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13

성령이 임하시면(행1:6-8)

Posted by on Aug 13 2011 at 02:19 pm

사도행전 1:6-8절
성령이 임하시면
                                                                                                                                                                                                                         June 05/2011

1:4-5절에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하셨듯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은 바로 성령으로 침례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여기에 자기들이 원하는 질문을 합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그 때에 주님께서 로마를 정복하고 나라를 회복하시렵니까? 그러면 우리들도 주님과 함께 이 나라를 통치하게 됩니까?”
그러자 주님께서는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고 하십니다.

오늘 이 본문말씀은 우리에게 3가지로 교훈하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재림의 때는 물론 나의 종말의 때도 준비해야 합니다.
이제 부할 승천하신 주님은 약속하신 대로 곧 오실 것입니다.
그 때가 언제일지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히 그 날은 오고야 말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로마의 손에서 회복시킬 것이고 그러면 자신들도 예수님과 함께 그 땅을 통치할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라고 물은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은 두가지로 답변을 하십니다.
첫째로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라고 하셨습니다.
때와 기한에 대하여서는 아버지의 권한이니, 즉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주관대로 하시니 우리에게는 알 권리나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헬라어 원어를 보면 더욱 확실히 알수 있는데, 우리가 무엇을 안다 라고 할 때에는 Ginosko 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신다 라고 할 때에는 Oida 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헬라어 원문을 보면 때와 기한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이라는 뜻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런데 알고보면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 모르는 것이 복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 알고 있다면 세상은 지금과는 매우 다른 모습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기 생번에 오시지 않을 것 같으면 주님 오시는 일에는 관심도 갖지 않고 그저 자기 삶에 바쁠 것입니다. 주님께서 곧 오신다는 알게 되면 삶을 미리부터 포기해 버리고, 아무런 계획이나 노력도 없이 그저 마구잡이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언지 오실려는지 그리고 자신의 종말이 언제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복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종말이 언제쯤 되겠다는 것은 대충은 알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몸이 쇠약해지고 몹쓸 병이 들면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다시 오심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종말을 위해서도 준비해야 합니다.

어떻게 종말을 맞이하는 가에 보면 일반적으로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부류의 사람은 죽는 그 순간까지 열심히 일이나 연구에 몰두합니다. Southern Semoinary 의 Wayne Oats 교수님은 92세가 될때까지도 계속 학교에 나오셨으며, 임종 한달 전 까지 연구실에 나오셔서 책을 집필하셨습니다. 그런가하면 CCC 창시자 Bill Bright 목사님은 암 선고를 받고나서 죽기 전에 끝내야 할 일들을 즉각적으로 시작했습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 몸이 더 빨리 쇠약해져서 할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항암치료도 받지 않고 일만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일들을 겨우 마치고 나서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 부류의 사람들은 소위 말하면 Bukit List 를 작성합니다.
그리고는 죽기 전에 그 일들을 부지런히 실향하게 됩니다. 평소에 가고 싶었던 곳에 여행도 가고, 자기가 잘못한 사람들을 찾아가 용서를 구합니다. 사보고 싶었던 것을 사기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꼭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더이상 미루지 않고 당장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차분히 죽음을 맞게 됩니다.

