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 19

주님께 나아오라

Posted by on Feb 19 2010 at 02:03 pm

요한복음 08:01-11절

February 07/2010
오늘 본문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들린 여인이라는 주제로 매우 잘 알려진 사건입니다.
이 사건이 있기 바로 전날밤 예수님과 같이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제각기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각자 자기집 따뜻한 방에서 푸근히 잘 잤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캄캄해서 길이 잘 안보이는데도 제자들과 함께 조심조심 걸어서 감란산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한 밤중에 껌껌한 산 언덕에서 여기저기 짚어보며 좀 편편한 곳이 있으면 거기에 벌떡 누워 밤 하늘의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찬 이슬을 맞아가며 하늘을 이불삼아 주무셨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9:58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신 말씀을 다시한번 실감하게 합니다.
사람들은 물론, 여우도 굴속에서 따뜻하게 자고, 공중에 나는 새들도 밤에는 둥지로 돌아와서 따뜻하게 자는데, 우리 주님은 야산에서 찬 이슬을 맞아가며 주무신 것입니다.

등산을 해보셨으면 잘 아시겠지만, 산속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더운 여름에도 추워서 몸이 굳어진 것 같고 속은 컬컬합니다.
그런때 버너에 불을 붙여 커피를 끓이고, 그 불을 쬐어가며 더운 커피 한잔하면 속이 확 풀어집니다.
그러면 기지개를 펴고서, 텐트를 걷어서 햇볕나면 마르도록 펴놓고 밥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당시 주님께서 주무시던 산속에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아마도 우리 주님께서는 그러한 차갑고 굳어진 것 같은 몸이지만, 새벽같이 일어나셔서 아버지께 기도를 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애들아 일어나라” 고 깨우셔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셔서 곧바로 성전으로 들어오셨을 것입니다.
그 사이 누가 조반이라도 드렸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십중팔구는 굶고 나오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성전 뜰에 나타나시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한 무리가 어떤 여인을 예수님 앞에 데리고 와서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라고 기세 등등하게 큰 소리로 외칩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들려왔다고 하는 것을 보아 옷차림새나 머릿칼이 많이 흐트러졌을 것이며, 이 여인은 자기의 운명을 예상한듯 벌벌 떨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독촉합니다, “율법에 의하면 이 여자는 돌에맞아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형제의 잘못을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였는데, 이런 사람도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우리도 바쁜 몸이니 어서 결정을 내리십시오.” 라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외칩니다.
이른 아침부터 예수님 앞에 이 무슨 해괴한 일입니까?

레위기 20:10절에,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찌니라” 고 하였듯이 그 당시 유대인들은 간음죄는 일반 다른 죄에 비하여 더욱 엄중한 죄로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이미 간음죄를 범한 상태이며, 물증도 있고 또한 목격자들도 많기 때문에 피해갈 방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들렸다면 같이 간음죄를 저질렀던 남자는 어디에 있는지, 그 남자는 누구인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 남자는 권세가 높은 사람이라서 체포되지 않았는지, 급히 도망쳐 버렸기 때문에 놓쳤는지, 아니면 거기 있던 사람들을 돈으로 매수를 하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간음하다 그 현장에서 붙들린 이 부정한 여인을 어떻게 거룩한 성전 뜰로 데리고 들어 올수 있었는지 이것도 궁금합니다.

