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01
시편 23:3절
El Yeshuati(영혼을 소생시키시는 하나님)
January 30/2011
지난주에는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목자에 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3절 말씀, “나의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선하신 목자”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면서 같이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양은 염소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염소와 달리 몸집에 비하여 발이 잘 발달되지 못했습니다. 염소는 높고 거친 곳을 뛰어다니면서 거친 먹이도 잘 소화시킵니다.
못 먹는 풀이 거의 없고 풀 뿌리 나무 껍질은 물론 심지어는 볏짚도 잘 먹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살이 너무많이 쪄서 뒤뚱거리는 염소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양은 그러한 염소에 비하여 매우 약합니다. 그저 야트막한 언덕에 한가롭게 풀이나 뜯어먹고 피곤하면 잠시 누웠다가 또 풀을 뜯다가 저녁이 되면 우리로 들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살이 너무쪄서 몸이 무거운 양들도 있고 털이 너무 자라서 앞이 안보이는 양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염소와 달라서 양은 넘어져 등이 땅에 닿으면 스스로 일어서지 못합니다.
특히 뚱뚱하고 살지거나 새끼를 배어서 몸이 무거운 양일 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넘어져 등이 땅바닥에 닿았으면 좌나 우로 굴러서 일어나야 하는데, 양은 그러한 재간도 없습니다. 넘어져 발이 땅에 닿지 않으면 그저 본능적으로 계속해서 발을 허공에 차며 바둥댑니다. 그런데다가 겁이 많기 때문에 힘이 다 빠져서 완전히 지쳐버릴 때까지 공포에 질린 채 마구 소리를 지르면서 있는 힘을 다하여 바둥댑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몸의 무게중심이 더욱 등쪽으로 쏠려 등은 땅바닥에 더욱 밀착되게 됩니다. 이런 상태가 되면 속히 가서 일으켜 세워주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땅바닥에 밀착되어있는 부분부터 피가 통하지 않아 마침내는 죽게 됩니다. 뜨거운 여름날에는 서너 시간만 이렇게 해도 몸이 마비가 되고 죽어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바둥대고 있는 양은 그렇게 해서 죽기 전에 사자나 늑대, 이리 등에 금새 발견되어 밥이 되고 맙니다. 사냥하느라 힘쓸 필요 없이 양 우는 소리가 나면 급히 달려가 간단히 해치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이 목숨을 잃기 전에, 사나운 짐승들의 밥이 되기 전에 속히 가서 그 양을 구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목자는 늘 넘어진 양이 없는가를 살핍니다. 매일 저녁 숫자를 파악합니다. 그리고 한 마리라도 부족하면 혹시 넘어진 양은 없는가 양 우리를 닫고 그 날 밤 당장 찾아 나섭니다. 그 날 못찾으면 날이새기 전에 짐승의 밥이 되고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넘어진 양이 발견되면 즉시로 달려가서 일으켜 세워줍니다. 그런데 넘어진지 좀 되면 다리에 피가 잘 안통하기 때문에 쉽게 걷지 못합니다. 그러면 다리에 피가 다시 돌고 힘이 생갈때까지 5분이고 10분이고 양의 배부분을 양팔로 안아 들어서 목자의 무릎에 배를 걸터 올려놓고 등을 쓰다듬어 주고 다리를 만져줍니다. 그러면 양이 힘을 얻어 두 다리로 다시 걷게 됩니다.
그런데, 선한 목자께서 잘 보살피는데 왜 넘어집니까? 선한 목자께서 항상 좋은 꼴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늘 건강해야 하는데 왜 넘어집니까?
선한 목자께서 아무리 잘 보살핀다 할지라도 넘어지는 양은 있습니다. 살이 너무 찐 양이나 새끼 밴 양, 특히 쌍둥이를 밴 양들은 넘어지기 아주 쉽습니다. 또는 목자가 인도하는 대로 따르지 않고, 대열에서 이탈하는 양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목자와 멀리 떨어져 있어 목자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다가 이러한 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은 목자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목자 가까이 있으면서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목자만 따라가면 넘어질 염려가 없습니다. 혹 넘어지더라도 목자가 발견하고 일으켜 세워 주십니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으면 넘어졌다 할지라도 목자의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쉽게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양은 늘 목자 가까이서 풀을 먹고, 쉴 때에도 잠잘 때에도 목자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양이 풀을 뜯거나 물을 마시거나 걸을 때에는 넘어져서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비스듬히 누워있다가 이런 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운 여름에 뜨거운 태양볕을 피하여 혹은 풀을 많이먹어 배가 너무 부르거나 새끼를 배어 몸이 무거우면 겁이 많은 양일지라도 피곤하니까 옆으로 가만히 눕게 됩니다.
