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26

주님의 Inner Chamber 에서

Posted by on Jan 26 2011 at 09:36 pm

아가서 1:05-05절
(주님의 Inner Chamber 에서 본 나의 모습)

January 26/2011

4절에 “왕이 나를 침궁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 가리라 우리가 너를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에서 지남이라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라고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예비신부된 우리 믿는자들이 주님의 Chamber 에 들어가고자 간절히 사모하는 그 모습을 설명하였습니다. Inner Chamber, 즉 주님과 단 둘이만 있고자 이 세상의 모든 걱정, 근심, 염려는 물론 기쁨, 희락까지도 포기하고 오직 주님과 나만 있는 그리하여 내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심으로 인하여 내 모습은 사라지고 온전히 주님과 하나가 되는 상태에 있고자 하는 성도의 간절한 소원이었습니다.

그리고 5절에,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Inner Chamber, 즉 하나님의 은밀한 침실에 있으면서 자기의 진정한 모습을 보고 깨달은 그리스도의 예비 신부된 성도의 고백입니다.

그런데 우선 “예루살렘 여자들아” 했는데 본문의 예루살렘 여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시는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자들, 즉 모든 믿는 성도들이요, 또한 예수님의 몸 되신 교회들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주님의 Inner Chamber 에는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그저 예수믿고 구원 받은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입니다. 영적으로 너무 깊이 빠지고 싶지 않은, 예수님께 목숨을 걸지않고 세상 일에도 충실하고 교회생활에도 충실하는 일반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지만 술람미 여인처럼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은 거기서 만족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부귀영화에 만족할 수 없고, 남편으로부터 그리고 아내로부터 받는 사랑에서 만족할 수 없고 세상이 줄수도 빼앗아 갈수도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실에도 충실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삶보다는 장차 올 세상에, 주님나라에 더욱 관심이 많고, 장차 올 주님 나라에 살 준비를 하며 사는 사람들은 주님의 Inner Chamber 에 들어가고자 간절히 간구합니다.
 
혹은 극심한 고난, 내 힘으로는 할수없어 오직 주님께 매달리면서 주님의 Inner Chamber 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쟌느귀욘이나, Hudson Taylor, Watchman Nee 등 이러한 주님의 Inner Chamber 를 체험을 하신 분들중에 놀랍게도 아가서에서 주님을 깊이 체험하셨고 특히 아가서 8:6절 “너는 나를 인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말씀을 통하여 깊은 은혜를 체험하신 것을 알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가도원에서 작정기도하면서 이 8:6절 말씀을 붙잡고 묵상하다가 주님께서 오심을 그리고 제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아가서에 더욱 심취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위의분들의 아가서에 대한 책을 접하게 된 것입니다. 최근에는 IHOP 총 책임자 Mike Bickle 역시도 이 구절로 깊은 은혜를 체험하고 Song of Songs 책을 썼다고 간증하였습니다.

여하튼, 이제 주님의 Inner Chamber 안으로 들어간 그녀의 첫번째 고백은 “내가 검으나 아름다우니” 입니다. 주님의 Chamber 에 들어와 발견한 자신의 첫번째 모습은 검으나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여인들은 아직 자신들의 모습을 잘 모릅니다. 그들은 물론 예수를 구세주로 믿었기에 구원받은 성도로서 예루살렘 성에 머물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주님의 Chamber 에 들어간 체험이 없기에 자신의 진 모습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도 주님의 Chamber 에 들어오기 전 까지는 예루살렘 여인들처럼 자신이 아름다운 줄만 알았지 검은줄을 몰랐습니다.

