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 02

Jehovah-Y’shua(The Lord is our Savior: 구원의 하나님 시편23:5)

Posted by on Mar 02 2011 at 12:36 am

시편 23:5절
Jehovah-Y’shua(The Lord is our Savior: 구원의 하나님)

February 27/2011

시편 23:5절은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내 잔이 넘친다 하여 여호와 닛시, 하나님은 승리시다, 하나님은 나를 승리하게 해 주신다 라는 해설을 듣거나 보아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하나님의 승리를 선포와는 약간 다른 면이 있습니다.
본문의 배경이나 앞뒤 정황을 보면 나의 목자 되신 하나님은 내가 원수들에게 쫓기며 포위되어 주릴 때에 그 전장에 오셔서 내게 풍성한 밥상을 베푸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걱정 근심거리로 혹은 분노와 억울함으로 또는 치부를 드러내는 수치심으로 머리속이 복잡하고 심히 혼란스러워 스스로 생명을 끊고싶은 충동을 느낄 때 양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날파리 떼와 벌레들을 쓸어내시듯 주님의 임재하심(Anointing)으로 모든 잠념과 불안과 공포와 걱정거리를 도말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내가 너무지쳐 일어서지도 움직이지도 못할때 내 잔에 생명수가 넘치도록 부어 주셔 나로하여금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가 뛰듯이 다시 뛰고 날게 하십니다. 이러한 배경을 생각하며 본문을 좀더 구체적으로 보시면서 주님의 은혜와 축복을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목자가 양떼를 이끌고 좋은 풀을 찾아 계곡을 따라 정상을 향하여 올라가는데, 가다가 Plateau 라고하는 넓은 평지를 만나면 거기서 방목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높은 산 준령에 있는 그 평지가 멀리서 보면 마치 식탁 테이블, 즉 밥상같이 보입니다.
그리하여 마치 밥상위에 풍성한 음식이 놓여있는 것을 상상하면서 아마도 다윗은 “그 분이 나에게 오셔서 밥상을 베푸시고” 하였을 것입니다. 요즘에도 목자들 간에 그러한 목초지를 식탁을 의미하는 “테이블”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이러한 좋은 평원을 발견하는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양들이 언제든지 마실 수 있는 물, 즉 물을 마실 곳을 확보해 둡니다.
그리고 물만 먹으면 탈진될 수도 있으므로 소금을 먹여야 하는데, 미리 준비해 온 소금 통도 물먹는 옆에 놓아 둡니다. 그러면 양들이 풀을 먹다가 갈증이 나면 와서 물도 마음껏 먹고 소금도 핥아먹게 됩니다.

이처럼 먹고 싶으면 먹고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눕고 싶으면 눕고, 얼마나 풍요롭고 평화스럽습니까? 생각만 해도 너무 평화스럽고 한가로와 좋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풍성한 밥상을 베풀어 주시는데 다른 곳이 아닌 “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고” 하였습니다. 왜 하필 원수의 코앞에 밥상을 베푸십니까?  나를 해하고 죽이려고 하는 원수들 앞에서 밥이 잘 넘어가겠습니까? 아니면 원수들을 다 결박해 놓고 그 앞에서 잔치를 배설한단 말입니까?

산 중턱이나 정상 부근에 있는 고원의 평원에는 좋은 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양들이 먹어서는 아니 될 독초가 산재해 습니다. 그러므로 목자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독초를 뽑아 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산 준령에는 늑대나 이리떼는 물론 사자나 곰같은 사나운 들짐승들이 많습니다.

동물의 왕국에서도 볼수 있듯이 이러한 사나운 짐승들은 떼에서 이탈되어 혼자있는 양, 누워서 낮잠을 자는 양, 아파서 뒤쳐저있는 양들을 노리고 있다가 일시에 공격하여 잡아삼킵니다. 또한 공중에는 굶주린 독수리가 먹잇감을 찾아 하늘을 빙빙 돕니다. 그러다가 따로 떨어져있는 새끼 양이나 벼랑 끝에 서 있는 양이 있으면 급강하 하여 발톱으로 탁 채서 올라 가든지 아니면 벼랑 끝으로 끌어 내려 잡아 먹습니다.

