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 08
말세성도들의 삶(룻기 3:1-6절)
May 10, 2009
오늘은 어머니 날인데, 지난주 본문은 며느리 룻이 시어머니를 위해 정성을 다하는 그리고 시어머니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시어머니 나오미가 며느리 룻을 위하여 무엇을 해줄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록 가진 것이 없어서 힘드는 삶이었지만, 얼마나 행복한 가정의 모습입니까?
여러분들 각 가정도 나오미와 룻의 가정처럼 식구끼리 서로 위하고 서로 도우며, 또한 윗사람을 존경하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복된 가정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날마다 자기 며느리의 앞날을 위하여 고민하면서 기도해오던 나오미는, 자신이 할수 있는 것중 가장 소중하고 큰 일, 며느리 시집보내는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본문 1절에, “룻의 시모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라고 합니다.
나오미는 너도살고 나도 살고가 아니라, 너로 복되게 하고자 함이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부터 살궁리를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중심적인, 자기 위치에서 세상을 보고 판단하며 일들을 처리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나오미처럼 성경은 이웃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으라고 가르치십니다.
특히, 대접을 받고 싶으면 이웃을 먼저 대접하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도 이웃의 필요에 민감하지 못한 편인데, 서로 이웃을 배려하도록 노력하십시다.
그리고 이렇게 며느리는 시부모님께 순종하고 시부모님은 어떻게하면 우리 며느리가 좀더 행복할까 며느리를 위하여 애쓰는 아름다운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어머니 날을 맞이하여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계신 예수님의 사랑과 축복이 항상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금까지 보아온 대로, 룻의 가족은 보아스를 통하여 많은 은혜를 입었고, 그로 말미암아 열심히 보리이삭을 주워서 먹을 양식을 좀 모아두기는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되었겠습니까?
그리고 추수가 끝나고 추운 겨울이 오면 이삭 줏을 것도 없는데, 어떻게 무엇을 먹고 살수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시어머니 나오미는 앞으로 닥칠 일을 위하여 무엇인가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궁리끝에 며느리 룻을 보아스에게 시집 보내기로 계획을 세웁니다.
그런데 그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과부들을 먹여살리고 또한 끊어진 대를 잇기위한 형사취수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취하여 생활비도 주고 아이도 낳아주게 됩니다.
그러므로 형수를 통하여 낳은 자녀들은 호적상으로 모두 죽은 형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이 많아서 과부와 고아가 유난이 많아서 그랬었는지, 여하튼 힘없고 가난한 과부들을 위하여 이 제도를 의무적으로 이행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유다의 아들 오난이 이 의무를 제대로 행하지 않습니다.
자기 형 엘이 다말이라는 여자와 결혼해서 얼마 안되어 죽습니다.
그래서 형수를 취하여 아내로 삼았는데, 형수를 통하여 자녀를 낳아 보았자 모두 죽은 형 자녀가 되고, 그렇게 되면 괜히 자기 부양가족 수만 늘기 때문에 일부러 자녀를 낳지 않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오난의 그 악한 행위를 보시고 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맏아들 엘과 둘째아들 오난까지 잃은 유다, 아들 삼형제중 이제 하나밖에 안남았는데, 이 셋째 아들을 장가보내기가 겁이 납니다.
그리하여 시아버지 유다는 셋째 아들 셀라가 아직 어리니까 어른이 될때까지 친정에서 수절하고 기다리라고 하면서 며느리 다말을 친정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덧없는 세월이 몇년 흘러갑니다.
이제 셋째 아들 셀라가 장성하여 결혼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다말은 언제나 시잭에서 전갈이 오나 하고 기다렸는데, 좀처럼 소식이 오지 않습니다.
그리허여 참다못한 다말은 창녀로 가장하여 시아버지 유다를 유혹합니다.
정말 대단한 여자입니다.
그런데 마침 돈이 없던 유다는 도장과 지팡이를 저당잡히고 그녀와 동침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며느리 다말이 임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소문이 시아버지 유다의 귀에까지 들리게 됩니다.
그러자 유다는 자기 며느리가 외간남자와 간음을 하여 임신을 하였노라고, 집안 망신을 시켰다고 하면서 공개처형 시키려고 사람들을 데리고 옵니다.
그리하여 며느리 다말은 사람들의 손에 붙들려 질질 끌려나가게 되는데, 그때 그녀는 이 도장과 지팡이의 주인이 바로 이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라며 지팡이와 도장을 보여줍니다.