다시 말한다면 누가 보아도 이것은 의도적으로 꾸며진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사실의 전모를 다 아시면서도 여기에 대하여서는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으십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선은 이 사건이 꾸며진 사건이라는 것을, 그리고 실제의 타겟은 이 여인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다 아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당신을 고소하려고 미리부터 계산하고 연구하여 이렇게 계획적으로 꾸며댔음을 다 잘 아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면, 그들은 곧 논박을 하려고 사전에 다 준비하였고, 예수님께서 어떤 말씀이든지 말씀만 하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수작을 이미 다 잘 아시는 주님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침묵하신 또한 가지 이유는 이렇습니다.
물론 그녀와 같이 간음을 했던 남자도 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체포하여 주님 앞으로 데리고 와서 고소하는 이 사람들도 모두 잘못이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주님 앞에 끌려온 이 여인에게 잘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억지 사건을 꾸미려고 하였을 지라도 그녀가 그 죄에 가담하지 않았으면 이런 비극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침묵에는 깊은 멧세지가 담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사람이 나의 실수나 잘못을 지적하여 공격해오면, 나도 상대방의 잘못을 들춰서 역공격합니다.
그러면 자신의 허물도 들어났기 때문에 상대방이 더이상 공격하지 못하게 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정치인이 사람들이 자기를 지지하게 하기 위하여 상대방 정치인의 비리를 폭로하게 됩니다.
그러면 상대방 사람은 가만있습니까?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그 사람의 비리를 캐내고 심지어는 만들어내고 보태어 크게 폭로해 버립니다.
그렇게 서로 공방하다 보면 서로가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기 때문에, 상대방의 비리를 다 알면서도 폭로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완전히 투명하고 깨끗하지 못하면, 상대방의 비리가 아무리 확실하다 할지라도 함부로 정죄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잘못을 들춰내어 맞 공격한다고 해서 나의 잘못이 정당화되거나 면죄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사건을 억지로 꾸며서 정죄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그렇다고해서 간음죄를 범한 이 여인의 행위가 면죄되거나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마침내 일어 나십니다.
그리고는, “너희들의 주장대로 그녀에게 돌을 던지라” 고 하십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순간 “단 누구든지 죄가없는 자가 먼저” 라는 단서를 부치십니다.
그리고는 이처럼 급박한 상황에서도 마음에 조금도 동요됨이 없이 천천히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으십니다.

사람들의 손에 손에는 돌맹이 하나씩이 주어져있습니다.
이미 그녀를 돌로 쳐 죽이려고 작정을 하였는지라 그들의 두 눈에는 살기가 등등합니다.
그 많은 돌맹이들, 그 중에 한개만 맞아도 치명적입니다.
그 날카로운 돌들이 쌩하고 날라와 머리에 맞으면 머리가 깨지고, 얼굴에 맞으면 얼굴이 터지고, 가슴에 맞으면…… 그 모습을 상상하기 조차 끔찍하고 치가 떨립니다.
너무나도 두렵고 떨리기 때문에 이 여인은 지금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한채 두 눈을 감고 있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도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지라 손에 땀을 쥐고 바라만 볼뿐,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나서기 좋아하던 베드로, 무엇인가 한마디 할만도 한데 이번 만은 잠잠합니다.
사태가 그만큼 끔찍하고 급박하고 심각하다는 증거입니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 사건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이 태연하게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쓰십니다.

이 불쌍한 여인,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어도, 에워싸고 있는 군중들을 어떻게 뚫고 나갈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고도 싶었겠지만 그러할 경황도 없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줄 아무런 소망도 없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나버렸고, 오직 죽음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그녀는 너무도 잘 알고있습니다.

자기를 향하여 돌을 든 사람들을 보니 너무도 두렵습니다.
그들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 살기등등한 눈들과 마주치는 그 순간 심장의 고동이 그대로 탁 멈추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맞아 죽을 준비를 하고눈을 감았습니다.
그런데 날라와야 할 돌이 날라오지 않습니다.
무거운 침묵이 흐릅니다.

웬일인가 궁금하여 눈을 뜨고 싶지만, 그 순간 돌이 날아올까 두려워 눈을 뜨지 못하고 있습니다.
긴장감과 두려움으로 전신에 땀이 흐릅니다.

잠시후 용기를 내어 억지로 조금 눈을 떠서 주님을 바라 보았더니, 주님은 아직도 태연하게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쓰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분의 모습을 뵙는 그 순간 살 소망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고개는 움직이지 않고 눈알을 돌려 자기를 둘러선 사람들을 보니 다시 절망입니다.
이제 그녀의 두 눈과 마음은 자기를 에워싼 사람들과 예수님 사이를 방황합니다.

