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 13

예수님을 초청하라(마가복음1:29-34절)

Posted by on Apr 13 2011 at 10:30 am

예수님을 초청하라
마가복음1:29-34절
                                                                                                    March 20/2011
자신이 자란 나사렛 동네에서 사역을 하시다가 동네 사람들로 부터 거절당하시고  쫓겨나신 예수님은 약 80리 떨어진 가버나움 읍내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이 되자 회당예배시간에 맞추어 회당으로 들어 가셨습니다. 회당에 들어오신 예수님은 회당 안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그 가르침에 다 놀랐습니다. 새로운 말씀이라서가 아니라 살아서 운동력있는 말씀, 능력의 말씀에 사람들은 놀랐던 것입니다. 서기관들이나 제사장들과는 달리 예수님에서 나오는 말씀에는 능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회당안에서 그 말씀을 듣는 사람중에 귀신이 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그 사람 안에 있던 귀신이 예수님께 “What business do we have with each other, Jesus of Nazareth? Have You come to destroy us? I know who You are–the Holy One of God!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사람 속에 있는 귀신에게 당장 나오라고 명령을 하였고, 그러자 귀신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인데도 불구하고 귀신을 내어 쫓아내셨습니다, 그것도 회당 예배시간에 말입니다.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은 일을 한 것이요, 더구나 회당 예배시간에 그렇게 했으니 당연히 율법을 어긴 행위요 처벌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회당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랐고 감탄하였으며 또한 좋아했습니다.

회당에서 예배가 끝나자 예수님은 베드로, 안드레, 요한 그리고 야고보와 함께 곧바로 나와 베드로 집으로 갔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회당 예배가 끝나면 양을 잡거나 푸짐한 음식을 놓고 친교를 하였습니다. 우리 한국사람들도 다른 민족에 비하여 먹기를 좋아하는데 유대인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모였다 하면 푸짐한 음식을 먹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먹으면서 이야기 하기를 좋아합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멧세지도 1/3 정도는 음식을 잡수시면서 하신 말씀들입니다. 그런데 침례요한은 금식을 자주하자 “저가 귀신에 들렸도다” 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여하튼 예수님은 그 친교에 참여하지 않고 즉시로 그 회당을 떠나 벳세다 베드로 집으로 가셨습니다. 아마도 회당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신들도 만져 주시고 기도해 주셔서 귀신도 몰아내고 병도 고쳐 주시기를 바라고 예수님이 어디 가셨는지 찾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은 예수님께 질문도 하고 또한 예수님의 더 많은 가르침을 받으려고 예수님을 찾았을 것입니다.
혹은 “거룩한 안식일에 어찌 일을 하였는가? 그 사람은 처벌을 받아야한다” 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예배가 끝나자 마자 이러한 아쉬운 여운을 남기고 그 자리를 즉시로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같이 동행했던 세베데의 아들들, 요한과 야고보 그리고 베들 형 안드레와 함께 거기서 약 2마일, 십리 조금 못되는 벳세다 마을을 베드로 집으로 가셨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Immediately 베드로 집으로 향하셨다고 하였는데, 회당 근처에서 머뭇거리거나 중간에서 누구를 만나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곧바로 가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약 반시간 정도 걸으셔서 베드로 집으로 가셨습니다. 베드로 집에 도착하자 베드로 장모님이 아파서 누워 있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의 풍습으로 장모가 병들어 사위집에 누워있다는 것은 특수한 경우입니다. 아마도 그녀는 과부이었을 것이며, 그녀를 봉양할 아들도 없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병들어 육신의 거동이 불편하자 딸이 자기 집으로 모셔왔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그녀는 언제부터 아팠는지는 몰라도 아들의 귀한 손님이 와도 일어나지 못할 정도라면 꽤 심하게 아팠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그녀는 고독하고 가련한 여인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이러한 그녀를 보시자마자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몸에 손을 대니 몸에 심한 열이 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열병은 오직 하나님 만이 낫게하시는 병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병든 여인을 보자 즉시 가셔서 그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십니다. 그러자 병이 온전히 떠나고 그녀가 힘을 얻어 일어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녀는 남은 인생을 병든채로 그렇게 누워서 살다가 죽을 것으로 생각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라는 분이 오시자, 아니 예수라는 분을 만나자 그녀의 운명은 바뀐 것입니다. 예수라는 분이 그 가정에 오시자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하던 그녀의 운명은 변하였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절망에서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모시는 곳마다 병든 자가 고침을 받고 쓰러진 자가 일어나고 절망이 소망으로 바뀌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겪고있는 가장 큰 위기는 가정문제입니다. 요즘 문제없는 가정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을 안믿는 가정은 물론 예수 믿는 가정도 평탄한 가정이 거의 없습니다. 교인들 가정 뿐만이 아니라 목회자 가정들도 성하지 못합니다. 또한 대부분의 가족들이 부부간의 갈등, 자녀들과의 문제등으로 시달립니다. 여기에 경제적인 문제, 건강문제, 이성문제, 과거문제, 현재문제, 미래문제 등으로 매일 매 순간마다 시달립니다.

미국에서의 가정교육은 부엌 난로에서 이루어 졌다고 합니다. 부엌에만 따뜻한 불이 있기 때문에 겨울에는 온 식구가 부엌을 중심으로 모여 생활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 집은 방이 여러칸이 아니라 부엌 옆에 큰 방과 거기에 딸린 방들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중앙 난방장치가 발달되면서 여러 방을 만들기 시작하였고 가족들은 집에서도 서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가정은 더이상 가정의 구실을 하기 힘들어 졌다고 합니다.

