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 03

예수님의 리더십

Posted by on Apr 03 2010 at 10:23 am

전 세계 사람들의 눈을 의심하게 할 만했던 벤쿠버에서의 우리 선수들의 실력, 특히 김연하에 대한 열기는 대단했다. 우리보다 인구도 훨씬 많고 광활한 얼음판 등 훨씬 좋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금메달 하나 제대로 따지못한 나라들이 태반인데, 자그마한 한반도, 그것도 반쪽으로 동강난 나의 조국 대한민국 국기가 벤쿠버 아니 전 세계 텔레비전, 컴퓨터 모니터, 핸드폰 화면 등에 뜰 때마다 가슴 깊이 끌어오르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리고 두 눈에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린 것은 어찌 나 뿐이랴! 물론 대리만족일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가슴이 뿌뜻하다. 월드컵 축구경기 이후로 모처럼 뜨거워진 열기였다. 하지만, 세종시라는 한파가 몰아부치자 급속히 냉각되어버렸다.

얼마전에는 강남의 한 대형교회 목사님이 주일 설교에 어느 정당대표를 비판했다는 기사가 신문에 크게 낫다. 그 목사님이 전에는 “닭이 새벽에 울어야 닭이지, 대낮에도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면 이 닭 어떡하면 좋겠어? 여러분이 잡아먹어요” 라고 설교하여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도 목사로서 적절하지 못한 단어를 사용하며 그 대표를 비판하였다고 주 일간지들은 서로 앞을 다투어 크게 보도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 사실을 알고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정당 대표를 지지하거나 두둔하려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 또한 그 목사님을 비판하고자 함도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그 목사님보다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 더욱 떳떳해서 이러는 것도 아니다. 예수님 덕택에 밥 얻어먹고 사는 예수님의 종이자 심부름꾼인 우리 목사들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나 자신은 어떤 사람인가? 예수님을 위하여 그리고 예수님에 의하여 산다고 고백하면서도 실제로는 누구를 위하여 사는가? 그리고 누구를 가장 두려워하며 사는가?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눈은 어떨까? 하는 자기성찰이 절실함을 느꼈다. 또한, 이 목사님의 실수는 목회자라면 누구나 범할수 있는 일이기에 이 분을 향한 질책이나 책망은 바로 나 자신을 향한 책망과 질타로 받아 드리고있다.

물질문명의 발달로 인한 과도한 경쟁시대에 사는 현대인들, 가정과 직장과 교회라는 공동체 내에서 시달리며 방황하는 이들의 심정을 진정으로 이해하려고 나는 얼마만큼의 시간과 정성을 가지고 노력하였던가? 한번이라도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심장을 가지고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 적이 있었는가?

천신만고 끝에 겨우 얻은 직장임에도 불구하고 언제 내 쫓길까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람이 어디 이대리 한 사람뿐 이겠는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칠전 팔기를 시도하였지만 고진감래라는 말이 무색하게 건강마저 헤치고 이제는 마지막 수단처럼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주님을 찾은 임집사의 얼굴을 보았는가?

지금 사귀고 있는 남자와 결혼을 해야 할지 또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할지 결단을 내려야 하는데 “주님! 주님께서 결정해 주시옵소서” 금식기도에 들어간 명이, 부도가 날까 노심초사하며 오늘도 이은행 저은행 발이 부릅트고 물집이 생기도록 뛰었지만 그래도 부족하여 급기야는 처가식구까지 동원하여 간신히 틀어막고서 그래도 불안하여 꼭두새벽부터 나와서 “주여, 믿습니다!” 를 외마디 신음처럼 내뱉는 박사장의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심장을 본 적이 있는가?

그나마 안량한 직장에서 쥐꼬리 만한 봉급때문에 오늘은 무슨 수모를 당했는지 초저녁부터 연신 퍼마시다 인사불성이 되어 쓰러진 남편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짓다 나온 여인의 심정을 여자도 아닌 남자목사가 어떻게 이해할수 있겠습니까? 라고 항변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김장로 맏아들 생일날, 최집사 곗돈 내는날, 유집사 전기세 수돗세 내는 날까지 기억하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혹과 시험이 부비츄렙처럼 여기저기 산재에있는 현실, 보기만 하여도 아니 생각만 하여도 스트레스가 쌓이는 삶의 현장에서 마지못해 견디는 저들에게 어떠한 소망을 줄수 있을까? 한푼이라도 더 벌려고 지나가는 행인들을 향하여 “골라잡고 천원”을 하루종일 목에 편도선이 서도록 외쳐대는 저 모습, 이젠 갈라서자고 조르는 아내를 달래며 “주님! 우리 가족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가슴이 타들어가는 심정으로 기도하는 저들에게 어떻게 하면 강단에서 선포되는 이 짧은 멧세지로 한주간도 믿음으로 버티며 다음주에도 소망을 가지고 교회에 나올수 있게 할까? 라는 고민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생존경쟁이라는 험악한 세상에서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하여 몸부림치다보니 마음이 꿀꿀하고 편하지 않아 주님의 사랑안에서 다시한번 항복하고 그분 앞에 꿇어엎드려 사죄하러 왔는데, 이 길을 가야 할지 저 길을 택해야 할지, 오른 쪽에 그물을 던져야 할지 왼쪽에 그물을 던져야 할지 한주내내 헤메다가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가운데서 삶의 방향을 제시받고자 나왔는데, 느닷없이 어느 정당대표 비판하고 찬양하는 소리가 나온다면 이들이 설 곳은 어디란 말인가? 정치인들을 찬양하고 비판하는 것이 길잃은 이 시대의 비전이요 발등을 비춰주는 빛이란 말인가? 한주 내내 그 사람 비판하면서 힘을 얻고 그 안에서 비전을 발견하고 확신에 서라는 말인가?

나라 일이 그만큼 염려가 되면 겸허하게 주님 앞에 꿇어엎드려 주님의 말씀을 받아 위정자들 앞에서 담대히 선포해야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스스로 하나님의 종 됨을 포기하고 위정자의 대변인이 된 모습, 길르앗 라못을 치러가자는 아합왕 앞에 아부하던 선지자들에 비유한다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북한의 가정교회에서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김일성의 가르침을 풀어서 가르친다고 한다. 한 예로 “죄에 대하여라 함은 너희가 수령님의 훈시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 라고 설교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것은 교회가 아니다고 비판해왔던 우리는 오늘 이 현실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나의 심장과 폐부를 감찰하시는 내 주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면서 “그렇게 말하는 너나 잘하세요” 라고 하시는 것 같아 나도 많이 찔린다. 그렇다. 사순절 기간동안 만이라도 겸허하게 나의 눈속의 들보부터 발견하고 뽑아내는 자기성찰의 기간이 되도록 힘써야겠다.
생명의 강 교회 김 진환 목사  Agape2000@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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