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19
예수님의 리더십
이사야서나 예레미야서는 자주 읽고 또한 설교에도 자주 인용하지만 에스겔서는 등한시 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환상과 현실상황이 번갈아 나열되어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또한 시공간을 초월한 환상과 숫자가 자주 나오기 때문에 때로는 Allegorical Interpretation 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어쩌면 에스겔서야 말로 곳곳에서 터지는 재난과 전쟁 및 폭동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는 오늘 우리 상황에 가장 필요하고 또한 쉽게 적용될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지도 모른다.
에스겔서는 “제 삼십 년 사월 오일에 내가 그발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 로 시작하는데, 삼십 년이라 함은 에스겔이 30살이라는 의미인지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은지가 30년 되었다는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30년은 인생의 중간 점으로써 새로운 시작, Turning Point 를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30살쯤에 사역을 시작하였다” 라고 하여 “예수님”을 의미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리고 에스겔이 비전을 본 그발강은 기원전 5세기경에 “nar Kabaru” 라고 하는 운하로써 유프라테스 강과 연결시키기 위하여 Nippur 시에 건설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발강은 편리를 위하여 혹은 유익을 위하여 연결한다 혹은 서로 연결하도록 통로가 된다 라는 것을 상징한다. 이러한 배경을 두고 에스겔서 시작을 재 구성한다면 무슨 의미인가?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바벨론은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나머지는 자기 땅으로 잡아갔다. 이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에스겔은 전쟁포로의 한 사람으로서 포로 수용소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그런데 당시 바벨론 당국은 포로들에게 매일 일정량의 식물과 또한 경작지를 주었으며 상당한 자유를 주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수용소 포로들은 이러한 삶에 만족하였으며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버리고 바벨론의 신들을 섬기며 정착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포로 귀환때에도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5%도 채 안된다. 어쩌면 바벨론의 포로정책이 성공하였다는 증거도 된다.
이처럼 수용소에서는 하나님을 찾는자가 거의없고 여기에다가 외부에서 들리는 소리는 절망하고 낙담하게 할 뿐이었다. 하나님께서 항상 계시므로 절대로 함락되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예루살렘 성전이 원수의 군화 발에 짓밟히고 말았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특히 하나님의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바벨론의 칼날에 희생당하였다. 다윗이 도읍지로 정하고 그의 아들 솔로몬 왕이 성전을 건축한 이래 지난 400여년 동안 애굽, 사마리아, 아람, 모압, 암몬, 미디안, 그리고 심지어는 강대국 앗수르의 공격에도 지켜주신 하나님이 왜 이번에는 지켜주시지 않으시는지 참으로 참담하였다. 예루살렘 성이 회복될 것이라는 소망은 더 이상 둘 수 없는, 정말 “마른 뼈” 와 같은 회생 불가능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그가 30년 되는 해에 바벨론 땅 그발강 가에서 하늘이 열리는 이상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보게된다. 그는 특별히 사로잡혀있는 자들 중에 있었음을, 즉 자신도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하고있는 중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보게 되었음을 강조한다. 그 역시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하나님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없는 상태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자신은 하늘이 열리는 동시에 비전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새로운 시작 혹은 예수님을 의미하는 30년 되던해에 연결을 의미하는 그발강에서, 즉 무엇인가 새롭게 시작될 것이라는 소망 혹은 그 소망의 실체인 예수님과 연결시켰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눈이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다면 주변 환경에 상관없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떤가?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있다. 물질에 사로잡혀 있고, 명예욕에 사로잡혀있고, 보상심리에 사로잡혀있고, 용서하지 못하고 분노하는 마음에 사로잡혀있다. 건강 문제에 사로잡혀있는 자들, 가정문제에 사로잡혀있는 자들, 마음의 깊은 상처에 사로잡혀있는 자들, 과거의 실패에 사로잡혀있는 자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있는 자들 등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들의 포로가 되어있다.
목회자들이라고해서 이러한 문제들과 고난에 면역된 것도 자유한 것도 아니다. 교회문제, 가정문제, 자녀문제, 물질문제, 건강문제 등이 목회자라고 피해가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일반 성도나 똑같이 아니 더 복잡하고 더 힘든 어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영적 지도자로서 에스겔 선지자처럼 같이 사로잡혀있는 자들 속에 있으면서도 그들이 갖지 못하고 가질 수 없는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열려있는 하늘을, 에스겔이 본 환상을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에스겔처럼 항상 예수님과 연결되어 있는 자만이 가능하다.
그런데 불완전하게 창조된 우리 인간은 항상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마음에 예수님이 안계시면 그대로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로 채워지게 된다. 나에게 기쁨과 소망을 주는 것과 연결되어 있으면 나의 마음도 기쁨과 소망으로 채워지게 되고, 그로인하여 주변환경이 나를 슬프게 하고 힘들게 하여도 기쁘고 즐거울수 있게된다. 하지만 두려움과 짜증과 불평을 주는 것과 연결되어 있으면 나의 마음도 두려움과 짜증과 불평으로 채워지게 된다. 그러면 나의생각과 행동도 짜증과 불평과 두려움으로 가득하게 된다.
결국 내가 무엇과 연결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나의 마음도 생각도 그리고 행실도 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어디에 연결되어 있는가? 예수님? 아니면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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