그러더니 어느순간부터 자신을 둘러싸고있던 군중들이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주님의 말씀, “너희들 중에 누구든지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치라”  에 저들의 양심이 찔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아무도 입도 열지 못하고 침묵하고 있었지만, 이 순간에 성령님은 각 사람의 심장에 찾아가셔서 그 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시느라 가장 바쁘게 사역하시지 않으셨나 생각됩니다.

저는 이렇게 믿습니다.
우리가 이리저리 열심히 뛰면서 기도하고 호소할 때에는 주님께서 우리를 바라 보시며 그냥 듣기만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더이상 아무 것도 할수없어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다 맡겨버리면 그때 주님께서 바쁘게 사역하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그들의 심장에 대포알처럼 박혀서 폭발을 하니 저들이 어떻게 견딜수 있었겠습니까?
금방이라도 괴성을 지르고 악을 쓰며 돌맹이를 던질 것 같았던 그들의 모습, 그들의 충혈된 눈들은 점차 풀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나이가 든 사람들 먼저 천천히 뒷걸음질 쳐서 하나 둘 그 자리를 떠납니다.
그렇게 하나 둘, 그리고는 마침내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도 쥐었던 돌을 떨어뜨리며 그 여인과 예수님 그리고 주변을 한번 휙 둘러 보더니 뒷걸음질 쳐 천천히 그리고 돌아서서는 잰 걸음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갑자기 쥐죽은 듯 아주 무거운 침묵이 흐릅니다.

그 때 주님은 그녀를 향하여, “너를 고소하던 자들이 어디 있느냐?”
“주여, 아무도 없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시는 이런 못된짓 하지마” 라고 책망하십니다.

그제서야 정신이 든 이 여인, 옷매무새를 다시 고치고 주님을 향하여 넙죽 절하고서는 천천히 그 자리를 빠져 나왔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고개를 떨구고서 몇 발자국을 가다가 주님을 돌아보고 또 몇발자국을 가다가 다시 돌아보면서 천천히 사라져갔을 것입니다.

Jesus, Super Star 라는 영화를 보면, 이 사건이 있은 후로 이 여인이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혹시 옛날 그대로 돌아가지는 않았는가 하고 찾아 가십니다.
그러면서 “아직도 남자를 기다리느냐?” 고 묻습니다.
그때 그녀는, “주님, 여자는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면 다른 남자를 사랑할수 없습니다” 라고 답변합니다.
물론 성경에는 없는 작가가 꾸며낸 대사이지만, 가슴을 찡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남자분들, 옆에 앉으신 아내에게 지금 이런 질문을 하고 싶으시겠지만, 자칫 부부싸움 하실수 있으시니까 참으셨다가 집에 가셔서 무드좀 잡으신 후에 물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이 여인으로부터만 이런 고백을 듣고 싶어하시는 것이 아니라 남녀노소 물론하고 우리 모두로 부터 이러한 개인적인 고백을 들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한분한분도 골방에서 주님과 단둘이 앉아서 이러한 고백을 하실수 있으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이제 결단의 시간입니다.
얼마 전에 소말리아에서 일어난 일이라는데, 간음하다 체포된 남성이 돌에 맞아 죽는 모습을 사진을 통하여 보았습니다.
30대 정도로 보이는 이 남성을 동네 사람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도망치거나 피하지 못하도록 땅을 파고 거의 가슴부근까지 묻더라고요.
얼마나 두렵고 떨리고 고통스러웠겠습니까?
둘러선 그 사람들 중에는 자기 부모나 형제, 그리고 자기 아내나 자녀들도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가슴부위까지 묻은 다음 동네사람들이 둘러서서 돌을 던집니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이 큰 돌을 그의 머리위에 내리치더군요.
비록 사진이었지만, 정말 눈을 뜨고는 볼수 없을 만큼 처잠하고 끔찍한 광경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 여인, 예수님 앞으로 나아왔기에 생명을 건졌을 뿐만이 아니라 복을 받았습니다.
재판관에게 끌려갔거나 로마 관원에게 끌려갔었더라면 이 소말리아 남성처럼 정말 비참하고 끔찍하게, 뭇 사람들, 심지어는 자기를 사랑하거나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도 저주와 손가락질을 받으며 죽어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 앞으로 나아왔기에, 그녀는 귀중한 생명을 건졌을 뿐만이 아니라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 앞으로 나아와야 합니다.
자발적으로 나아오든, 체면상 하는수 없이 나아오든, 심지어는 억지로 끌려 나아오든 주님앞으로 나아와야 합니다.
주님 앞에 나아와서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주님의 권세있는 말씀, 생명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오늘 이 여인을 압송하여 예수님 앞으로 끌고온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그리고 그들의 하수인들, 비록 나쁜 방법으로 주님 앞에 나아왔지만 그들 역시도 주님께로 나아와서 주님의 말씀을 들었기에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너희중에 누구든지 죄없는 자가 먼저 치라” 라고 하시는 주님의 이 말씀, 주님께서 권세를 가지고 선포하셨기 때문에 이들의 마음이 움직인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었기에 이들이 양심에 찔림을 받았고, 마침내는 그 말씀에 굴복하게 된 것입니다.