잠을 자는 것이 아닙니다. 몸이 무거워서 서있기 피곤하니까 혹은 너무 더우니까 그냥 배를 땅에 깔고 옆으로 살짝 눕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배가 무거우니까 무게중심이 배 쪽으로 가면서 양의 몸이 등쪽으로 살짝 돌게 됩니다.
그러면서 등이 땅에 닿고 두 다리와 배가 하늘을 향하게 됩니다. 그러면 깜짝 놀란 양은 공포에 질린채 발을 허공에 차면서 바둥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정도가 되면 목자의 도움이 없이는 절대 일어날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그 상태가 지속되면 혈액순환이 안되고, 결국 죽게 됩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바로 넘어지고 환난 만났을 때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넘어집니다. 그런데 어느때 넘어집니까? 엄청난 큰 일을 당하여 넘어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혹은 목회자를 따라 열심히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생활 열심히 하다가 넘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잠시 쉰다고 한 것이, 잠을 잔다는 것도 아니고 잠시만 누워있는다는 것이 그만 일어나지 못하는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다윗도 몇 번 크게 넘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우선 밧세바 사건입니다. 그는 그것이 잘못된 일인지 몰라서 그런 일을 저지른 것 아닙니다. 혹은 밧세바를 엄청나게 사랑해서 그녀와 결혼하기 위하여 그런 일을 저지른 것도 아닙니다. 그저 하룻밤 자기 욕망을 채우고자 하였던 것이 그렇게 잘못 되어갔습니다. 사람들 눈만 속이면 되었지 그녀가 임신을 할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 임신 사건을 은폐하기 위하여 전쟁터에서 사투를 하고 있는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를 급히 특별휴가를 주어 귀가 시켰습니다. 여기까지는 잘 되어갔는데 전쟁터에서 돌아온 우리야가 집에 가서 자기 아내와 동침하지 않고 궁궐에서 잘 줄은 누가 알았습니까? 조급한 다윗은 그를 고의적으로 전사하게 만듭니다. 결국 작은 욕망이 더 큰 죄를 낫고 그것을 은폐하기 위하여 더 큰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고통 중에 은밀히 시편 32편과 같은 회개를 하게 됩니다. 한편 이 모든 것을 지켜보신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의 죄를 드러나게 하십니다.
또 하나는 다윗의 말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주변 국가들을 모두 정복하고 난 다윗은 은근한 교만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요압에게 자기 병사들이 몇명이나 되는가 숫자를 세어보라고 합니다.
전쟁이 한장일때는 하나님 도와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던 다윗, 이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입니다 라고 성전(Holy War)을 선포합니다. 적진 앞에 진치고 “하나님 언제 공격할까요?” 물으면 하나님께서는 “뽕나무 위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릴 때 공격하라” 고 알려 주십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적진에 심한 우박이 내리게 하여 칼로 죽은 자보다 우박에 맞아 죽은 자가 더 많게 하셨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전쟁 때마다 다윗은 하나님께 의뢰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던 다윗이 주변국들을 모두 정복하고 나자 마음이 바뀌게 된 것입니다. 내가 발탁하여 훈련시킨 나의 용감한 병사들이 몇 명이나 되는가 보자 하며 다윗은 요압을 시켜 병사들의 숫자를 파악하게 합니다. 교만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이스라엘에 재앙이 내리게 됩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온역이라는 전염병으로 죽어갈 때 다윗은 “죄는 내가 졌는데 재앙은 왜 백성들이 받게 하십니까?” 하며 하나님께 진심으로 회개합니다. 그리고 재앙을 내리는 천사가 있는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가서 제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 땅을 사서 하나님께 드렸으며, 다윗이 죽고난후 솔로몬이 거기에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게 됩니다.
이제 나이많은 다윗은 그러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그릇된 길로가던 자신을 올바르게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자 하나님께서 그를 당장 치셨습니다. 하지만 다윗에게는 회개의 기회를 주셨고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치리 하게 하십니다. 다윗은 이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며 “나의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양의 잘못만으로 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정말 큰 사고가 나는 줄 알았습니다. 82번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우측 길에서 갑자기 Ford old model 대형 차가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 앞에는 Stop Sign 이 있으니까 당연히 멈출 줄 알고 나는 45마일 정도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차가 그냥 나오는 것입니다.아마도 내 차를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냥 지나가면 그 차의 옆구리를 꽈당 들이받게 생겼고, 그렇다고 급정거 해 보았자 너무 늦었습니다. 본능적으로 왼쪽으로 팍 꺾으면서 그 차를 피하고 앞에서 오는 차를 피하여 얼른 다시 오른쪽으로 틀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차가 상당한 속도로 나왔기 때문에 내 차 뒷부분과 그 차의 앞부분이 부딯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부딯칠 충격을 생각하며 손에 힘을 주고 핸들을 꽉 붙잡았습니다. 그런데 분명 꽈당 부딫혀야 하는데 아무런 충격도 없는 것입니다. 백미러로 보니 그 차도 유유히 잘 가고 있습니다. 등에서 식은땀이 나면서 “주여, 감사합니다. 그 차에 부딯쳤으면 내 차는 박살이 났을 것이지만 그 차는 탱크 같은 쇳덩이기 때문에 크게 부서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최악의 경우 죽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내 잘못으로도 사고가 일어나지만 다른 사람의 잘못 때문에 내가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는 여기 저기 함정을 파 놓고 그 함정에 빠지기만을 기다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윗은 인기가 너무 좋아 사울 왕으로 하여금 경쟁의식을 느끼게 하였고 사울 왕권의 불안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하여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려 하자 다윗은 자기 원수의 나라 불레셋으로 도망칩니다. 그러자 불르셋 병사들이 “이는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자는 만만이라던 다윗이 아닙니까? 저놈을 당장 쳐 죽입시다” 라고 불레셋 왕에게 고합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소름이 끼친 다윗은 얼른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짓을 하여 겨우 목숨을 건집니다.