그러므로 목자는 혹시 혼자 떨어져 졸고있는 양이 있나, 넘어져서 못 일어나는 양들이 있나, 멋모르고 벼랑 끝에 서있는 양들이 있나 늘 살펴야 합니다. 그러므로 풍성한 식탁이지만 사자, 늑대, 이리, 독수리등이 잡아먹으려고 눈을 부릅뜨고 지키고 있는, 마치 동서남북 그리고 공중까지 온통 원수로 뺑 둘러쌓여 있는 상황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사무엘 상 25장 1절 이하를 보면 다윗의 병사들이 나발의 목자들을 도와 양을 지켜주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 상 25:7절에 “네게 양털 깎는 자들이 있다 함을 이제 내가 들었노라 네 목자들이 우리와 함께 있었으나 우리가 그들을 상치 아니하였고 그들이 갈멜에 있는 동안에 그들의 것을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나니” 한 것을 보면 아무리 목자가 잘 지키려 해도 이러한 사나운 짐승들, 독수리 떼, 그리고 도둑 등을 다 막을 수는 없었던 목자의 한계를 말한 것입니다.
하지만 시편 121:4절에,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하셨듯이 주야로 우리를 돌보심을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아무런 두려움이 없음을 찬양합니다.

사울왕으로 부터 쫓기던 다윗, 언제 사울 왕이 닥쳐와서 자신을 죽일지 모르는 그러한 위험한 상황에서도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을 통하여 풍성한 양식을 공급받게 하신 것을 생각하였는지도 모릅니다.  “그가 심히 부하여 양이 삼천이요 염소가 일천이므로” 하였듯이, 부자였던 나발이 죽자 그의 아내 아비가일을 아내로 취한후 다윗과 그의 병사들은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였을 것입니다.
또한 압살롬의 추격을 받으면서 급히 도망칠 때 사무엘 하 17:27-29절에 보면 “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에 암몬 족속에게 속한 랍바 사람 나하스의 아들 소비와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녹두와 꿀과 뻐더와 양과 치스를 가져다가 다윗과 그 함께한 백성으로 먹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 생각에 백성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고 목마르겠다 함이더라” 하였듯이 하나님께서는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 주시듯 적에게 쫓기면서도 식물과 잠자리를 제공받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 시달릴 때, 고통 속에 헤멜때, 한 시 앞이 안 보이는 벼랑 끝에 서서 춥고 배고픔에 떨고 있을 때, 주님은 손수 식탁을 준비하시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영적 전투가 너무 심하여 심신이 완전히 지치고 기력이 쇠미해질 때 주님은 우리 앞에 손수 식탁을 베푸시고 “힘들지? 고달프지, 자, 이 식물을 먹고 힘을 내라” 고 부르십니다.

제가 2008년 8월 전임교회에서 맨주먹 빈털털이로 쫓겨 나왔을때 살길이 막막했었습니다. 제 처는 암 수술을 두 번씩이나 해서 아직 회복도 되지 않은 상태로 누워있고, 어린 세 자녀들은 학교를 계속해서 학교를 가야하는데 차가 없으니 참 막연했습니다. 모아놓은 돈은커녕 카드빚도 많았었는데 월세방 값은 내야하고…… 그러면서 들려오는 소리는 모두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고통으로 몰아넣는 소리 뿐이었습니다. 마치 제가 컵속에 들어있는 것과 같은, 동서남북 사방에 나를 힘들게 하고 고통으로 몰아넣는 원수로 둘러 쌓여있고 오직 하늘을 향하여만 문이 열려있는 상태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저희 어머님께서 제 형제들 누나들에게 연락하여 십시일반으로 돈을 좀 모아 오셨지만 그것으로 얼마동안이나 살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생각하지도 않한 사람들을 통하여 공급해 주시기 시작하였습니다. 월말이 다가오면 방값 낼 것을 걱정하였는데, 그 때마다 뜻밖의 손길을 통하여 채워 졌습니다.

그리고 그 해 11월이 되었는데, 아침에 아이들이 학교를 가야 하는데 비가 주룩 주룩 옵니다. 그간은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 다녔지만 이제는 비가오니 30분도 더 걸리는 거리를 어떻게 11월의 찬비를 맞으며 걸어가라고 할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 정말 따지는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정말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건 너무하시지 않습니까? 나를 연단 하시려면 숨통이라도 좀 터놓고 하셔야지, 아예 나를 죽이시려고 그러십니까? 나는 욥이 아닙니다, 나를 욥처럼 치시면 나는 곧바로 죽게됩니다” 라며 울며 호소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해 추수감사절 전날 밤, 전 교회 교인이었던 부부가 찾아 오시더니 열쇠를 하나 주시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타던 Van인데 아직 탈만은 할 것이라 하시면서 친절하게도 고장나면 고쳐줄테니 가지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몸둘바를 몰랐습니다. 물론 그분들도 감사하지만 그분들을 통하여 나의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감사한지,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셨구나 라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원수의 목전에서, 원수로부터 포위 당한 상태에서 그 포위망을 뚫고 오셔서 “애야, 힘들지, 이것 먹고 힘을 내라” 하십니다. 아직 원수가 완전히 물러간 것이 아닙니다. 원수들을 결박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원수들을 제거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우리에게 상을 베푸시면서 이것을 먹고 힘을 내어 싸워 이기라고 하십니다.

