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04

예수님의 리더십

Posted by on Nov 04 2009 at 11:23 pm

요즘 대통령의 정직성, 포용력, 그리고 소통방법을 지적하며 미래를 염려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온다. 대부분 미디어법, 4대강 문제, 그리고 세종시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이 세가지는 대통령뿐만이 아니라 목회자를 포함한 모든 리더들이 갖추어야 할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누구나 어느 자리에 있든지 간에 이 세가지만 잘 해결하면 존경받는 리더가 될 것이다.

우선, 리더의 정직성이 의심을 받게 되면 누가 그를 믿고 따르겠는가? 리더가 투명하지 못하면 그와 함께 무엇을 의논을 할수 있겠는가? 약속해 놓고 지도자가 먼저 안 지키면 어떻게 되겠는가? 신용을 잃으면 인간관계가 무너지는데, 그러한 환경에서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할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는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이 한 구절에서도 얼마나 자기 성찰을 해온 분인가를 깨닫게 한다. 나보다 훨씬 젊은 나이에 이 시를 썼을텐데, 이 시를 대하노라면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고 주님 앞에 서야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치 자신에게는 예외 일 것같은 착각을 하며 산다. 물론 앞을 보고 달려야 하지만 가끔씩은 지나온 삶도 뒤돌아보아야지 나의 삶이 굽었는지 반듯한지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내 인생의 밭테리는 얼마나 남았는지도 보아가면서 살아야겠지 않겠는가!

또한 리더가 포용력이 없으면 누가 그 옆에 있으려고 하겠는가? 자기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을 모두 적으로 간주한다면 누가 그 앞에서 정직한 발언을 할수 있겠는가? 물론 때로는 숙고 끝에 용단을 내려야 하기도 하지만 반대 의견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이 당연한 일이 실천하기에 가장 힘들다는 것을 또한 인정해야 한다.

가도멸괵이라는 말이 있다. 직역을 하면 길을 빌려 괵나라를 멸한다는 뜻이다.
중국 춘추시대 진나라의 헌공이 괵나라를 치겠다고 그 이웃나라인 우나라 왕에게 길좀 열어달라고 하면서 댓가로 옥과 말을 보낸다. 신하들은 반대하지만 옥과 말을 탐낸 우나라 왕은 길을 열어준다. 그러자 진나라 헌공은 괵나라를 치고 오는 길에 무방비 상태였던 우나라도 쳐서 정복한다.

한편 진나라의 공격을 피하여 신복과 함께 달아나던 괵나라 왕이 피난길에서 목마르다 하자 시중들던 신복이 술을 바친다. 배가 고프다 하니 쌀밥에 고기반찬을 바친다. 왕이 의아하여 “이것을 언제 어디서 구했느냐” 라고 묻자 “미리 준비해 뒀습니다” 라고 대답한다. “너는 나라가 망할 것을 알면서도 어찌 내게 간하지 않았더냐?” “나라가 망하기 전에 제 목이 먼저 달아날까 봐 간하지 못했습니다”

나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쓸어내면 귀는 조용하겠지만 리더십에 그만큼 큰 손상을 가져올 것이다. 포에니 전쟁을 종식시킨 로마의 스키피오 장군은 불타는 카르타고를 보면서 “다음은 로마 차례다” 라고 하였다고 한다. 쉽게 무너지지 않고 계속적으로 위협해오던 카르타고가 있었기에 로마는 나태해질 수도 타락할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로마를 강대국으로 발전시킨 원동력이 된 것이다.

끝으로 리더로서 소통을 하려면 상대방에게 다가가야 한다. 상대방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면 너무 늦을 것이다. 지도자를 찾아오는 경우는 좋은 일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섭섭하거나 책망거리가 있을 때다. 그러므로 사태가 악화되기 전에 내가 다가서야 한다. 그리고 찾아가서는 상대방에게 Under-Stand(한 발짝 내려서는 것, 겸손함) 를 하여야 한다. 상대방을 내 수준으로 끌어 올려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대방의 수준으로 내려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신 이치가 아닌가. 그런데 이론처럼 쉽지는 않다. 노력만으로도 안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겸손은 일부러 의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몸에 배어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약속하신 것을 한번도 안 지키신 적이 없다. 그리고 항상 투명하시면서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셨다. 우리가 주님을 멀리하고 속이고 바르지 못한 행동을 하여도 주님은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요, 믿음의 대상이요 내가 의지할 대상이다. 또한 예수님은 베드로를 비롯한 당신을 배신한 제자들을 용서하시고 포용하셨다. 그리고 거기서 머무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일으켜 세우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님은 우리를 찾아 오셨다. 우리와 대화하시기 위하여 그리고 마침내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다 버리고 스스로 Comfort Zone 에서 나오셨다. 소외된 자, 고난 가운데 있는 자, 병든 자, 갇힌 자 등을 찾아 오셨다. 그리고 아무리 작은 일 일지라도 우리의 억울함을 들어주시고 또한 해결해 주셨다.

또 한 해가 기울어 간다. 한 해를 정리하면서 내년부터는 정말 정직하고 투명하고 겸손하며 Under-Stand 하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자가 되겠다고 주님께 약속해 본다.

산호세 생명의 강 교회 김 진환 목사  www.riveroflifesj.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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