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04

예수님의 리더십

Posted by on Nov 04 2009 at 11:14 pm

한때 나를 힘들고 아프게 했던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미 용서했노라고 주님 앞에 여러번 선포하였고,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축복기도도 여러번 하였었다. 그래서 나의 마음이 다 잘 정리된 줄로 알았는데
그것은 소설이나 연속극에나 등장하는 이야기 인지, 그가 불행하다는 소식을 듣고나자 마음이 혼란스럽다. 더이상 그를 미워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내가 진정으로 그를 용서했다고 주님 앞에서 고백할수 있을까? 여기에 대하여서는 아직 명쾌한 답변을 할수 없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요 아마도 세월이 좀더 흘러야 하는가보다.

산란된 마음에 “바울 사도께서는 과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를 용서하셨을까?” 라는 의구심이 파고든다. 특히 후메내오는 디모데 전서와 후서 모두에 등장하는데, 더구나 순교를 앞두고 쓴 편지에 그를 혹평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과연 바울 사도께서는 그를 진정으로 용서하셨을까? “그의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다” 고 하셨지만서도 그를 용서하는 것은 물론 그의 영혼이 불쌍하여 기도도 많이 하셨을 것이다.

소식을 전해 주는 사람은 “그가 하나님으로 부터 저주받은 것” 이라고 하지만 난 그렇게 믿지 않는다. 그에게 닥친 불행이 우연일지 필연일지는 하나님 만이 아시는 일이지만 내가 만난 하나님은 결코 그런 분이 아니다. 죄를 범했다고 더구나 나같이 미천한 자를 아프게 했다고 끔찍한 벌을 내리신다면 이 세상에 온전할 자가 누구이겠는가?

그리고 나는 잘못이 없는가? 나는 내가 겪는 고난의 원인에 자유로운 몸인가? 더구나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고 고통으로 밀어넣은 적은 없는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세상에 저주받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단 한사람이라도 있겠는가? 그리고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를 이러한 저주에서 해방시키시려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죽음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다만 그의 그러한 부질없는 짓으로 말미암아 내 가족이 입은 피해는 물론 내가 섬기던 교회가 입은 피해를 생각하면 그저 안타깝고 가슴이 저리도록 아프다. 그리고 그러한 그가 한없이 원망스럽고 미워야 하는데 오히려 한없이 불쌍하다. 그 일로 인하여 그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이룬 것은 무엇인가? 당시에는 그가 승리한 것 같지만 결국 그 역시도 피해자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 자신은 물론 그와 동조했던 모든 사람들도 모두 피해자다. 결국 교회 분쟁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피해자들 뿐이라는 교훈을 또 얻게된 셈이다.

너무 늦기전에 그를 만나고 싶다. 하지만 그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망설여진다. 내가 그를 만나고 싶은 이유가 너무 많아서 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가 불쌍하여 위로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나의 건재함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나 Pride 가 아직도 내 마음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한 그렇지 않아도 후회와 자책감에 빠져있을 그 앞에 내가 나타나면 그가 얼마나 황당해 할까 라는 생각을 하면 자신이 없어지기도 한다.

온종일 이런 생각으로 혼란스럽고 손에 아무것도 안 잡힌다. 이른 새벽에 눈을 감고 주님의 임재하심을 기다리면서도 이 생각이 떠나가지 않는다. 그러면서 결국은 내가 사단의 계략에 넘어갔음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 교회 개척예배 날짜는 다가오는데,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더욱 많이 갖아야 한다는 부담이 앞서는 이 시기에 왼종일 이러한 생각으로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자 내 자신에게 화가난다.

그렇다. 평화를 마음의 평화를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값비싼 댓가를 치뤄야 하는지 다시한번 깨닫게 한다. 내가 아무리 평화를 누리고 싶어도 상대방이 협조해 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평화다. 그리고 평화는 내가 상대방보다 훨씬 강할 때에만 비로소 누릴수 있는 댓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한 평화는 주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있을때 가능하다. 내가 강해질때 진정한 평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 하신 말씀대로 내가 스스로 약해짐으로 인하여 내 안에 계신 주님이 강해질 때 비로소 평화를 누릴수 있는 것이다.(고후 12:10)

그러므로 평화도 선택이다. 막연한 선택이 아니라 나머지 것을 포기할수 있는 결단이 있는 선택이다. 내 마음속에 미워하는 감정, 분노, 질투, 탐욕및 교만함 뿐만이 아니라 기뻐 들뜬 마음까지도 모두 비우고 그 빈 마음속에 오직 주님만을 채워 나갈때 비로소 진정한 평화를 누릴수 있게 될 것이다.
산호세 생명의 강 교회 김 진환 목사  Agape2000@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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