이세벨에 쫓긴 엘리야가 기진하여 있을때, 열왕기상 19:4-8절에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하였습니다.

너무나도 심한 영적 전투에 기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냥 주저앉고 싶은 그 때에 주님은 “네 힘드는 것 다 안다, 네 고통 다 안다. 그래, 이 음식을 먹고 기운을 좀 차려라. 그리고 다음 영적 전투를 준비하라. 다음 사역을 위하여 네 힘을 충전하라” 고 영적 전투의 현장에 오셔서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구해 주십니다. 총알이 빗발처럼 날아오며 포성이 고막을 째는 듯 하는 전쟁터에 기진하여 쓰러진 나에게 오셔서 “잠시나마 내가 지켜줄 테니 어서 이것 먹고 기운을 차려라, 그리고 힘을 얻어 나가 싸워 이겨라” 고 내게 식물을 베푸시는 주님을 찬양하십시다. 고난의 회리바람과 환난의 가시길에서 지치고 쓰러진 나를 일으켜 세우시며 “일어나 이것을 먹고 힘을 내라, 아직 갈길이 멀다” 라며 광야에서 식탁을 베푸시는 주님을 찬양하십시다.

둘째,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양들이 모이는 곳에 벼룩과 빈대는 물론 피를 빨아먹는 파리떼가 들끓습니다. 특히 양떼에 붙어사는 조그마한 파리떼는 항상 물기가 있어 촉촉한 양의 코에 붙어 사는데 터에 붙어 산다고 해서 코 파리 혹은 콧구멍 파리 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 파리떼들이 앉았다 하면 코가 근질거려서 양들이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처럼 팔로 쫓아낼수도 없기 때문에 킁 킁 소리를 내며 코를 땅에 대고 마구 문지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이 파리떼가 양의 코 속에 알을 깝니다. 그러면 코 속에 있던 알에서 깨어난 조그만 애벌레들은 양의 머리로 올라가서 살 속을 뚫고 피를 빨아먹습니다. 이 쯤되면 양은 머리가 몹시도 가렵고 화끈거려 한시도 견딜 수가 없어 펄쩍펄쩍 뛰기도 하고 머리를 나무에 대고 피가 나도록 문지르고 그래도 안되면 머리를 나무에 쾅쾅 들이받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심하면 머리가 상하여 죽기도 하고, 물속에 첨벙 뛰어들어 익사하기도 한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파리떼가 윙하고 양 주위를 맴돌면 양은 아주 질색을 하고 미리 놀라 기절할 정도가 되어버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파리떼가 달라붙은 양은 금새 표시가 납니다. 아무리 건강하고 살이 푸둥푸둥 찐 양일지라도 일단 이 파리떼에 감염되면 먹지를 못하기 때문에 비쩍비쩍 말라갑니다. 털도 윤기가 빠지고 꺼칠해 집니다. 특히 새끼를 먹이는 양은 젖이 나오지 않게되어 새끼가 굶어 죽기도 합니다.

그러한 양에게 목자는 다가가서 아마 씨를 짜서 낸 기름, 즉 아마인유에 황산을 조금섞어 발라 줍니다. 그러면 그 기름을 머리에 붓는 순간 그 애벌레들이 거짓말처럼 다 죽고, 머리 속의 화끈거리던 것도 순식간에 멎습니다.  그러면 양은 너무 시원하고 좋아서 연신 머리를 갖다가 목자에게 비비다가 풀 있는 곳으로 가서 먹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양 머리속을 뒤집어 놓는 작은 애벌레처럼 이러한 작은 문제들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작은 고민거리 때문에 잠을 못 이루고 심지어는 자살할 충동을 느끼기도 합니다. 마음속에 남아있는 오래 전의 상처가 계속해서 심령을 상하게 하고 주변사람들과의 관계를 망가뜨리고 마침내는 파국을 맞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시내티에 살던 한 사람은 이웃집 사람과 울타리 문제로 다투었다고 합니다. 그 후부터는 그 울타리만 생각하면 기분이 나쁘고 화가나서 잠을 못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이웃집 사람이 자기를 해할 줄도 모른다는 망상에 빠져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그 사람이 몰래 침입하여 나를 죽이면 그 증거가 남게 해야지 하면서 집 모퉁이 곳곳에 그 집을 향하여 감시 카메라를 장치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비 오는 날이었습니다.  나무를 심으려고 삽으로 땅을 파다가 이웃집 사람이 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는 자기를 죽이려 오는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그냥 쳐 죽입니다. 그리고는 증거를 인멸하기 위하여 삽으로 구덩이를 파고 꽁꽁 묻었지만 그 장면이 자기가 장치한 감시 카메라에 고스란히 잡혀 있었습니다.

