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 04

일어나 걸어라

Posted by on Jun 04 2011 at 10:55 pm

일어나 걸어라
(마가복음 2:1-12절)

 

April 10/2011
베드로의 집에서 나오신 예수님은 갈리리 각 촌으로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시고 병을 고치시며 귀신들을 쫓아 내셨습니다. 그리고는 가버나움으로 다시 돌아 오셨습니다.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가버나움은 갈릴리 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로서 성으로 된 도시이며, 상당히 큰 규모의 회당이 있고 로마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성을 사역본부로 잡으시고, 여기를 거점으로 각 촌을 다니신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교 회당 장 야 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시고, 백부장의 종을 고쳐 주시 는등 많은 이적을 베푸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드리지 않으므로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다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고 책망을 하신 성이 바로 가버나움입니다.

여하튼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 전도여행을 마치시고 가버나움 사역본부로 오시니 예수님께서 돌아오셨다는 소문이 금새 퍼져서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마당에까지 꽉 찼습니다. 그 때 한 중풍병자가 있었는데, 아마도 그는 육신을 못써서 그렇지 정신은 멀쩡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역시도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매일 허구한날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워만 살려니 얼마나 답답하고 또한 좌절감에 빠져있었겠습니까? 스스로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까? 화장실을 마음대로 갈 수 있습니까? 누가 꼭 옆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정말 차마 죽지 못해서 하루하루를 비관에 빠져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께서 오셨다 라는 기쁜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옆에서 수발해 주는 사람이 말해 주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소리에 눈이 번쩍 뜨이며, 자기도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자기 병이 낫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꼭 자기를 위하여 오신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입니다. 놓쳐서도 안되지만 놓칠 수도 없는 단 한번의 기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여러분들을 찾아 오셔서 가슴을 두드립니다. 나 같은 죄인 하나 살리시려고 이 낮고 낮은 땅, 나에게까지 찾아오셨는데 아직도 가슴을 열지 못하셨습니까? 아직도 예수님께서 머리에만 계십니까? 예수님께서 아직도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지 못하셨습니까?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가슴을 여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가슴으로 맞아 드리시기 바랍니다.

이 중풍병자, 지금 당장 예수님을 뵈오러 가야 하는데 자기 스스로는 갈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자기 동네 청년들의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동네청년 네 사람이 들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네 사람은 들것에 그를 태우고 예수님이 계시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웬 일입니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 앞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기는커녕 예수님을 볼 수도 없습니다.

혹시 이 것이 오늘날 많은 교회들의 문제가 아닙니까? 예수님을 만나러 교회에 왔는데 나보다 먼저온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기 때문에 나는 예수님이 누군지 어디 계시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좋아서,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라해서 교회에 왔는데 교인들 때문에 예수님을 만 날수 없으니 그러면 어디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의 대부분의 불평의 대상은 예수님이 아닙니다. 그들도 예수님 좋아하고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있는 사람들 보기 싫어서 떠난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사람들 때문에 시험 들고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입게 됩니다. 의외로 믿는 사람들로부터, 특히 목회자로부터 상처를 받고 시험에 든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사람들을 밀치고 나아가야 합니까? 아니면 포기해야 합니까? 화를 내고 돌아 서야 합니까? 오늘 본문의 이 사람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에워싸고있는 사람들을 넘어서 지붕 위로 올라 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 때문에 시험에 들수도 있습니다. 교인들의 행동을 보면 실망하지 안을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거기서 포기하면 나만 손해입니다. 그러므로 지붕위로 올라 갔듯이 사람들의 장벽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우리가 따라야 할 신앙인의 모델은 목사나 장로가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 때문에 받는 시험은 이겨 내시고, 실망시키는 모습에는 눈을 감으시고, 상처를 받게하는 것은 피하여 지붕위로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본문을 잘 이해하려면 그 당시 유대인들의 집 구조를 이해하여야 합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산이 많고 가물고 건조한 모래땅이 대부분인지라 여름에는 무척 덥지만 밤에는 비교적 시원합니다. 토양이 그렇고 기후가 그런지라 집 지을 좋은 나무도 자라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나무는 북쪽의 레바논에서 수입을 해 왔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에도 레바논에서 수운을 해왔습니다. 그러므로 특별한 부자들 외에 일반 사람들은 마른 풀을 썰어 넣은 진흙을 이겨 흙 벽돌을 만들어 집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방이 너무 어둡기 때문에 창문을 내야하는데 그럴 형편들이 못되니까 그저 벽에 여기저기 주먹만한 구멍을 몇개 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방안은 한낮에도 침침했습니다.

