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
07
아가 2:1-2절
(그리스도인의 삶)
[1-2절]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
본문 1-2절은 이야기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엇갈린 해석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1절은 술람미 여인 2절은 솔로몬 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1절도 솔로몬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1절은 1장17절에 이어 계속되는 술람미 여인의 말로 받아드려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2절은 여기에 대한 솔로몬의 답변으로 보는 것이 내용상 자연스럽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자신을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라고 합니다.
사론은 원래 욥바 항구 옆에있는 평평한 지대를 일컬어 부르던 지명 이름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론”을 아주 비옥한 땅이라고도 하는데 그 당시 사론은 오히려 황무지나 다름없는 황량한 곳이었습니다. 이러한 지명 이름이 세월이 지나면서 평평한 지대, 평지를 지칭하는 의미로 혹은 그러한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론의 꽃 예수” 라는 말 떄문에 사론은 신성하고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대단한 장소처럼 생각할수 있겠지만 사실은 황량하고 메마른 곳임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사론의 꽃 예수님이라는 말은 대단히 신비하고 웅장한 곳에 계시는 예수님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황량하고 메마른 대지 위에 계시는 주님, 별 특일한 것도 의미도 없는 그 곳이 주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신비해지고 황홀해지고 아름다워지는 그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수선화로 번역된 히브리어 habasselet 도 오늘날 구체적으로 무슨 꽃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수는 없습니다. 나리 꽃이라고도 번역을 하였지만 그것도 정확한 번역은 아닙니다. 여하튼 이 꽃은 원래 중동지방의 건조한 곳에 자라던 잎도 없이 화려하지도 않은 아주 수수하고 흔한 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샤론의 수선화라는 의미는 나는 아름답고 화려하며 생기가 넘치는 존귀한 존재가 아니라 그저 평범한, 특별히 내놓을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흔한 여자 중의 하나입니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나는 골짜기의 백합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백합은 골짜기에 나지 않습니다. 더구나 아무리 화려하고 예쁜 꽃이 있다 할지라도 깊은 골짜기에 피었다면 누가 일부러 그 골짜기까지 가서 보겠습니까? 금의 야행, 즉 밤에 비단옷을 입고 다닌다는 말처럼 아무도 알아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이라는 표현은, 비록 내 주변 환경이나 배경이 아주 보잘 것 없는 존재이지만, 나는 백합처럼 화려하고 즐겁습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사랑하는 당신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고백이 암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 그 사람과 같이 있으면 너무 황홀하고 행복하여 내 혼이 나가고 흐르는 시간마져도 정지된 것 같은 그런 사람이 내 옆에 있다면 내게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그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고 그 역시도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그것이 하나밖에 없는 생명일지라도 기꺼이 포기할수 있는 분이 나와함께 있다면 세상에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부러워하겠습니까? 내가 서 있는 현재의 자리가 메마르고 황무한 서론일지라도 아니 사람이 살수없는 험난한 골짜기라 할지라도 그저 백합처럼 기쁘고 즐거워 할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 성도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비록 환경이 나를 슬프게 하고, 나의 배경이나 현재 처해져있는 모습이 초라하고 별볼일 없지만 내 안에 예수님만 게신다면, 나를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신 그분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면 그 무엇이 두렵습니까? 비록 삶이 골짜기처럼 깊게 파이고 기어 나오기 힘든 험난한 상황일 지라도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확신이 있다면 두려움은 저절로 사라지고 오히려 그러한 환경속에서도 승리를 외칠수 있고 기쁨의 노래를 할수 있지 않겠습니까?
2절은 신랑의 말인데, “너는 여자들 가운데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다” 하였습니다. 백합화는 아름다운 꽃이요 꽃잎이 상하기 쉬운데 왜 가시나무 가운데 있어야 합니까? 가시나무 가운데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런데 이것이 바로 우리 신앙인의 삶입니다. 가시나무는 세상에서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는 악의 세력을 상징합니다. 주님의 몸되신 교회와 성도들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처럼 세상의 악에 둘려쌓여 항상 영적인 전투를 하고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가시나무에 꽃잎이 찔리기도 하고 찢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시나무에 찔리면 찔릴수록 꽃향기는 더욱 진하게 퍼져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빈 들과 같은 메마른 세상에 피어난 수선화와 같고 눈물과 고난의 골짜기 같은 세상에 피어난 백합화와 같은 삶일 것입니다. 아무도 찾아와주지 않는 메마르고 황량한 빈 들에 핀 들꽃처럼 외롭고 고독한 삶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험한 골짜기에 홀로 핀 백합화, 바람이 불때마다 둘러쌓인 가시나무에 찔리고 찢어지는 고통일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백합의 향기는 더욱 진하게 골짜기를 매우고 마침내는 빈 들을 지나 온 세상에 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그리스도인들은 외롭지 않습니다. 슬프지도 않습니다. 그러한 삶을 후회하지도 원망하지도 억울해 하지도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사랑하는 사람, 내 몸보다도 더욱 사랑하는 분을 만났고 그 분께서 메마른 빈들 험난한 골짜기에 있는 나를 찾아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분의 사랑을 받고있기 때문에 메마른 들에서도 험한 골짜기에서도 심지어는 가시에 찔리면서도 행복할수 밖에 없습니다. 이 얼마나 멋진 승리의 삶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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