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6
아가서 1:8-8절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을 애타게 찾고있다. 신랑을 너무 사랑하고, 신랑과 떨어져서는 한시도 살기 힘든 그래서 신랑을 열심히 찾는 그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 솔로몬은 여러 여인들 중에 더욱 어여쁜 자라고 칭찬을 한다.
그런데 이것은 주님의 계신 곳을 목마르게 찾고 있는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며, 이것을 시편 42편은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에 비유하였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은 본능적이요 또한 찾지 못하면 죽게되는 생명을 건 사투다.
이처럼 주님을 애타게 찾는 성도를 주님은 어여쁜 자로 부르시고, 또한 그렇게 여기신다. 비록 햇볕에 타서 얼굴이 거무스름하지만 어여쁜 자로 여기시는 그 이유는 무엇인가? 비록 죄악으로 인하여 세상의 빛에 그을림을 받았지만, 예수님의 피로써 씻김을 받아 깨끗하여 졌다. 그리고 외모가 예뻐서가 아니라, 우리가 주님을 사모하는 그 마음, 열정적으로 찾고 찾는 그 마음을 주님은 기뻐 받으시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사모하며 주님 만나기를 갈망하며 찾고 찾는 그 열성적인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주님은 여인중의 어여쁜 자, 즉 여러 성도중의 더욱 아름다운 자라고 여기시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의 계신 곳을 알지 못하겠다면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라고 말씀하신다. 첫째는 양떼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우리의 염소 새끼를 먹이라는 것이다.
양떼의 발자취를 따르라는 것은 앞서간 믿음의 선진들의 믿음의 발자취를 보고 배우며 따르라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우리가 정한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선진들이 가신 그 발자취를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이미 앞서 가셨고, 그 뒤를 이어 11사도들, 그리고 바울 사도, 목숨을 걸고 신앙을 사수한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갔던 길이다.
그러므로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은 간단하지도 쉽지도 항상 기쁜 것 만도 아니다. 때로는 원하지 않는 희생이 요구되기도 하고 극단적인 경우는 생명을 내놓아야 할 때도 있다.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지 않으시고 그대로 돌아가신 것은, 너희들도 나와 같은 핍박을 받는 날이 올 것이라는 암시였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주님께서 가신 그 길을 주저하지 않고 걸어 가셨다.
이러한 양떼의 발자취를 아직 체험하지 못했다면, 그 신앙은 아직 이론적이요 메마른 사막 길과 같을 것이다. 예수님을 안다는 것과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은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선진들이 겪으신 고난과 역경을 보면서, 그분들이 얼마나 정성껏 사모했는지 나도 그 정도의 신앙을 갖도록 기도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다음으로, 주님께서는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우리의 염소 새끼를 먹이라고 말씀하신다. 목자들은 선지자, 사도, 그리고 오늘날 목사들을 포함한 양떼를 먹이고 치는 주의 종들을 가리킨다. 오늘날 신앙의 본은 누구인가? 일선에서 목회하는 사역자들이다. 여기에는 사역자들이 일반 성도들의 본이 되어야 함이 암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일반 성도들은 그러한 충성된 사역자들의 지도하에 전도하고 초신자들을 양육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주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근거없는 일 같지만, 안믿는 자들을 전도하고 양육하려면 그만큼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연구하고 준비하여야 한다. 그러한 열심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을 만나려면, 물론 골방에서 열심히 부르짖어야 하겠지만, 나와서는 믿음의 선진들의 신앙의 유산을 지켜야 할 것이며, 또한 열심히 전도하고 초신자들을 양육해야 한다. 이러한 역할을 잘 해낼 때 주님은 우리를 여인중의 어여쁜자, 여러 성도중에 더 사랑스런 성도라고 불림을 받게 될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는 중에 주님의 Anointing 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