이러한 집은 한여름에는 낮에 뜨거운 태양 볕에 흙벽돌이 뜨뜻하게 데워져 방안은 한증탕 같을 것이고, 그러므로 그 안에서는 잠을 잘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한여름 더울 때에는 지붕에서 자려고 지붕을 뾰족하게 하지 않고 슬라브처럼 편편하게 짓습니다. 그리고 지붕에 쉽게 오르락 내리락 할수 있도록 계단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여름에는 온 식구가 그 지붕위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잠을 잤던 것입니다.

그런데 잠자다가 굴러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네가 새 집을 건축할 때에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 사람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라 그 피 흐른 죄가 네 집에 돌아갈까 하노라” (신22:8)라며 지붕에는 반듯이 난간을 만들라고 법으로 정해 버렸습니다.

이러한 집 안에서 예수님이 병을 고치시고 말씀을 선포하셨던 것으로 보아, 아마도 한 여름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여하튼 이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가야하는데, 사람들이 어찌나 많이 왔는지 방안으로 들어가기는 커녕 마당까지도 빌디딜 틈없이 꽊찼습니다.

“이 것을 어떻게 하나” 하며 들것을 메고온 동네 청년들은 혀만 차고있었습니다.
그러자 들것에 누웠던 이 중풍병자는 “지붕으로 올라가자” 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붕위로 올라 왔는데, 이번에는 지붕 그 자체가 주님과의 사이를 막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방금 전에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주님 앞에 나아가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사람들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문제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죄의 문제입니다. 내가 주님 앞에 나아가고 싶어도 나와 주님 사이에 죄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 가로막힌 담을 헐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담을 허는 방법은 오직 진정한 회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룩하신 주님 앞에 나아가려면 진정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나의 죄에대한 진정한 회개가 없이는 거룩하신 주님 앞에 나아갈수가 없습니다. 나의 죄가 주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주님을 대면할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나아가기를 원하십니까? 주님의 은혜의 보좌앞에 나아가기를 원하십니까? 마음을 씻으십시오. 죄가 생각날 때마다 주님 앞에 회개하십시오. “주님, 이 놈이 또 죄를 저질렀습니다. 제가 참 나쁜 놈입니다. 다음 부터는 더욱 조심하고 용기를 내어 주님 말씀대로 살겠사오니 용서해 주십시오” 라고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은혜의 보좌앞에 나아가십시오.

지붕에 올라온 그들은 예수님께서 어디 계시는가 정확히 측정을 하여 지붕을 뚫기 시작하였습니다. 지붕이 평편하였기 때문에 예수님 계시는 곳을 측정하여 지붕을 뚫는 것은 그리 어렵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이 모든 것을 다 아시고 계셨습니다. 드디어 천정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고 집이 약간 흔들거리는가 싶더니 흙 모래가 떨어집니다. 거기 있던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하였지만 주님께서는 태연하게 사역을 계속하셨습니다.

드디어 천정이 열리고 깜깜한 밤 하늘을 비취는 빛난 별빛이 그 방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아마도 그 집의 천정이 열리고 맑은 하늘이 직접 들어온 것은 그 집이 지어진 뒤 처음으로 있었던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천정을 쳐다본 것은 그날이 처음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입니다. 천정을 쳐다 보았지 무슨 좋은 일이 있었겠습니까? 낮으막한 천정, 금방이라도 자기를 짓누를듯한 흙덩어리, 자칫하다가는 흙 모래가 떨어져 눈으로 들어가는데 누가 천정을 쳐다봅니까? 그런데 그 날은 예수님과 함께 처음으로 천정을, 높은 곳을, 땅 아래가 아닌 하늘을 바라보며 사는 법을 배운 것입니다.