그것을 본 유다는 온갖 수치를 다 뒤집어쓰고 며느리를 아내로 맞이하게 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 형사취수의 제도가 그 후 400년이 지난 모세때 와서는 의무적으로 지키라고 아예 법으로 정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형이 죽었는데도 시동생이 자기를 아내로 맞이하지 않으면 형수는 시동생에게 자신을 아내로 삼으라고 법적으로 요구할수가 있었습니다.
만일 그래도 시동생이 정말 나는 형수같은 여자를 도저히 못받아드리겠다 라고 하면, 그 요구를 거절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럴 경우에는 장로들을 초청해다가 그 앞에서 형수가 시동생의 신발을 벗기고 얼굴에 침을 뱉게끔 되어있습니다.
우리 동양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이지만 얼굴에 침뱉음을 당한다는 것은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치욕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뿐만이 아니라, 그 집안은 이스라엘 가운데서 “신 벗기운 자의 집” 이라고 조롱거리가 됩니다.
그래서 신을 벗기운 자의 가문이다 하면 자녀들의 혼인길도 막힐 뿐만이 아니라, 그 집안 사람들과는 상종을 하지 않으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여하튼 나오미는 이러한 유대인들의 풍습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한편 룻이 재혼을 하려면 유다 법으로는, 시동생에게로 해야 되는데 시동생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이것을 잘 알고있었던 나오미는 일찌기 모압에 있었을때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강권하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룻이 나오미를 따라왔다는 것은 재혼할 것을 완전히 포기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전혀 불가능할 것 같던 룻의 결혼이 성사될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꼭 시동생이 아닐지라도 친척중의 한사람이 결혼해 주면 되는 것입니다.
한편 나오미는 보아스가 친족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에게 그 의무를 이행하라고 요구할 처지는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룻은 유대인이 아니라 모압에서 온 이방여인입니다.
그래서 자기 며느리의 재혼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룻이 나가서 만난 사람이 바로 그 보아스였고, 그 보아스가 룻에게 많은 은혜를 베풀고 있습니다.
그런 것으로 보아 이쪽에서 먼저 서두르면 성사될 것같은 확신이 섰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오미는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갑니다.
우선 거사 날자와 장소는 보아스가 보리 추수를 마치고 타작하는 날 밤 보아스의 타작 마당으로 잡았습니다.
왜 하필 타작날 밤 캄캄한 타작 마당입니까?
농삿꾼들에게 있어서 일년 중 가장 기쁜 날 중의 하나는 추수한 것 타작하는 날 입니다.
잘 영글은 곡식을 타작하여 가마니에 담을때 그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리고 타작하는 마당에는 먹을 음식과 마실 것이 풍부합니다.
그래서 타작마당에는 모두들 기쁨이 넘칩니다.
이것을 잘 아는 나오미는 룻에게, 보아스가 타작 마당에서 하루일을 마친 일꾼들과 함께 푸짐한 식사를 나눈뒤 기분좋게 잠자리에 들었을 때 몰래 보아스의 침대로 기어 들어가서 청혼을 하라는 것입니다.
동양 사고방식, 특히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청혼은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것입니다.
처가에 신부값을 치르고 신부를 데려오던 유대인들에게, 여자가 남자에게 청혼을 한다는 것은 상상할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도 밤에 여자가 외간남자 침대에 들어가 유혹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 문화적 배경으로 볼때 상상을 초월한, 그야말로 있을수 없는 일입니다.
또한, 이렇게까지 했다가 만약 거절이나 당한다면 나오미와 룻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일 보아스가 이게 무슨 짓거리냐고 고함을 친다면, 룻은 그 자리에서 창녀 취급을 받게 될 것인데, 그렇다면 어디 가서 낯을 들고 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거절을 당하지 않도록 나오미는 룻에게 지시하는데, 그 내용이 3-4절입니다.
3-4절을 같이 읽습니다: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4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너의 할 일을 네게 고하리라
이 구절에서 우리는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자세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첫째, 원래 우리는 예수님의 신부가 될수 있는 자격이 없는 자임을 먼저 인식해야 합니다.
이방여자인 룻이 보아스의 아내가 될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하지만 나오미의 도음으로 보아스의 아내가 되어가는 학습을 하게되듯이,
우리는 원래 죄악에 빠져 아무런 소망도 없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 였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선진들과 성령님의 도움으로 예수님의 순결한 신부가 되어가는 학습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살동안, 겸손한 자세로 주님의 은혜에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심껏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주님의 순결한 신부가 되기 위한 첫번째 조건은 깨끗이 목욕을 해야 합니다.
