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04

예수님의 리더십

Posted by on Nov 04 2009 at 11:20 pm

고등학교 때 잠시 자전거 통학을 한 적이 있다.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오전 수업만 있던 토요일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늘 다니던 길이 아닌 새로운 길로 다녔다. 당시 쌀 두가마를 주고 산 고급 자전거를 타고서 반경 한 30KM 정도는 여기 저기 안가본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마냥 쏘다녔다.

기차역 뒷동네를 가 본적도 그 때다. 기차 역 뒤로 열두 겹도 넘는 선로가 죽 널려 있고 그 뒤에는 높은 담이 처져 있었기 때문에 그 뒤에 있는 동네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볼수 없었다. 그래서 늘 궁금했었는데, 어떻게 가야되는지도 알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역쪽을 향하여 달렸다. 그러다 보니 역사 옆에 철도 아래로 난 좁고 긴 터널이 있었다.

일제때 만든 그 좁고 긴 터널, 마치 으시시한 지하실 통로처럼 생긴 터널이다. 그 속을 비춰주는 희미한 전등불 아래로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간다. 더러는 조그만 리어카를 끌고가는 사람, 뒤에 연탄을 가득실은 짐 자전거를 끌고 가는 사람, 머리에 무엇인가를 이고 가는 사람,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로 터널은 꽉 찼다. 반대쪽에서 사람들이 올때마다 그 사람들이 지나가도록 벽쪽으로 붙어서 자전거를 끌고 가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간 후에야 마침내 터널을 벗어날 수 있었는데 어둠 침침했던 터널에서 밖으로 나오니 눈이 부시다. 하지만 나 혼자만 그렇지 다른 사람들은 이미 숙달이 돠었는지 조금도 주춤거림이 없이 각기 갈길을 향하여 총총걸음을 한다.

그런데 이거 웬 일인가? 철도를 사이에 두고 역 앞쪽은 휘황찬란한 도시인데 이쪽은 완전한 시골 빈민촌이다. 살짝만 밀어도 넘어질 것 같은 허름한 담벽에 낡은 스레이트 지붕은 구멍난 곳을 매우느라 덮힌 비닐 조각들 위에 벽돌들이 놓였는 집들이 촘촘하게 붙어있다. 동네에 들어서자 길 옆에는 악취가 나는 시궁창에 더러운 물이 고여있고 그 끝은 논으로 이어졌다. 혹시 낯선 사람을 보고 시비나 걸지 않을까 조급한 마음으로 되돌아 왔다.

칠년 뒤쯤, 군 제대한 후 기차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는데 버스 노선이 바뀌었는지 그 동네 쪽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불현듯 옛날 생각이 나서 밖을 내다 보았으나 옛날 그 동네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거기에는 아파트가 즐비하게 들어서 있고 군데 군데 학교와 관공서처럼 보이는 건물도 보였다.
 
오년전 철도 역사를 크게 중축하면서 선로 위로 크고 넓은 고가다리가 건설 되었는데, 그 때부터 그 동네는 삽시간에 바뀌기 시작한 것이었다. 옛날 판자촌은 아파트 단지로 탈 바꿈하였고, 시궁창 대신 놀이터가 생겼고, 건물들이 들어서고 시가지가 형성되면서 인구도 부쩍늘어 밤에도 휘황찬란한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로 탈바꿈한 것이다. 고가다리 하나가 이렇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럴줄 알았더라면 우리 자갈밭 팔아다가 거기에 땅좀 사 놓았더라면 엄청난 부자가 되었을 텐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 인들은 주님과 불신자들 사이를 연결해 주는 다리들이다. 불신자들은 우리를 통하여 주님을 볼수 있어야 하고 주님의 사랑을 맛볼수 있어야 한다. 주님의 생명력이 우리를 통하여 그들에게로 흘러 가야한다.

그런데 다리는 우선 견고하고 안전해야 한다. 견고하지 않고 끊어지거나 부서질 염려가 있는 다리는 아무도 건너려고 하지 않는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듯이, 견고하고 안전하지 않은 다리를 누가 건너려고 하겠는가?

이처럼 불신자들을 향한 우리의 신앙도 흔들림이 보여서는 아니된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구원의 확신도 없이 때로는 무엇을 믿는지 불분명한 행동을 할때, 혼사가 오가거나 혹은 사업을 시작하거나 이사를 할때 점을 보러 다니는 사람을 보면 누가 예수를 믿으려고 하겠는가? 혹은 위기가 닥치고 고난이 닥쳤을때 예수 안믿는 사람들이나 똑같이 절망하고 좌절하고 방황하는 것을 보이면 누가 예수를 믿으려고 하겠는가?

분명 우리는 불신자와 예수님 사이의 교량 역할을 해야 하는데, 혹시 교량 역할은 커녕 장애물 역할은 하지 않는가 나 자신부터 생각해 보아야 겠다. 또한 교량도 나름대로 이겠지만, 나는 좁고 어둑컴컴한 터널인지 한사람 겨우 다닐수 있는 좁고 긴 다리인지 차들이 생생 달릴수 있는 튼튼하고 견고한 다리인지,   혹시 나 때문에 실족한 사람은 없는지, 나 때문에 실망하고 예수님을 영영 떠나버린 사람은 없는지 두렵기도 하다.

무엇 보다도 다리는 넓고 튼튼해야 하는데, 예수님은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라고 하셨는데, 이 참에 나는 튼튼한 다리인지 불안한 다리인지, 튼튼하게 붙어있는 가지인지 말라가는 가지인지 다시한번 확인해야겠다. 

생명의 강 교회 김 진환 목사  Agape2000@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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