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 07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와 받는자의 태도(룻기 2:10-16절)
April 25, 2009
모압으로 이민을 갔다가 남편도 자식도 그리고 재산도 다 잃고 며느리와 함께 빈털털이로 돌아온 나오미, 정말 살길이 막막했습니다.
당장 끼니를 댈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어디 일할데도 없었습니다.
그 옛날에 그 시골에 농사짓는 것 말고는 무슨 직장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때가 마침 보리를 베는 때였습니다.
그래서 고부간에 기도하면서 생각한 것이, 그래 보리이삭이라도 줏자, 그러면 두식구 우선 당장은 먹고 살수 있겠지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다음날 아침 며느리 룻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보리 이삭을 줏으러 갔습니다.
누구 밭이든 나로 하여금 구박하거나 멸시하지 않고 이삭을 줍게하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이삭을 줏으러 갔습니다.
남의 추수한 밭에서 이삭을 줏는 주제에 그 이상 무엇을 더 바랄것이 있었겠습니까?
그렇게 고부간에 간절히 기도하고 이삭을 줏으러 갔는데, 마침 그 밭주인이 돈많고 사람좋은 그동네 유지 보아스였습니다.
보아스는 밭이 여럿이나 되는 큰 부자였으므로 추수때가 되면 이 밭 저밭 다니면서 살폈습니다.
그러다가 그날 룻이 이삭을 줏는 밭에도 왔습니다.
그런데 전에 보지 못하였던 한 젊은 여자가 열심히 이삭을 줏고 있습니다.
처음보는 여자인데, 왠지 모르게 자꾸만 끌리는 뭐가 있습니다.
무슨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 여자에게 잘해주고 싶고 또한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왜 그런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준것도 없이 미운사람도 있는가 하면, 별 잘생기지도 못했고 나한테 친절하지도 않는데 괜히 잘해주고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보아스 눈에 룻이 그런사람입니다.
젊은 여자라 예뻐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그 사람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그녀가 누군지 자세히 알아보았더니, 모압지방으로 이민을 갔던 자기 친척 나오미가 그곳에서 남편과 아들 다 죽고 살림도 다 망하자, 며느리와 달랑 둘이서 돌아왔다는 바로 그 며느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8-9절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9 그들의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의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라고 합니다.
보아스는 이미 소년들에게 이야기 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고 단단히 명하였으니, 안심하고 추수가 끝날때까지 자기 밭에서 줏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소년들이 길러온 물을 마시라는 것입니다.
보리는 여름에 추수하기 때문에 땀이 줄줄 흐르고, 갈증이 나며, 보리검불도 가시가 돋혀서 박히면 꾹꾹 찌릅니다.
그런데 갈증이 날때마다 물마시러 멀리 가지 말고 일꾼들이 길러온 것을 마시라고 하였는데, 이삭을 줏으러 온 주제에 물까지 얻어마시게 된 것입니다. 주인처럼 누리게 한 것입니다.
보아스의 이 따뜻한 배려에 룻은 정말 감동되었을 것입니다.
그저 시어머니 따라 낯선 외국땅에 와서 사는 외국인 과부, 더구나 유대인들이 싫어하고 무시하는 모압여자인 자신에게 이러한 후한 대접을 해 주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요즈음 월남여자들 태국여자들이 한국 농촌에 시집와서 무시당하고 얻어맞고 학대받고 사는 뉴스를 볼 때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대부분이 보면 자기 나라에서는 그래도 많이 배우고 똑똑한 편에 속하고 얼굴도 예쁜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한국 남자에게 시집오면 더 잘살 것 같고 해서, 말도 안통하고 물도다른 한국에 와서 자기보다 학벌도 낮은 농촌사람, 청년도 아닌 자기보다 나이도 10여살씩 많은 사람들과 사는데, 남편이라는 사람들이 따뜻하게 대해주기는 커녕 구박하고 때리고 하니 참 안되었습니다.
