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 12

예수님의 리더십

Posted by on Apr 12 2010 at 09:51 pm

어제는 미국 목사님 은퇴 식에 참석했다. Michaels 라는 식당에서 있었는데, 잘 알려진 식당이었기에 그 근처에 가서 물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정확한 주소도 없이 그 근처로 갔다. 그리고 그 근처에 있던 일본식당에 가서 물었더니 친절하게 자세히 알려준다. 그런데 이거 웬일인가? 분명히 Michaels 라는 식당을 찾는다고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가보니 Michaels 라는 꽃, 액자, 장식품 등을 파는 백화점이었다. 여하튼 거기서 식당 전화번호를 찾아 결국 시작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아무리 쉬운 길이라도 정확한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가야 함을 다시 한번 깨우쳤다.

교인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별로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갔었는데, 상당히 큰 방을 가득 메웠다. 평소 예배 드리는 숫자의 세배 정도는 모인 것 같다. 아직 식사는 시작되지 않았고, 한 사람씩 나와서 이 목사님에 대한 자기들의 느낌과 소견들을 발표하고 있었다.

오후 4시부터 시작되어서 7시 25분까지, 식사하는 시간과 찬송 몇 곡 부르는 시간외에는 한 사람씩, 더러는 두 사람씩 나와서 자기 소견들을 발표했으니 정말 여러 사람들의 소감들을 들은 셈이다. 그 중의 상당수는 지금은 다른 교회에 다니는 그 전 멤버들이었다. 그런데 놀란 것은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아무도 목사님을 불평하거나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았고 모두 감사하다거나 앞으로 사역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기도하였다. 만일 한국교회였다면, 아니 우리 한국사람들이었다면 이렇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8년 전 이 목사님이 부임해 오실 때에는 중고등학생부만 해도 200명이 넘었다고 하니 교인수가 400-500명은 족히 되었을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그 10분의 일 정도가 출석하니, 교회 규모로 본다면 실패한 것이다. 지금이나 18년 전이나, 즉 지난 18년 동안 교회 주변은 백인 중 상류 층으로서 Demographic Change 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10여마일 떨어진 자기 교단의 다른 교회로 이적해 갔으니 교인수가 이렇게 급속이 줄어든 것에 대하여 변명하거나 정당화 시킬만한 근거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 교회로 출석하던 교인들까지 와서 축하해 주고, 감사해하며, 축복을 빌어주는 모습은 나로하여금 감개가 무량하게 하였다.

교인수가 그렇게 급속히 감소하면서 겪은 아픔은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나 끝까지 남아있는 사람이나 모두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새로운 목사님이 오심으로 인하여 정든 교회를 떠나야 하는 그 아픔과 섭섭함이, 물론 용서는 할 수 있지만, 어떻게 쉽게 잊혀질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이라고 해서 목사님의 허점이나 잘못된 점을 발견하지 못했겠는가? 더구나 90% 이상의 교인들이 떠날 때 아무런 소용돌이도 없이 썰물 빠지듯 하였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고하셨노라고, 감사하다고 특별 선물까지 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는 않았겠지만, 새벽 예배는커녕 수요예배도 없다. 매 주일 오전에 드리는 주일예배 한번뿐이다. 그리고 평신도가 인도하는 성경공부 한 반과 평신도가 인도하는 목요일 새벽기도뿐이다. 물론 목사님은 참석하지 않으신다.

그들이 칭찬하고 감사하는 것은 이 목사님의 공적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신들의 담임목사로서 끝까지 잘 대우해 주는 예의였다. 또한 자신들이 지금까지 영적 지도자로 섬겼던 목사님을 팽개치거나 강제 퇴임시키면, 그 소문이 결국 회자될 텐데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 사회적인 체면이나 위치는 어떻게 되겠는가? 또한 영적 지도자에게 피해를 주면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을 수 없다는 인식이 강하게 작용한 것도 사실이었다.

또 한가지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음향기기를 담당하시는 분이다. 연세도 있으신 분이 주일 예배 때뿐만이 아니라, 그 행사장에서 까지, 식사 때만 빼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 긴 시간을 행여 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까 음향기기 옆에 꼭 붙어있는 모습은 “주님께 충성이라면 적어도 저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식장을 나오면서 그 행사를 총 지휘한 집사님에게, “당신 교회나 당신들은 큰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라고 하였더니 의미 있는 웃음을 짓는다. 그러면서 이제부터 New Beginning 이라고 하였다. 떠나는 분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가득 차 있다.

물론 이들은 우리보다 기도도 덜 한다. 영적으로 메마른 것 같다. 우리에 비하여 너무 차갑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다. 하지만, 목회자의 입장에서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민자로 사는 한 사람으로서 이들이 보여준 행위는 참 아름답고 배울 만 하였다. 내가 이웃을 후하게 대접하면 하나님께서도 나에게 후하게 대접하실 것이라는 믿음, 다윗처럼 사울 왕이 옳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사역자이기 때문에 끝까지 존경하는 이들의 믿음의 행위는 참 아름다웠다.

물론 우리는 이들보다 더 많이 더 간절하게 기도하기 때문에 더 많은 이적들을 체험한다. 하지만 그것만이 믿음생활인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 매달리고 애걸하고 울부짖는 기도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말씀대로 살아가는 행위도 이 못지 않게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참 이웃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너도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한 것처럼 하지 말고 사마리아 인이 그 강도 만난 자에게 한 것처럼 하라” 고 하신 것이 아닌가?

지금은 예수님께서 고난 당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정한 사순절 고난 기간이다. 초대교회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이 기간 동안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하신 고난을 생각하며 먼 여행이나 오락을 삼가고 경건한 마음으로, 때로는 금식을 하며 특별히 기도에 힘썼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 한가지 덧붙여,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대로 살도록 Extra 노력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생명의 강 교회 김 진환 목사  Agape2000@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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