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13

그 날에(On that day) (말라기 4:1-3)

Posted by on Aug 13 2012 at 12:54 am

                                                                                          August 12/2012

여러분들은 일생에 가장 좋은 날이 있으십니까?
어떤 사람들은 홍콩에서 배가 오는 날이 제일 좋은 날이라고 하던데 혹시 기다려지는 날이 있으십니까?
저는 홍콩에서 배가와도 아니 홍콩에서 비행기가 와도 별볼일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The best is yet to come, 가장 좋은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아니 오고 있는 중이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 믿고 구원 얻은 자들에게는 가장 좋은 날,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지금 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일생에 가장 나쁜 날, 가장 고통스러웠던 날, 가장 수치스러운 날, 가장 후회스러운 날을 기억하십니까?
그런 날이 이미 지나갔으면 좋겠지만, 그것 역시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얼마나 잘 믿고 사느냐에 따라 달려 있겠지요.

오늘 본문 말라기 4장 1-3절은 우리의 일생에 가장 기쁠 수도 있고 가장 슬프고 고통스럽고 후회스런 날도 될 수 있는 바로“그 날”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원래 히브리 성경에 말라기는 3장 24절로 되어 있었는데, 후에 편집자들이 3:19-24절까지 이 6개의 구절을 잘라서 4장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이 6개의 구절이 특히 중요하고 말라기 서의 핵심이라 생각되기에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러한 배경을 두고 오늘 본문의 그 날은 어떤 날인지, 그 날이 오면 어떻게 되는지 같이 알아보며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여호와 하나님게서 정하신 그 날이 반듯이 온다는 것입니다.
본문 4:1절에“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하였는데 1절 한절에도 “풀무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하였고 “그 이르는 날이”하였듯이 그 날에 대하여 두 번씩이나 언급하고 하였습니다.

말라기가 기록될 당시에는 종이가 없고 아주 귀한 양피지로 대신하였기 때문에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최대한으로 줄여 썼습니다.
그러므로 한 구절에 두 번씩이나 되풀이 된 것은 이 말이 아주 엄청나게 중요하기 때문에 아주 엄청나게 강조한 것입니다.

성경에 “그날, the day of the Lord” 는 총 25번이나 나옵니다.
그리고 그 날은 주님께서 심판하시러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을 의미하는데, 정확히 어느 한 날이라기 보다는 어느 기간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 기간이 하루도 될 수 있고, 한달 이 될 수도 있고, 10년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심판 날이 곧 올 것이요, 그 날을 아무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25번씩이나 거듭 경고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날에, 심판 날에 대하여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런 말을 듣기 싫어합니다.
여기에 또한 시한부 종말론자들에게 몇 번씩 속은 경력이 있기 때문에, 막상 그 날이 닥치면 늑대에 물려간 소녀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저는 염려합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우리 민족이 겪은 과거의 상처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뜸북 뜸북 뜸북 새, 비단구두 사러 서울 가신 오빠를 기다리던 소녀는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 저녁에 솔베이지 노래를 흐느껴야 했습니다.
섬마을 총각 선생님 역시 서울에 가서는 편지 한 장 없었습니다.
새치기 하지 않고 기차표 사러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다가 차를 놓치면 착하고 정직한 사람이 아니라 바보취급을 받아 왔습니다.
자기 차례를 기다리면 자기 몫이 와야 하는데 기다린 보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급기야는 앵두나무 우물가의 아가씨들이 무작정 상경하는 극단적인 행동이 나오더라고요.
그리하여 우리 민족의 정서를 대변하는 가요들 중에 “고향”을 주제로 한 노래가 가장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기다리지 못하는 우리의 정서가 우리 신앙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부인의 추모예배 때“이제 저 천국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며 남은 생애 주님 안에서 복된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취지로 설교를 했더니, 남편 되시는 집사님의 말씀“한번 죽으면 끝입니다, 살아 있을 때 잘들 하시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아멘”으로 받아 드리더라고요.

천국이 있는지 없는지, 죽어서 다시 만날지 못 만날지는 그때 가 보아야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선 살았을 때 재미있게 즐겨보자는 것 아닙니까?
이러한 분위기 속에 언제부터인가 우리 신앙은 미래 지향적이지 못하고 현실주의가 되어 버렸습니다.
오늘 잘 먹고 건강하게 잘 살려고 예수를 믿는 것이지, 천국은 안중에 없는 분들이 오늘날 교회 안에 많다는 것입니다.