정말 우리민족이 이래서는 안되는데 하는 생각이 참 많이듭니다.
오늘 이 보이스처럼 외국여자라고 무시하고 학대하지 말고 친절하고 따뜻하게 해 주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보아스의 이 따뜻함과 친절한 배려에 룻은 아주 몸둘바를 모릅니다.
그래서 본문 10절에, “룻이 땅에 엎드려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어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라고 합니다.
나는 이방여인 이어늘, 나는 이러한 대우를 받을 아무런 자격도 없는 천한 사람인데 당신은 왜 나에게 친절을 베푸십니까?
우리 민족은 음란한 백성이라고 당신들이 사람취급도 하지않고 무시하는 모압사람인데, 그러므로 나는 무시를 당하고 천대를 받아야 마땅한데, 어찌 내게 이러한 은혜를 베푸십니까?
룻은 자신의 신분이 무엇인지를 항상 깨달았습니다.
자신은 지금 감히 보아스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신분이 아닙니다.
그냥 하인 취급을 받아야 마땅한데, 자기에게 찾아와서 말도 따뜻하게 하면서 이렇게 은혜를 베푸는데 어찌 감동하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모든 일꾼들과 하인들이 바라보는 그 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어찌 감동하지 않을수 있었겠습니까?
룻은 너무도 감격스럽고 나무도 고마와서 아마도 보아스의 발 앞에 엎드려 눈물을 주루룩 주루룩 흘렀을 것입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다윗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불러 은혜를 베풀때 므비보셋이 황송해 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사무엘 하 9:7 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찌니라
오늘부터 너는 나의 아들처럼 나와 같이 식물을 먹을 것이며, 사울왕의 그 엄청난 소유를 다 네게 돌려 주겠다 고 합니다.
지금 므비보셋의 신분은 무엇입니까?
다윗 왕을 죽이려고 자기 목숨을 걸고 온갖 나쁜짓 악한 짓을 하다가 죽은 사울왕의 손자입니다.
다시 말하면 처형을 당하여야 할 역적의 자손입니다.
그래서 므비보셋은 지금까지 로드발이라는 동네의 마길의 집에서 숨어서 처량하게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왕이 무어라고 하였습니까?
나의 아들중의 하나처럼 나와같이 나의 상에서 먹고, 어디 그뿐입니까?
네 할아버지 사울왕이 소유하였던 그 엄청난 재산을 다 너에게 주겠다 고 하였습니다.
처음 다윗이 궁궐로 불렀을 때에 므비보셋은, “아이쿠, 여기 숨은 것이 들통이 났구나” 하면서 처형 당할것을 생각하며 벌벌 떨고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믿기지 않을 만큼 뜻밖에, 이러한 엄청난 축복을 받자 너무나도 황송한 나머지, 사무엘 하 9:8절에, “저가 절하여 가로되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라며 어쩔줄을 모릅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개를 참 좋아하고 방에서 키우고 밥도 같이 먹는데, 그 당시 유대인들은 개를 아주 천하고 더러운 짐승으로 여겼습니다.
개가 어디 감히 주인의 밥상에 옵니까?
아이들 똥싸면 할타먹고, 밥 다 먹고 난 것, 상 닦으면서 흘린것 쓸어담아서 주면 그것도 아주 고맙게 먹는 것이 개의 신분입니다.
그래서, 물론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유대인들에게도 개에 비유하는 욕이 가장 큰 욕이었습니다.
산 개도 이렇게 천하게 취급을 받는데 죽은 개는 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므비보셋은 아주 천하여 감히 왕을 바라볼수도 없는, 왕 앞에 나타났다 하면 죽을수 밖에 없는 자신을 이미 죽은목숨이라 해서 죽은 개와 같은 존재가 어찌 이러한 엄청난 은혜를 받아야 합니까? 하면서 황송해 합니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황송하여 감사를 드리듯이, 룻도 보아스가 자신에게 베푸는 이 호의와 은혜에 너무도 감격스러워 그 발 앞에 엎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그냥 아무런 이유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녀의 희생의 수고에 대한 대가입니다.