결코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희도 거정예배를 드리려면 아이들을 여러번 불러야 합니다. 자기들 방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가족끼리 대화는 단절되고 맙니다. 더구나 인터넷과 연속극은 가족끼리의 만남을 더욱 멀리 해 버렸습니다.

또한 아이들이 자라면서 부모님들로 부터 너무 많은 상처를 받습니다. 더욱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상처를 치유받을 기회가 없이 그저 육신만 자라면 어른이 된다는 착각에 빠져 산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갈수록 이혼률이 높아지고, 이로 말미암아 자녀들이 비정상적인 가정에서 비 정상적으로 자랍니다. 그리고 자라서는 비정상적인 행위를 합니다. 편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영 육간에 얼마든지 건강하게 잘 성장할수 있다고 하지만 양 부모 밑에서 자라야 한다는 것은 구태여 증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가정이라는 개념 자체도 바뀌었습니다. 종래에는 가정이라 하면 한 남자와 한 여자 그리고 그 사이에 태어난 자녀로 생각하였는데 요즈음은 동성결혼도 합법화되었습니다. 아이는 입양하여 키우겠다는 것입니다. 동성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떤 가정을 이루겠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사단이 가장 노리는 것은 여러분들의 가정입니다. 가정이 파탄되면 국가는 물론 인종이 몰살 당하고 결국 지구의 종말을 가져오게 됩니다.
단란했던 아담과 이브의 가정이 왜 순식간에 그렇게 무너집니까? 무엇이 그렇게 무나뜨립니까? 사단입니다.

사단의 유혹으로 죄를 범한 아담과 이브 부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힘든 삶을 살면서 서로간에 거의 대화가 없이 이브가 모든 일을 결정한 것을 성경은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브는 자기 남편과 동침하여 아들을 낳고서도 이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잉태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도 자기가 짓습니다.
아담은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아니 말할 권리를 빼앗긴 것입니다. 이미 그 가정은 문제점 많은 가정으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영향을 입은 오늘날의 모든 가정들도 문제점 많은 가정이 될수 밖에 없는 실정 아니겠습니까?

아담과 이브의 가정이 스스로 회복할수 없었듯이 우리 스스로는 파괴되어가는 가정을 회복시킬수 없습니다. 무너져 내리는 가정을 우리 스스로는 수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 거룩한 부부관계나 가정을 상담자에게 의존할 수도 없습니다. 통계적으로 의사의 오진이 30% 정도라고 하는데 상담자의 성공률은 20% 가 채 안된답니다. 상담자들을 통하여 더 악화된 사례가 부지기 수 입니다. 더구나 미국에서 지식층중 상담자들이 자살률도 제일 높고 이혼률도 제일 높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어떻게 여러분들의 가정을 회복시킬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여러분들의 가정을 무너뜨리고 파괴시키는데 일몫을 할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가정의 문제를 고치고 치유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에수님만이 희망이고 예수님만이 해결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진정으로 여러분들 가정에 초대하십시오. 여러분 온 가족들에 초대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가정의 모든 문제에 초대하십시오. 그러면 회당의 친교를 포기하시고 곧바로 베드로의 집으로 오신 주님은 여러분 가정에 오실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문제는 “여기 까지는 주님께 내 맡길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역은 아닙니다, 제가 해야 합니다, 양보할수 없습니다” 라는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 부분까지 주님께 내 맡기시기 바랍니다. 부분적으로가 아니라 온전히 내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 문제들을 낱낱히 보실수 있도록 모두 내 보이시기 바랍니다.

이제 베드로 장모의 병을 보신 주님은 주저하지 않으시고 그녀에게로 가서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십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손을 잡은 그녀는 누웠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어려운 문제로 힘들고 지친 우리를 절망으로 쓰러진 우리를 주님은 일으켜 세우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손을 잡고 일어서야 합니다.

지금은 누구나 힘들 때입니다. 가정 문제 뿐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문제로도 엄청나게 힘듭니다.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분들이 주변에도 많습니다.

직장을 잃고 넘어졌습니까? 사업에 실패하고 넘어졌습니까? 학업에 실패하고 넘어졌습니까? 주님은 그러한 우리에게 손을 내 미십니다. 주님의 그 손을 잡으십니오. 그리고 일어 서십시오. 또 다시 넘어질 망정 지금 일어서십시오. 남들은 쓰러져 일어나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일어 서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의 선택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주님의 손을 붙드십시오. 그리고 지금 일어서십시오.

예수님께서 만져주심으로 인하여 병이 낫은 줄 안 그녀는 곧바로 예수님의 식사를 준비하는데 돕습니다.
이것은 그녀가 온전히 고침을 받고 몸이 완전히 회복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주님의 사랑의 손길로 완전히 병고침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였으면 주님을 위하여 봉사하는것은 자연스로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봉사할떄 의무감에 사로잡히거나 체면에 받쳐 해서는 아니됩니다. 주님의 은혜를 받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위하여,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섬겨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초청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에 초청하시기 바랍니다.
일터에 초청하시기 바랍니다.
실패의 자리에, 아픔의 자리에, 고통의 자리에, 수치의 자리에 주님을 초청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 여러분들의 상처를, 아픔을, 부끄러움을, 고통을 그리고 문제거리를 내 보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쓰러진 여러분들을 일으켜 세워 주실 것입니다.
아픈 상처를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고통을 덜어 주실 것입니다.
수치를 씻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의 고통중에 흘리는 눈물을 기쁨의 눈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라고 이사야 61:3절을 통하여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이 한주간도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One Response to “예수님을 초청하라(마가복음1:29-34절)”

  1. Philipe says:

    Absolutely first rate and cote-reboptompd, gentle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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