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19

예수님의 리더십

Posted by on May 19 2010 at 09:56 pm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나 같은 죄인 하나 살리려고 이 낮은 땅에 내려오셔서 모진 고난을 받으시다가 마침내는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시어 우리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길은 오직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하여 가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고 단호하게 선포하신 것입니다.

사망에서 부활하시어 우리의 구세주 되신 예수님은 나 같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당신의 핏값을 주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교회를 통하여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으며 주님의 귀한 일꾼으로 세움을 받으라고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주인은 당연히 예수님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친히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어느 특정한 교회의 머리가 아니라 모든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인이요 머리로 섬기는 모든 교회들은 예수님의 권세를 누려야 하고 또한 예수님의 능력을 나타내야 합니다. 물론 여기서 교회라 함은 건물이 아니라 예수믿고 구원을 얻은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성도들의 모임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교회의 주인이요 교회의 머리 되신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요즈음 교회들이 너무 힘이 없습니다. 물론 교회가 힘들 것이라는 것을 이미 “갈릴리 호숫가에 떠있는 배” 를 통하여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배에 계셨지만 거센 바람이 불고 풍랑이 일어 배가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 같은 위험에 처해도 예수님은 마냥 주무시기만 하셨습니다. 공포에 질린 제자들은 소리질러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 세워질 교회가 바로 이러한 모습일 것이라는 암시를 하신 것이며, 이처럼 위태롭고 연약한 교회가 힘을 발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깨우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행전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교회가 힘을 얻어가는 과정을 구체적인 사건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4절에 주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고 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러자 1:14절에,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 쓰니라” 하였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니까 2장에 와서는 오순절 성령 강림을 체험하게 됩니다. 교회가 그렇게 합심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자, 즉 오직 기도에만 전념하자 열흘째 되는 날 성령 강림을 체험하게 됩니다.

뜨거운 성령체험으로 교회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락방 밖으로, 길거리로, 세상으로 나가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다락방에 숨어서 기도하던 교회가 목숨을 걸고 나와서 복음을 증거하자 구원 받은 자가 하루에 3000명에 이르렀다고 한 것처럼 예수 믿는 자들이 나날이 엄청나게 늘어갔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존경 받지 못하고 새 술에 취했다고 비난과 조롱을 받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구원 받는 것 만으로는 세상의 거친 시험이나 핍박에 견딜 수 없음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또다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구체적으로 얼마 동안 기도하였는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아마도 처음 마가의 다락방에서보다 더욱 깊고 세게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자 3장에 와서는 더욱 담대해졌고 한 단계 더 깊은 이적이 나타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고 명하자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던 앉증뱅이가 일어나 걸었습니다. 사도들이 목숨을 걸고 담대하게 성전에서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선포하였습니다. 하지만 세상 권세 잡은 자들은 교회를 핍박하고 사도들을 감옥에 가두고 심지어는 순교를 시켰습니다. 교회가 예수 부활을 선포하고 병든 자를 고치는 것 만으로는 핍박을 이겨낼 수 없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또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핍박을 이겨낼 수 있도록 이전보다 더욱 깊고 더욱 심각하고 진지한 기도를 하기 시작합니다. 얼마 동안 그렇게 기도하였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사생결단을 하고 기도하자 4:31절에 와서는,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하였습니다. 이제는 사도들만 예수님의 살아나심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온 교회가 그리스도의 산 증인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마침내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을 통하여 교회내의 거짓과 위선이 사라지고 깨끗하게 정화 됩니다. 또한 기사와 이적이 이제는 사도들뿐만이 아니라 온 교우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병 고침을 받게 되고, 구원받는 숫자가 이전보다 훨씬 더 많아집니다.

그리고 5:11절에,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 하니라” 한 것처럼 마침내 교회는 교회로서의 권세를 회복하게 됩니다. 교회를 비난하다가 자신이 해를 받을까 두려워 아무도 교회를 함부로 비난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사모하며 기도하는 무리가 늘어만 갔습니다.

이렇게 교회의 권세가 회복되자 이제는 사도들 뿐만이 아니라 스데반 같은 평신도 순교자도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를 강제로 해산시키자 마치 가을바람을 타고 나는 잘 여문 꽃씨들처럼 흩어져 정착하는 곳마다 교회를 시작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사들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교회가 그 권세를 회복해야 하는 때입니다. 세상은 교회를 너무도 우습게 압니다. 심지어는 교인들도 예수님의 머리 되시고 예수님의 몸 되신 교회를 서슴없이 비난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교회가 이렇게 되어버린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오늘날의 교회가 초대교회처럼 사생결단을 하는 기도를 하지 않는 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구호아래 “초대교회, 예루살렘 교회, 예루살렘 초대교회” 등의 교회들도 세워졌지만, 교회 이름만 바꾼다고 저절로 초대교회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이처럼 처참하게 무너진 교회의 권세를 회복시키는 길은 오직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음을 성경은, 특히 사도행전은 이처럼 실제의 사건을 통하여 가르쳐 주는데,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활의 기쁨을 누리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참자고 저도 여러 번 선포하였지만, 부활의 기쁨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누리신 권세를 우리가 누리지 못한다면 뭐 그리 대단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교회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누리신 권세를 누리는 방법은 초대교회가 “전혀 기도에 힘 쓰니라” 하여 얻은 것처럼 사생 결단의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음을 주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