Newsweek 지 4월 9일판 표지에 “Forget the church Follow Jesus, 교회는 생각하지 말라, 예수님을 따르라”라는 주제로 오늘날 기독교의 허구성에 대한 논술을 하였습니다.
그런대 그 내용이 우리 대한민국 교회들의 문제를 파헤치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뜨끔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오늘날의 교회가 너무나 상업화 되었고 상술화 되었고 기업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Prosperity Theology라는 이론을 내세우며 돈과 결탁하여 예수님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말로는 번영신학이라 소개된 Gospel of Prosperity 혹은 Prosperity Theology가 우리나라에도 전염병처럼 완전히 퍼져버렸습니다.
그들은 “부자로 사는 것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관계 회복하는 것이 병을 고치고 부자가 되는 길”이라 가르칩니다.

이들은 또한“물질은 예수님의 몸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으십시오, Seed your money today, and let it grow.
왜 교회를 다닙니까? 왜 교회에 헌금은 합니까?
당신은 종교 영에 사로잡혀 있는데 기성 교회의 종교 영(Religious Spirit)에서 벗어나십시오”라며 기성교회를 비판합니다.

물론 예수님 열심히 잘 믿어 건강하고 부자로 재미있게 살아야지요.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원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건강하고 부자가 되는 것은 복음, 좋은 소식의 본질이 아닙니다.
좋은 소식의 근원은 유왕겔리온 이라는 헬라어에서 왔는데, 이 단어는 황실에 경사가 낫을 때, 예를 들면 전쟁에서 승리하였을 때, 자기 대를 이을 왕자가 태어났다든지 왕자가 신부를 맞아들이는 등의 경사가 낫을 때 국가적인 경사로 선포하고 황제가 백성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하사할 때 쓰던 용어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사도께서 이 “좋은 소식”이라는 용어를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복음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독교가 널리 퍼지기 시작하면서 결국은 교회 용어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죄를 다 감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돌아 가셨으니 누구든지 그 사실을 믿고 죄 용서를 구하면 구원을 얻게 된다 는 진리입니다.
부자가 되고 건강한 것은 우리가 믿음생활을 열심히 잘 할 때 따라오는 부수적인 축복입니다.
그런데 번영신학의 잘못은 건강하고 부자가 되는 것이 복음의 본질인 양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신 것은 나누어 주라고, 주는 대로 움켜쥐어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어서 하나님의 복이 온 백성에게 고루 퍼지라고 아브라함에 부어주신 것입니다.

여하튼 이 번영신학의 가장 큰 잘못은 종말론 사상을 흐리게 한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로마의 박해와 궁핍함에 살기가 나무 힘들어“마라나타, 주여 속히 오시옵소서”가 그들의 주된 기도제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예수 믿어 잘 먹고 잘 살아보자”가 되었으니 누가 예수님 오시기를 좋아합니까?
“예수님, 이 세상이 너무 좋으네요. 이 청춘이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좀 더 즐기다가 살만큼 살면 그 때오십시오”라고 기도하지는 않으십니까?

둘째, 그 날은 세상이 심판을 받는 날입니다.
1절 중간에,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반듯이 온다고 하였는데 이 날은 풀무 불과 같이 준엄하고 무시무시한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심판 날에“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라고 하였는데,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들을 시뻘건 쇳물 위에 파랗게 타오르는 풀무 불에 마른 풀을 던지듯이 준엄하게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요즘에야 트랙터가 다 하지만, 벼는 볏 집을 사용하려고 줄기 채 베어서 모아가지고 탈곡합니다.
그리고 그 볏짚으로 땔감도 하고 가마니도 짜고 마대부대도 만듭니다.
하지만 보리나 밀은 줄기를 사용하기 힘드니까 줄기는 놓아둔 채 알곡만 자르거나, 대충 한데 모아서 곡식만 털고 거기에 불을 질러 모두 태워 버렸습니다.
그러면 그 열기에 줄기는 물론 뿌리까지 다 타 없어집니다.
그리고 짚을 태우면 재가 많이 쌓이는데, 보리나 밀대는 대가 텅 비어있기 때문에 태워도 그 자리가 시꺼멓게만 될 뿐 재가 거의 없습니다.
이처럼 교만한 자나 악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교만한 자는 자기 자랑하는 자들도 포함되지만, 특히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 중심이 아닌 Self-centered,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믿었지만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의 경험과 지식으로 판단하고 행하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또한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거슬려서 행동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사람을 죽이거나 음행에 빠진 자들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며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등 하나님의 뜻을, 성경 말씀을 거슬려 사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요엘 선지자는 2:11절에“여호와께서 그 군대 앞에서 소리를 발하시고 그 진은 심히 크고 그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하였듯이 그 날은 아주 끔찍한 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사야 13:9-10절에 “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 냄과 맹렬히 노하는 날이 임하여 땅을 황무케 하며 그 중에서 죄인을 멸하리니 하늘의 별들과 별 떨기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취지 아니할 것이로다” 하였고,
요엘 선지자는 2:30-31절에“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하였듯이 교만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그 날은 아주 어두운 날이요 공포의 날이 될 것입니다.

