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03
짓밣혔지만 존귀한 나
아가서 1:6절
Feb 3/2011
6 내가 일광에 쬐어서 거무스름 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미의 아들들이 나를 노하여 포도원지기를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은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5절에는 술람미 여인은 자신이 검지만 아름답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검지만 아름다운 것은 그리스도의 예비신부인 우리들의 모습이요 또한 교회를 상징한다 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죄를 짓지 않을수 없습니다.
육신을 덧입고 있는 이상 죄를 안 짓고 살수 없도록 우리 인간은 그렇게 창조된 것입니다.
하지만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아름답습니다.
털이 까만 흑염소 가죽으로 만든 개달의 장막처럼 아무리 털고 빨고 닦아도 우리는 흰눈처럼 하얗게 될수 없습니다.
또한 목동들의 천막앞에 깔아놓는 게달처럼 아무리 자주 빨아도 목동들이 흙묻은 발로 늘 밟고 다니기 때문에 깨끗해 질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한계이자 운명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안에서 거듭난 체험을 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희다고 인정해 주시니까 우리가 아름답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인이지만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고 마침내는 의로운 자로 칭함을 받아 전 천국을 소유하게 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6절에 와서는 왜 자신이 검게 되었는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자신도 백옥처럼 하얗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하얗게 되어야 할 얼굴이 작열하는 햇빛에 쬐어서 거무스름하게 탔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거무스름하게 되었다에 Swart(seharhoret) 라는 단어를 쓴 것은 특별한 이유라기 보다는 시적인 운치를 더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그녀는 작열하는 햇볕을 받으며 포도원지기를 하다가 얼굴이 가무잡잡하게 되었고, 왜 그렇게 햇볕에 일하게 되었느냐 면 자기 형제들이 자기에게 몹시 화가 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분노한 자기 형제들은 강제로 끌고 가서 자기들의 포도원지기를 삼았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힘센 자기 형제들의 무력에 의하여 강제로 포도원 지기가 되었으며 그들의 포도원을 지키는 동안 정작 지켜야 할 자기 포도원은 짓밟히고 말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렇지만 얼굴이 검게 그을렸다고 자신을 그렇게 멸시하는 눈초리로 보지 말아달라 간청합니다.
여기서 Mother’s sons 라고 한 것은 자기 형제라는 의미인데 물론 시적인 댓구를 맞추기 위하여 그렇게 표현한 것도 됩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고 어머니의 아들들이라고 한 것은 Martin Luther 는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은 교회의 어머니 격인 유대교의 회당이 초대교회를 핍박한 것을 예언한 것이다 라고 주장합니다. 혹은 약속의 아들 이삭과 종의 아들 이스마엘, 야곱과 에서, 또는 모세와 모세를 밀고하여 미디안으로 쫓겨나게 한 아론의 아들들 다단과 아비람을 상징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신학적이 아닌 문학적인 입장에서 이 구절의 뜻을 정리해보면, 그 당시 포도원이나 과원 혹은 밭은 여자 특히 처녀를 지칭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포도원을 밭간다고 하거나 쟁기로 밭을 간다고 하는 것은 남자가 여자와 동침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사사기 14:18절에, “제 칠 일 해지기 전에 성읍 사람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 한지라 삼손이 그들에게 대답하되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 갈지 아니하였더면 나의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 하니라” 하였는데, 여기서 “내 암송아지를 밭 갈지 않았으면” 이란 “너희들이 내 아내를 정복하지 않았으면” 이라는 의미입니다. 자기 아내가 아내의 동네 친구들인 블레셋 남자들로부터 농락당한 것에 대하여 이렇게 분노를 표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갔을때 삼손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기 아내 집을 불살라 그 가족 전체를 몰살시키지 않습니까?
그리고 여기서 포도원 지기는 그 당시 음란하고 풍요를 상징하는 아세라 여신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부분 때문에 솔로몬의 아가를 정경에 포함시키기를 오랫동안 꺼려해 왔던 것입니다. 여하튼 술람미 여인은 자기 포도원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즉 순결을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왕에게 나아가려면 순결해야 하는데, 이제 몸을 망쳤으니 어떻게 합니까? 왕에게 나아갈 때 처녀인 표적이 없으면 처형을 당하고 마는데, 영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인데 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리하여 술람미 여인은 탄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나를 멸시하는 눈초리로 바라보지 말아달라” 간청합니다.
그런데 포도원은 영적으로 나의 삶, 신앙, 주님께서 내게 맡긴 사역, 그리고 내가 누릴 유업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예비신부를 상징하는 술람미 여인은 자신이 지켜야 할 신앙을, 자기에게 주어진 사역을, 자기가 누려야 할 자기 유업을 자기 어미의 아들들에 의하여 강제로 빼앗긴 것입니다.
어미의 아들들이니까 한 어머니의 태에서 나왔으니까 혈연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관계이지만, 사실은 자기와 가장 가까운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 자기 친구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자기주변 사람들로부터 핍박이나 유혹을 당하여 자기의 신앙을 잃고 자기 사역을 빼앗기고 자기 유업마저 빼앗긴 처절한 신세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마가복음 7:6절에, “아들이 아버지를 멸시하며 딸이 어머니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리로다 집안 식구 중에 원수가 나올 것이라” 고 경고하셨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10:35절에는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하셨습니다. 말세에는 자기 집안식구들이 신앙을 훼방하는 가장 큰 적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불화가 일어난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라, 그러한 신앙 때문에 빚어지는 불화는 내가 책임져 주겠다는 예수님의 경고 겸 약속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술람미 여인은 스스로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미 순결을 잃었기에 게달의 장막이 될수 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하지만 나는 아름답다.
나를 멸시하지 말라. 내 주변의 원수들이 나를 짓밟았지만, 아니 내가 그들의 유혹에 넘어졌지만 그렇다고 나를 너무 멸시하지 말라. 내 안에는 예수님이 계시니 그래도 나는 아름답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오늘도 새상에 넘어지고 유혹에 넘어지고 스스로의 언행에서 넘어지고…… 우리는 게달의 장막처럼 정말 구제 불능의 사람들입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타락했고 양 죽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악한 죄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니 죄인이지만 의롭다 함을 인정받았습니다. 세상은 나를 타락한 여인으로 정죄하고 창녀처럼 멸시하지만 우리의 신랑 되실 예수님께서 순결하다고 인정하시는데 누가 나를 정죄하리요. 세상은 나를 부정하다고 거부하지만 나의 신랑 되신 예수님은 나를 순결한 처녀로 받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검지만 아름다운 참으로 존귀한 존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기도하면서 우선 우리 각자의 포도원들은 잘 지키고 있는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강제로 자기들의 포도원을 지키게 한 형제들을 탓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용서와 사랑이 넘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는 가운데 주님의 넘치는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임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수요 설교,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