11절에,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모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들렸느니라” 했습니다.
지금은 신문 텔레비전 인테넷등을 통하여, 그리고 전화 및 셀폰이 있어 세계 구석에서 일어난 일도 금방 다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소문이 퍼져나갑니다.
예를 들면 아내가 이웃집 여자로부터, “나오미가 데리고온 그 며느리있지, 그여자 모압사람이래. 그리고 효성이 얼마나 지극한지, 자기 남편 죽은지가 오래 되었는데 재혼도 하지않고 시어머니에게 그렇게 깎듯이 한데” 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면 아내는, 저녁 밥먹으면서 남편에게 “여보 나오미네 그 며느리있지, 어쩌구저쩌구” 이런식으로 해서 소문이 퍼져나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다시피 보아스는 농사를 아주 크게 짓는 사람이라 밭이 여기저기 여러곳에 있습니다.
그래서 농사철이 되면 무척 바쁩니다.
그러므로 동네소문을 쉽게 듣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보아스의 귀에까지 들린 소문이라면, 그 동네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에 다 알고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내게 분명히 들렸느니라” 이 말은 너에 대하여 이미 온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다 이러한 말입니다..
그런데 그 소문이란 두가지입니다:
첫째는, 남편이 죽었으면 다른 사람하고 재혼을 하는 것이 통례인데 너는 끝까지 네 시어머니를 잘 모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선 룻이 얼마나 효성이 지극한 사람인가를 말합니다.
그녀는 인간의 도리를 잘 지킴으로서 뭇 사람들로부터, “그 집 며느리 참 잘 두었어.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예의도 바르고 효성도 지극한지……” 하면서 칭찬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룻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변하지 않는 충성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좋을때에는 좋아하다가 수툴리면 확 돌아서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번 시작하였다면 어려움이 닥치든 말든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아주 끝을 보는 사람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 입니다.
한번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였으면, 뭐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불평하고 그만 두는 것이 아니라 아예 끝을 보는 신앙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룻이 유대인으로 귀화하기 위하여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온 것입니다.
자신의 우상을 버리고 이제는 하나님만을 믿기 위하여, 자기의 풍습도 문화도 친구는 물론 자기의 친정식구와도 생 이별을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 할일 다 해가면서 즐길 것 다 즐겨가면서 그 위에 예수님만 올려놓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선택했다면 나머지는 버리고 포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아주 힘들고 용단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것을 알게된 보아스는 이어서 12절에,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라고 축복을 빌어줍니다.
내가 너에게 지금 베푸는 이러한 호의는 별것 아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께서 너의 행한 일을 보응하시며, 하나님의 보호를 위하여 찾아온 너를 위로하시고 보호해 주실 것을 구합니다.
이제는 모압땅에서 떠돌이로 힘겹게 살던 것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를 먹으며 살려고 이 땅에 왔으니, 하나님의 큰 은혜와 축복이 너에게 임하시기를 원하노라 라며 그는 룻을 위하여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웃을 도울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아스처럼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축복을 받게끔 인도해야 합니다.
그러한 보아스의 간절한 축복기도를 들은 룻은 13절에,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시녀의 하나와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시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라며 사례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를 해 줄때 그 기도해준 사람에게도 감사를 하고, 그 기도대로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받기를 간절히 원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때 “아멘” 으로 응답하는 것은 바로 “나도 당신의 기도대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믿습니다” 라는 동의의 응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축복기도를 해주면 룻처럼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그렇게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언젠가는 그 기도대로 꼭 이루어 질 것을 확신하며 “아멘” 으로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14절에,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했습니다.
.보아스는 처음보는 얼굴이요 또한 유대인들이 더럽고 음란하다고 멸시하고 천대하는 모압여자를 자기의 일꾼중의 하나처럼 식탁에 초청합니다.