이사야 13:6절에 “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으니 전능 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하였듯이 그 날은 멸망의 날이요 슬픈 날입니다.
그리고 그 날은 운명의 날입니다.
운명의 그 날이 다가오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그 날을 늦추고 계십니다.
베드로 후서 3:9-10절에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라고 하였듯이 하나님께서 은혜를 더 하시 사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후서 13:5-6절에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우리가 버리운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 하였듯이 이 말세에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까지 흔들리지 않는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축복을 주십니다.
2절에,“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의로운 해는 요한복음 1:3절의 말씀처럼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합니다
그 의로운 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를 쏟으시며 병든 세상에 치료의 광선을 발하여 세상을 치료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치료의 광선이 지금 우리에게도 비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어두운 그늘이 사라지고 걱정근심이 떠나고 마음의 아픈 상처들이 치료되는 주님의 강한 치료의 광선이 지금 우리에게 비치고 있습니다.
아픈 다리가 고침 받고 팔의 고통이 사라지고 우리 몸 속의 질병을 일으키는 모든 세포조직들이 불타 없어지는 치료의 광성이 지금 우리에게 비치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 놓여있는 감당하기 힘든 문제들, 생각만 하여도 심령이 상하고 자신을 고통으로 밀어 넣는 문제들이 온전히 해결되게 하시는 치료의 광선이 지금 저와 여러분들에게 비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하였는데, 소 키워보신 분들 계십니까?
목장이 아니라 집 한 구석에 만든 소 한 마리가 겨우 들어갈 만한 침침한 외양간 말입니다.
그러한 외양간에 소를 매어두면 소도 참 답답해 합니다.
어미 곁에 있는 송아지도 답답하여 마지 못하여 고개를 푹 쳐박고 잠만 잡니다. 그러다가 외양간 문을 열리고 고삐가 풀리면 밝은 광선이 비취니까 너무 좋아서 외양간 문을 박차고 나와 럭비 공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 법석입니다.

침침한 외양간에 갇혀있던 송아지처럼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아프며 혹은 병실에 누워 신음하시는 분들, 가정 문제로 자녀 문제로 경제적인 문제로 고민하며 Down되 있는 분들, 마음의 아픈 상처와 고통으로 심기가 불편하여 밖으로 나다니지 못한 분들, 지금 하나님의 치료의 광선으로 말미암아 온전히 고침을 받아 송아지가 좋아서 이리 뛰고 저리 뛰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 서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발하시는 치료의 광선으로 몸 속에 암세포가 죽고 지팡이나 휠체어에 의존하던 몸이 두발로 서서 걷고 뛰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은 “주님, 나를 도와 주옵소서. 나를 이 고통에서 건져내 주십시오”라며 골방에서 애통해 하지만, 주님께서 정하신 그 날에는 음매 음매 하며 기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송아지처럼 할렐루야를 외치며 걷고 뛰게 될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통하여 교만한 자와 악한 자들을 징벌하십니다.
3절에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축복하시고 교만하고 악한 자들을 징벌하시되 발바닥 밑에 재처럼 되게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강한 삼 줄도 일단 타고나면 약한 바람에도 흩날리는 재가 됩니다.
아무리 강하고 든든한 기둥도 불에 타고나면 발 밑에 깔리는 한줌의 재가되고 맙니다.
그 날에 주님께서 정하신 그 날에는 자금 내 앞에서 교만하게 향하는 자들, 악을 행하는 자들 모두 불타서 바람에 흩날리는 재,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재 같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도 잘 안 믿는 저들은 왜 저렇게 잘됩니까?
교회도 안 다니는 저 집은 사업도 잘되고 애들도 다 잘되는가?
각종 예배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하나님 열심히 섬기는 우리 집은 왜 이 모양인가?”불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불평하지 말라. 내가 정한 그 날에 내가 그들을 용광로를 끓이는 새파랗게 타오르는 불로 태울 것이다.
물론 그 재도 남지 않겠지만 타고난 설령 그 재가 남는다 할지라도 그것은 네 발 밑에 깔리는 재와 같을 것이다. 너는 그 재를 밟으면서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두려워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고 오직 나를 따르라.