그리고는 유다 남방 십황무지 근처에 숨어 살면서 사울왕에게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기게 됩니다. 그러면서 필경은 내가 사울의 손에 죽고 말겠다 하여 이번에는 불레셋 왕에게 정식으로 투항하고 불레셋의 시글락이라는 소도시에서 살게 됩니다. 그 후 불레셋과 이스라엘 간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자기들이 살던 시글락에 돌아온 다윗은 자기 병사들로부터 돌로 맞아 죽을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하자며 그들을 설득하였고, 기도 응답대로 시글락을 불살랐던 아말렉을 공격하여 대 승을 거두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자기 아들 압살롬이 스스로 왕이 되어 궁궐을 향하여 쳐들어 왔습니다. 더구나 자기의 친구이자 당대 최대 모략가인 아이토펠이 압살롬과 합세하였다고 하니 다윗은 정말 낙심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상황이 얼마나 급박하였던지 다윗은 신발도 못 신고 도망칩니다. 그 후 군사를 정비하여 압살롬이 이끄는 병사들과 동족상잔의 비극은 물론 부자간에 비극적인 전쟁을 하게 됩니다. 물론 다윗이 승리하게 되지만 그는 자식을 죽게한 죄책감과 슬픔을 평생 지니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모든 환난가운데에서 자신을 건져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자신이 능력있어서가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망의 구렁텅이에 있던 나를 구해 주셨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쳐서 자긍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시 13:2) 라며 절망에 빠진채 하소연하던 다윗이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두른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시 27:6) 며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환난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나의 생명을 노리고 있는 나의 적들로 부터 나를 구원해 주십니다. 내가 올무에 걸려 넘어지기를 기다리는 자들 앞에서 축배를 들게 하십니다.
그리고 나의 병든 영혼을 소생시키십니다. 절망에 빠진 나를 위로하시고 소망의 말씀,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붙잡고 다시 일어설수 있게 하십니다. 무너진 우리 인생을 다시 수축하십니다. “저들의 건축하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느 4:3) 라며 암몬 사람 도비야가 조롱하였어도 “성 역사가 오십이 일 만에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느 6:15) 한것처럼 예루살렘 성벽은 불과 52일 만에 완공되었듯이 우리의 무너진 인생이 금년 52주 안에서 복구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지금 넘어졌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넘어진 양처럼 발버둥치지 마시고 나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나의 무너진 인생을 다시 건축해 주시는 목자의 도움을 청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분은 급히 달려 오셔서 일으켜 세워 주시고 감싸주시고 안아 주실 것입니다.
끝으로 목자는 넘어진 양을 포기할수 있어도 우리 하나님은 결단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마리아는 브라질의 상파울로 부터 버스로 5시간 걸리는 시골에 어머니와 단 둘이서 아주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나와 집에서 어머니와 밭일 거두는 것 외에는 마땅히 무엇을 할 일도 없었습니다.
또한 시골의 삶이 너무 단조롭고 또한 시골에서 그렇게 농사나 짓고 사는 자기 어머니의 그러한 삶이 너무 한심해 보였습니다.
