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05
아가서 1:01-02절
1:1절, 솔로몬의 아가라
아가서란 이름은 1:1절의 “솔로몬의 아가라” 에서 따온 것이며, 문자적으로는 “아름다운 노래” 라는 뜻입니다.
열왕기상 4:32절에, “저가 잠언 삼천을 말하였고 그 노래는 일천 다섯이며” 하였듯이 솔로몬은 엄청나게 많은 노래를 지었고 그중 구전되어 오는 것이나 기록된 것이 일천 다섯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아가서는 그 많은 노래 중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 “Song of Songs” 즉 “최상의 노래” 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경에서 제외되어 오다가 AD 90년 얌니아 회의(Synod of Jamnia)에서 전도서와 함께 구약성경 중 제일 나중에 편입되었습니다.
아가서가 이렇게 늦게 편입된 이유는 아가서의 독특한 점 때문입니다.
아가서는 우선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것이나 하나님의 백성, 그리고 특히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세속적인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징적인 해석이 아니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그저 순정소설에 불과합니다.
또한 솔로몬이 지었음을 암시하는 구절들이 몇 개 나오지만, 솔로몬 자신이 그 말년에는 이방여인들에게 꾀임을 받아 이방신을 섬겼던 만큼 이단적인 문학이라는 의심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아가서를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문제 때문에 자칫 오해를 살만큼 일반 사람들이 읽기에는 너무 난해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 가장 지식이 많고 또한 영성이 깊었던 솔로몬이나 이러한 영서를 기록할 능력이 있는 분으로 인정되기도 합니다.
여하튼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아가서는 유대인들의 절기에는 낭독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정경에서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아가서는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의 노래지만 그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간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된 교회 혹은 성도들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아가서를 가지고 같이 은혜를 받으면서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의 신부가 되어가듯 우리도 그리스도의 순결한 신부가 되어가는 계기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절,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 이로구나” Let him kiss me with the kisses of his mouth: for thy love is better than wine.
그가 그의 입술로 나에게 키스하게 하라 이는 그의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다 하였는데, 이것은 그 분이 내게와서 입맞추어 주기를 간절히 원하는 술람미 여인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이토록 솔로몬을 사모하는데, 솔로몬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임금님이시고 술람미 여인은 감히 왕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아니 왕을 쳐다볼 수도 없는 비천한 시골 처녀입니다.
그러므로 신분상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입니다.
하지만 왕을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이 보이는 사랑을 원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신분상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인줄 알면서도 이렇게 사모하며 그리워하는 것일까요?
그녀는 왕을 보는 순간 왕을 떠나 살수 없음을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왕이 그녀에게 무엇을 베풀거나 어떠한 언질을 주어서도 아닙니다.
그냥 첫 눈에 반해 버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술람미 여인은 왕의 곁을 떠나서는 살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신분상 감히 왕 앞에 나가서 자신의 이러한 심정을 고백할 수 없으니 왕이 내게 와서 입맞추어 주시기를 애타게 간구한 것입니다.
이처럼 키스는 물론 남녀간의 키스도 되겠지만, 영적인 키스로 볼 때 하나님을 향한 영적인 갈급함, 그 분을 영원히 소유하고 싶은, 아니 그 분의 영원한 소유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 당시 유대인의 결혼의 절차를 간단히 보면, 우선 신랑이 결혼하고 싶은 여자를 정하게 되면 그 여자의 부모님을 만나 신부 값을 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신부 값을 치르면서 약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결혼하기로 약속하는 약혼이 아니라, 이미 대가를 지불하였기 때문에 그 여인은 내가 포기하거나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다른데로 시집을 갈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직 완전한 혼인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격식에 맞는 절차를 밟아 그 여인을 데려오고, 그와 동침하면서 모든 정식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믿는 자들은 아직 그리스도의 신부가 아닙니다.
그 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몸값을 치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분의 약혼자들입니다.
그레서 그 분께서 우리를 포기하시지 않는 이상 우리는 다른데로 시집을 갈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분의 신부는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나라 갈때 그분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지극히 사랑합니다.
하루속히 그분 의 신부가 되어 그분과 하나가 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나서서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정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홀로 애타게 그 분의 사랑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키스를 하고 싶다는 것은 그분과 합하고 싶다, 그 분에게 속하고 싶다 라는 의미입니다.
흔히 우리가 주님을 체험한다, 주님을 만난다, 주님을 만나 능력을 받는다 라는 것과 주님과 하나가 된다 는 다릅니다.
그분을 만나는 것, Encounter, Contact 는 대개 순간적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그분의 능력과 권세를 받기도 합니다.
특별한 은사를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분과 하나가 된다 는 것은, 물론 그분과 하나가 되는 기간도 아주 짧을 수도 있습니다.
능력을 받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분께 속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모습은 사라지고 오직 그 분이 나를 통하여 나타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마치 침례요한이 광야에서 주님의 목소리로 존재하였듯이, 자신의 모습은 물론 자신의 성품이나 생각 지식에까지 모두 주님과 동일한 상태, 그래서 내가 말하는 것이 바로 주님꼐서 나의 입술을 통하여 하시는 말씀이 되어버린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상태를 원하는 것이 바로 본문의 술람미 여인이 원하는 영적인 키스 입니다.
그런데 술럼미 여인이 솔로몬을 그렇게 사랑하는 이유는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했듯이, 그 사랑이 이 세상의 가장 달콤한 술보다 더 낫기 때문입니다.
포도주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음식입니다.
그리고 특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아주 중요한 음료입니다.
그런데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도 더 낫다고 한 것은, 포도주는 없어도 살아도 당신 없이는 못살겟다는 고백입니다.
결론적으로 당신 사랑이 죽음보다도 더 낫다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라틴 불가타역에는 “Let him kiss me with the kisses of his mouth: for thy breasts are better than wine.” 으로서 사랑이 아니라 Breast, 유방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유방은 사랑의 상징도 되지만 젖을 내는 곳이요, 여기서는 영의 양식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영의 양식을 얼마나 사모하는지 영의 양식을 먹는 것이 죽음보다 낫다는 고백입니다.
포도주는 또한 흥을 돋구며 취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음식입니다.
즉 세상에서 온갖 즐거움과 쾌락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네 사랑이 포도주 보다 낫다는 것은,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 즐거움보다 당신 사랑이 너 좋다 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포도주를 육신에 속한 것, 혹은 육신을 위하여서는 가장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사랑을 위해서라면, 아니 영의 양식을 위해서라면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둘기는 한 번에 한가지만 본다고 합니다.
한가지에 몰두하면 다른 것을 볼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1:15절에,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라며 비둘기 눈이 아름답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면 다른 남자는 그저 사람일 뿐 남자로 보이지 않는다고.
현실적으로 본다면 매우 바보스럽지만, 오늘 우리 성도들이, 그리고 교회가 주님을 사랑함에 있어서 이와 같아야 할 것입니다.
본문의 술람미 여인은 성결한 여인이며, 이 말세에 성도들이 지켜야 할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순결한 예비 신부입니다.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라고 하셨듯이, 주님은 우리에게 신앙의 절개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본문의 술람미 여인처럼 세상에서 눈만 뜨면 주님만 보이고 눈을 감으면 그분이 더욱 더 크게, 마음 속 가득히 나타나고…… 이러한 절대적이고 Desperate 한 사랑을 원하십니다.
수요 설교,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