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21

예수님의 리더십

Posted by on Aug 21 2009 at 11:09 pm

점심으로 샐러드를 사먹으려고 Trader’s Joe 라는 Grocery Store 로 들어가는데, 어디선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휠체어에 탄 사람이 입구 옆 구석진 곳에서 무엇인가 구걸을 하는것 같았다. 음식이나 돈을 구걸하는 것이겠지 라고 생각하며 Grocery 안에 들어갔다.

그에게 먹을 것을 사주고 싶은데,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서 샐러드를 두개를 사자니 부담이 갔다. 그렇다고 내 점심을 포기하자니 아침도 대충 때우고 나왔기 때문에 배가 너무 고프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비스켓 두개를 사서 그에게로 갔다.

그는 분명하지 않은 발음으로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름은 Scott 이고 장애자 쉘터에 사는데 그 쉘터 운영을 위하여 모금을 하고 있노라고 하였다. 언제부터 이렇게 휠체어를 타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13년 전에 오토바이 사고를 당했는데, 공교롭게도 그 날이 8월 13일 금요일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요셉이 형제들에게 팔려간 후 애굽에서 13년 동안 고생하다가 총리가 되었는데, 오는 8월 13일이 만 13년이 되니까 자기도 그 날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Friday Thirteenth 가 당신을 불행하게 만든 것이 아니다. 당신의 실수로 사고가 난 것이었거나 아니면 우리가 알수도 이해할수도 없지만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을 것이다. 여하튼, 성령님께서 당신을 의하여 기도하라는 부담을 주시는데, 예수님을 믿느냐?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베푸신 기적을 믿느냐? 하였더니 그렇다고 하면서, 나에게 보여 줄 것이 있다고 한다.

자기를 지켜보라고 하더니, 엉덩이를 앞뒤로 움직여 본후 휠체어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나 절뚝거리면서 두발로 천천히 걷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며 걸음을 멈추고 이 광경을 보았다. 구경하는 사람들을 의식해서인지 그는 큰 소리로, “나를 보시오” 라고 하더니 두 팔을 힘껏 허공에 흔들면서 아까 보다도 더욱 크게 기우뚱 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아서 불안했는데, 그래도 넘어지지 않고 자기 휠체어 있는 곳까지 그렇게 뛰어 오더니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앉는다.

그리고 방금 뛴 것이 무리가 갔는지 한참 동안이나 가쁜 숨을 몰아쉬더니, 다시 자기 이야기를 시작한다. 처음 사고가 났을 때 의사들은 뇌에 손상이 가서 못 깨어날 것이라고 하였는데 기적적으로 의식이 돌아왔고, 6개월 후에는 퇴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재활운동을 한지 3개월 만에 걸을수 있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 모두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베푸신 기적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당신을 이렇게 걷고 뛸수있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앞으로 당신은 더욱 힘있게 잘 걷고 뛸수 있을텐데, 그렇게 해주는 것은 13년이라는 세월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것은 13년이라는 세월이 채워졌기 때문이 아니다. 만일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의 인생에 매 13년째마다 큰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요셉은 언젠가는 자기 형제들, 자기 백성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하나님께서 주신 그 꿈을 믿었기 때문이다. 당신도 그 하나님을 믿는가? 당신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정상적으로 걷고 뛸수 있다고 믿느냐 하였더니 그렇다고 한다.

그의 머리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하는데, 성전 앞에서 구걸하던 거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하여 베드로가 기도한 것처럼,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정상적으로 걷고 뛰어라,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가지 않고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살아가는 자가 되라, Scott의 삶을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의 크신 영광이 세상에 크게 증거되게 해 달라” 간절히 기도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계속해서 성전 앞에서 구걸하던 거지에 대한 상상이 떠나지 않았다. 나도 베드로 사도처럼 기도의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왜 나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가? 내게 있는것으로 네게 주노니 하였는데, 나에게는 그에게 줄 무엇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까? 과연 얼마나 더 기도해야 되고 얼마나 더 큰 믿음이 필요한 것일까?

그러고 보니 목회자라는 직분이 참으로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그대로 행하며 살아야 하는데, 선포되는 말씀에 능력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자칫 구설수에 오르고 비판의 도마위에 놓이게 된다. 먹이고 다스려야 할 양들로부터 채이고 밟히면서도 잘못된 것을 애써 인정하지 않고 십자가에 달린 고난받는 종인양 착각에 빠진채 살아가는 모순속에서 삶의 가치를 찾으려고 바둥거리는 모습이 너무도 애처롭다.

이 척박한 세상에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 가르치며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하여 치러야 하는 대가는 너무도 크다. 저 천국에 가면 그 보상을 받는다는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다. 우선 이 세상에서의 필요도 무시해서는 안될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밤에 Scott 을 위하여 그가 내가 기도한 대로 정상적으로 걷고 뛰면서 이웃으로부터 도움을 받고사는 자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풀면서 살수있는자가 되도록, 그리고 그의 삶을 통하여 주의 영광이 더욱 크게 나타나도록 기도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의 기도는, 다니엘 친구들의 기도처럼(단3:18) 혹시 Scott 이 정상적으로 걷고 뛰지 못할 지라도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다. 얼마나 모순된 기도인가?

agape2000@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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