대도시에 가면 크게 성공할 것 같았습니다. 그 많은 회사들, 그 많은 공장들이 있는데 나 하나 어디 일할 자리 없겠는가? 라며 천만명이 넘게사는 브라질의 수도 사웅파울로로 갈 궁리를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한푼 두푼 차비를 모았고, 마침내 어머니가 밭에 나간 사이 버스를 타고 사웅파울로로 갔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일자리를 찾았지만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나왔을 뿐 특별한 기술도 없고 또한 일해본 경험도 없는지라 아무도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날은 어두워지고 배는 고프고 피곤해 집니다. 가게마다 네온싸인 반짝이고 높은 빌딩속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웃우면서 쏟아져 나오지만 아무도 자신에게는 눈길 한번 안줍니다. 자기가 집에서 생각한 것과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자길르 기다릴 어머니를 생각하며 집으로 갈까 하였지만 돌아갈 차비도 없습니다
배가 고파 식당근처를 어른거리자 한 사람이 다가와서 “돈 벌고 싶지 않니? 내가 쉽게 돈 벌 수 있는 직장에 취직시켜 주겠다. 우선 배고플 테니까 밥좀먹자” 라며 식당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저 밥 사먹을 돈 없어요? 그리고 아무런 경험도 없는데요!” 라고 하자 “걱정하지마, 네가 하도 착하게 생겨서 내가 그냥 사주는 거야. 정 갚고 싶으면 네가 돈 벌어서 갚으면 돼. 그리고 특별한 기술없이 아무나 할수 있는 쉬운 일이야” 하는 것입니다.
역시 대도시가 좋아. 이렇게 마음씨 좋은 아저씨도 있지 않는가? 그리고 나를 인정해 준다니 정말 고맙다. 그리고 일자리까지 마련해 준다고 하지 않는가!
배고픈 차에 배불리 먹고 나자, 그 사람은 “자 여기 내 차를 타라. 너도 일 잘하면 얼마 안 있어서 이런 차도 굴릴 수 있어” 라며 마리아를 들뜨게 하였습니다. 황홀감에 젖어 마리아가 따라 간 곳은 고급 호텔이었습니다. 호텔 안에 들어가자마자 그 아저씨는 어디로 가버리고 다른 여자가 나오더니 외부와는 차단된 어느 구석방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그가 말하던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눈물을 흘리며 후회하고 후회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세월은 흘러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그 날도 술에 찌든 채 손님을 맞으러 가는 중, 호텔 화장실을 지나가는데 변기 앞에 조그만 쪽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냥 지나치려다 보니 어디선가 낯익은 필체입니다. 그래서 자세히 보니 “마리아야, 제발 집으로 돌아와다오, 엄마” 라고 쓰여있었습니다. 앞뒤 볼 것이 없었습니다. 그냥 그 길로 도망쳐 나와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습니다.
한밤중인데도 집안에는 불이 켜 있습니다. 아무런 인기척이 없어 들어가보니 세월은 3년이나 흘렀건만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아픈 모습으로 누워있습니다. 말없이 눈물이 주루륵 두 뺨에 흘러 내립니다.
“엄마” 라고 나직히 불러 봅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잠이 들었는지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가까이 가서보니 어머니의 얼굴이 너무도 야위었고 뱡색이 완연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억제할수 없는 울음이 터져 나왔고, 어머니는 그 울음소리에 잠이 깹니다.
딸이 집을 나간 그 날부터 어머니는 모든 것을 그만두고 딸을 찾아 나섰습니다. 딸이 갔을 만한 모든 곳에 다니면서 “마리아야 속히 돌아오렴. 사랑하는 엄마가” 이 쪽지를 붙이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너무도 지치고 아파 누워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다시는 엄마 곁을 떠나지 않겠노라고 마리아는 약속에 또 약속을 합니다. 모녀는 서로 부등켜 안고 그렇게 날이 새가는 줄도 모르고 울고 또 울고 그러다가 웃고 하였습니다. 마리아는 병들어 여인 어머니을 꼭 안으며 “지금 까지는 어머니가 저를 보살펴 주셨지만 이제부터는 제가 어머니를 보살펴 드리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되신 우리 주님께서도 행여 우리가 넘어져 바둥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항상 살피십니다. 어머니는 지치고 병들어 누어 계실수 있지만 우리 하나님은 늙지도 병들지도 피곤하시지도 않으십니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항상 우리를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 보호하십니다.
어젯밤 한숨도 못 주무시고 고통중에 뒤척거리다 나오신 분도 계실것입니다. 너무도 참기 힘든 고난인지라 그대로 주저안고 싶으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직장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마져 떠나버리는 빅그을 안고 계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Dr. Phil McGraw 는 말합니다, “That was not your fault.” 당신이 Lay Off 당한것은 당신이 능력이 없거나 당신이 무슨 잘못을 해서가 아닙니다.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당신 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처럼 Lay Off 를 당하였습니다. 배가 비록 파선되었다 할지라도 판자 쪽하나라도 꼭 잡고 있으라고.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어떻게 해서든지 물에 빠져 익사만 하지말고 견디십시오. 언젠가는 구조선이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렇습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넘어졌으면 목자를 부르십시오. 그러면 주무시지도 졸지도 않으시는 우리의 목자장께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처럼 “나의 영혼을 소생시키시는 하나님!” 이라 고백할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시편,주일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