잠시 후 네 귀퉁이를 붙잡은 들것이 천천히 방으로 내려옵니다. 깜짝 놀란 사람들은 과연 이것이 무엇일까 바라보니, 그 안에는 중풍병자가 누워있습니다. 다 아는 사람이기에 놀라지는 않았지만, 아니 이 사람이 무슨 해괴 망측한 일을 하는가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모두들 잠잠하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의아하게 바라만 보고 있는데 그 때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라고 선포하십니다. 그가 이렇게 중풍병을 앓은 것은 그의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죄사함 받은 것만 믿으면 그 병에서 놓임을 받든 다는 것입니다. 우울증, 스트레스로 생기는 병, 용서하지 못하고 증오하여 생기는 병, 근심하여 생기는 병, 의심하여 나는 병, 마음의 병이 얼마나 심각한지 특히 근래에 와서 심각하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사람의 중풍병도 Brain Damage 나 신경조직이 망가져서 생긴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한 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회개하여 죄 용서를 받았다고 확실히 믿기만 하면 그가 그의 병에서 놓임을 받게 된다는 선포입니다. 즉 그의 병은 그의 죄가 가져왔고 그 죄가 물고 안 놓아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기만 하면 죄가 더이상 그의 육체에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미 그 값을 치렀기 때문에 우리 믿는 자들은 더이상 죄에게 빚진, 담보로 잡힌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뇌가 우리에게 아무런 책임이나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하고, 그로 인하여 우리는 자유의 몸, 병에서 놓임을 받은 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자,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의논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막2:6-7) 라며 분개합니다. 아마도 이 중풍병자도 예수님께서 자기 병이 낫게 하실 것이라고는 믿었지만 자신이 중풍병자가 된 것은 자기의 죄 때문이라는 것, 이 것에 대하여서는 확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지붕을 뚫고 극단적인 방법을 통하여 예수님 앞에 왔지만 그리고 예수님이 “네가 죄 사함을 받았다” 라는 말씀까지도 받았지만 아직 그가 그 말씀을 받아드리지 못하였기 때문에 아직 그는 중풍병자로 그대로 있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가 원하는 식의 응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응답될 때야 비로소 나의 기도가 응답되었다 라고 믿고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의 음성을 듣고서도 응답에 대한 확신이 갖지 못합니다. 그러면 마치 나사렛이나 가버나움 그리고 고라신에서 처럼 주님의 사역에 큰 결실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음성이 확실할 때 그대로 받아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때에 주님의 능력이 나를 통하여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내가 네 말로 인하여 왔느니라 그런데 바사국 군이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국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군장 중 하나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 주므로”(단10:12-13) 라고 한 것처럼 주님의 역사하심을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을 훼방하고 기도의 응답을 가로막는 흑암의 세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기도 응답이 더디게 올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작정기도를 하려고 마음속에 결심을 하고 기도시적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의 기도는 이미 응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흑암의 세력들이 가로막고 있다고 할지라도 마침내는 우리에게로 도달된다는 것입니다.
서기관들이 불평하는 것을 들으신 주님은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하노라” 하십니다. 주님은 죄를 용서해 줄수있는 권세가 잇으심을, 다시 말한다면 당신이 곧 하나님 이심을 선포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곧 하나님 이시고, 창세기 1장 1절부터 계시록 마지막 절까지 성경의 모든 것은 결국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열쇠로 하여 성경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론이며 기독론을 믿는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에배의 대상도 예수님이시며, 교회의 모든 행사도 결국 교회의 몸되신 예수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당신이 곧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신후 중풍병자에게 재차 선포하십니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막2:11) 그러자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막2:12) 하였습니다. 그가 듣고 싶어했던 바로 그 응답이 떨어지자 그는 그대로 믿었고 그로 말미암아 그 병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응답의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의심을 품거나 두 마음을 품지 마시고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11:24) 라는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그 약속대로 반듯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가버나움에 찾아오신 바로 그 예수님은 또한 오늘 우리를 찾아 오십니다. 우리의 중풍병 걸린것과 같은 삶을 온전하게 해 주시려고 찾아 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중풍병자처럼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사람들이 에워 쌓을때 지붕으로 올라갔고 지붕을 뚫어서 주님 앞에 왔듯이 주님 앞에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는 것들은. 넘어 설 것은 넘어서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여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인생이 중풍병을 맞은 것처럼 실패하여 쓰러지신 분 계십니까? 가정이 힘들고 직장이 불안하고 부부관계가 파탄 직전에 있는 분도 있을수 있습니다. 너무도 힘들고 억울하고 불안하여 어젯밤도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이 자리에 나오신 분들도 있을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중풍병자처럼 주님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어쩌면 오늘 이 순간이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릅니다. 지금 나아오십시오. 그리고 그 분 앞에 어께의 무거운 짐을 다 내려 놓으십시오. 그리고 일어나 걸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확신에 찬 모습으로 힘차게 앞발을 내 디디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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