.남녀가 유별하고 그것도 처음 보는 모압여자와 식탁을 같이 한다는 것은 그 당시 유대인들의 풍습과 율법에 어긋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보아스는 룻을 위하여 그 당시 율법으로 허용되지 않은 일을 파격적으로 행한 것입니다.
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일꾼들처럼 네 떡을 초에 찍어라 고 합니다.
보아스는 룻을 이삭줍는 여자로 취급하지 않고, 이미 자기의 한 일꾼으로 취급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초를 찍어라, 이것은 영적으로 성령을 받아라는 의미입니다.
떡만 먹지 말고 그 떡에 초를 찍으라, 말씀만 먹으면 맛도 없고 메마르기 쉬우니 성령을 받아라 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역을 하려면 양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주시는 능력이 있어야 사역에 능력이 나타나고, 그를 통하여 더욱 큰 힘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구하되 능동적으로 적극적으로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15절에,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에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그로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합니다.
추수하는 밭에서 일꾼들이 거두어드리다가 빠뜨리고 흘리는 것을 줏는 것이 이삭을 줏는 것입니다.
그럴려면 곡식이 있는 곳에는 가서는 안되며, 일꾼들 뒤를 따라다녀야 합니다.
이삭꾼이 곡식단있는곳으로 가서 줏으면 그것은 훔치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데 보아스는 룻에게 추수꾼 뒤를 따라다니지 말고 곡식 단 사이에서 줏으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율법을 초월합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상식도 규칙도 어겨가며 정도 이상의 은혜를 베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밭 주인이기 때문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보아스는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16절에, 또 그를 위하여 줌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로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
.룻으로 하여금 그 곡식을 주워가도록 일꾼들로 하여금 일부러 손에서 곡식을 흘려주라는 것입니다.
열심히 농사지은것, 한톨이라도 흘리지 않도록 잘 주워담아라 하는 것이 올바른 처사입니다.
그런데 일부러 이삭꾼을 위하여 흘려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교훈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많은 은혜와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그냥 하늘에서 돈뭉치가 떨어지는 그러한 축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그 은혜와 축복을 사모하는 나의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준비하신 축복을 우리를 위하여 놓아 두십니다.
우리 입에까지 넣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와서 먹으라고 일부러 남겨 두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구하여야 할 뿐만이 아니라, 주시는 것을 감사하게 기쁜 마음으로 받아야 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입니다.
룻이 모압여자라고 밭에서 쫓겨나고 비방을 당하고 멸시와 천대를 받는 온갖 수모와 창피와 모욕을 당할 것을 각오하고 보아스의 밭에 나왔듯이, 체면이나 남의 눈치를 보지 말고 주님 앞에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보아스가 룻을 보호하고, 또한 은혜와 축복을 베풀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와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또한 룻이 보아스에게 감사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였듯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더욱 큰 은혜와 축복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룻에게 내리신 축복을 우리에게도 내리실 것입니다.
이 시간 잠시 눈을 감고, 보리 이삭을 줏으러 보아스의 밭으로 나아오는 초라한 룻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잠시후 보아스가 룻을 불러 은혜를 베푸는 모습, 그 은혜에 너무도 감사하여 그 앞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는 룻을 생각하며, 마치 주님앞에 엎드린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보아스가 식탁에 초대하여 식물을 주고, 자기 양념통을 가리키며, 마른 빵만 먹지말고 여기에다가 찍어서 먹으라고 친절을 베푸는 모습,
주님께서 내 앞에 상을 베푸시고, 이리와 같이 먹자.
그간 참으로 힘든 삶을 살았지.
내가 너의 고생한것 다 안다.
여기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려라.
그리고 마른 음식만 먹지말고, 여기 소스까지 곁드려 먹어라.
그리고 이제는 너 혼자 바둥대고 그러다가 지치고 쓰러져 아파하고 좌절하지 말고 지금 나와함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자 초청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