몸의 때만이 아니라 마음의 때를 씻어 버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를 청산해야 합니다.
룻은 시어머니를 따라 유다로 올때 이미 자기 부모 형제 그리고 고향 그리고 민족까지도 버리는 엄청난 용단을 내렸습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씻어내는 목욕을 해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과거를 속히 청산하고, 매일 짓는 죄도 “하나님 오늘도 제가 많은 죄를 범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라며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에 씻어 내야 합니다.
그러면 아무리 큰 죄도 주님께서 모두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더이상 과거에 얽매여 살지 마시고, 과거의 실수가 더이상 현재나 미래의 삶에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정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새로운 나날을 시작하십시오.
셋째, 온 몸에 기름을 발라야 합니다.
이것은 기름 부음을 의미합니다.
기름부음이란 실제로 기름을 붓는 것도 의미하지만, 주님의 임재하심, 주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있는 그러한 체험을 의미합니다.
사무엘이 다윗의 머리위에 기름을 붓자 그날 부터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 감동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항상 그런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기름부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기름부음을 체험하려면 주님을 깊이 사모해야 합니다.
다윗도 기름부음을 받기 전에 양을 치면서 주님을 얼마나 사모하였습니까?
하나님을 얼마나 믿고 의지하였습니까?
다윗처럼 주님의 은혜와 축복을 간절히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주일 예배는 물론, 집에 가셔서도 날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침마다 비록 10분 정도라고 무릎을 꿇고, 하루일을 계획하며 주님께서 도음 주시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넷째, 새옷을 입어야 합니다.
여기서 옷은 의로운 삶과 신앙의 흔적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의 삶이 얼마나 변했느냐, 버려야 할 습관은 버렸는지, 그리고 주님 앞에 얼마나 바르고 정직하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위하여 무엇을 했느냐, 희생의 흔적이 하나라도 있느냐.
네가 신앙생활을 위하여 양보한 것은 얼마이고, 참은 것은 무엇이며, 손해본 것이 있느냐?
네가 신앙을 지키고 전도를 하기 위하여 애쓴 흔적을 가져와 보라는
것입니다.
몇년전에 뉴욕의 콜롬비아 대학교 의대에 지원한 한국 학생이 성적은 좋았지만 불합격 통지를 받았습니다.
성적은 그 누구보다도 좋아서 부모님들은 합격은 물론 장학금은 얼마나 받을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통지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참다 못하여 학교당국에 쫓아가 항의를 하였답니다.
그랬더니 학교 당국에서는 의외로 이런 말을 하더랍니다:
그렇지 않아도 당신들을 만나보고 싶었는데 잘 찾아 오셨습니다.
물론 당신 자녀의 성적은 최고수준입니다.
그런데 의사가 되겠다는 사람이 어찌 헌혈한번 한 흔적이 없습니까?
남의 생명을 다루는 사람이 남의 생명을 위하여 이만큼도 희생한 흔적이 없다면, 나중에 이 사람이 실력있는 의사는 될지 몰라도 존경받는 의사는 될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즈음 한국 부모님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교회도 안다니는 아이들을 무조건 아프리카 선교지에 보내는 것입니다.
마 22:11-13절에,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하였습니다.
아무리 목욕을 자주 한다 할지라도, 베드로후서 2:22절,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라고 하신 말씀처럼 죄악속에 다시 뒹글게 되면 잔치에 참여했다가 쫓겨나는 신세를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의 새로운 옷을 입고, 죄가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단단히 졸라 매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목욕을 하고 기름을 바르고 새옷을 입었으면, 그때야 비로소 타작마당에,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룻처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타작 마당은 그간 신앙생활을 해왔던 것에 대한 심판을 받게되는 그야말로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말세의 심판때를 의미하기 떄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심판대에 서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목욕하지 않고 기름을 바르지 않고 새 옷으로 갈아입지 않고 타작마당에 나아갔다가는 신랑에게 거절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에 가장 큰 불행이요 치욕이요 돌이킬수 없는 운명, 영원토록 어두움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라는 처지가 될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세를 살아가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 날마다 목욕을 하듯, 지은 죄들을 그날 그날 회개를 하십시다.
2. 기름부음을 받음, 즉 날마다 주님의 임재하심 속에 주님과 함께 사십시다.
3. 의복을 입음, 주님의 자녀답게 의로운 삶, 바른 삶, 예수님의 향기를 풍기는 삶을 사십시다.
4. 그리고 날마다 타작마당,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사십시다.
이 말씀 가지고 한 주간도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