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17

예수님의 리더십

Posted by on Jan 17 2010 at 12:15 am

열왕기하 4장에 기록된 수넴 여자와 그녀의 아들에 대한 사건을 읽다가 갑자기 깨우침이 오면서 깊은 묵상에 잠기고 말았다. 특히 11절 이하에 보면 엘리사 선지자가 수넴 여자의 죽은 아들을 살리는 사건이 나온다. 아이가 죽자 수넴 여자는 엘리사에게 가면 그가 이 아이를 살릴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엘리사 방의 침상에 죽은 시체를 눕힌후 곧바로 엘리사를 찾는다. 그러자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네 허리를 묶고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인사할지라도 대답하지 말고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 고 하였고, 게하시가 가서 그렇게 하였다. 하지만 아이는 살아나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엘리사가 직접 그 집으로 간다. 그리고 그 “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그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고 하였다. 왜 게하시가 엘리사가 시키는 대로 하였을 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엘리사가 하였을 때에는 죽은 자가 살아 났을까?

왜 엘리사는 죽은자에게 올라가 입, 눈, 손을 맞추었을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왜 그때에 아이의 살이 일시에 따뜻해진 것이 아니라 점차 따뜻하여 졌을까? 이 대목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수넴여자의 믿음으로 그 아이를 살렸을까 엘리사의 이러한 믿음의 행위를 보고 살렸을까? 물론 둘 다 이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어느 쪽에 더 많은 비중을 두셨을까? 교인들이 이런 질문을 하면 어떻게 대답을 하여야 할까?

물론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건이나 말씀하신 비유들처럼 이 사건은 여러 가지 교훈과 깨우침을 준다. 그런데 그 중에서 나에게는 “성의 문제” 라는 깨우침이 왔다. 물론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묵상 중에 얻은 생각이지 객관적인 답변은 할 수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깨우침이라고 하였다.

수넴 여자는 만사를 제쳐놓고 엘리사를 찾아왔다. 수하에 있는 사환들을 대신 시키지도 않았다. 남편의 만류에도 주저하지 않았다. 나귀를 모는 사환에게 “내가 말하지 아니하거든 나의 달려가기를 천천하게 하지 말라” 하며 최대한 빨리 달렸다. 수넴 여자는 엘리사에게 이렇게 전심 전력으로 달려왔는데 엘리사는 자기 지팡이와 사환을 보내서 그 아이 위에 놓으라고 하였다. 죽은 자가 그렇게 쉽게 살아날 수 있을까? 아이가 살아나지 않은 것은 오히려 당연하였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엘리사는 하는수 없이 수넴 여자 집으로 간다. 그런데 그 아이가 자기 어머니 방에 있지 않고 자기 침상에 눕혀져 있다. 죽은 아이가 자기 침상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엘리사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이 아이는 당신 때문에 얻은 아이입니다. 이제 당신 손에 달려 있습니다” 라는 무언의 멧세지, 수넴 여자가 얼마나 확신을 가지고 Desperate 하게 자신을 의존하는지 실감했을 것이다.

그는 방문을 닫고서 시체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다. 그는 과연 무슨 기도를 하였을까? 물론 이 아이를 살려달라고 기도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오직 그 기도만 하였을까? 혹시 “하나님, 나의 성의 없이 행한 것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라는 기도는 하지 않았을까?

여하튼 그는 간절히 기도하고 죽은아이, 즉 시체위로 올라간다. 이미 경직되어 딱딱하고 차가운 시체다. 아무리 예쁘고 귀엽게 생겼을 지라도 일단 죽고나면 만지기는커녕 보기도 싫은 것이 시체다. 생전에 아무리 훌륭하고 흠모하던 사람일지라도 자기 침대에 눕혀있는 시체는 보기만 해도 끔찍하여 도망치고 싶어진다.

그런데 엘리사는 죽은 그 아이 위에 올라간다. 처음에는 자기 지팡이를 그 위에 올려 놓았지만, 이제는 자신이 그 위에 올라간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입을 그 아이의 입에 댄다. 자기 눈을 그의 눈에 댄다. 자기 손을 그의 손에 대고 그대로 누웠있다. 잠시 만진 것이 아니라 그 시체위에 올라가 시체의 입에 자기 입을 대고 대칭처럼 누워있다. 그 모습을 상상만 해도 끔찍하고 구역질이 난다.

그런데 그렇게 하자 싸늘한 시체에 점차 온기가 돌아온다. 눈과 입술과 손등 엘리사의 몸이 닿는 곳마다 따뜻해져 가기 시작한다. 그러자 아이에게서 내려와서 잠시 걷다가 또 올라간다, 그러자 마침내 그가 기침을 일곱 번 하고 깨어난다.

이 대목은 다른 사람의 필요에 민감하지 못하고 이웃을 배려할 줄 모르는 나에게 엄청난 도전으로 다가왔다. 세상에서 받은 상처와 아픔과 억울함으로 인한 분노로 인하여 굳게 닫힌 입술, 꽉 감겨버린 두 눈, 그리고 굳어져버린 두 손으로 지금 이순간도 절망 속에 죽은 자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그저 립서비스가 아니라, 그들의 아픔과 고통과 슬픔에 마치 나의 고통이요 나의 아픔이요 나의 슬픔처럼 여기면서 다가갈 수 있을까? 그 일이 마치 시체에 입술을 맞대는 것처럼 역겨울 지라도 그렇게 할 사랑과 용기가 있는가? 하지만 이것이 주님의 마음이요 우리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는 바가  아니겠는가?

금년에는 말씀도 더 많이 묵상하고 기도도 더욱 많이 해야지만, 좀더 이웃을 배려하는 해로 삼고, 이웃의 필요에 좀더 민감하는 것을 New Year’s Resolution 으로 삼아야겠다. 그리고 이웃의 필요에 좀더 적극적으로 다가가야겠다.

생명의 강 교회 김 진환 목사  Agape2000@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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