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05
에베소서(1장 01-02절)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使徒)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聖徒)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信實)한 자(者)들에게 편지(便紙)하노니 Paul, an apostle of Jesus Christ by the will of God, to the saints which are at Ephesus, and to the faithful in Christ Jesus:
오늘 본문 1-2절은 로마의 감옥에 수감된 바울 사도께서 당신께서 개척하시고 시무하셨던 에베소 교회에 보내신 옥중서신입니다.
기독교가 공식 종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던 그 당시 바울사도께서는 소아시아와 마케도니아 지방을 다시시면서 선교사역을 하시다가, 루디아처럼 복음을 받아드리는 자가 있으면 그 집을 중심으로 가정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베소 교회도 에베소에 있는 몇몇 가정교회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 에베소서는 그 가정교회들이 서로 돌려가며 읽어 보라고 보낸 서신입니다. 그리고 이 편지는 교회 밖에있는 자들이 아니라 이미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의 올바른 교회생활을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다고 볼수 있습니다.
바울사도께서는 이 에베소서 외에도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고린도 전후서등 여러개의 서신을 쓰셨는데, 대부분의 바울사도께서 보내는 서신의 서두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으로 시작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에베소서에서는 “하나님의 뜻” 이 자주 강조되고 있으며, 이 단어는 다른 어떤 성경보다 에베소서에서 더욱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그 분이 “하나님의 뜻” 이란 말을 자주 사용한 것은, 자신의 의도나 자신이 원하여 구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하셨음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본문 1절도,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자신이 원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사도로 부르셨고 하나님께서 사도로 세우셨기 때문에 사도가 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바울 사도께서 유독히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사도가 된” 이 말씀을 강조하십니까? 물론 “다메섹에서의 체험” 처럼 그 분의 개인적인 체험에서 기인한 것도 있겠지만,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12 제자만을 사도로 칭했던 그 당시 사람들에게 자신도 그 분들에 비하여 조금도 뒤지지 않는 엄연한 주님의 사도라는 것을 입증하고자 하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란 무엇입니까?
사도란 헬라어로 Αποστολοσ 이라해서 목적을 가지고 ”보내심을 받은자”, 심부름꾼 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바울사도 당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사도란 예수님과 공생애를 같이한 12 명의 제자를 지칭했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는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더구나 사도라하면 직책뿐만아 아니라 특별한 권한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도 예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도임을 자신있게 밝혔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12 제자들 뿐만이 아니라 자신도 그들과 동등한 권한이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권한은 인간이 부여해서됨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부여받았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바울 서신의 서두에는 자신이 당당한 그리스도의 사도임을 밝히고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사도의 개념은 예수님의 12사도는 물론 우리 믿는 자들을 모두 포함해야 할 것입니다. 누구든 예수를 믿고 성령 충만함을 얻었으면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 보내진 선교사, 예수님의 사도라는 사명을 늘 기억하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에베소에 있는 성도(聖徒)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信實)한 자(者)들에게 편지(便紙)하노니 하였는데, 성도를 우리 안에 거룩하신 예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거룩한 자 Saint 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모든 크리스천들을 Saint 로 부르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여하튼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거룩하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사는 연고로 우리들의 삶도 거룩한 삶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거룩이라는 뜻은 거룩하지 못한 것과 구별됨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의 삶이란 거룩하지 못한 세상적인 삶과 구별된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크리스챤들은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아야 하는 이중적인 신분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동안 세상을 완전히 등지고 살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적으로 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들의 육신은 세상에 살고있지만 우리들은 세상사람들과 구별된 생각으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다음, “그리스도 안에있는 자” 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그리스도 안에있다 는 자신의 신분과 또한 그 안에서의 하나됨이라는 Unity를 강조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에베소서의 가장 핵심적인 용어로서, 자그만치 36번이나 나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있는 자” 는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은자” 라는 의미로써 아직 예수를 믿지않는 “그리스도 밖에있는 자” 와 철저하게 구별하는 의미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는 공동체의식을 강조함으로써 그 안에서 서로 공유하고 나눌 수있음을 암시합니다.
2절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라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평강(평화)은 세상이 줄 수도 빼앗을 수도 없는 평화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세상이 환경으로 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 환경에서 오는 평화는 꿈을 꾸는 것 처럼, 그리하여 꿈에서 깨어나면 다시 사라져 버리는 듯한 순간적인 것입니다. 그 순간이 지나고 환경이 바뀌면 그에따라 평화도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의 모든 은혜와 평강의 근원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럼으로 예수를 믿으면서도 마음속에 늘 근심이 있거나 절망감에 빠져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잘못된 신앙생활의 결과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 주님으로 부터 오는 평화를 소유하고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평강 뿐만이 아니라 은혜와 평강이라고 하였는데, 원래 “은혜”는 헬라식의 인사말이고 “평안”은 히브리식의 인사말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와 평강이라고 한 것은 히브리인 뿐만이 아니라 헬라권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의 사랑과 축복이 임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이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기도해 주는 것은 크리스천의 삶의 방식입니다. 불평, 원망, 짜증, 비난, 정죄 등은 크리스천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축복으로 하루를 열고 축복으로 마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축복할 수 있는 자격은 형편이나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단순히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주면 나머지는 예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평강과 은헤가 저와 여러분들 그리고 모든 믿는자들에게 늘 충만히 임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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