지난번 이집트 대통령도 자기 손자의 죽음으로 인하여 문제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자기 아들보다도 더 믿고 의지하였던 손자가 갑자기 죽자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부터는 정치는 물론 매사에 의욕을 잃기 시작했답니다. 그로 인하여 정국은 어지러워지고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어 마침내는 파국을 맞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크고 작은 일들이 우리 마음을 뒤 흔들고 머리를 혼란시켜 마침내는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므로 걱정 근심거리가 있을때 주님께 아뢰시기 바랍니다. 머리가 복잡하고 근심 걱정으로 가득차 잠을 이룰수가 없습니다, 살수가 없습니다, 주님 살려 주십시오 라고 외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목자가 아마씨 기름을 발라서 머리속을 근질거리게 하고 화끈거리게 하는 모든 벌레들을 말살 시켜 주듯, 주님께서 나의 아픈 상처를 싸매시고 기름을 부어 주심으로 인하여 상처가 치유되고 걱정 근심이 떠나가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임재하심과 주님의 기름 부으심으로 인하여 환난과 고난의 한 가운데서도 기쁨의 여유를 누릴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내 잔이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산은 평지에 비하여 기후변화가 매우 심합니다. 특히 높은 준령은 더욱 그렇습니다.

제가 1975년 7월에 처음으로 화엄사에서 시작하여 지리산 천왕봉을 4박 5일만에 올라 갔습니다. 쨍쨍 내리쬐는 햇볕을 받으며 마침내 천왕봉에 올랐는데, 천왕봉에서 보니까 수많은 산 봉우리들이 내 발아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 밑에 조그만 하얀 구름이 떠가고 그 아래 아득히 먼 곳에 손바닥보다도 더 작게 보이는 동네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몰려왔는지 갑자기 큰 구름덩이가 몰려오더니 방금까지 쨍쨍 내리쬐던 태양은 간데없고 금새 짙은 안개가 낀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찬 바람이 불고 금새라도 비가 내릴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힘들게 올아갔으니까 좀더 있다가 오려고 했는데, 일기가 너무 불순해서
곧바로 내려왔습니다.

산속은 이렇게 일기가 불순하고 한 여름에도 언제 갑자기 차가운 비바람이 몰아칠지, 눈이 내릴지 모릅니다. 따뜻한 태양볕을 받으며 한가롭게 풀을 먹던 양들이, 이처럼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치면 대부분 나무밑으로 도망치는데 추워서 어쩔줄을 모른다고 합니다. 더구나 나무가 비를 피하게 해주지도 못할 때에는 더욱 심각합니다. 그리하여 어떤 양들은 Shelter 로 옮길려 해도 추워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떨고만 있다고 합니다.

그러한 양이 발견되면 목자가 위스키를 탄 물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러한 양들에게 한모금씩 먹인다고 합니다. 그러면 양들은 금새 생기를 찾고 다시 걷게 된다고 합니다.

이렇듯 지치고 피곤한 우리에게 새 힘을 내라고 주님은 새 술을 부어 주십니다.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만난 사람에게 술을 부어 주듯이 주님은 새 술을 부어 쓰러진 우리를 일으켜 세우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성도들, 발각될까 두려워 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간절히 기도하던 그들에게 주님은 새 술(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새 술에 취한 그들은 문을 박차고 거리로 나가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영적으로 메말라 갑니까? 신앙생활에 의욕이 없어집니까? 새 술에 취하게 해 달라고 주님께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성도들처럼 갈급한 심령으로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새 술을 부어 주시고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일,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새 일을 하게 하실 능력을 부어 주실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One Response to “Jehovah-Y’shua(The Lord is our Savior: 구원의 하나님 시편23:5)”

  1. Mickey says:

    ..h.T…..U…hanks for the recaps. Your writing is, as ever, made of 100 percent pure Grade-A awesome, but I couldn’t even laugh for all the “What the fuck, Stephenie Meyer, JESUS, WHAT THE FUCK?” running through my head.OH STEPHENIE MEYER NO.So tell me again how this woman got published? JESUS. Put her on a Greyhound bus, stat.ETA: I love how 2000one of the chapters is titled “Contrivances.” O RLY?Edited at 2008-08-03 11:28 pm (U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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