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30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9-11)

Posted by on Aug 30 2011 at 08:20 pm

본 그대로 오시리라
사도행전 1:9-11절

                                                                                                                                                                                                                         June 26/2011
행 1:9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행 1: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행 1: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오늘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 가시는, 즉 승천하시는 모습입니다.
천사의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는 말로 시작하여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시리라” 로 끝나지만 이 짤막한 대목이 바로 오늘 우리 기독교의 가장 핵심이요 본질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본문을 통하여 21세기를 사는 오늘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첫째,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사신 주님은 승천하셨습니다.  사망, 죽음은 이 세상 모든 것의 끝입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사람도, 그리고 아무리 건강한 사람일지라도 사람은 나면 이윽고 죽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사람들이 참 오래 들 살았습니다. 900살 이상 살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래 살아도 마침내는 다들 죽었습니다. 그리고 죽고 나면 육신이 썩고, 그러면 다시 살아날 소망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크고 힘든 일일지라도, 그리고 아무 중요한 일일 지라도 그 사람이 죽으면 끝입니다. 아무리 억울하고 아쉬운 죽음일지라도 장사 지내고 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합니다.

사도행전 2장 29-32절에서 베드로는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고 간증합니다.

다윗은 훌륭한 왕이었을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라는 칭호를 받을 만큼 믿음의 본이 되는 분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열왕기 상하에 보면 유다의 왕들을 다윗 왕에게 비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이스라엘 역대 왕들의 기준이 됩니다. 그롷게 믿음이 좋으시고 훌륭한 분일지라도 다윗은 이미 죽었고 그의 무덤은 오늘까지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육체는 사망이라는 권세 하에서 해방되지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디모데 후서 1장10절에 “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고 하였듯이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무너뜨리시고 죽음에서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다른 아무도 할수 없는 일, 오직 예수님 만이 사망권세를 파괴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과 나의 삶에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의 삶을 점차 변화시켰습니다. 두려움에 숨어서 떨고 있던 그들은 대담하게 세상으로 다시 나오게 하였습니다. 지금까지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걱정하며 허탄한 심령으로 살아가던 그들에게 놀랄만한 변화가 찾아온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으로 부터 받기만 하면서 살았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위하여 사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현실 앞에 굴복하지 않고 소망가운데 살았습니다. 오늘의 예수님을 위한 고난이 반듯이 내일의 기쁨으로 되돌아 오리라는 확신에 넘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을 변화시키셨듯이  오늘 우리도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할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질 것입니다. 움추리고 두려워하던 소극적인 신앙에서 담대하고 용기있는 적극적인 신앙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만을 바라보는 신앙에서 예수님을 위하여는 목숨까지는 내 놓을수 있는 신앙으로 변화 될 것입니다. 극심한 고통과 고난 앞에서 좌절하고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이 고난 뒤에 오는 축복을 바라보며 다시 일어서게 될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곧바로 승천하시지 않으시고 40주야를 세상에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다시 살아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의 믿음은 흔들렸습니다. 왜 그랬을 까요?

그것은 그들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실체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문을 꼭 잠그고 깊은 방안에서 회의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그 방안에 와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또 사라지시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다니셨습니다. 하지만 옛날처럼 항상 그들 옆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지금 자기들 앞에 계시는 예수님이 실체인지 아니면 영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베드로, 처음에는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신 예수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갈릴리로 갔지만, 거기서 다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은 옛날 삶, 즉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나갔던 것입니다.

참 한심한 사람들,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람들이 어쩌면 저렇게 미련할 수가 있을까? 예수님과 그렇게 대화도 나누어 보고 밥도 같이 먹고 전도와 선교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 나누고서도, 그리고 혼자서 만이 아니라 여럿이 같이 모였을 때 그렇게 하고서도 어쩌면 저렇게 믿음이 없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까?

그런데, 여러분들은 혹시 이런 경험은 없습니까? 그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도 해보고 밥도 같이 먹어 보았어도, 그 사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말입니다. 부부간에 수십 년을 같이 살아오면서도 서로 전혀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대화하기도 싫어하고, 그렇게 살다 보니 대화가 안되기 때문에 대화도 못하게 됩니다.

오늘 제자들에게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실체를 제자들은 이해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완전한 실체로 받아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완전한 실체로 받아드리지 못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고 만져 보고 식사까지도 같이 해보고서도 완전히 믿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에 오셔서 예수님을 보기만 하고 예수님에 대하여 이야기만 듣고 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시고 예수님을 온전히 구세주로 믿으실 뿐만이 아니라, 그분의 제자로서 분부하신 것, 즉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지 못한다는 것, 전도나 선교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은 내가 성령 충만하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역사적으로  그리스도의 증인되는 사명을 잃은 교회는 오래가지 못하고 지리멸절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믿으십시오. 그리고 그 분을 꼭 만나십시오. 그리고 그 분의 증인으로 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저희가 즉, 제자들이 보는 데서 하늘로 올리어 가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그렇게 확실히 믿지 못하던 제자들, 갈리리 디베랴 호숫가에서 예수님을 다시 만난 그들, 이제는 달라 졌습니다. 이제는 막연한 영이 아니라 실제 살아계신 예수님이심을 의심하는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 말씀을 주의 깊게 잘 듣습니다. 처음에는 언제쯤 다시 오십니까? 그 날에는 우리가 주님과 함께 이 나라를 통치하게 됩니까? 라고 묻던 제자들, 이제는 주님의 말씀을 경청합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을 꼭 지키겠노라고 굳게 다짐합니다. 이제는 댓가를 바라고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약속의 말씀 그 자체를 붙잡고 사역을 합니다.