여하튼 이렇게 자신의 종말이 오고있음을 아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정리할수 있지만 뜻하지 않은 불의의 사고로 죽어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자신의 종말을 준비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여하튼, 하나님 주권에 속한 예수님의 때를 자기들마음대로 해석하여 “이 때다 저 때다”하며 많은 사람을 들을 미혹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를 미리 아시고 다음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마24:4-5) 그리고 계속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24:26)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것은 미리 예고하고 재림하시는 것이 아니라, 도적같이 갑자기 오실 것이며, 노아의 홍수와 산모가 해산하는 것처럼 갑자기 닥칠 것임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나타나는 것은 주님의 오심이 그만큼 가까워진 것에 대한 징조입니다. 아마도 시한부 종말론자들에 속아 세상이 주님 오실 날에 대한 감각이 무디어져 갈때 갑자기 주님께서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할 것은 세상의 여파에 휩쓸리지 않고 연세가 많거나 작거나 할것없이 자신들의 종말을 준비하며 더 늦기전에 열심히 전도하여 한 생명이라도 더 구원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천들처럼 주님을 기다리되 깨어 근신하며 주님 맞이할 준비를 하여여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두번째 대답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입니다. 예수님이 언제 재림하실지에 대한 시기에 대하여 전전긍긍하지 말고 성령이 임하실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많은 경우 주님을 사랑하며 성령충만함보다 사역을 앞세웁니다. 예수는 믿지만 아직 성령충만함을 체험하지 못하고 사역만 앞세울때 사역에 능률도 오르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영적으로 고갈되어 큰 시험에 빠지거나 다른사람들에게 상처를 줄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함을 입을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함을 입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흔히 방언이 터지고 행동이 좀 달라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사도행전 8:15-17절에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9:5-6절에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행 19: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하였듯이 예수를 믿는것과 성령을 받는것이 마치 두단계로 되는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면 그 순간부터 성령님이 내 안에 거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충만함은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점차 내 마음을 지배하게되어 내 마음이 Full of Spirit 이 되어 온전히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함을 입으면 방언이 터지기도 하고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함이란 예수님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것, 즉 지금까지는 주로 머리로 믿었던 것을 가슴으로 체험하는 것이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평소때에는 할수 없었던 일, 하지 않았던 일들, 특히 주님께 그리고 섬기는 교회에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등을 성령충만함을 입었을 때에는 할수있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두려워 할수없었던 일들도 성령충만함을 입으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행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함과 동시에 성령충만함을 입게되는가 하면 어떤 분들은 오래동안 걸려도 체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성령충만함을 입을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이 합심하여 기도하였을때 열흘째 되던날 모두 성령 충만함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함을 입으면 “권능을 받게 될 것이며” 했는데 성령충만함을 받으면 주님의 권능을 받게 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고 귀신들이 스스로 물러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병든자위에 손을 얹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때 병든자가 고침을 받게되는 경우도 있고 예언의 은사를 받을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은사는 믿는자들에게 주님께서 나와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주고 그 확신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굳게 서서 평소에는 엄두도 못내던 일들을 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의 증인이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나의 증인이 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성령충만함을 입으면 주님의 증인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증인인란 헬라어 단어는 순교하는 단어와 어원이 같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의 증인이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증인이 아니라 순교를 각오한 증인이라는 정말 차원이 다른 의미의 증인입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함을 입어 성령께사 시키시는대로 행할때 기꺼이 순교도 사능한 것입니다. 성령 충먼함이 없이 어떻게 예수님을 위한 열정이 가득하게 되겠습니까? 성령충만함이 없이 어떻게 모둔 것을 내려놓고 이프리카 오지에 들어가겠으며 남미 정글에서 평생을 그들과 더불어 살면서 복음을 증거할수 있겠습니까? 일시적인 감정으로 그렇게했다면 얼마 가지 못하고 되돌아 오고 말 것입니다. 어려움이 닥치고 생명의 위협을 받게되면 곧 철수하고 말 것입니다. 성령충만함이 없다면 어떻게 공개처형을 당하는 북한에서도 신앙생활을 할수 있겠습니까?

성령 충만함을 입었기 때문에 자기 목숨을 아낌없이 바칠수 있게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함이 없이 어떻게 두려움을 잊을수 있겠으며 성령충만함이 없이 어떻게 죽음을 당할줄 알면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할수 있겠습니까? 실제로 예수님의 11제자들 모두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다가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증거해야 합니까?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가감없이 증거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서만 하실수 있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문둥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죄를 댜신 지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그 죄가 용서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제자들에 약속하신대로 장사한지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사실을 믿으면 주님과함께 저 천국에서 영원히 같이 살게됩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저 천국에 계시는데 이제 곧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셔서 악인과 의인을 가르실 것입니다. 그리고 의인들과 함께 이 땅을 통치하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목숨을 걸고 증거하는 것이 증인의 의무입니다. 그런데 성령 충만하고 권능을 받으면 스스로 이러한 증인의 삶을 살게될 것이라는 주님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또한 그리스도의 증인은 말로만이 아니라 삶을 통하여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5:16절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신 것처럼 입술로가 아니라 그의 삶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빛이 아닙니다. 빛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그 분의 빛을 받아 반사하는 달과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우리는
주님의 사랑과 받은 은혜를 이웃에게 나누고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증인의 삶을 보여주는 것에 대하여 주님은 그 순서를 정하여 주셨습니다. 예루살렘,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이라 하였는데 이것을 나의 가족, 친척,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여하튼 예루살렘, 나의 가족전도가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목회자들 가운데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모님이 목사님 설교에 은혜를 받으면 그 목사님은 목회에 성공하신 분이다” 그렇습니다. 자기와 늘 같이 먹고 마시고 사는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기가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자칫 가족들로부터 “너나 잘 하세요” 라며 외식하는 자라는 소리를 듣기 가장 쉬울 것입니다.

그 다음로는 자기 친구들이나 친척들에게 전도를 해야 하는데, 나와 이해관계가 있는 분들에게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그리 쉽지 않을 것입니다. 때로는 내가 참아야하고, 희생을 해야하고 양보를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땅끝은 어디입니까? 어쩌면 나와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는 사람들,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을 의미하기도 할 것입니다. 문화와 언어가 다른 민족에게 선교하는 것에 비유할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북한이 우리의 땅끝이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의 예루살렘은 어떻습니까? 사마리와는 아떤 관계입니까? 여러분들의 땅끝은 어디입니까? 만일 북한이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북한의 문이 속히 열리도록 기도하십 니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곧 열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북한에 대하여 더욱 열심히 기도하며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곧 오십니다, 그리고 북한 문도 곧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준비해야 합니다. 아직 뜨거운 성령을 체험하지 못하신 분들, 성령충만함을 체험하지 못하신 분들은 성령 충만함을 달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처럼 열심히 기도해 보십시오.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여명의 성도들이 기도하던 모습을 생각하며 그 분들처럼 성령이 임하실 때까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권능을 받고 주님의 참된 증인으로 사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