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 02
예수님의 리더십
요한복음 8장에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들린 여인의 사건이 나온다. 이 사건이 있기 바로 전날밤 사람들은 모두 제각기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잤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감란산에 가셔서 찬 이슬을 맞아가며 하늘을 이불삼아 주무셨다. 그리고 아침에 제자들과 함께 성전으로 나오셨다. 누가 조반이라도 드렸는지는 아니면 굶고 나오셨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갑자기 한 무리가 발가벗은 여인을 예수님 앞에 데리고 와서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체포되었습니다” 라고 큰 소리로 힘있게 외친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들렸다면 같이있었던 남자는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벌거벗은 여인을 데리고 거룩한 성전으로 들어 올수 있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주님은 사실의 전모를 다 아시면서도 여기에 대하여서는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으신다. 왜 그랬을까?
물론 그녀와 같이 간음을 했던 남자도 또한 그녀를 체포하여 주님 앞으로 데리고 와서 고소하는 이 사람들도 모두 잘못이 있지만, 주님 앞에 끌려온 이 여인에게도 잘못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들춰내어 맞 공격한다고 나의 잘못이 정당화되거나 면죄되는 것은 아니다. 상황이 어떻든 간에 간음죄는 범해서는 아니될 극형으로 다스려지던 큰 죄악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너희들의 주장대로 그녀에게 돌을 던지라” 고 하신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순간 “단 누구든지 죄가없는 자가 먼저” 라는 단서를 부치신다. 그리고는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으시고 땅바닥에 앉으셔서 무엇인가를 쓰신다.
사람들의 손에 손에 돌맹이 하나씩이 주어져있다. 이미 그녀를 돌로 쳐 죽이려고 작정을 하였는지라 그들의 두 눈에는 살기가 등등하다. 그 많은 돌맹이들, 그 중에 한개만 맞아도 치명적이다. 너무나 두렵고 떨리기 때문에 여러 남성들 앞에서 발가벗겨진 채로 있었지만 부끄러워 할 겨를도 없다. 주님의 제자들은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지라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나서기 좋아하던 베드로, 무엇인가 한마디 할만도 한데 이번 만은 잠잠하다. 사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증거도 된다.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나버렸고, 오직 죽음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그녀는 잘 알고있다. 그간의 잘못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내가 왜 그런 부끄러운 짓을 했던가?” 후회가 밀려와도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줄 아무런 소망이 보이지 않는다. 자기를 향하여 돌을 든 사람들을 보니 너무도 두렵다. 그리하여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떠 주님을 주님을 바라보니 그 순간 살 소망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자기를 둘러선 사람들을 보니 다시 절망이다. 그녀의 두 눈과 마음은 사람들과 예수님 사이를 방황한다.
그러는 사이 자신을 둘러싸고있던 군중들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금방이라도 돌맹이를 던질 그들의 모습, 충혈된 눈들은 점차 풀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이가 든 사람들 먼저 하나 둘 그 자리를 떠난다. 한참후 주님은 “너를 고소하던 자들이 어디 있느냐, 다시는 죄를 짓지말라”
이 모습이 바로 말세의 교회의 모습이라는 깨달음이 온다. 말세에 예수님의 순결하고 지조높은 신부가 되어야 할 교회는 타락하여 세상과 간음한다. 그 악취가 너무 심각하여 세상 사람들도 못견뎌한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세상사람들이 교회를 주님 앞에 데리고와서 고소하는 장면이다.
그들이 간음한 그녀에게 돌을 던지지 못한 이유는, 비록 간음죄를 범했다 할지라도 교회는 여전히 예수님의 몸이시기 때문이요, 세상이 아무리 타락하고 악하다 할지라도 예수님 몸에는 돌을 던질수 없기 때문이다. 주님은 이미 더렵혀진 신부를 향하여, “너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다시는 죄를 짓지말라” 고 타이르신다.
그렇다면 말세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어디를 바라 보아야 하나? 그녀가 세상을 바라볼 때에는 죽음뿐이었다. 살 소망이 완전히 끊긴 상태였다. 하지만 주님을 바라볼 때에는 생명이었다. 그렇다면 교회의 두 눈은 어디를 향하여야 하나?
또한 당장이라도 손에든 돌을 던지려고 하였던 그들이 하나 둘 떠나게 된 것은 무슨 까닭일까? 예수님이 두려워서도 혹은 갑자기 착해져서도 아니다. 바로 예수님의 말씀, “누구든지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쳐라” 는 주님의 말씀에 찔려 하나 둘 떠나게 된 것이다.
말세의 교회들이 주님에게서 눈을 돌려 세상을 향하고, 주님의 말씀이 아닌 사람의 지식과 교훈을 선포할 것을 미리 아시고 주님은 이 사건을 통하여 경고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베드로가 주님께만 시선을 집중하고 나아갔을 때에는 물위를 걸을수도 있었다. 그러기에 히브리서 12: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고 강조하고있다.
또한 교회가 말씀으로 돌아갈때 교회의 권위가 회복되고 주님의 능력이 나타났음을 교회사는 증명한다. 그리하여 교회가 세속화돠어가고 타락해질 때마다 외치는 구호는 “말씀으로 돌아가자” 였다.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타락했던 교회는 개혁이 일어나고 권위가 회복되었다.
그렇다. 지금은 주님께 시선을 집중할 때요 말씀으로 돌아가야 하는 때다. 이제 곧 다시오실 주님을 맞기위하여 그리고 임박한 주님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벌거벗겨진 채 주님앞에 선 나의 모습을 생각하며 주님께만 시선을 집중하고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여 할 때다.
생명의 강 교회 김 진환 목사 Agape2000@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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