그러므로 로마서 12:19절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주께서 말씀하시니라”하셨듯이 내 앞에서 내가 받는 고난을 비웃고 교만하게 떠들던 자들, 나의 믿음의 길을 막고, 나를 아프게 하고, 슬프고 서럽게 울게 만들던 사람들을 내가 보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내 발에 밟히는 재처럼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을 놓고 묵상하다가 오래 전에 보았던 드라마 상도가 생각났습니다. 임상옥이 송상 행수 박주명의 밀고로 누명을 쓰고 노비로 팔려가는 마당에 박주명 집을 찾아 그 앞에서 억울함을 호소하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호소가 받아드려 지기는커녕 오히려 내침을 당하자 내가 당신을 기어코 내 앞에 무릎 꿇게 하겠다며 그 집을 나섭니다.

임상옥은 온갖 고초를 당하며 고난의 늪을 헤엄칠 때 박주명은 고관 저택에서 호의호식합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십 수년 후에 죄가 탄로나서 노비로 끌려가게 됩니다.
하지만 그 소식을 들은 임상옥은 그를 불쌍히 여기고 도와 줍니다.
마땅히 보복을 당하거나 최소한 고소해야 할 임상옥이 자기에게 베푸는 사랑에 박주명은 스스로 무릎을 꿇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러한 사랑이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현실이 힘드십니까? 낙심될 때가 있습니까? 그대로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습니까?
저도 힘듭니다, 저도 고통스럽습니다. 마라나타, 가실 때 곧 오시마 약속하셨던 우리 주님께서 어서 속히 오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이 우리 곁에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제 곧 우리의 모든 고난이 기쁨이 되게 하시고 축복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 날을 바라보며, 그 날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바라보며 힘을 내십시다.
요한 계시록 21:4절에“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 하리니 처음 것이 다 지나갔음이라”약속하신 대로 주님께서 친히 우리의 눈물을 씻기실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시간 두 눈을 감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며 치료의 광선을 발하시는 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예수님의 그 치료의 광선이 지금 저와 여러분들에게 비치고 있습니다.
그 치료의 광선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의 어두운 그늘이 사라지고 걱정근심이 떠나고 마음의 아픈 상처들이 치료되는 주님의 강한 치료의 광선이 지금 우리에게 비치고 있습니다.
휠체어에 의존했던 아픈 다리가 고침 받고 막혔던 귀가 다시 열리며 허리의 통증이 사라지고 우리 몸 속의 질병을 일으키는 모든 세포 조직들이 불타 없어지는 치료의 광선이 지금 우리에게 비치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 놓여있는 감당하기 힘든 문제들, 생각만 하여도 심령이 상하고 고통으로 밀어 넣는 문제들이 온전히 해결되게 하시는 치료의 광선이 지금 여러분들에게 비치고 있음을 체험하시기 비랍니다.

그 치료의 광선으로 말미암아 육신의 모든 질병이 떠나고 온전히 고침 받았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치료의 광선으로 말미암아 감당하기 힘든 문제들, 생각만 해도 심령이 상하고 피하고 싶은 문제들이 해결되고 단절되고 불편했던 관계들이 회복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발하시는 치료의 광선으로 말미암아 가정이 회복되고 부부간의 관계가 회복되고 자녀들 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치료의 광선으로 말미암아 경제적인 문제들이 해결되고 마음의 상처들이 치유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는 치료의 광선을 발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침대에서 일어나시고 바닥에서 일어나시고 의자에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주는 의심과 불신에 눈을 감고 귀를 막으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 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외양간에서 뛰쳐나온 송아지처럼 할렐루야를 외치며 기뻐 뛰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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