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 09

Let My Sprit Go!

Posted by on Sep 09 2011 at 12:52 am

                                                                Let my spirit go

천문학자자 되고자 하는 건실하고 똑똑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 청년이 길을 가는데 쓰레기를 담은것 같은 조그만 종이백이 길가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줏어서 쓰레기 통에 담으려고 그 백을 집는 순간 갑자기 그 백이 폭발을 합니다.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떠보니 병원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른손 손가락이 모두 잘려나갔습니다.

청년은 절규했습니다. 길가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좋은 일을 하는데 왜 이런 피해를 당해야 합니까? 앞으로 손가락 없이 어떻게 평생을 산단 말입니까? 천문학자의 꿈도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죽고 싶었습니다.

범인은 뜻밖에 UC Berkeley의 천재 수학교수였던, MIT 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Ted Kaczynski 였습니다. 물론 그는 체포되어 형을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끊어 없어진 손가락이 다시 돋아나는 것은 아닙니다. 한 번 된일은 어찌할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범인에게 심한 형벌을 가한다 할지라도 그의 잘라 없어진 손은 회복될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살다 보면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자기의 잘못이 아닌 타인의 잘못으로 인하여, 혹은 타인의 고의적인 행위로 말미암아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아주 불공평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나면서 부터 불공평하게 태어나서 한평생 장애자로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이런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 그 분들은 어떻게 그러한 약점을 장점으로 바꾸어 인생을 승리로 이끌었는지, 혹은 그러한 치명적인 약점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보면서 은혜를 받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그 첫번째 인물 모세입니다.
1. Pitiful Fate      
모세는 이집트의 왕자로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누군지 알지 못하지만 그저 이집트 송주의 아들로 성장했습니다. 그는 매우 총명하였으며 당시 문명이 가장 발달하였던 이집트의 모든 학문을 배워 지식과 힘이 겸비된 훌륭한 장수이자 이집트의 유망한 왕자로 성장했습니다.

그는 당시 히브리 종들을 대거 투입하여 이집트의 스핑크스나 피라밋을 만들고 대 수로를 개설하는등 많은 토목공사와 건축공사를 추진하였습니다. 공사를 단 시일내에 잘 마치기 위하여 노예들을 혹사라기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훌륭하고 웅장한 공사를 하면서 여기에 투입된 많은 히브리 노예들이 사고로 인하여 희생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이 이집트 왕의 아들이 아니라 히브리 종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태까지 자기가 부리고 학대했던 히브리 종의 아들이라니, 이것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히브리 종의 아들이라면 자기 부모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형제는 없습니까? 언제 그리고 어떻게 이집트의 궁궐로 들어와 공주의 아들로 자라게 되었습니까? 자기 아버지 어머니가 히브리 노예였다면, 자기 아버지 어머니도 공사 현장에서 자기 채찍에 맞았을 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공사중에 사고로 죽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그는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2. Come Out From Comfort Zone
아무도 안전지대(Comfort Zone)에서 나오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전지대에서 나오는 것을 매우 두려워 합니다. 왜냐하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떄문입니다. 하지만 Comfort Zone 에서 나오지 않으면 아무런 발전도 없이 퇴보하거나 자멸하고 맙니다. 때로는 강제로 Comfort Zone 에서 쫓겨나기도 합니다.

모세는 너무 심한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여 안전지대인 궁궐 밖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자기 부모님이 거기서 심한 노역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노예 작업장으로 갑니다. 그런데 거기서 애굽의 노예 관리인이 히브리 노예를 학대하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 노예 관리인은 옛날 자기 밑의 관리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도 그렇게 학대하는 것을 지금까지 묵인하여 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신분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 모세는 그 장면을 보고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노예 관리인을 그 자리에서 쳐 죽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그 작업장에 갑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히브리 노예들끼리 싸웁니다. 노예 주제에 서로 도와가며 살아도 부족할 것인데 서로 싸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씨움을 중재하며 훈계를 하게 됩니다. 그러자 그 사람들이 모세의 말을 듣지않고 “네가 어제는 애굽사람을 죽이더니 오늘은 나를 죽이려느냐” 고 대듭니다. 졸지에 살인자로 몰린 모세는 그 길로 미디안 광야쪽을 향하여 도망칩니다.