세상에서는 옷을 입고있기 때문에 자신의 본 모습, 몸에 흠집이 있는지, 흉터가 있는지, 피부가 검은지 하얀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즉 체면과 사회적인 직위와 권세등으로 옷입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속 마음을 볼수 없습니다. 하지만 은밀한 침실, 즉 주님의 Chamber 에 들어가 주님과 단 둘이 있을때에는 나의 벌거벗은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내 피부가 검은지 하얀지 어디에 흉터가 있는지 하나도 숨김없이 다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12-13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즉 예수님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다 나타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늘 술람미 여인도 하나님의 Chamber 안에 들어가 거룩하신 주님을 대하고 보니 자신의 검은 부분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깨달음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검다와 아름답다” 는 서로 반대되는 말입니다. 즉, “검고 밉다든지 혹은 희고 아름답다” 라고 해야 성경적인 표현입니다. 하지만 본문에서 검으나 아름답다고 한 것은, 우리 믿는 자들의 완전하지 못한 신앙상태를 이렇게 색깔로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는 원래, 죄악에 찌들어 영 죽을 수 밖에 없는 검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구세주로 믿어 신분상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죄사함을 받아 희고 아름답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신분상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하지만, 아직 행실은 완벽하지 못합니다. 이 상태를 본문은 검으나 아름답다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런데 모든 믿는 성도들은 이 세상에 살 동안은 비록 검으나 아름다움을 경험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은 그리스도 인의 모습은 아직 죄의 떼를 완전히 벗지 못하여 검지만, 이미 예수님의 피로 한번 목욕을 하였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행실은 아직 완전하지 못하지만, 예수를 믿고 씻음을 받았기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신앙의 현 주소입니다. 즉, 우리는 정말로 깨끗해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아직 검지만 아름답다고 인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

또한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라고 합니다. 여기서 게달의 장막은 문맥상 게달이라는 족속의 장막으로도 볼 수 있고, 목자들이 들랑거리는 곳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게달 족속은 이스마엘의 둘째 아들로서 그들은 흑염소 가죽으로 만든 천막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천막은 항상 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깨끗하게 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항상 검을 수밖에 없다는 표현입니다.

또한 목자들이 늘 들랑거리는 곳을 게달이라고 하였습니다. 목자들이 잠시 쉬거나 잠시 눈을 부칠 때 게달에 옵니다. 밖에서 양을 치면서 더러워진 발로 들랑거리기 때문에 아무리 빨고 깨끗하게 빨고 손질을 하여도 목자들이 다니면서 늘 밟고 어지럽히므로 곧바로 더러워집니다. 그러므로 게달은 그 성질상 하얗게 될 수가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우리 예수 믿는 자들은 우리가 육신을 덧입고 있는 이상 항상 하얗게 될 수 없습니다. 게달을 쓸고 닦고 빨 듯 진정한 회개를 하면, 그 순간뿐이지 얼마 가지 않아서 또 검게 더러워 집니다. 여하튼 우리는 게달의 장막처럼 아무리 죄를 씻고 회개를 한다 할지라도, 경건한 삶을 산다 할지라도 육신을 덧입고 있는 이상 곧 더러워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그러한 검은 모습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의 휘장 같다, 솔로몬 궁의 휘장처럼 깨끗하게 여기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솔로몬 왕이 머무는 궁실의 휘장은 종들이 늘 빨아서 단장을 하였을 텐데, 얼마나 깨끗하였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비록 죄악 속에서 검은 생활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아름답게 보입니다. 우리가 비록 게달의 장막처럼 늘 검고 더러워져도 하나님의 눈에는 솔로몬의 휘장처럼 깨끗하고 하얗게 보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과 늘 동행하는 우리는, 검으나 주님 앞에서는 아름답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실수에 그리고 오늘의 실패에 좌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검은 모습을 보고 책망하고 무시하고 헐뜯을 지라도 좌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하고 무너뜨리고 멸시한다 할지라도 그대로 주저앉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슴에 예수님이 살아계시는 이상 우리는 주님의 가장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비록 게달의 장막처럼 늘 검고 더럽혀져 있으나 주님 앞에는 솔로몬의 휘장처럼 깨끗한, 소중한 존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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