 무자비한 갈대아인들을 쳐 부수고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을 그렇게 바랐는데, 유대인들에게는 정말로 절망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을 포함한 타국에 살던 유대인들도 매 안식일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신다고 굳게 믿었던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으로 해외에서도 이 예루살렘 성전세를 꼭 바쳤던 것입니다. 그러던 이 예루살렘 성이 타 버렸다니 정말 아연실색하지 않을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에스겔, 후에 에스겔서를 기록했던 에스겔 선지자도 정말 아연실색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70년 후에는 예루살렘 성으로 되돌가 가게 해 줄것이라는 이사야 선지자와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을 굳게 믿고 소망가운데 포로생활을 견디고 있는데 이제 그 성전이 무너졌으니 소망이 끊긴 것입니다.

그래서 절망 가운데 바벨론의 그발강에 나왔던 에스겔, 겔 1:1 제 삼십 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하늘을 향하여 탄식을 하는데 갑자기 예루살렘 성전을 비취던 하나님의 영광이 휙 날라와 자기 앞에 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너무도 깜짝 놀란 그는 너무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죽은듯 그 자리에 엎드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통곡하는 에스겔을 통하여 당신의 영광은 건물 안에 거하지 않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찾는 가운데 항상 계신다는 것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 때까지 하나님 보다는 예루살렘 성전을 믿었던 그리하여 성전이 우상이 되었던 그들의 그릇된 신앙을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받은 환상을 중심으로 기록한 것이 바로 에스겔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붕괴는 우리 믿는자들에게 큰 교훈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처럼 우리가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 하나님보다 더욱 의지하는 것들, 우리의 우상들을 무너뜨립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아집이 무너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외에 확신에 선 것들이 불타 없어져야 합니다.

혹시 마음속에 예루살렘 성전을 지니고 있으십니까? 이 시간 우리 마음속의 우상들을 버리십시다. 하나님보다 더 믿고 의지하는 것,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들, 그것이 물질입니까? 건강입니까? 명예와 직위입니까? 그것들은 예루살렘 성전처럼 언제든지 무너지고 불타 버릴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 시간 마음속에서 그것들에 대한 믿음을 지워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직 주님만 의지합니다 라는 고백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