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08
Yahweh Tsidkenu(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시편 23:3절
February 6/2011
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오늘 본문은 의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좋은 풀이 있는 곳으로 쉴만한 물이 있는 곳으로 인도합니다. 양이 가라는 곳으로 가지않거나 따라오지 않으면 목자는 즉시로 가서 막대기로 때려서라도 목자가 인도하고자 하는 길로 가도록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양을 위함도 있지만 목자의 체면 때문에도 그렇게 합니다.
양은 스스로 먹이를 찾을수도 없고 마실 물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며, 스스로 올바른 길을 찾아갈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자가 날마다 매 순간마다 먹이를 찾아 마실 물을 찾아 인도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양은 그 길이 좋은 길인지 먹을 풀이 있는지 마실 물이 있는지 판단할 능력이 없이 어제 갔던 그 길로 그리고 그 장소로 그대로 갑니다. 그 길이 죽음으로 인도하는 길인지, 그 장소가 풀도 물도없는 사막인지 판단할 능력도 없이 그저 가던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날마다 새로운 길로 인도하지 않으면 수많은 양들이 똑같은 길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양들이 지나간 곳은 양들의 발에 밟혀 풀이 죽고 심지어는 흙이 파이기도 합니다. 또한 똑같은 장소에서 계속해서 풀을 뜯기게 되면 풀 뿌리까지 상하게 되며 그러면 목초지가 망가져버립니다.
그리고 한번 망가진 목초지를 다시 복구시키려면 흙을 다시 파고 고르고 그 위에 거름을 주고 씨를 다시 뿌려야 하는 등 시간도 많이 걸리고 경비도 많이 듭니다.
그리고 곧바로 복구해야지 그대로 놓아두면 토양이 다 침식되어 복구하기가 아주 힘들어 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자는 양들을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으로 인도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들은 목자가 이끄는 대로 잘 따라가야하는데 간혹 중간에서 방황하다가 다른 곳으로 세기도 하고, 잘 따라오지 않다가 길을 잃고 헤메기도합니다. 그러면 목자는 양들을 막대기로 때리고 위협하며 올바른 길로 인도하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양이 잘못된 길로 가게되면 굶어죽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사나운 짐승의 밥이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희생당하는 양이 불쌍하기 때문에 목자는 황급히 달려가 올바른 길로 인도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 양이 계속해서 비뚤어진 길을 가다가 실족하여 짐승의 밥이 되거나 구덩이에 빠져죽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리고 초지가 망가지도록 방치해 두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도 그 못된 양들이라고 양을 책망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못된 양일지라도 그 양을 잘 이끌고 심지어는 때리고 위협해서라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목자의 임무입니다. 그러므로 실력있는 목자는 말 안듣고 곁길로 새는 양들도 잘 다루어서 잘 따라오게 만듭니다.
더구나 양은 원래 잘못된 길로 가는 습성이 있고, 한번 잘못된 길로 빠지면 스스로는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을 목자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이 그렇게 실족을 당하고 희생당하는 것은, 물론 양 잘못이지만 그것을 방치해 두거나 올바르게 인도하지 못한 목자에게 그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의 선하신 목자이기기 때문에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항상 올바른 길로, 먹을 양식이있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목자가 자신의 체면을 중요시 여기듯이 당신의 이름 때문에, 그 거룩하시고 선하신 좋으신 이름과 의로우시다는 명성때문에 우리를 항상 올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려 40주야를 금식하면서 시내산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 사이 불안해하며 참지못한 백성들은 애굽에서 섬기던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을 섬깁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백성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라 하십니다. 그들이 금송아지를 음란하게 섬기며 그 앞에서 춤을 추는 광경을 본 모세는 아연 실색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화가난 모세는 십계명 판을 던져 깨뜨립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출32:9-10) 고 하십니다. 그 때 모세는 “모세가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출32:11-12) 라고 간청합니다.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라고 하였는데, 그 말 뜻은 무엇입니까? 그렇게 못된 백성인줄 애굽에서 인도하시기 전부터 아셨지 않습니까? 그러한 못된 백성들일지라도 하나님께서 강하신 팔로, 하나님의 그 능력으로 그들을 지금까지 잘 인도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렇기에 하나님의 이름이 온 천하에 알려지고 존귀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백성들이 못돼 먹었다고 이 사막에까지 끌고 와서 죽이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죽이시려면 무엇하러 애굽에서 데리고 나오셨습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이 말을 안듣고 죄악의 길로만 가기 때문에 화를 내시며 그들을 다 죽이시면 “그 못된 백성들, 죽어도 싸지” 할 사람들이 없습니다.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어찌하여 자기 백성을 저렇게 무자비하게 죽였을꼬” 라며 결국 하나님께서 비난을 받게될 것 아니겠습니까? 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모세가 간절히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 때문에, 당신의 명예를 위하여 즉시 뜻을 바꾸십니다.
그런가 하면 민수기 14장에 가나안 땅에 정탐하러 갔던 사람들이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악한 땅이라고, 그리고 거인들이 살기 때문에 우리는 정복할수 없노라고 악평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화가난 백성들은 모세를 돌로 치려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 회막을 덮으셨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너로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민4:11-12) 그러자 모세는, “이제 주께서 이 백성을 한 사람같이 죽이시면 주의 명성을 들은 열국이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이 없는 고로 광야에서 죽였다 하리이다”(민14:15-16) 라며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 백성들이 그릇된 길로 갔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모두 죽이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릇된 백성들을 책망하여서라도 채찍질하여 올바른 길로 가게하여야 할 것 아닙니까? 만일 이 백성들을 여기서 모두 죽이시면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 백성들을 이끌고 갈 능력이 없어서 죽였다고 할 것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하나님의 체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들의 잘못도 나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치지는 마십시오”
라며 간절히 애청한 것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시고 그들을 다시 인도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명예를 매우 중요시 여기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갈 때에 우리를 쳐서라도 올바른 길로 가게 하십니다.