같은 말일지라도 제가  그렇게 말하였으면 그들은 아마도 돌을 던졌을 것입니다.
그녀에게 뿐만이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너는 누구냐?” 하면서 저를 향하여서도 한두개 쯤은 던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이 말씀,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치라” 이 말씀이 일평생 그들의 삶을 따라 다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약이되어 그들의 삶이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삶에서 자신을 낮추고 이웃을 높이는 축복받는 삶으로 변화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자신들의 직위와 사회적인 체면 때문에 비록 공공연하게 예수님을 믿을 수는 없었겠지만,  아마도 니고데모나 아리마대 요셉처럼 속으로는 믿은 사람들이 반듯이 있었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언제가 마지막으로 주님 앞에 서 보셨습니까?
언제가 마지막으로 주님 앞에 정말 Naked 한 모습으로, 모든 죄를 하나도 숨김없이 낱낱이 아뢰었습니까?
그리고 언제가 마지막으로 주님의 음성을 들으셨습니까?
혹시 지금이 다시한번 주님 앞에 Naked 한 모습으로 다시 서야 할 때라고 생각되지는 않으십니까?

몇년전에 나이가라 폭포에서 기적이 일어났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캐나다 쪽에서 밤낛시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고기가 엄청나게 잡혔습니다.
그래서 너무 기분이 좋아 술을 한잔씩 하면서, 고기를 보트 가득히 잡았습니다.
그러다가 술이 너무 과했는지 어떻든 간에 둘 다 잠이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새벽녘이 되었는데 보트가 어디에 쿵하고 부딯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깜짝놀라 깨었더니, 강 상류에서 낛시질을 했었는데 잠자는 사이 보트는 이미 폭포 가까이 까지 떠내려 온 것입니다.
그리고 폭포에 떨어지기 직전에 물이 조금 얕은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 있는 바위에 부딫친 것입니다.

Help! Help 를 외치며 떠내려 가는데, 사람들이 그 광경을 다 지켜보고 있어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결국 그들은 보트에서 물속으로 뛰어 내렸고, 간신히 물속의 바위를 꼭 붙잡고 있었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구조대가 도착하여 구조했다고, 나이가라 폭포의 기적이라는 기사로 난 적이 있습니다.
저는 특별히 고난을 당하면서, 내가 탄 배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중인가를 늘 주시합니다.
교회가 제대로 성장하지 않아 고민도 많고 부담도 많고, 스스로 약해져 여기에 와서 서럽게 운때도 여러번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세상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살자는 마음의 각오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죄를 안지을수는 없지만, 나이가라 폭포의 위험 경계선은 넘지 말아야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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