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 21
예수님의 리더십
사무엘이 어린 다윗에게 기름을 붓자(Anointing)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 감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그의 삶은 이미 평범한 삶이 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베들레헴 구석에서 양치는 그를 끌어내어 전쟁터로 보내신다. 물론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가게 되지만 그를 그곳에 보내신 분은 하나님 이시다.
그가 전쟁터에서 본 것은 무엇인가? 그가 거기에서 보고 들은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다윗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금방이라도 삼킬 듯 표호처럼 달려드는 골리앗이라는 원수를 보게 하신다. 그리고 두려워서 벌벌 떠는 백성들을 보게 하신다. 거기에는 왕도 있었고 백부장 천부 장들도 있었지만 그가 본 것은 목자 없는 양처럼 유리하는 백성들이었다.
마태복음 9:36절에,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하였다. 그 당시 백성들의 제사를 담당하는 제사장들도 있었고 바리새인, 서기관, 사두개인, 열성당원 등 백성들을 인도하는 지도자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보신 것은 목자 없는 양처럼 유리하는 백성들이다.
목회자로서 가장 두려운 말씀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말씀이다. 교회 안에는 교인들을 섬기는 담임목사도 있고 집사 장로도 있고 권사등 여러 직분 자들이 있다. 모두들 나름대로 열심히 사역한다. 하지만 혹시라도 주님의 눈에는 목자 없는 양처럼 유리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골리앗의 그러한 모습을 본 다윗의 마음에 거룩한 분노가 일어난다. 그를 당장 없애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오른다. 그런데, 다윗이 가졌던 거룩한 분노가 사울 왕에게는 없었겠는가? 온 백성들을 이끌어야 하는 왕으로서 하루속히 골리앗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의무감은 그를 얼마나 심하게 압박했겠는가? 얼마나 갈급했으면 골리앗의 목에 그만큼 엄청난 현상금을 걸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는 다윗처럼 싸우러 나가지 못했을까? 그는 모든 면에 다윗보다 월등하면서도 왜 두려워 떨고만 있었을까?
사울 왕에게 부족했지만 다윗에게는 넘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었다. 사울 역시도 기름 부으심을 받은 하나님의 종이다. 어디 그 뿐인가? 그는 선지자였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올바르지 못하고 계속해서 죄를 지음으로 인하여 그의 기름부음은 바닥이 드러났고 마침내 하나님의 신은 그를 떠나고 말았다.
하지만 다윗은 기름부음으로 인한 특별한 능력이 임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눈에 보이는 골리앗은 더 이상 무서운 적이 아니었다. 그저 하나의 험상궂은 우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골리앗 뒤에 있는 상급, 왕의 사위가 되기 위하여 골리앗이란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하여 나아가게 된 것이다.
마태복음 14:26절에,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하였다. 하지만 베드로는 주님을 바라보며 바다 위를 걷게 된다. 베드로와 나머지 제자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열두 제자 모두 주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리고 주님께서 전도하라고 파송하실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고 귀신을 몰아내도록 Impartation Service를 통하여 Anointing 을 Increase 시켜 주셨다. 하지만 서로 누가 큰가 다투고 시기함을 통하여 그들의 Anointing 은 고갈되어 갔던 것이다. 주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열한 제자들의 눈에는 바다로 보였지만 베드로의 눈에는 홍해바다에 난 마른 길처럼 보인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구할 것은 무엇인가? 골리앗을 물리치는 것일까? 아니면 Anointing 을 Increase 하는 것일까?
Watchman Nee 목사님이 심한 박해로 인하여 고민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에 배를 타고 가는데 앞에 큰 바위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때 주님께서 “내가 이 돌을 없애 주기를 바라느냐 아니면 이 돌을 넘어갈 수 있을 만큼 물을 더 부어주기를 원하느냐?” 하셨다 한다. 그래서 그 바위 위를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많은 물을 부어달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할 것은 무엇인가?
똑같이 교회에 나와서 열심히 예배 드리고 기도도 열심히 하며 헌금을 하고 봉사하는데 어떤 분은 큰 능력을 받는가 하면 어떤 분은 평생 그렇게 반복되는 생활만 하는 것을 본다. 왜 그런가? 무슨 차이인가? 이것은 주님과 얼마나 친밀한 관계(Intimate Relationship) 를 통하여 얻어지는 Anointing 의 차이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나? 어떻게 Anointing 을 Increase 할 수 있겠는가?
아가서의 술람미 여인처럼 많은 여인 중에서 그녀가 특별한 사랑을 받게 된 것은 그녀가 그만큼 더 친밀한 관계를 원하고 갈구하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같이 있고 싶어하고 눈에 안보이면 찾고 또 찾았다. 그렇다면 나는 술람미 여인처럼 자나깨나 밤낮으로 나의 왕이시고 나의 사랑하는 예수님을 생각하고 사랑하는가? 나의 마음이 얼마나 순결하고 진실되며 갈급하게 주님을 사랑하는가?
산호세 생명의 강 교회 김 진환 목사 www.Riverofkifesj.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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