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17
If you Do not Know(아가서 1:8-8절)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
왕의 Inner Chamber 에 있던 술람미 여인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회개하였습니다. 왕과 한 몸이 되고 싶어 그 거룩한 곳에 갔는데 거기서 자신의 추하고 더러운 과거를 발견한 것입니다. 이미 짓 밟힌 몸인지라 왕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신세를 한하면서 깊은 회개를 통하여 몸을 다시 정결하게 합니다. 그리고 왕을 찾으니 옆에 있어야 할 왕이 없습니다. 양을 치러 나간 것입니다. 그 분은 지금 양들과 함께 계십니다.
술람미 여인은 다시 주님의 은밀한 침실에서 나와서 왕을 애타게 찾으면서 목자들이 양을 먹이는 곳, 그리고 오정에 쉬는 곳이 어디 있느냐고 묻습니다.
왜냐하면 양을 먹이는 곳에 왕이 계실 것이며, 또한 한낮 정오에 목자들이 쉬는 곳에 그분께서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오정에 쉬는 곳에서 왕과 한몸이 되기를 원하였고, 혹 왕이 직접 만나주지 아니할 지라도 왕이 양을 돌볼 때 자신도 그 많은 양중의 하나처럼 왕의 얼굴은 볼 수 있지 않겠는가 라는 기대감으로 찾아 나서면서 왕이 어디 계시는가 묻습니다.
신랑을 너무 사랑하고, 신랑과 떨어져서는 한시도 살기 힘든 그래서 신랑을 열심히 찾는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솔로몬은 여러 여인들 중에 더욱 어여쁜 자라고 칭찬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주님의 계신 곳을 목마르게 찾고 있는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며, 이것을 시편 42편은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에 비유하였습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은 본능적이요 또한 찾지 못하면 죽게되는 생명을 건 사투입니다.
이처럼 주님을 애타게 찾는 성도를 주님은 어여쁜 자로 부르시고, 또한 그렇게 여기십니다. 비록 햇볕에 타서 얼굴이 거무스름하지만 어여쁜 자로 여기시는 그 이유는 무엇인가? 비록 죄악으로 인하여 세상의 빛에 그을림을 받았지만, 예수님의 피로써 씻김을 받아 깨끗하여 졌다. 그리고 외모가 예뻐서가 아니라, 우리가 주님을 사모하는 그 마음, 열정적으로 찾고 찾는 그 마음을 주님은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모하며 주님 만나기를 갈망하며 찾고 찾는 그 열성적인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주님은 여인중의 어여쁜 자, 즉 여러 성도중의 더욱 아름다운 자라고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에 If you don’t know, 네가 그분이 계시는 곳을 알지 못한다면 하십니다. 이것은 책망이 섞인 말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왕과 항상 같이 있었어야 했으며, 왕이 어디로 가시는지 알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왕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물론 왕의 은밀한 침실에서 깊은 회개를 하였지만 그럴지라도 늘 왕과 함께 있어야 했으며 설령 왕이 어디 가시더라도 왕이 어디로 가시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는 책망입니다.
그러면서 그의 계신 곳을 알지 못하겠다면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양떼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우리의 염소 새끼를 먹이라는 것입니다. 즉 신앙의 회복 방법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선 양떼의 발자취를 따르라는 것은 앞서간 믿음의 선진들의 믿음의 발자취를 보고 배우며 따르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우리가 정한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선진들이 가신 그 발자취를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미 앞서 가셨고, 그 뒤를 이어 11사도들, 그리고 바울 사도, 목숨을 걸고 신앙을 사수한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갔던 길입니다.
그러므로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은 간단하지도 쉽지도 항상 기쁜 것 만도 아닙니다. 때로는 원하지 않는 희생이 요구되기도 하고 극단적인 경우는 생명을 내놓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지 않으시고 그대로 돌아가신 것은, 너희들도 나와 같은 핍박을 받는 날이 올 것이라는 암시였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주님께서 가신 그 길을 주저하지 않고 걸어 가셨습니다.
이러한 양떼의 발자취를 아직 체험하지 못했다면, 그 신앙은 아직 이론적이요 메마른 사막 길과 같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안다는 것과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은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선진들이 겪으신 고난과 역경을 보면서, 그분들이 얼마나 정성껏 사모했는지 나도 그 정도의 신앙을 갖도록 기도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다음으로, 주님께서는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우리의 염소 새끼를 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염소새끼라 했는데 실제로는 어린 양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목자들은 선지자, 사도, 그리고 오늘날 목사들을 포함한 양떼를 먹이고 치는 사역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사역의 현장에서 목회자들을 도와 아직 신앙적으로 덜 성숙된 자들을 섬겨보라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의 Inner Chamber 에까지의 체험과 그 안에서 진정으로 회개하여 주님의 정결한 신부로 다듬어져 가는 과정에서 이제는 영적으로 약한 자들, 신아의 초보자들을 잘 양육해 보라는 명령입니다.
이 초보자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신앙인들을 섬기면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게 되고, 그들을 위하여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도 묵상하고 연구하며 준비도 하여야 합니다. 그러는 과정을 겪으면서 사역의 현장, 섬김의 현장에서 주님을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만나려면, 물론 골방에서 열심히 부르짖어야 하겠지만, 나와서는 믿음의 선진들의 신앙의 유산을 지켜야 할 것이며, 또한 열심히 전도하고 초신 자들을 양육해야 합니다. 이러한 섬김의 자리에 있을 때 그 사역의 현장에서 주님은 우리를 여인중의 어여쁜 자, 여러 성도 중에 더 사랑스런 성도라고 칭하여 주실 것입니다. 기도하시는 중에 주님의 Anointing 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구약,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