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09
주여, 어디 계시나이까?
아가서 1:7절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야 너의 양 떼 먹이는 곳과 오정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고하라 내가 네 동무 양 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리운 자같이 되랴
본문은 술람미 여인의 솔로몬을 향한 사랑, 보고싶어 심한 갈증이 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우리 믿는 성도들의 주님을 향한 모습이어야 함을 본문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지금 왕의 Inner Chamber, 은밀한 침실에 있습니다. 거룩한 그곳에서 자신의 추악함, 더러움, 불결함을 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후회와 회개를 통하여 새로운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자기 안에 계시므로 죄인이지만 아름다운 자신, 세상 유혹에 넘어지고 타락하였지만 존귀한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한 자신을 발견한 후 사랑하는 왕과 한몸이 되고 싶었지만 사랑하는 왕은 곁에 없습니다. 그녀는 왕의 Inner Chamber 안에서 왕이 너무 보고싶어 탄식하는 마음으로 “내 마음에 사랑하는 자야, 내 영혼이 사랑하는 그대여” 하고 부릅니다. 그러면서 양떼 먹이는 곳과 오정에 쉬게하는 곳을 알려달라 합니다.
왕은 지금 양떼를 돌보러 갔습니다. 그로므로 지금 양떼들과 함께 있습니다. 그런데 목자들은 밤에도 양들을 돌보아야 하기 때문에 바쁘고 피곤합니다.
그래서 하루중 가장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오정에는 양들도 서늘한 그늘 밑으로 가서 쉬고 목자들도 이때 점심을 먹고 쉬기도 하고 낮잠도 잡니다.
이 때에 목자의 연인들이 목자들이 있는 곳에와서 사랑을 나누고 가기도 합니다. 지금 술람미 여인은 이러한 목자들이 오정에 쉬는 곳에서 사랑하는 왕이요 목자를 만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네 동무 양 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리운 자같이 되랴” 라고 했는데 설령 내가 그곳에서 목자와 사랑을 나누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분의 양들중의 한마리처럼 목자를 볼수는 있지 않겠느냐 라며 갈급해 합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목자는 왕이요 목자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술람미 여인은 그리스도의 예비신부입니다. 이미 주님의 Inner Chamber 에 거하는,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는, 그리하여 나는 아무것도 할수없고 나를 통하여 주님이 사역하시는 그러한 체험을 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한 체험을 넘어 주님과 영원히 한몸이 되고파하는 주님의 영원한 신부가 되고자 갈망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거룩하신 예수님의 Inner Chamber에서 자신의 더럽고 추악한 모든 것을 회개하여 씻어 냈는데, 그리고 정결한 신부로 주님과 한 몸을 이루고자 하는데 정작 있어야 할 주님이 안계십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찾아 나서고자 그 분이 계시는 곳, 오정에 쉬는 곳을 찾아 나섭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로드발 마길의 집에서 슬픈 나날을 지내던 므비보셋을 찾아온 다윗처럼, 호렙산 굴속에 숨은 엘리야를 찾아오신 주님처럼 우리가 주님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본문의 술람미 여인은 주님께서 직접 찾아오실 때까지 기다리지 못합니다. 너무 갈급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주님을 찾습니다.
그렇습니다. 신명기 4:29절에,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 고 하셨고 예레미야 29:13절에,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고 하였으며 예레미야 33: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고 하였듯이 주님이 오시기까지 마냥 기다리지만 말고 위급하고 긴박할 때에는 찾아야 합니다. 아이가 엄마를 찾듯이 여기 저기 찾아 다니며 큰 소리로 울부짖어야 합니다.
술람미 여인은 너의 양 떼 먹이는 곳과 오정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고하라 하였는데, 왕이 그의 양뗴 먹이는 곳, 오정에 쉬게하는 곳이 어딘지 알려달라 간청합니다. 그런데 왕이 양떼를 먹이는 곳은 바로 주님의 사역의 현장이요, 주님의 임재하심을 의미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께서, “목회는 50이 넘어서야 비로소 무엇이 목회인줄 깨달았다” 고 하시면서, “하나님 일을 한다고 하면서 네 일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고 저에게 충고하신 적이 있습니다. 흔히, 하나님을 위하고 교회를 위하는 일이라고 열심을 내지만 결국은 자신을 위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교회 일이라고해서 모두 하나님 일은 아닙니다. 많은 경우, 교회에서 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 아닌 세속적인 일임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내 자신의 일이 아닌, 내가 생각해서 하는 일이 아닌,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셔서 나를 주관하시며, 나는 그분의 종으로서 그분이 시키시는 일을 하는, 그러한 사역의 현장이 바로 주님께서 양떼를 먹이시는 곳이요, 나를 오정에 쉬게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쉰다는 것은 손놓고 편안이 낮잠을 자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자아가 쉼을, 멈춤을 당하고, 내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상태, 그래서 나는 그분께서 시키는 일만 하는 그러한 사역의 자리를 의미합니다.
또한 “오정”은 밝은 한 낮을 의미하지만, 또 다른 의미는 뜨겁고 목마르고 견디기 힘든 시간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 오정이라는 히브리어 원어를 유추해보면, 그 어원은 “기름을 짜내다”에서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정이란 기름을 짜내듯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도 기름을 짜듯 부서지고 깨어지고 비틀리고 쪼이고 짓이겨지고 눌려서 진액이 빠져나가야지 마침내는 오정의 쉼을 얻게 됨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러한 고통의 시간, 연단의 시간을 지나야 정금같이 나아오게 되며, 그때부터 드디어 내 안에 계시는 주님께서 일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깨어지거나 짓눌림을 당하지 않고서 기름이 나오지 않듯이, 그러한 연단의 기간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삶에 주님의 향유가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 감람산 바위 위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자신이 아주 짓이겨지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이렇듯 이러한 고통을 겪지 않고서는 우리의 자아가 빠져나가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녔고 날마다 하나님을 소리높여 부른다 할지라도 계속해서 육에 속한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는 결국 “동무 양 떼 곁에서 주님으로 부터 얼굴을 가리운 자” 가 되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그분에게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내어 드리십시오. 혹 고난중에 계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술람미 여인의 사랑을 생각하며 믿음으로,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잘 견디고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 앞에 정금같이 나아오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으로부터, 친구나 주위사람들로부터 위로 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실망을 당하고 상처를 입기 쉽습니다. 오직 주님의 사랑안에서, 이 고난 뒤에 반듯이 오는 축복을 미리 바라보며 믿음으로 꼭 승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가,주일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