그리고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다 같이 바라 봅니다. 마치 애드벌룬이 서서히 공중으로 올라가듯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모습을 그들은 두 눈들로 똑바로 바라봅니다. 공중으로 올라갈수록 점차 작아지면서 구름 속으로 사라지시는 주님을 그들은 안 보일 때까지 계속해서 바랍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은 하늘에 속하신 분이라는 것을 확인하였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환상이나 착각이 아닙니다. 번개처럼 갑자기 눈 앞에서 휙 사라져 버린 것도 아닙니다. 제자들이 다 같이 보는 가운데 천천히, 예언하신 그대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구름이 그들을 가리웠습니다. 예수님의 움직임과 더불어 구름도 같이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식에 의하면 구름이라든지, 자연물은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구름이란 수증기가 공중에서 언 얼음알갱이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다 주님에 의하여 창조되었고, 자연 현상까지도 주님의 명령에 모두 순종합니다. 말씀으로 바람도 순종하고 파도도 잠잠하게  하시는 주님 엎에 구름도 순종한 것입니다.

그리고 구름에 가리워져가는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입니다. 구름 그 저편 위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우리는 알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고 하나님만이 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온전히 이해할수 없다고 하여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틀렸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진리가 바뀌는 것 아닙니다. 증명하려고 하지 마시고, 그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이것을 증명하여 확인하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너희들에게 믿음이 있느냐? 믿어라 고 종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도마처럼 증거를 찾으려고만 하지 마시고, 성경말씀 그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은 그날 제자들이 본 그 모습 그대로 오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승천하신 그 모습 그대로 오실 것입니다. 주님은 베들레헴 말구유로 오시지 않으십니다. 백인이 아닌 유대인의, 아니 동양사람의 얼굴로 오실지도 모릅니다. 계시록에 의하면 흰옷을 입고 심판 주로 오시는데 그 빛이 너무 찬란하여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믿는 자들에게 가장 큰 관심은 바로 예수님의 재림이십니다. 그 중에서도 언제 오실 것이냐에 대한 관심이 제일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언제 오실 것이냐 라는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많이 출현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Herold Camping 이 주님께서 지난 5월 21일 날 오신다고 예언하였다가 갑자기 쓰러져서 지금은 병원신세를 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 5월 21일부터 영적인 심판이 시작되었고 오는 10월 21일부터 세상의 심판이 시작된다고 또 다시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예언을 무작정 이단이라고 무시하고 비판하는 태도 보다는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항상 그 심판의 날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세상의 심판 날만을 위하여 준비하시지 마시고 우리 자신들의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날을 맞이할 준비도 아울러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종말도 언제가 될지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 물론 계획은 1000년을 살 것처럼 미래를 위하여 세우되 다른 한편으로는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참고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서는 다음과 같은 학자들의 각기 다른 의견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저 이론일 뿐 성경적이다 맞다 틀리다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우선 독일 신학자 Robert Bultuman 은 재림 사상을 갖는 그 자체가 귀하다고 하였을 뿐 그 시기에 대하여서는 언급을 피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복음이 땅끝까지 이르기 전에 주님께서 오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근거로 우리가 열심히 전도하고 선교하여 복음이 온 세상 구석구석까지 전파되면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시기가 앞당겨 질 수도 있지 않느냐 라고 주장합니다. 이 분의 이러한 주장으로 말미암아 “우리 세대에 주님의 왕림하심을…… 땅끝까지 전파하자” 라는 구호와 함께 선교의 열정이 되살아 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C. H. Dodd 라는 학자는 예수님은 이미 재림 하셨다. 제자들이 다락방에서 기도할 당시 성령님이 불같이 내려오시던 그 오순절에 이미 오신 것이다. 지금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라고 주장합니다.

그런가 하면 Oscar Cullman 이라는 학자는 주님은 이미 오셔서 우리 마음속에 살아 계시지만, 주님의 실체는 지금도 또한 오시고 계신다 라고 주장합니다.

믈론 우리 현실에서는 그러한 것을 우리가 보지 못하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좀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원어적으로 본다면 헬라어의 파루시아가 바로 Oscar Cullman 이 주장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살아계신 예수님은 예수의 영으로 우리 마음속에 이미 들어와 계시고, 또한 육신을 가지신 실체의 예수님은 지금도 오시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실때 곧 오시마하고 가신 주님, 이제 곧 오실 것입니다.
승천하실때 그 모습대로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

주님은 더이상 십자가에 달려있는 분이 아닙니다. 죽은 자 가운데에서 살아 나셨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으로 오셔서 우리 마음속에 계시고. 이제 곧 실체와 함께 이 땅에 심판주로 임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이제 곧 이 땅에 다시오실 예수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그 날 우리는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모두 주님 앞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은 자들에게는 영원토록 아무런 소망이 없는 지옥의 형벌속으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구원을 얻은 자들은 상급에 대한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19:16-19절에 “그 첫째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그 둘째가 와서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하였듯이 각자의 행한대로 각기 다른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날 주님으로부터 열고을 다섯고을 다스리는 권세를 부여받고 주님과 함께 이 땅을 통치하는 축복을 누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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