다윗은 자신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러한 성품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가 밧세바와 불륜의 관계를 맺고 그녀의 남편을 살해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그를 온전히 회개시키셨습니다. 하지만 나단 선지자는 이렇게 경고를 합니다: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처를 빼앗아 네 처를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처럼 이르시기를 내가 네 집에 재화를 일으키고 내가 네 처들을 가져 네 눈 앞에서 다른 사람에게 주리니 그 사람이 네 처들로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무리 앞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삼하 12:10-12)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죽이려고 쳐들어 왔을때 다윗은 그것이 밧세바와 저지른 자신의 죄의 대가임을 알았습니다. 자기는 은밀히 행하였지만 압살롬은 자기 첩들과 대낮에 백성들이 보는 가운데 천막을 치고 거기서 동침합니다. 비참한 모습으로 도망치는 다윗에게 시므이라는 자가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 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 라고 입에 담기도 거북한 저주를 퍼붓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컨대 나로 건너가서 저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삼하6:9) 라고 하였을때 다윗은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또 아비새와 모든 신복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 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삼하6:10-12) 라고 합니다. 자기가 지은 죄의 댓가임을 온전히 인정하고 다윗은 그대로 받아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끔찍한 죄를 범한 자신을 불쌍히 여기시고 고난의 채찍으로 징게하셔서 올바른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깊히 체험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고백을 할수 없습니다.
저도 어떤 때에는 제가 목회길로 들어서지 않았으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돈은 많이 벌었을 것입니다. 특히 GE 컴퓨터 정보센터에서 일하면서 배운 기술을 한국으로 가서 정착시켰으면 큰 돈을 벌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1980년대 한국이 얼마나 부정 부패가 심했습니까? 그렇게 되면 정치가들의 정치자금도 주어야 했을 것이고, 그러다가 지금쯤 감옥에 있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렇다고 정치가들을 외면하면 아마도 모든 것을 다 빼앗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물론 경제적으로 무척 힘들지만 그래도 이 길이 복된 길이다 하나님께서 다른 큰 뜻이 있겠지 하면서 삽니다.
그런데 양이 잘못된 길로 갈때 목자는 달려가서 막대기로 양을 때려서 올바른 길로 가게 합니다. 그 때 양은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자기를 마구 때리는 목자를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갈 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의 막대기로 치십니다. 그러면 얼마나 아픕니까? 참으로 고통스럽고 힘듭니다.
다윗이 자기 아들 압살롬에게 쫓기어 도망칠때 얼마나 슬프고 수치스러웠겠습니까? 특히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 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라고 말할때 그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을 것입니다.
또한 자기를 치러 병사들을 몰고오는 사랑하는 압살롬, 그를 죽이고 승전보를 울리는 자기 병사들 앞에 아들잃은 슬픔을 표현할 수도 없는 그의 아픔, 사랑하는 자식을 잃어보지 않고서는 어떻게 그의 찢어지는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징계를 받을 때에는 참으로 슬프고 고통스럽습니다. 때로는 원망스럽기도 하고 억울한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그 징계를 통하여 내가 올바른 길로 갈수만 있다면, 그 징계로 말미암아 내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의의 길을 걷게 된다면 그것은 오히려 축복이 될수있습니다.
잘 알려진 의사 부부가 있었는데 자녀 넷가운데 둘이 장애인입니다. 한 아이는 우울증이 심해서 자신이 의사인지라 우울증 처방을 하여 복용을 시켰는데 과다복용으로 뇌가 손상이 나 장애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른 아이는 탯줄에 감겨 나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여 뇌가 손상이 갔습니다. 이 일때문에 자책도 많이 했었는데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메달렸고 그러면서 그때까지 지은 많은 죄를 회개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만일 이런 일이 없이 잘 자라고 공부도 잘 했더라면 우리 부부는 하나님도 멀리했을 것이고 교만이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자랑거리가 있어도 이 아이들 때문에 겸손할수 밖에 없었고, 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일하게 되었고 더 부지런하게 살수밖에 없었습니다” 라며 오히려 감사하게 받아 드렸습니다.
히브리서 12:6절에 …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8절에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리라” 고 했습니다.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든 것이 징계인데, 그렇다고 그렇다고 아무나 다 징계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 하나님을 열심히 잘 섬기는 하나님의 참 아들에게 징계도 내리십니다.
오바댜 선지자는 에돔의 멸망을 예언하였습니다. 에돔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진 하나님의 참 아들이기 아니기 때문에 저주를 내려 흔적도 없이 멸망당하여 없어질 것이지만 하나님의 자녀 이스라엘에게는 징계를 통하여 다시 일어서게 하실 것이라 예언하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멸망당하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부흥을 예언하였습니다.
자기들의 지은 죄로 바벨론에 의하여 믿둥까지 잘리는 징계가 따를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잘린 믿둥에서 싹이나고 자라 열매가 맺히게 하실 것이라 축복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징계는 오직 주님을 믿는 주님의 자녀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시 하나님께로부터 징계를 받게될 때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징계를 통하여 나의 죄를 깨닫고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올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징계를 통하여 진정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고, 징계를 통하여 나의 신앙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징계를 통하여 나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오히려 감사하는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편,주일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