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14

예수님의 리더십

Posted by on May 14 2010 at 09:45 am

딸 아이가 작년 말 몇 개의 대학에 지원했었다. 미리미리 지원하라고 해도 마감일까지 미루더니 자정을 넘겨서야 지원서를 웹사이트를 통하여 제출하였다. 그리고 3월 초에 한 학교로부터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축하한다” 라고 하였더니 “그까짓 대학에 축하는……” 하면서, 그 보다 더 좋은 대학에서 합격통지가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기다리던 그 학교에서는 끝내 오지 않았다. 그래도 마지막 희망을 버리지 않았는데 어제 E-Mail 로 통지를 받았다. “우리 학교에 지원해 주어서 고맙다. 금년에는 예외적으로 많은 학생들이 지원하여서 너 같이 우수한 학생을 놓치게 된 것에 대하여 매우 유감스럽다” 라는 내용이었다.

애써 좋은 말로 전하였지만 불합격 통지서는 슬프고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두 줄기의 눈물이 소리도 없이 딸아이의 뺨을 흘러 내렸다. 가고싶어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게 되어서라기 보다는, 사랑하는 딸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자 내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 눈물은 아이 눈에서 흐르는데 내 마음이 왜 이리도 아플까? 이것이 부모의 마음인가?

그렇지 않아도 눈물이 많은 아이인데, 2년 전 내가 교회에서 강제로 밀려 나올 때에도 이 아이가 가장 큰 상처를 입었는데, 지금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온다. 셋중 어릴 때부터 유난히 책을 즐겨 읽었고 공부는 물론 운동도 잘하여서 기대를 많이 하였는데, 믿음도 날달랐는데, 내가 교회에서 강제로 밀려나오던 때, 자기 친구의 아버지가 나에게 하는 것을 보며 “이런 악한 일도 허용하시는 하나님은 도대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시는지 모르겠다” 며 방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더니 결국 이런 파국을 맞게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자 미안하기도 하고 마음이 더욱 아팠다.

하지만 나까지 마음이 약해지면 안될 것 같아 마음을 추스린 다음 아무 말없이 꼭 안아 주었다. 내 가슴을 파고 들면서, “나보다 학교 성적도 SAT 성적도 낮은 아이들도 그 학교에 들어 갔는데 왜 나는 거절당한 거야? It’s not Fair!” 라면서 엉엉 우는데 나의 부족한 단어 실력 탓일까, 무어라고 답변해 줄 말이 없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더욱 큰 시련도 주신단다. 너를 더욱 큰 제목으로 키우기 위하여 지금 이러한 아픔을 주시는 것이란다. 내가 아파 보지 않고 어떻게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할수 있겠니? 그리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인도하는 지도자가 되겠니? 하나님은 너를 더 큰 지도자로 키우기 위하여 지금 다루시는 거다. 고통받는 지금은 물론 아프고 힘들지만 이제 곧 오늘의 이 고통을 감사하게 여길 때가 올 것이다.” 라고 위로하였다.

그런데 역시 내 짐작대로 “남이, 특히 주변사람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 자기에게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생각에 더욱 큰 상처를 입고 있었다. 그렇다. 우리가 가장 크게 상처를 받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하여 나의 Social Status 가 낮아짐과 동시에 나의 Pride 가 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욥이 받은 고통은 재산은 물론 자녀들까지도 모두 잃은 것이었지만 그보다 더 큰 고통은 그로 인하여 자신의 Social Status 가 곤두박질함과 동시에 자신의 Pride 가 상함으로 부터 오는 고통이 아니었겠는가?

그까짓 Pride, 내려 놓으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되지만 그것이 어찌 말처럼 쉬운 일인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삶의 일부인 이상 그것을 억제할 수는 있지만 아무도 완전히 내려놓을 수는 없다. 자기의 긍지를 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더이상의 삶의 가치를 포기한 자포자기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은 다른 사람의 평가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 아니야. 그렇게 믿어서도 안 되지만 그렇게 되도록 허용해서도 안돼.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평가에 의하여 결정되는 거야.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너를 어떻게 대하든 그것 때문에 수치심을 느끼거나 화를 낼 것도 없어” 라고 위로하고 나서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하고 더 겸손하게 하나님 잘 섬기며 살게 해 달라” 고 기도해 주었더니 얼굴이 좀 밝아진 것 같다.

내 방에 돌아와 두 눈을 감고 “예수님 같았으면 이런 때 하셨을까?” 생각하는데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모습이 떠오른다. 자녀가 괴로워하는 것만 보아도 이렇게 가슴이 떨리고 아픈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시면서도 어떻게 참으셨을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며 원망하듯 외마디 비명을 지르실 때 아버지로서 어떻게 외면하실 수 있었을까?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자신의 외아들을 그렇게 처참하게 죽게 하신 잔인하신 분이시기도 하다. 아니 나 같은 죄인 하나, 나 같은 못난 인간 하나를 살리시기 위하여 해서는 안될 일까지도 해 버리신 하나님, 정말 끔찍하시다. 그러면서도 내가 힘들다고 때로는 하나님께 귀찮게 불평하고 짜증내고 소리를 지르는 내 모습이 부끄럽게도 느껴진다.
생명의 강 교회 김 진환 목사  www.Riverofkifesj.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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