Comfort Zone 애서 나온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그냥 궁궐에서 나오지 않았더라면 애굽의 왕이되었을 지는 모르지만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Comfort Zone 에서 나와야 합니다. 심히도 불안하며 치러야 할 댓가가 두렵지만 그래도 나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발전성이 없을 뿐만이 아니라 결국 타인에 의하여 밀어냄을 당할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3. 상처를 치유받으려면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애굽 사람들은 물론 지기 백성들로 부터 거절당한 모세, 그의 거절감에 대한 상처는 대단했습니다. 미디안으로 도망치다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치던 제사장 이드로의 딸 십보라를 만난 모세는 그집 데릴사위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십보라와 결혼하여 자녀들 낳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애굽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양떼를 이끌고 호렙산에 올라가 애굽을 쳐다 봅니다. 몸은 미디안에 있지만 마음은 항상 애굽을 떠나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꿈을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게 40여년을 보내던 어느날 불타는 떨기나무를 봅니다. 그리고 거기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신을 벗으라 하십니다. 지금까지 세상을 누볏던 그 신을 벗고 이제는 내가 지시하는 사역의 신발로 바꿔 신으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애굽으로 가라” 고 하십니다.

지금까지 침묵하셨던 하나님께 모세는 섭섭했을 것이고 화도 많이 낫을 것입니다.
자신이 아직 애굽의 왕자였을 때, 애굽 왕자로서 권세 그리고 젊었을 때의 그 끓는 열정으로 사역하였다면 훨씬 쉬웠을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권세도 돈도 없이 그리고 자기를 따르는 동역자도 하나없이 처가에 얹혀사는 신세입니다. 그리고 나이도 벌써 80이나 되어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만한 기력도 없습니다. 다 늙은 노인이 어떻게 자기 백성을 애굽의 식민지에서 구할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러므로 모세의 첫번째 반응은, “난 못합니다” 라며 거절합니다.

그리고 모세가 거절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살인범으로 몰아세운 자기 백성과 애굽 왕실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 생명을 찾던 자들이 모두 죽었다” 라고 하십니다. 결국 모세와 하나님과의 사랑싸움은 거기서 끝이나게 되고, 마침내 모세는 애굽을 향하여 길을 떠납니다.

자기의 실패의 자리 고난의 자리로 돌아온 모세, 거절감에 대한 상처가 되살아 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나님과 같이 왔습니다. 실패의 그 자리에 주님과 함께 왔던 모세, 주님의 사랑과 은혜와 Assurance 로 말미암아 치유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는 이제 과거의 모세가 아닙니다. 또 거절당하면 어떻게 할까 두려워 다가서지 못하는 모세가 아니라 거절 당할지 알면서도 애굽왕 바로에게 “Let my people go” 라고 요구하는 모세로 변화 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제 그 안에는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실패를 통해서든 성공을 통해서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기쁨 중에든 고통중에서든 하나님을 꼭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모세처럼 하나님과 함께 일어서시기를 바랍니다.

4.Go With Jesus and Proclaim – Let My Spirit Go
모세가 바로왕에게 :내 백성을 보내소서” 라고 하였을때 애굽왕 바로는 당연히 거절합니다. 물론 애굽왕이 거절하였지만 사실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출애굽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애굽에 꼭 매여서 헤어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애굽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노예생활이 무엇이 좋겠습니까? 하지만 이미 그 생활에 젖어들어가 살다보니 거기에 너무 익숙해진 것입니다. 이제는 애굽을 떠나면 불안합니다. 그러므로 애굽 왕은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도 출애굽을 싫어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꼐서 애굽왕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시사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떠나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모세가 그들 앞에서 이적을 베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애굽의 술객들도 할수있는 것으로 시작하여 마침내는 그 이적을 베푸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애굽왕은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애굽왕을 통하여 출애굽을 주도하시는 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사람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애굽의 Bondage 는 무엇입니까? 제가 기도원에서 기도하는데 “애굽의 Bondage 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소서” 라는 기도가 나왔습니다. 내가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내혀가 그렇게 돌아가면서 “애굽의 Bondage 에서 나를 구하소서” 라는 기도가 계속해서 니왔습니다. 처음에는 그 뜻도 몰라서 “하나님 애굽의 사슬에서 해방시켜 주소서 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라며 기도하는데 갑저기 전등석화와 같은 깨우침이 왔습니다. 애굽의 쇠사슬은 현재 나를 얽매고 있는 것들입니다.

예를 들면 내가 분노에 사로잡혀 있으면 나는 분명 분노의 노예입니다. 내가 마약이나 알콜 뿐만이 아니라 어느 것이든지 내 스스로 절제하지 못한다면 나는 분명 그것의 노예상태인 것입니다. 혹시 질투나 욕심에 빠져있으면 나는 이미 그것들의 노예상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굽의 Bondage 예서 해방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Let my spirit go!” 를 외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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